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천재의 그늘, 금기를 삼키다

1화

말발굽 소리가 들린 건 해가 채 뜨지 않은 새벽이었다. 또각또각, 또각또각. 한 마리가 아니었다. 꿈인가 싶어서 눈을 몇 번 깜빡였는데, 소리는 점점 또렷해졌다. 나는 이불을 걷어차고 창문에 붙어 밖을 내다봤다. 새벽 공기가 코끝을 찔렀다. 차가웠다. 마을 어귀부터 말 세 마리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들어오고 있었다. 갑옷 색이 우리 촌구석 사람들 것이 아니었다. 왕도 문양이 박힌, 반짝거리는 은빛 흉갑. 저런 건 명절 때 순회하는 세금 징수원도 안 입는다. ···귀족 나부랭이가 이 시골까지 왜. 불길한 예감은 늘 틀리지 않는다. 그건 내 인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예외가 없었다. "이도윤! 이도윤 어디 있냐!" 마을 광장에서 고함이 터졌다. 형 이름이었다. 나는 신발도 제대로 못 신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맨발에 흙바닥이 밟혔다. 차갑고 축축했다. 이미 마을 사람들 절반이 나와 있었다. 자다 깬 얼굴에, 겉옷도 못 걸치고 나온 사람도 있었다. 다들 겁먹은 얼굴로 뒤로 물러선 채였다. 말에서 내린 남자가 종이 한 장을 펼쳐 들었다. 갑옷 어깨에 박힌 문양은 후작가의 것이었다. 낯이 익었다. 예전에 세금 정산 때 한 번 본 적 있는 상징이었다. 저 집안이 이런 일까지 손을 대나. "광명신국의 신탁에 따라, 이도윤은 용사 후보로 선발되었다. 왕도로 동행한다." 주변이 조용해졌다. 너무 조용해서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누군가의 숨소리,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까지 다 들렸다. 형이 사람들 사이에서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평소처럼 담담한 얼굴이었다. 그게 더 화가 났다. 저 상황에서 어떻게 저런 표정을 지을 수가 있지. "제가 이도윤입니다." "네, 맞습니다." 형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차분했다. 마치 남 얘기하는 것처럼. 나는 그 태연함이 견딜 수 없었다. "형!" 나는 형 앞을 막아섰다. 등 뒤로 형의 체온이 느껴졌다. 병사가 나를 훑어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위에서 아래로, 마치 물건 감정하듯이. "넌 뭐냐." "동생입니다." "동생은 상관없다. 물러서." 말투에 존중이라곤 한 톨도 없었다. 귀족 앞 평민 대하는 딱 그 말투. 속에서 뭔가 뜨겁게 치솟았다. "용사 선발이 뭔데 새벽부터 사람을 데려간다는 겁니까. 본인 동의는 받으셨습니까?" 병사, 박세혁이라고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그가 코웃음을 쳤다. "여신님의 신탁이다. 동의고 뭐고 없다. 이건 영광이야, 애송아." 영광 좋아하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용사가 뭘 하다가 죽는지. 귀족 출신 용사는 뒤에서 지원받고, 평민 출신은 최전선에 세워져 소모된다는 소문. 마을 노인들이 저녁마다 술 마시며 낮게 씹던 이야기였다. 술기운 빌려서야 겨우 나오는, 입 밖으로 꺼내면 위험한 이야기. "영광이면 왜 매번 평민만 뽑아 갑니까." "입 다물어라." 박세혁이 검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철컥. 그 소리에 마을 사람들이 헉 하고 숨을 삼켰다. 누군가는 아예 뒤로 돌아 도망칠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도현아." 형이 내 어깨를 잡았다. 손이 컸다. 나보다 한 살 위인데 키도, 손도 다 컸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밭일 하느라 생긴 굳은살. 그 손이 지금 나를 다독이고 있었다.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게." "뭘 알아서 해! 형 이거 거절할 수 있는 거 아니었어?" "거절하면 마을 전체가 불경죄로 조사받아." 형이 조용히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씨발. 마을을 볼모로 잡은 거였구나. 이렇게 깔끔하게 사람 하나를 팔아넘기다니. 박세혁이 형을 향해 다시 종이를 흔들었다. "준비할 시간은 반나절이다. 정오까지 짐 챙겨서 나와." "어디로 가는 겁니까." 형이 물었다. "왕도. 거기서 각성 시험을 거친 뒤 정식 용사가 된다. 