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가짜 상담사, 진짜 교주

5화

교장실 문은 무거웠다. 손잡이를 잡았을 때 쇠의 냉기가 손바닥에 스며들었다. 지기석이 먼저 들어갔다. 나는 그 뒤를 따랐다. 방 안은 서늘했다. 에어컨 바람이 목덜미를 스쳤다. 배 위 문양이 아직 뜨거웠다. 옷 안에서 그것이 살아 있는 것처럼 맥동했다. 벽에는 상장과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작년 신학부 수석 시상식 사진도 있었다. 그 사진 속에서 나는 웃고 있었다. 지금의 나와는 다른 사람 같았다. "앉으시죠." 지기석이 서류철을 책상 위에 올렸다. 나는 앉았다. 의자가 삐걱거렸다. 오후 3시 04분. 시계 소리가 크게 들렸다. 초침이 움직일 때마다 심장이 따라 뛰는 것 같았다. 지기석이 서류를 펼쳤다. 종이 넘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는 안경 너머로 나를 한 번 훑어보았다. "복도에서 있었던 일, 학생들이 벌써 다 퍼뜨렸더군요." 지기석이 안경을 고쳐 썼다. "박덕수 대장을 그렇게 만들었다면서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를 이겼다고 말해야 하나. 아니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해야 하나. "정확히 어떤 상황이었는지, 학생 쪽 이야기도 들어야 공정하겠죠." 지기석이 펜을 들었다. "말씀해보시죠." "그가 먼저 시비를 걸었습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D구역 문제로." "D구역." 지기석이 그 단어를 되풀이했다. 펜 끝으로 서류를 톡톡 두드렸다. "거기 학생들 문제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으면서 방치했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 말을 삼켰다. "징계를 내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기석이 서류를 넘겼다. "교내 폭력, 그것도 상급생을 상대로 한 폭력이니까요." "그런데." 말이 끊겼다. 나는 숨을 삼켰다. 손끝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그런데, 라니요." "학생들 반응이 심상치 않아서요." 지기석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도윤 학생을 영웅으로 부르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영웅. 그 단어가 낯설게 들렸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신학부 수석이었다. 올해는 청강생이었다. 수석과 청강생 사이, 그 낙차 속에서 영웅이라는 말은 어디에도 들어맞지 않았다. "복도에서 그 장면을 본 학생이 스무 명은 넘습니다." 지기석이 계속했다. "박덕수 대장이 바닥에 쓰러졌을 때, 몇몇은 사진도 찍었더군요." "그 사진이 벌써 퍼졌습니다." 사진이라는 말에 위가 뒤틀렸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누군가 그 순간을 기록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학원 입장에선 이걸 나쁘게만 볼 필요가 없죠." 지기석이 서류철을 덮었다. "매주 금요 채플에서 증언을 하시죠." "증언이요." "학생이 겪은 시련과 극복을 나누는 겁니다." 지기석이 웃었다. 그 웃음에는 온도가 없었다. "학원 홍보에도 좋고, 학생에게도 좋고." 좋을 리 없었다. 박덕수 아버지가 후원자라는 사실을 그가 잊었을 리 없었다. 작년 사건도, 이번 사건도, 그는 언제나 같은 저울로 재고 있었다. 저울 한쪽에는 후원금이, 다른 한쪽에는 학생이 놓여 있었다. 그 저울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만약 제가 거절하면 어떻게 됩니까." 나는 물었다. 목소리가 내 것 같지 않았다. 지기석이 잠시 멈췄다. 안경 너머 눈이 가늘어졌다. "거절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가 되물었다. "학생에게 나쁠 게 없는 제안입니다만." 나쁠 게 없다는 말이 오히려 불안했다. 저 사람이 나쁠 게 없다고 말할 때마다, 결국 나쁜 일이 벌어졌다. 지난 학기 등록금 문제도 그랬다. 장학금 서류도 그랬다. "D구역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나는 겨우 물었다. "안전 점검을 다시 받기로 했습니다." 지기석이 손을 저었다. "당장 오늘 저녁에 쫓겨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당장은. 그 단서가 목에 걸렸다. 당장이 아니라면, 그다음은 언제인가. 일주일, 한 달, 아니면 다음 학기. "그럼 정식 학생으로 전환되는 건." "그건 다음 학기 성적을 보고 판단하죠." 지기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류철을 옆구리에 끼웠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증언이라는 숙제만 하나 얻었을 뿐이었다. 오후 3시 21분. 교장실 밖으로 나왔다. 복도는 조용했다. 방금까지 시끄럽던 시계 소리가 여전히 귓속에 남아 있었다. 배 위가 다시 화끈거렸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열기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문을 잠갔다. 거울 속 내 얼굴이 낯설었다. 눈 밑이 검게 그늘져 있었다. 언제부터 저렇게 됐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셔츠를 걷어 올렸다. 문양은 커져 있었다. 역방향 오각성 바깥으로 얇은 선 하나가 더 그려져 있었다. 마치 별이 자라나는 것처럼. 선은 피부 속에서 새겨진 게 아니라, 피부를 뚫고 나온 것처럼 도드라져 있었다. 손이 떨렸다. 숨을 멈췄다. 손끝으로 그 선을 만져보았다. 차가웠다. 내 몸의 온도와는 다른 온도였다.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다만 확실한 건, 힘을 쓸수록 이게 자라난다는 사실이었다. 