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가짜 상담사, 진짜 교주

1화

오전 5시 12분. 눈을 떴다. 천장에 금이 가 있었다. 작년부터 그 자리에 있던 금이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게 그 금이었다. 어제도, 그제도, 그 전날도 똑같았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옆구리가 당겼다. 숨을 삼켰다. 어제 계단에서 굴렀던 자리였다. 누가 밀었는지는 모른다. 아니, 안다. 그냥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한빛신학원 기숙사 3층, 가장 끝 방. 원래는 창고였다. 청강생으로 강등된 뒤 옮겨진 방이었다. 창문도 없고 난방도 안 되는 곳. 벽지는 곳곳이 벗겨져 시멘트가 드러나 있었다. 겨울이 오면 여기서 얼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지금은 아직 가을이었다. 나는 이도윤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원래 이 몸의 주인도 이도윤이었다. 같은 이름이라는 게 우스웠다. 한때는 한빛신학원 전체가 이 이름을 알았다. 입학 3년 만에 신학부 수석. 예배당에서 손을 들면 빛이 모였다는 소문까지 돌던 아이. 지금은 게시판 맨 아래 칸에 적힌 청강생 명단 속 한 줄일 뿐이었다. 이름 하나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사라진 셈이었다. 전생에서 나는 상담사였다. 정확히는, 자격증을 산 상담사였다. 돈을 받고 서류를 위조해준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 서류로 오 년을 버텼다. 상담실에 앉아 남의 불행을 들었다.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요금을 받았다. 누군가는 나를 믿고 속을 다 털어놨다. 나는 그 사람의 슬픔을 계산기로 환산했을 뿐이었다. 50분에 8만 원. 그게 내가 사람의 마음에 매긴 값이었다. 그러다 어느 밤, 골목에서 오토바이가 튀어나왔다. 그게 끝이었다. 아프지도 않았다. 그냥 순간에 모든 게 꺼졌다. 다시 눈을 뜬 곳이 여기였다. 이도윤의 몸, 이도윤의 방, 이도윤의 몰락. 몰락의 이유는 알았다. 박덕수. 그 이름이 원인이었다. 작년 가을, 여학생 한 명이 골목에서 붙잡혀 있었다. 원래의 이도윤이 그 자리에 있었다. 박덕수의 코뼈가 부러졌다. 증인은 없었다. 있었다 해도 증언할 사람이 없었다. 박덕수의 아버지가 학원 후원자였다. 지기석 교장이 진상조사를 열었다. 결론은 이도윤의 일방적 폭행. 장학금이 끊겼다. 수석 자리도 끊겼다. 남은 건 청강생이라는 이름뿐이었다. 정의라는 단어가 이곳에서는 후원금 액수로 결정된다는 걸, 나는 이 몸에 들어온 지 사흘 만에 배웠다. 오전 6시 40분.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종이 넘기는 소리, 스테이플러 찍는 소리. 방문 아래로 종이 한 장이 밀려 들어왔다. [한빛신학원 기숙사 3층 D구역 철거 안내] [본 건물은 안전등급 미달로 금일 오후 6시부로 강제 폐쇄됨] [해당 구역 거주자는 오늘 중 퇴거할 것] 숨이 턱 막혔다. 오늘. 오늘 오후 6시. 손끝이 차가워졌다. 종이를 다시 읽었다. 글자가 바뀔 리 없는데도 다시 읽었다. 세 번째 읽을 때도 내용은 똑같았다. 갈 곳이 없었다. 청강생에게 다른 숙소를 배정해줄 리 없었다. 지기석 교장실에 찾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몸이 움직였다. 발이 먼저 교장실로 향했다. "규정입니다." 지기석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었다. 그는 책상 위 서류를 정리하며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학원 명예를 지키기 위한 조치예요."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학생이 알아서 하실 일이죠." "거리에 나앉으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닌데." 지기석이 안경을 고쳐 썼다. "학생이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뭐." 웃음이 나올 뻔했다. 웃으면 안 되는데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이가 없어서 그런 거였다. 문을 닫고 나오는데 등 뒤에서 그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런 애 때문에 학원 이미지가."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이었다. 들으라고 한 말인지, 진심으로 몰랐던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오전 9시 20분. 방 안에 있는 짐을 하나씩 꺼내 봤다. 노트 세 권, 낡은 성경, 통장. 노트에는 원래의 이도윤이 썼던 글씨가 남아 있었다. 단정하고 각진 글씨체였다. 지금 내가 쓰는 글씨와는 완전히 달랐다. 같은 손인데 다른 글씨가 나온다는 게 이상했다. 통장을 펼쳤다. [잔액 4,200원] 숫자가 너무 작았다. 