그 뒤엔 마왕군 토벌에 투입된다." 마왕군 토벌. 2년 반짜리 시한폭탄이라는 소문이 사실이었다. 용사로 선발된 사람은 딱 2년 반 안에 마왕성 공략에 성공해야 한다. 실패하면 여신의 축복이 걷힌다고 했다. 그 뒤엔, 아무도 모른다. 돌아온 사람이 없었으니까. 옆 마을에서도 오 년 전에 한 명 뽑혀 갔다고 들었다. 지금까지 소식 한 줄 없다고 했다. 이 남자, 박세혁의 말투에는 그런 무게가 전혀 실려 있지 않았다. 그냥 서류 배달하듯, 소포 하나 넘기듯. 사람 목숨을 저렇게 가볍게 말할 수 있는 인간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형." 나는 형의 옷깃을 붙잡았다. "그냥 도망가자. 나랑 같이." "도현아." 형이 나를 내려다봤다. 눈빛이 부드러웠다. 늘 그랬다. 형은 화를 낼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게 문제였다. "내가 가면 마을은 안전해. 다들 나 하나 덕분에 지낼 수 있어. 괜찮아." "안 괜찮아! 형 죽으면 어떡해!" 목소리가 갈라졌다. 마을 사람들 시선이 다 나한테 쏟아졌다. 부끄러웠지만 상관없었다. 누가 어떻게 보든, 지금 이 순간 형을 붙잡는 게 더 중요했다. 멀리서 이장 할아버지가 헛기침을 했다. "도현이 너무 그러지 말게. 나라에서 하는 일이야."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 참으라니. 그 말이 제일 화가 났다. 나라가 하는 일이면 다 정당한 건가. 박세혁이 말 위로 다시 올라탔다. "정오까지다. 늦으면 마을 전체를 조사국에 넘긴다." 말발굽 소리가 다시 광장을 울렸다. 또각또각, 또각또각. 조금씩 멀어졌다.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형의 옷깃을 놓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흩어졌다. 누구도 형에게 다가와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다들 자기 일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그게 더 서글펐다. "도현아." 형이 내 손을 가만히 떼어냈다. "짐 챙기는 거 도와줄래?" ···이 형은 진짜. 울고 싶은데 화가 나서 눈물이 안 나왔다. 이 상황에서 짐 얘기가 나오냐.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고 있었다. 2년 반. 용사가 마왕성을 공략할 시간. 평민 출신 용사는 국가에 이용당하다 버려진다. 형이 그 꼴을 당하게 둘 수는 없었다. 내겐 형만큼의 재능이 없었다. 빛 마법 같은 화려한 선천기술도 없었다. 동네에서 흔히 하는 말로, 나는 그냥 '보통 사람'이었다. 농사일 좀 하고, 사냥 좀 하고, 그 정도가 전부인.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국가가, 교단이 금기라고 부르는 것들. 고대 기계 문명의 유산, 마물 사역술, 악마와의 계약. 위험하고, 미친 짓이고, 걸리면 목이 날아가는 짓. 그런 걸 배워서라도 형을 따라잡아야 했다. 집에 도착하자 형은 벽장에서 낡은 가방을 꺼내고 있었다. 가방 속 물건들을 하나씩 확인하며 담는 손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꼭 여행이라도 가는 사람처럼. 나는 그 뒷모습을 한참 보다가 조용히 결심했다. 나도 떠난다. 형이 왕도로 가는 그 순간, 나는 반대 방향으로. 2년 반 안에, 형을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해져서 돌아온다. 형은 몰라야 했다. 알면 절대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분명 두 손 붙잡고 말릴 거다. 도현아, 위험해. 도현아, 그런 거 배우지 마. 그런 뻔한 말들. 창밖으로 해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었다. 정오까지, 이제 여섯 시간도 안 남았다. 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 낡은 궤짝을 열었다. 그 안에는 예전에 떠돌이 상인한테 헐값에 사둔 물건이 하나 있었다. 겉보기엔 그냥 녹슨 쇳덩이였다. 아무도 몰랐다. 그게 뭔지.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걸로 될까.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한테 남은 건, 이거 하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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