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투명인간인데 도시락이라니

1화

입학식 날, 나는 이불 속에서 온몸이 펄펄 끓는 채로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형광등 빛이 눈꺼풀 안쪽까지 스며들어 시야가 온통 뿌옜다. 삼십구 도를 넘긴 체온계 숫자를 보며 엄마는 한숨을 쉬었고, 나는 그 한숨 속에서 이미 무언가가 어긋났다는 걸 느꼈다. 엄마의 손이 이마를 짚었다가, 다시 체온계를 흔들었다가, 다시 짚었다. 그 반복되는 손길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죄책감을 느꼈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게 아닌데도. 사흘. 겨우 사흘이었다. 그런데 그 사흘이 고등학교 삼 년의 궤도를 완전히 틀어놓았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나는 그저 열이 내리기를, 다음 날은 학교에 갈 수 있기를 바라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 했다. 창밖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벚꽃 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걸 보면서, 나는 저 꽃잎처럼 흩어지고 있는 게 내 첫 시작이라는 걸 몰랐다. 첫 등교일, 교실 문을 열었을 때 나를 향해 돌아보는 얼굴들은 이미 서로를 향해 웃고 있었다. 자리 배치는 끝나 있었고, 무리는 완성되어 있었고, 나는 그 완성된 그림 속에 억지로 끼워 넣어진 이물질 같았다. 삼 일이라는 시간이, 낯선 아이들 사이에 이름을 트고 번호를 교환하고 급식실에서 자리를 맞추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는 걸, 나는 그 문턱 위에서 뒤늦게 깨달았다. 담임은 내 이름을 부르며 빈자리를 가리켰다. 창가 쪽 맨 뒷줄. 아무도 앉지 않으려 했던 그 자리였다. 볕이 잘 들지 않는 구석이었고, 앞자리 아이들의 등만 하염없이 바라봐야 하는 자리였다. "이도현입니다." 짧게 인사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몇몇은 힐끔 쳐다보다 다시 자기들끼리의 대화로 돌아갔고, 몇몇은 아예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나는 그 무시가 오히려 편했다. 관심을 받는 것보다 무시당하는 게 덜 아프다는 걸, 나는 이미 중학교 삼 년 동안 배웠으니까. 그 배움이 어디서 왔는지는,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몇몇 얼굴과 몇몇 말들이 아직도 명치 어딘가에 박혀 있었지만, 그건 지금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첫 주가 지나는 동안 나는 조용히 관찰자가 되어갔다. 누가 누구와 친한지, 누가 반의 중심인지, 누가 나처럼 어딘가 어긋난 채 떠 있는지. 정보는 쌓였지만 그 정보를 나눌 상대는 없었다. 나는 반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순서대로 외웠다. 누구는 목소리가 크고, 누구는 웃을 때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누구는 쉬는 시간마다 창밖만 바라본다. 그런 사소한 것들을 관찰하는 게, 나에게는 유일한 소속감의 대체제였다. 점심시간마다 급식실은 무리별로 분할된 영토가 되었다. 창가 자리는 목소리 큰 무리가, 안쪽 구석은 조용한 무리가, 입구 가까운 자리는 저마다의 규칙으로 나뉜 아이들이 채웠다. 나는 그 영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밥을 삼켰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알이 자갈처럼 걸리는 기분이었다. 처음 며칠은 급식실 구석에 억지로 자리를 잡고 앉아 밥을 먹었지만, 등 뒤로 느껴지는 시선 없는 시선, 그 텅 빈 무관심이 오히려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벤치를 찾았다. 교사 뒤편, 오래된 은행나무 아래에 놓인 낡은 나무 벤치였다. 페인트가 벗겨진 자리는 앉을 때마다 나뭇결이 엉덩이를 긁었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급식을 받아 도시락 통에 옮겨 담고 그곳으로 걸어가는 십 분 남짓한 시간이, 하루 중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새들이 지나가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웅성거림, 그 사이에 나 혼자. 은행나무 잎사귀 사이로 떨어지는 볕이 도시락 통 위에 얼룩무늬를 만들었다. 나는 그 무늬를 세듯 젓가락을 움직였다. 어느 날은 반찬이 콩나물무침이었고, 어느 날은 계란말이였고, 어느 날은 김치볶음이었다. 반찬이 무엇이든 맛은 비슷하게 느껴졌다. 혼자 먹는 밥은, 아무리 정성이 들어간 것이라도 어딘가 결핍된 맛이 났다. "오늘도 혼자 먹네." 등 뒤에서 들린 말이었다. 돌아보니 같은 반 남자애 둘이 지나가다 나를 보고 킥킥거리고 있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을 뿐이었다. 심장 어딘가가 살짝 조여드는 감각이 있었지만, 나는 그것도 이미 익숙한 감각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들이 멀어지고 나서야 나는 젓가락을 다시 들었다. 밥은 이미 식어 있었다. 그날 이후로도 비슷한 말들이 몇 번 더 스쳐 지나갔다. "쟤는 원래 저래?", "말 걸어본 사람 있냐?" 같은 말들이 등 뒤에서 조각조각 들려왔지만, 나는 그때마다 못 들은 척 젓가락을 움직였다. 못 들은 척하는 것도 이제는 하나의 기술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이 주가 흘렀다. 나는 완벽하게 투명한 존재가 되어갔다. 출석부에 이름은 적혀 있지만,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나라는 좌표는 지워진 것 같은 감각. 