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장미궁을 내어주라는 명이 떨어진 건 오늘 아침의 일이었다.
나는 조찬을 들다가 그 소식을 들었다. 숟가락을 놓칠 뻔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십 년을 왕비로 살면 이 정도는 표정 관리가 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표정 관리가 되는 척을 하는 데 능숙해진다. 그게 그거 같아도 다르다.
"청림 백작가의 영애가 입궁하신답니다." 미란이 담담하게 말했다. "몸이 약하셔서, 요양 목적으로요."
"그런데 왜 장미궁이지."
내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미란의 손이 살짝 멈추는 걸 보고서야, 아니었나 보다, 하고 뒤늦게 깨달았다.
장미궁은 별궁 중에서도 가장 볕이 좋고, 가장 조용한 곳이었다. 원래는 내가 아플 때 며칠씩 머물던 곳이기도 했다. 도헌이 직접 지어준 정원이 있는 곳. 결혼한 지 삼 년째 되던 해, 그는 그 정원에 흰 장미를 심으라 명하며 이렇게 말했었다.
"네가 아플 때 볼 게 흰 장미밖에 없어서야 되겠느냐. 아프지 않을 때도 보라고 심는 거다."
그때는 그 말이 참 다정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그다운 말이기도 했다. 다정함과 명령이 한 문장 안에 완벽하게 섞여 있었으니까.
미란은 잠시 말을 골랐다. "폐하께서 직접 지정하셨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나는 찻잔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손이 떨려서가 아니라, 이건 굳이 마실 필요가 없는 차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오늘은 흰 장미가 놓이지 않은 아침이었다.
십 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았던 그 흰 장미가.
전쟁 중에도, 그가 국경에 나가 있던 그 겨울에도, 심지어 내가 셋째 아이를 잃고 사흘을 앓아누웠던 그때도 장미는 왔다. 사람을 시켜서라도, 반드시. 그게 그의 방식이었다. 곁에 있지 못해도 흔적은 남기는 사람.
그런데 오늘은 그 흔적이 없었다.
다혜가 어쩐지 눈치를 보며 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원래는 이런 아이가 아닌데. 손끝이 야무지고 말수가 적어서 좋아했던 아이인데, 오늘은 자꾸 걸레를 접었다 펴며 시간을 끄는 게 보였다. 표정이 다 드러나는 얼굴로 자꾸 나를 살피는 게, 벌써 뭔가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다혜."
"네, 왕비님." 목소리가 한 톤 높게 튀었다.
"백작 영애의 존함이 뭐라고?"
"백설아 영애십니다. 스물한 살이시고…… 그, 병약하셔서."
병약하다는 말이 오늘만 세 번째다. 사람이 아니라 서류에 붙은 태그 같았다. 이름 옆에 도장처럼 찍혀 다니는 수식어. 저 여인을 만나기도 전에, 나는 벌써 그 단어를 세 번이나 씹어야 했다.
나는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별궁으로 이어지는 회랑 저편에 마차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녀들이 우르르 몰려나가는 것도 보였다. 격이 다른 환대였다. 보통 손님이라면 문지기 몇 명이 나가서 맞는 게 관례인데, 지금은 시녀장까지 나가 있었다. 심지어 궁 안뜰에서 화단을 손질하던 정원사들도 허리를 세우고 마차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정도면 요양이 아니라 국빈이다.
"내가 직접 나가볼까."
"그건……" 미란이 말을 끌었다. "왕비님, 오늘은 격식만 갖추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굳이 나서실 필요가."
맞는 말이었다. 왕비가 손님 하나 입궁했다고 마당까지 뛰어나가는 건 격에 맞지 않는 일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은 없었다. 십 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궁금해도 참는 것, 화가 나도 웃는 것, 서운해도 모르는 척하는 것. 그게 왕비의 일이었고, 나는 그 일을 잘해왔다고 자부했다.
그런데도 발이 자꾸 창가로 향했다.