너무 작아서 웃음도 안 나왔다. 계란 한 판도 못 사는 돈이었다. 전생에서는 50분에 8만 원을 받았다. 지금은 전 재산이 계란 한 판보다 적었다. 이 정도면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된 주식이었다. 상장폐지, 그 이하. 오전 11시 03분. 식당 앞을 지나가다 학생들 대화를 들었다. "청강생 이도윤 알아?" "그 폭력범?" "이번에 방까지 뺐긴다더라." "인생 참." "근데 원래 걔 수석이었잖아. 안 됐다." "안 되긴 뭘 안 돼. 지가 사고 친 거잖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무너질 것 같았다. 목소리들이 등 뒤에서 멀어질 때까지 나는 앞만 보고 걸었다. 발밑 타일 개수를 세면서 걸었다. 그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오후 1시 47분. 마지막으로 백소원을 찾아갔다. 같은 학년, 나를 형처럼 따르는 후배였다. 흰 도복을 입고 반짝이는 안경을 쓴 아이. 작은 체구, 낮게 깔린 목소리. 텃밭 앞에 쭈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캐고 있었다. "형, 어디 가요." "산책." "거짓말." "진짜야." 소원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봤다. 안경알에 빛이 반사되어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손에 든 모종삽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밥은 먹었어요?" "먹었어." "안 먹었죠." "먹었다니까." "형 얼굴에 다 쓰여 있어요." 대답하지 않았다. 소원이 주머니에서 삶은 계란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손이 작았다. 손톱 밑에 흙이 묻어 있었다. 텃밭에서 뭔가 캐고 온 모양이었다. 계란 껍질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형." "왜." "이상한 얼굴 하지 마요." "어떤 얼굴." "몰라요. 그냥, 어디 멀리 가는 얼굴." 가슴 안쪽이 조여들었다. 소원의 눈은 안경 너머로도 나를 정확히 꿰뚫는 것 같았다. 아무 말도 못하는 나를 두고 소원이 먼저 말을 이었다. "저 오늘 저녁에 텃밭 물 줘야 하는데." "그래." "내일도 줘야 하는데." "...그래." "형이 도와줄 거잖아요." 목이 마르다. 대답 대신 계란을 받아 들었다. 손이 조금 떨렸다. 소원은 그걸 눈치채지 못한 척했다. 아니, 눈치챈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흙 묻은 손으로 내 손등을 한 번 툭 치고는 다시 텃밭 쪽으로 돌아섰다. 뒷모습이 작았다. 저 작은 등을 보고 있으면 뭔가 말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오후 4시 30분. 짐을 다 챙겼다. 노트, 성경, 통장, 그리고 계란. 가방은 가벼웠다. 너무 가벼워서 이상했다. 사람 인생 하나가 이렇게 작은 가방 하나에 다 들어간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학원 뒤편, 절벽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있었다. 한때 명상로라 불리던 곳. 지금은 아무도 오지 않는 곳. 낙엽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렸다. 걸음을 옮겼다. 발밑에서 자갈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왜 거기로 갔는지 스스로도 몰랐다. 아니, 알고 있었다. 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발이 저절로 그쪽으로 향했다.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이미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절벽 끝에 섰다. 바람이 아래에서 위로 밀려 올라왔다. 발끝이 허공에 닿을 듯 말 듯했다. 저 아래는 안개인지 나무인지 구분이 안 됐다. 그냥 회색이었다. 이대로 사라지면 누가 알아챌까.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소원 하나 빼고는. 그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텃밭에 물을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하는 생각이 우습게도 가장 먼저 들었다. 숨을 들이켰다. 내쉬었다. 다시 들이켰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바람이 아니었다. 발소리도 아니었다. 그냥 존재감이었다. 등골을 타고 소름이 올라왔다.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있었다. 숨을 죽였다. 심장이 조여들었다. "거기 누구야." 대답은 없었다. 대신 공기가 무거워졌다. 마치 뭔가가,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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