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100년마다, 반 전체 소환

2화

점심시간이 지나고 5교시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급식실에서 올라오는 길, 나는 화장실에 들렀다가 교실로 돌아가는 참이었다. 복도는 밥을 먹은 아이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했다. 누군가 축구공을 들고 뛰어가는 소리, 신발 끄는 소리, 웃음소리. 평범한 소음이었다. 나는 복도 창문 너머로 운동장을 봤다. 하늘이 유독 맑았다.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그야말로 전형적인 가을 하늘이었다. 그런데 그 맑은 하늘 한쪽에 아주 옅은 균열 같은 것이 보였다. 마치 유리에 실금이 간 것처럼, 하늘의 색이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색이 다른 게 아니라, 색과 색 사이의 경계가 어긋난 느낌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것을 응시했다. (저게... 뭐지.) 주변 소음이 순간적으로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귀가 먹먹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창문에 손을 짚고 조금 더 가까이 얼굴을 붙였다. 눈을 깜빡이자 균열은 사라졌다. 다시 평범한 파란 하늘이었다. 나는 손바닥으로 눈을 한 번 비볐다. 착시였을까. 아니면 눈이 피곤한 걸까. 나는 고개를 저으며 교실로 돌아갔다. 교실에 들어서자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정확히 뭐가 이상한지는 말할 수 없었지만, 공기가 조금 무거웠다. 지호가 자기 자리에서 이어폰을 만지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나를 보고 먼저 손을 흔들었을 텐데, 오늘은 고개도 들지 않았다. "뭐 해?" 나는 지호 옆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지호는 이어폰을 얼른 주머니에 넣었다. 그 손동작이 어딘가 서두르는 느낌이었다. 마치 뭔가를 들킬까 봐 급하게 숨기는 사람처럼. 나는 자리에 앉으며 지호를 살폈다. 평소와 다르게 표정이 굳어 있었다. 입술을 살짝 깨물고 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뭔가 있나...) 하지만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을 것 같아 그냥 넘겼다. 지호는 원래도 필요한 말 외에는 잘 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오늘은 그 정도가 유난히 심했다. 5교시는 이도윤 선생님의 수업이었다. 교육실습을 나온 지 얼마 안 된 젊은 선생님이었다. 아직 아이들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해서 출석부를 자주 들여다보곤 했다. 출석을 부르는 목소리가 조금 긴장한 듯 들렸다. "어, 김... 김서연." "네." "유지호." 지호가 손을 들었다. 평소보다 반응이 한 박자 늦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선생님이 칠판에 무언가를 적으려는 순간이었다. 지지직. 교실 스피커에서 낮은 잡음이 흘러나왔다. 아이들이 일순 조용해졌다. 누군가 킥킥거리며 웃었지만, 그 웃음도 오래가지 않았다. "어, 방송실 문제인가." 선생님이 스피커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잡음은 몇 초 더 이어지다가 멈췄다. 정적이 흘렀다. 교실 안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봤다. 나는 지호를 봤다. 지호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 있었다. 손끝으로 책상 모서리를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평소에 하지 않던 버릇이었다. "괜찮아?" 작게 물었다.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시선은 이어폰이 들어 있는 주머니로 향해 있었다. 마치 주머니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날까 봐 경계하는 것 같았다. 수업은 다시 평범하게 이어졌다. 선생님은 판서를 하고, 아이들은 필기를 하고, 창밖으로 새 우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하지만 나는 계속 신경이 쓰였다. (이상해. 오늘 하루종일 뭔가 삐걱거리는 느낌이야.)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운동장 한쪽 구석에 그림자 하나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 형체였지만 얼굴이 흐릿했다. 키는 어른 정도였고, 자세가 유난히 곧았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봤다.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뿐이었다. 나뭇잎 몇 장이 바닥을 스치듯 굴러갔다. (방금...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손끝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나는 몸을 조금 움츠리며 다시 칠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 나는 창가로 다가가 다시 운동장을 살폈다. 아무 이상 없었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나무가 흔들리고, 새들이 지나갔다. 평소와 같은 풍경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창틀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뭘 그렇게 봐?" 소은이의 목소리였다. 나는 살짝 놀라 돌아봤다. 소은이는 언제나처럼 조용한 걸음으로 다가와 있었다. "아, 아니. 그냥 밖이 좀 이상해 보여서." "이상해요?" 소은이는 창밖을 함께 내다봤다. 그 옆얼굴이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살짝 밝아졌다.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조용한 목소리였다. 독일에서 자란 특유의 억양이 살짝 섞여 있었다. "그냥 신경이 곤두선 것 같아."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은 웃을 기분이 아니었지만, 굳이 소은이까지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소은이는 살짝 미소를 짓고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평소보다 발걸음이 조금 느린 것 같았다. 6교시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아이들이 자리로 돌아가고, 박준혁 선생님이 교탁 앞에 서서 출석부를 펼치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교실 전체가 정전됐다. "어어?" 아이들이 놀란 목소리를 냈다.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짧게 비명을 질렀다. 창문으로 스며드는 빛만이 유일한 조명이 되었다. 칠판 앞에 서 있던 선생님의 실루엣이 역광 속에서 흔들렸다. 어둠 속에서 지호가 이어폰을 만지는 소리가 들렸다. [신호 수신 이상. 확인 요청.] 작게 흘러나온 기계 음성이었다. 지호가 서둘러 이어폰을 빼며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그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방금 그건... 뭐였지.) 귀를 의심했지만 분명히 들은 것 같았다. 기계음이었다.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지호야, 방금 그 소리 뭐야?" "아무것도 아니야." 지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딱딱했다. 어둠 속에서도 지호가 나를 똑바로 보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정전은 곧 복구됐다. 형광등이 다시 켜지고 아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도 놀란 표정으로 교탁을 짚고 서 있었다. 누군가 "귀신이다!" 하고 장난스럽게 소리쳤고, 몇 명이 웃음을 터뜨렸다. "자, 자. 다들 진정하고." 박준혁 선생님이 교실 앞문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정전은 학교 전체 문제였던 것 같다. 곧 확인해보겠다." 그 말에 아이들은 다시 웅성거렸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고, 누군가는 옆자리 친구와 소곤거리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지호를 다시 쳐다봤다. 지호는 여전히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손이 아직도 살짝 떨리고 있는 것 같았다. (뭔가 숨기고 있어.) 확신이 들었지만 캐물을 틈이 없었다. 그때, 창밖에서 아주 강렬한 백광이 번쩍였다. "뭐야!"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창문으로 쏠렸다. 나도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다가갔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운동장 한가운데, 빛이 사그라드는 자리에 누군가의 실루엣이 서 있었다. 긴 머리, 낯선 복장. 사람 같지 않은 위압감이 그 형체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숨을 삼켰다. (저게... 뭐지.) 등 뒤에서 누군가 "저거 뭐야, 코스프레야?"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다시 눈을 깜빡였을 때,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운동장은 다시 평범한 오후의 풍경으로 돌아가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봤다. 분명히 무언가가, 혹은 누군가가 그곳에 있었다. 잔상처럼 눈앞에 그 형체가 남아 있었다. 교실 안은 다시 소란스러워졌고, 나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서늘한 감각을 떨칠 수 없었다. 옆을 돌아보니 지호가 나를 보고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뭔가를 확인하려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 눈빛과 마주친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온몸을 타고 올라오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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