몸이 마음보다 먼저 움직인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마차에서 내리는 여인이 보였다. 얇은 어깨, 하얀 얼굴, 바람에도 흔들릴 것 같은 걸음걸이. 확실히 병약하다는 말이 헛말은 아닌 것 같았다. 시녀 하나가 부축하려고 팔을 뻗었지만, 그보다 먼저 다른 손이 그녀를 잡았다.
그리고 그 옆에, 도헌이 서 있었다.
직접 마중을 나온 거다. 왕이. 나가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십 년 전 결혼식 준비할 때 그가 나에게 가르쳐줬던 그 원칙을 스스로 깨고.
"왕은 함부로 몸을 낮추지 않는다. 그게 위엄이다." 그가 그렇게 말했었다. 그때는 스물넷이었던 그가, 그 말을 하면서도 어딘가 자랑스러운 얼굴을 했던 게 기억난다. 나는 그 얼굴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다. 위엄이 뭐라고, 지금은 저렇게 마당까지 나와서 남의 팔을 부축하고 있으면서.
그는 백설아라는 여인의 팔을 부축하고 있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마치 유리로 만든 물건을 옮기듯이. 걸음마다 속도를 맞추고, 그녀가 조금 기침을 하자 등을 두드려주기까지 했다. 저런 손짓은 본 적이 없는데. 십 년을 부부로 살면서도 본 적이 없는 손짓인데.
나는 그 장면을 오래 보지 않았다. 창에서 몸을 돌렸다.
오래 볼 이유가 없었다. 정말이다.
"미란."
"네."
"오늘 저녁, 폐하께서 나와 함께 드실 예정이었나?"
미란은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답이었다. 십 년을 곁에서 일한 사람이라, 대답보다 침묵이 더 정확한 정보를 준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오늘은 힘드실 것 같습니다. 영애께서 오늘 처음 궁에 드셨으니, 적응을 도우셔야……"
"알겠어."
나는 짧게 대답했다.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그런데 왜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톤 낮게 나왔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목소리는 가끔 마음보다 솔직하다. 그게 문제다.
배가 고팠다. 이런 순간에도 배가 고픈 게 인간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서글프면서도 웃겼다. 조찬을 절반도 못 먹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는 남은 빵을 조금 떼어 입에 넣었다. 맛이 없었다. 원래 이 빵이 이렇게 맛없었나.
다혜가 조심스럽게 흰 장미 한 송이를 꽃병에 꽂아 넣었다. 아침에 놓이지 않았던 그 장미를, 뒤늦게라도 채워 넣으려는 것처럼. 어디서 구해온 건지 모르겠지만, 아마 온실을 뒤졌을 거다. 그 정성이 고맙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장미는 원래 내가 직접 놓는 게 아니었다. 도헌이 아침마다 사람을 시켜 보내는 것이었다. 십 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전쟁 중에도, 국경에 있을 때도, 심지어 나와 대판 싸우고 서로 말을 섞지 않던 그 보름 동안에도 장미는 왔다. 말은 안 해도 장미는 보낸다는 게, 나는 그게 그의 사랑 표현이라고 믿었다.
오늘 그게 빠졌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걸렸다.
"다혜, 그거 치워."
"네?"
"내가 직접 꽂을 장미는 필요 없어."
말이 좀 날카롭게 나갔다는 걸 알았지만, 정정하지 않았다. 다혜는 당황한 얼굴로 장미를 다시 빼냈다. 그 얇은 줄기가 손끝에서 흔들리는 걸 보다가, 나는 괜히 미안해졌다. 이 아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
"…미안. 그냥 오늘은, 아무것도 없는 게 나아서."
다혜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창밖으로 다시 시선이 갔다. 마차는 이미 사라졌고, 회랑도 비어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아무도 없는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에 커튼이 흔들리는 소리, 저 멀리서 새가 우는 소리, 그런 사소한 것들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뭔가가 시작되었다는 걸, 그 순간 확실히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