박덕수를 밀쳐낸 순간, 그 순간의 힘이 이 선 하나로 남았다는 것. 다음에 힘을 쓰면 또 하나가 늘어날 거라는 것. 그다음엔, 그리고 또 그다음엔. 셔츠를 다시 내렸다. 찬물로 세수를 했다. 얼굴에서 물이 떨어졌지만 열기는 가시지 않았다. 기숙사로 돌아왔다. 복도에서 몇몇 학생이 나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어제까지 없던 인사였다. 한 학생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기, 아까 그거 진짜예요?"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박덕수 대장을 그렇게 눕혔다면서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지나쳤다. 등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영웅, 이라는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방문을 열었다. 소원이 책상에 앉아 있었다. 스탠드 불빛 아래 문제집이 펼쳐져 있었다. "형, 왔어?" 소원이 안경을 밀어 올리며 물었다. "교장실에서 뭐라고 했어?" "채플에서 증언하래." "영웅 이야기 하라는 거네." 소원이 낮게 웃었다. "기분 좋겠다." 기분. 좋아야 했다. 박덕수를 물리쳤고, 학생들이 나를 환호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웃어야 하는데 입꼬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심장이 뛰어야 하는데 잠잠했다. 축하받아야 할 순간에, 정작 축하받아야 할 감정이 자리를 비운 것 같았다. "형, 왜 그래?" 소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야." "좋아 보이지 않아서." 소원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오늘 그렇게 이겼는데, 형 표정이 계속 이상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뭐가 이상한지 나도 몰랐다. 다만 배 위의 열기가 그 이상함의 원인이라는 것만 알았다. 소원이 다시 문제집으로 눈을 돌렸다. 연필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천장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흘렀다. 소원의 연필 소리도 어느 순간 멈췄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밤 9시 47분. 샤워를 하러 나가려고 셔츠를 벗었다. 공기가 배 위 문양에 닿자 소름이 돋았다. 그 순간 방문이 열렸다. 소원이었다. 노크도 없이 들어왔다. "형, 수건 좀." 말이 멈췄다. 소원의 눈이 내 배를 향했다. 문양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스탠드 불빛 아래 그 선들이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 숨이 멈췄다. 나는 급히 셔츠를 잡았다. 하지만 늦었다.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소원의 눈동자가 문양의 선을 하나씩 따라가는 것 같았다. 역방향 오각성. 그 바깥의 새로 그려진 선까지. "그거." 소원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거, 어디서." 말이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소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안경 너머로 눈이 흔들렸다. 평소의 소원이라면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나는 말을 붙이려 했다. "소원아, 이건." "아니야." 소원이 뒷걸음질쳤다. 등이 문틀에 부딪혔다. "아니, 이건 아니야." 문이 다시 열렸다. 소원이 나갔다. "소원아." 나는 그 뒤를 따라 나섰다. 셔츠도 제대로 걸치지 못한 채였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발소리가 저 앞에서 멀어졌다. 방문 닫히는 소리가 복도 끝에서 울렸다. 소원의 방문은 이미 닫혀 있었다. 안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손잡이를 돌렸다. 잠겨 있었다. 나는 문을 두드렸다. "소원아, 문 좀 열어." 대답이 없었다. 문에 귀를 대보았다. 안에서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숨을 참고 있는 걸까, 아니면 아예 숨을 쉬지 않는 걸까. 두드림이 점점 세졌다. "소원아!"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문 너머로 정적만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복도의 형광등이 깜빡였다. 불빛이 흔들릴 때마다 내 그림자도 흔들렸다. 배 위의 문양이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 열기는 방금 전보다 더 강했다. 마치 소원이 그것을 보았다는 사실 자체가, 문양을 자극한 것처럼. 나는 손을 들어 다시 문을 두드리려 했다. 그런데 손이 멈췄다. 문 안쪽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주 작은 소리였다. 숨소리 같기도 하고, 흐느낌 같기도 했다. "소원아, 나야." 목소리를 낮췄다. "무섭게 하려던 거 아니야. 나도 몰라, 이게 왜 이런지." 대답은 없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멈췄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차가운 복도 바닥이 등에 닿았다. 문에 등을 기댄 채, 그 너머의 정적을 향해 계속 말을 걸었다.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침묵이, 지금까지의 어떤 위협보다도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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