조회 시간에 담임이 내 이름을 부를 때마저, 나는 그 순간이 하루 중 유일하게 내가 실재한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가끔은 정말로 내가 사라져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무섭다기보다 그냥, 익숙했다. 오히려 이상하게 편안한 구석도 있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면, 아무도 나를 상처 입힐 수도 없을 테니까. 비가 그친 어느 화요일 아침, 나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학교에 도착했다. 밤새 내린 비 때문에 운동장 흙바닥에는 물웅덩이가 곳곳에 남아 있었고, 공기는 씻긴 듯 맑고 차가웠다. 정문 앞 벚나무 아래에서 몇몇 아이들이 무리 지어 서 있는 게 보였다. 시선의 중심에는 낯선 여자애가 있었다. 검은 숏컷 머리에, 얼굴을 반이나 차지할 것 같은 큰 눈. 나는 그 순간 처음으로 그 애의 이름을 들었다. 강서연. 다른 반, 이 반 학생들 몇 명이 그 이름을 소곤거리는 걸 들으며, 나는 별생각 없이 지나쳤다. 예쁘다는 말, 성격이 세다는 말, 누구랑 사귄다는 말, 아니라는 말. 소문은 이미 여러 갈래로 뻗어 있었지만 나에게는 다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소문의 중심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옆에, 낯설지 않은 얼굴이 하나 있었다. 정우진. 같은 반 남학생이었고, 반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축에 속했다. 시원한 눈매와 큰 키, 늘 여유로운 웃음. 쉬는 시간마다 그의 자리 주변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나는 가끔 그 웃음소리를 등 뒤로 들으며 창밖을 내다보곤 했다. 나는 솔직히 그 인상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그날 아침까지는. 정우진이 강서연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거리가 멀어 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그의 표정에는 어딘가 절박함이 섞여 있었다. 평소의 여유로운 웃음은 사라지고, 눈썹이 미세하게 일그러진 채였다. 강서연의 표정은 반대로 서늘했다. 팔짱을 낀 채 정우진을 내려다보는 듯한 자세,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압도하는 침묵. 나는 잠시 걸음을 늦추고 그 광경을 곁눈질했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류였다. 폭풍이 몰려오기 전의 그 무겁고 조용한 공기 같은. 주변 아이들도 그 기류를 감지한 듯 목소리를 낮추고 힐끔거리기만 했다.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정도로 남의 일에 신경을 쓸 여유도, 자격도 없다고 여겼으니까. 남의 인생에 끼어들 자리가 나에게는 없었다.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교실로, 창가 맨 뒷줄 내 자리로. 그날 하루도 여느 때처럼 흘러갈 거라고 생각했다. 담임이 조회 시간에 들어와 출석을 부르는 동안, 나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아침의 그 장면이 자꾸 눈앞에서 재생됐다. 강서연의 서늘한 눈빛과, 정우진의 절박한 표정. 그 표정이, 왜인지 자꾸 마음에 걸렸다.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로, 그저 창밖 은행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걸 바라보았다. 수업이 시작되고, 나는 다시 투명한 이도현으로 돌아갔다. 필기를 하고, 문제를 풀고,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 오전을 무사히 통과했다. 국어 시간에는 선생님이 낭독을 시켰는데, 내 이름이 불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다가도, 그 다행스러움 자체가 서글프다는 걸 깨달았다. 수학 시간에는 칠판에 적힌 문제를 옮겨 적으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썼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도시락 통을 챙겨 벤치로 향했다. 은행나무 아래 그 낡은 나무 벤치, 나만의 영토. 오늘 반찬은 어묵볶음과 시금치나물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순서대로 눈으로 확인하며 복도를 지났다. 그런데 그 영토로 향하는 길, 학교 뒤편 후문 쪽 골목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낮게 눌린 비명 같은 소리였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가지 말라는 본능과, 그럼에도 발을 옮기게 하는 무언가가 동시에 나를 붙잡았다. 귀에서는 이명 같은 소리가 울렸고, 손끝은 이유 없이 차가워졌다. 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에는 조금 더 명확하게. "놔! 놓으라고!" 여자 목소리였다. 나는 그 목소리가 아침에 봤던 그 서늘한 눈빛의 주인과 겹쳐진다는 걸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발밑의 흙바닥이 갑자기 물속처럼 흐물흐물하게 느껴졌다. 도시락 통을 쥔 손에 힘이 풀렸다가, 다시 꽉 쥐어졌다. 나는 도시락 통을 벤치 옆에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소리가 난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어떤 확신도 없이, 그저 몸이 먼저 움직였다. 발소리가 자갈 바닥에 부딪혀 요란하게 울렸고, 숨은 벌써부터 턱까지 차올랐다. 골목 끝을 도는 순간, 나는 내가 이 학교에서 처음으로 투명하지 않은 존재가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 걸,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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