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가짜 여친 포위망

4화

그 무렵, 소문은 이미 교실 하나의 범위를 훌쩍 넘어서 있었다. 처음에는 몇몇 아이들의 귓속말로 시작된 것이었지만,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학년 전체를 가로지르는 속도로 퍼져나갔고, 그 과정에서 살이 붙고 각색되어 이제는 원래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조차 희미해질 정도였다. 서예린은 자신이 그 소문을 처음 들은 당사자 중 하나라는 사실도 모른 채, 저녁 식사 자리에서 여동생 서지안에게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무심코 늘어놓는 습관이 있었는데, 밥그릇을 앞에 두고 반찬을 뒤적이며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소소한 일들을 나열하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 오래된 저녁 시간의 의식 같은 것이었고,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참, 우리 반에 강도윤이라는 애 있잖아, 걔 여자친구 있다고 난리 났었어." 별생각 없이 던진 그 한마디를 서지안은 유난히 반짝이는 눈으로 받아들였다. 젓가락을 든 채 국물을 뜨던 손이 허공에서 멈췄고, 지안은 순간 자신이 들은 이름이 낯익다는 느낌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강도윤? 강나윤 오빠 아니야?" 서지안이 젓가락을 완전히 내려놓으며 되물었을 때, 예린은 그제야 자신이 언급한 이름과 나윤이라는 이름이 같은 성씨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은 채 그냥 그렇다고 대답했을 뿐이었다. "몰라, 아마 그럴걸. 근데 왜, 너 걔 알아?" "같은 반이잖아. 완전 친해." 서지안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머릿속으로는 이미 다른 생각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나윤과 서지안은 같은 중학교 3학년 반에서 늘 붙어 다니는 사이였고, 나윤이 오빠 이야기를 할 때마다 유난히 예민해지는 모습을 여러 번 봐온 서지안으로서는 이 소식을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평소 무심한 척 오빠 이야기를 꺼내던 나윤이었지만, 정작 도윤의 이름이 조금이라도 다른 여자아이와 엮이는 순간에는 표정이 굳어지고 말수가 줄어드는 것을 지안은 몇 번이나 목격했었다. 그러니 이 정보를 전하지 않는다는 건, 지안에게 있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밥을 먹는 내내 지안의 손끝은 휴대폰 위를 서성였고, 당장이라도 나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아냈다. 직접 말해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아침, 서지안은 등굣길에 만난 나윤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 두 사람이 늘 만나던 골목 어귀에서, 지안은 인사보다 먼저 그 말을 꺼냈다. "야, 너희 오빠 여자친구 생겼다던데?" 그 한마디에 나윤의 발걸음이 그대로 멈췄다. 방금까지 가벼운 걸음으로 걷던 다리가 순식간에 굳어버린 것처럼, 나윤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지안을 돌아보았다. "뭐?" 나윤이 되묻는 목소리에는 이미 서늘한 기운이 서려 있었고, 서지안은 순간 자신이 무언가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건드렸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이미 말은 뱉어진 뒤였다.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우리 언니 반에 그 소문 다 퍼졌대. 이름이 강도윤이라던데, 너희 오빠 이름이랑 똑같지 않아?" 나윤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명치 아래가 뜨겁게 끓어오르는 감각을 느꼈는데, 그것이 단순한 놀람인지 다른 무엇인지는 그녀 자신도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여자친구. 그 두 글자가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반복되면서, 나윤은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반응하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뭐라고. 오빠가 여자친구 생긴 게 뭐 대수야.'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뇌었지만, 이미 뜨거워진 명치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진짜야? 확실해?" "나도 확실한 건 몰라. 그냥 언니가 그랬대." 지안이 조심스럽게 대답했지만, 나윤의 표정은 이미 평소와 달라져 있었다. 학교 수업 시간 내내 나윤은 휴대폰 화면을 몰래 들여다보며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려 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귀 옆으로 흘러갈 뿐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고, 책상 아래로 숨긴 휴대폰 화면만이 그녀의 온 신경을 붙잡고 있었다. 실제로 몇몇 SNS 게시물에서 '강도윤'이라는 이름과 함께 '여자친구설'이라는 태그가 달린 짧은 글들을 발견했을 때, 나윤은 숨이 턱 막히는 감각을 느꼈다. 게시물 속 사진에는 도윤의 얼굴이 흐릿하게 찍혀 있었고, 그 아래로 달린 댓글들 중에는 서아와 지우로 추정되는 두 여자의 이름을 언급하며 삼각관계를 의심하는 내용까지 섞여 있었다. 서아, 지우. 낯선 이름들이 화면 위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고, 나윤은 그 이름들을 몇 번이나 눈으로 되짚으며 도윤과의 관계를 상상해보려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오빠가 언제부터 이런 사람들이랑 얽혔던 거지?' 그것을 읽어내려가는 나윤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고, 그녀는 자꾸만 마른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옆자리 친구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나윤은 대충 아니라고 대답한 뒤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가방을 어깨에 걸친 채 뛰는 나윤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확인해야 한다. 직접 물어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답답한 감각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신발도 제대로 벗지 않은 채 계단을 뛰어 올라간 나윤은, 오빠의 방문 앞에 멈춰 서서 잠시 숨을 골랐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귓가에 울릴 정도로 크게 들렸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잡이를 몇 번이나 쥐었다 놓았다. 문 너머로 도윤이 책상에 앉아 이어폰을 낀 채 뭔가에 몰두하고 있는 실루엣이 문틈 사이로 살짝 보였고, 그 평온한 모습이 나윤의 안에서 끓어오르던 감정을 오히려 더 자극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히 앉아 있는 오빠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나윤의 안에서 무언가가 툭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빠 여자친구 생겼대? 진짜야?" 손잡이를 잡은 나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윤은 아무런 예고 없이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벽에 부딪히며 방 안의 공기가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이어폰을 끼고 있던 도윤이 놀라서 몸을 돌리는 사이, 문가에 선 나윤의 표정은 평소의 차갑고 무심한 얼굴과는 완전히 다른, 낯선 감정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도윤은 이어폰을 채 빼지도 못한 채 그런 동생의 얼굴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오빠, 나 지금 다 들었어." 나윤이 방 안으로 성큼 들어서며 내뱉은 그 목소리에는, 지금까지 도윤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종류의 절박함이 섞여 있었다. 그 절박함이 무엇을 향한 것인지, 도윤도, 나윤 자신도 아직은 알지 못했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