2화
‹ ›[이서아 시점]
택시 안에서 나는 창밖만 바라봤다. 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라디오도 켜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언니가 무언가 말을 하면 그건 위로가 아니라 확정 선언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창밖으로 가로등이 하나씩 지나갈 때마다 나는 숫자를 셌다.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손이 떨릴 것 같았다. 언니의 옆모습은 평소와 똑같았다. 화가 난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닌, 그저 결심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나는 그 얼굴이 언제부터 저렇게 굳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려 했지만, 떠오르는 건 없었다. 아마 처음부터 저랬던 걸까. 내가 몰랐던 걸까.
택시 기사님이 라디오 뉴스 볼륨을 살짝 줄였다. 차 안의 정적이 더 선명해졌다. 나는 그 정적 속에서 언니의 숨소리를 들으려 애썼다. 평소보다 조금 빨랐다. 그게 유일한 위로였다. 언니도 떨고 있구나. 나만 무서운 게 아니구나.
청솔원은 사진보다 훨씬 컸다. 벽돌색 3층 건물이 어둠 속에서도 또렷하게 서 있었고, 정문 옆에는 오래된 향나무 두 그루가 마주 서 있었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그 나무들은 마치 문을 지키는 보초 같았다. 그 사이로 걸어 들어가는 동안, 나는 내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확신이 점점 커졌다.
캐리어 바퀴가 보도블록 틈에 걸릴 때마다 덜컹,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마치 이 조용한 밤에 내가 여기 왔다는 걸 온 세상에 알리는 것 같았다. 나는 캐리어 손잡이를 꽉 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났다.
"이서아 학생?" 로비에서 우리를 맞은 건 오십대쯤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손에는 서류 클립보드를 들고 있었다. 원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네." 내가 대답했다.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원장은 나를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았다. 그 시선에 특별한 악의는 없었다. 그저 새로 들어온 아이를 가늠하는, 익숙한 업무적인 눈길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눈길이 낯설고 부끄러웠다. 마치 내가 무슨 물건처럼 등록되는 것 같았다.
"방은 302호로 배정됐어요. 2인실인데, 룸메이트는 아직... 음, 사정이 있어서 조금 늦게 들어올 거예요."
원장은 뭔가 말을 아끼는 듯한 표정으로 서류를 넘겼다. 나는 그 표정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그저 낯선 곳에 대한 낯선 설명이라고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짧은 망설임 속에 무언가가 숨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때 나는 그런 걸 읽어낼 여유가 없었다. 내 머릿속은 온통 하나의 질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언니가 정말로 나를 두고 갈까.
언니는 서류에 서명을 하며 원장에게 몇 가지를 물었다. 소등 시간, 외출 규정, 식당 운영 시간. 실용적이고 건조한 질문들이었다. 나는 그 옆에 서서 손톱을 물어뜯었다. 언니의 펜 끝이 종이 위를 움직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사각사각. 그 소리가 끝날 때마다 나는 한 걸음씩 밀려나는 기분이었다.
"보호자님, 여기 서명 한 번 더요."
"네."
언니는 망설임 없이 펜을 놀렸다. 나는 그 손끝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손이 예전에는 내 이불을 덮어주고, 열이 날 때 이마를 짚어주던 손인데. 지금은 서류에 사인을 하며 나를 이곳에 남기고 있구나.
"언니." 나는 언니의 팔을 붙잡았다. "진짜 오늘 가는 거야?"
언니는 서명을 마치고 나를 돌아보았다.
"응."
"나 혼자 저 방에서 자야 하는 거야?"
"응."
짧은 대답이 오히려 더 아팠다. 언니가 길게 설명하고 달래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런데 언니는 그러지 않았다. 마치 길게 말하면 자기 결심이 무너질까 두려운 사람처럼, 짧게만 대답했다.
원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언니는 나를 로비 구석 소파로 데려갔다. 소파는 낡았고, 팔걸이 한쪽이 살짝 갈라져 있었다. 나는 그 갈라진 틈을 손끝으로 만지며 언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언니는, 처음으로 목소리를 낮췄다.
"서아야. 나 지금 힘들어서 이러는 거 아니야."
"그럼 뭔데."
"너 이대로 자라면, 스무 살 되고 서른 살 되고 나서도 누군가 옆에 없으면 못 자는 사람으로 남아. 나는 그게 무서워."
"언니가 있잖아."
"내가 평생 네 옆에 있을 수 없어." 언니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살짝 흔들렸다. "나 언젠가 결혼도 할 거고, 어디 멀리 갈 수도 있어. 그때 네가 여전히 이런 상태면 어떡해."
나는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이미 여러 번 생각해 본 두려움이었기 때문이다. 언니가 없는 밤. 그건 내가 가장 상상하기 싫었던 미래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언니 없이 잠든 적이 거의 없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그 집에서 나와 언니만 남겨졌던 그 시절부터. 언니의 침대 옆에 이불을 깔고 자던 밤들이, 어느새 내 세계의 유일한 안전망이 되어버렸다.
"기억나? 초등학교 4학년 때, 내가 천둥소리에 무서워서 언니 방 문을 두드렸잖아." 나는 갑자기 그 기억을 꺼냈다. "그때도 언니가 재워줬잖아."
"기억나." 언니의 눈가가 살짝 붉어졌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 그랬지. 서아야, 그게 문제야. 열 살 때 시작된 습관이 지금 열여섯 살까지 이어지고 있어."
"그래도 오늘은, 아니잖아." 나는 겨우 말했다. "준비할 시간을 좀…"
"준비할 시간은 없어. 지금 도망가지 않으면, 다음엔 더 늦어."
"무슨 소리야, 도망이라니. 우리가 뭘 도망가."
언니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리에서 일어났다. 캐리어를 내 옆에 세워놓고, 내 어깨를 짧게 잡았다.
"할 수 있어. 너는."
그 말을 남기고 언니는 정말로 걸어 나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붙잡고 싶었다. 소리쳐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목이 사포처럼 껄끄러워서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정문을 나서는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 자리에서 소리 내어 울 뻔했다. 그런데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감정이 뭘 느껴야 할지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 같았다.
원장이 다시 로비로 돌아왔을 때,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캐리어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학생, 방으로 안내해줄게요. 따라와요."
나는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봤다. 언니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정문 밖 가로등만이 텅 빈 길을 비추고 있었다.
302호는 3층 복도 끝에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원장은 몇 가지 규칙을 설명했지만, 나는 절반도 듣지 못했다.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비어 있었다. 문을 열자, 두 개의 침대와 책상, 옷장이 놓인 평범한 방이 나왔다. 창문 밖으로는 향나무 두 그루의 그림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필요한 거 있으면 1층 사무실로 와요. 야간에도 당직 선생님이 있으니까."
원장은 그렇게 말하고 문을 닫았다. 발소리가 복도를 따라 멀어졌다. 나는 잠시 문 앞에 서서, 그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룸메이트의 침대는 텅 비어 있었다. 이불조차 개어져 있지 않은 채로. 매트리스 위에는 얇은 먼지막이 덮개만 씌워져 있었고,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마치 아무도 살지 않았던 방처럼 보였다. 그런데 옷장 한쪽 구석에는 낯선 슬리퍼 한 짝이 놓여 있었다. 짝이 맞지 않는 그 슬리퍼가, 이상하게 신경을 긁었다.
나는 캐리어를 열지도 않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시계는 밤 열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소등까지는 두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눈을 감는다고 해도 잠들 수 없을 거라는 걸.
휴대폰을 꺼내 언니에게 문자를 보낼까 생각했다. 하지만 뭐라고 써야 할지 몰랐다. 미워, 라고 쓰고 싶었지만 그건 진심이 아니었다. 보고 싶어, 라고 쓰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약해 보였다. 결국 나는 화면을 끄고 휴대폰을 침대 위에 던졌다.
밤이 깊어질수록 방은 더 조용해졌다. 복도에서 다른 방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렸다가 사라졌다.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소곤소곤 대화를 나눴다. 그 소리들이 오히려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저들은 이곳이 익숙한 걸까. 저들도 처음엔 나처럼 무서웠을까.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았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듯 뛰었다. 언니의 숨소리가 없는 어둠은, 마치 소리가 통째로 빠져나간 진공 같았다. 나는 손을 뻗어 옆 침대의 빈자리를 만져보았다. 차가웠다. 당연했다. 아무도 없으니까.
한 시간, 두 시간. 나는 몸을 뒤집으며 시간을 셌다. 왼쪽으로 돌아눕고, 오른쪽으로 돌아눕고, 다시 천장을 보고 눕기를 반복했다. 창문 틈으로 향나무 가지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마저 낯설고 무서웠다. 열두 시가 넘어가자 목이 말랐다. 물이라도 마셔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나섰다.
복도는 어두웠다. 야간 조명 하나만 벽을 따라 희미하게 켜져 있었고, 다른 방들의 문틈으로는 불빛이 새어 나오지 않았다. 다들 벌써 잠든 걸까. 나만 이렇게 잠들지 못하는 걸까. 그 생각이 들자 이상하게 서러웠다.
저 멀리 계단 아래쪽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빛은 흔들리듯 깜빡였다. 형광등이 아니라, 어쩐지 더 낮고 붉은 느낌의 빛이었다. 이 시간에 저기 누가 있는 걸까. 당직 선생님일까. 아니면 다른 학생일까.
그 빛을 향해,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걸음을 옮겼다. 발끝이 차가운 복도 바닥에 닿을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계단 손잡이를 잡은 손이 떨렸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빛은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낯설게 느껴졌다.
그때는 몰랐다. 그 빛 아래에서 내가 무엇을 보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