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청운자작령은 생각보다 훨씬 시끄러운 곳이었다.
성문을 넘어서자마자 사람 냄새와 흙먼지, 그리고 뭔가 튀기는 기름 냄새가 한꺼번에 코를 찔렀다.
대로변에는 상인들이 좌판을 깔았고, 어디선가 대장간 망치 소리가 쨍쨍 울렸다.
그 사이로 마차 바퀴가 돌 위를 구르는 소리,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지르는 소리, 누군가 흥정하다 버럭 화내는 소리까지 뒤섞여 있었다.
촌구석에서 자란 나한테는 눈이 팽팽 돌아갈 정도였다.
좌판마다 늘어놓은 물건들도 가지각색이었다.
말린 약초 다발, 이름도 모를 짐승 가죽, 날이 시퍼런 단검,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기 꼬치까지.
꼬치에서 올라오는 연기 냄새에 순간 배 속이 요동쳤다.
아침도 안 먹고 나왔지, 참.
하지만 지금 배고픔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 소음 사이로, 벽마다 붙어 있는 방이 눈에 들어왔다.
〈용사 이도윤, 왕도 각성 시험 통과. 마왕성 공략 원정대 편성 예정.〉
형 이름이 벌써 방에 붙어 있었다.
생각보다 빠른 소식이었다.
글씨는 크고 화려했고, 옆에는 형의 초상화인지 뭔지 모를 그림까지 그려져 있었는데, 실물보다 훨씬 잘생기게 그려놓은 게 웃겼다.
···저 화가한테 사례라도 해야 하나.
그 밑에 작은 글씨로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용사 제도 안내: 여신의 신탁으로 선발된 용사는 2년 6개월 이내 마왕성 공략을 완수해야 한다. 기한 내 실패 시 신탁의 축복이 회수되며, 이후 결과는 알려지지 않는다.〉
···말은 참 곱게 써놨네.
결과가 알려지지 않는다는 건, 죽거나 폐인이 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걸 마치 은퇴 통보하듯 저렇게 담백하게 써놓다니.
마을 노인들이 씹던 소문이 방에 그대로 박혀 있는 게 웃기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할머니들이 툇마루에 앉아 나누던 그 잡담이, 사실은 국가 공식 문서였던 거다.
방 앞에는 나 말고도 몇 명이 서서 그걸 읽고 있었다.
누군가는 혀를 찼고, 누군가는 그냥 무표정하게 지나쳤다.
지나가던 상인 둘이 그 방을 보며 떠들었다.
"이번 용사는 평민 출신이라더라."
"또? 매번 평민만 굴리는 거 같은데."
"귀족가에서 자식 안 내놓으려고 그런 거지 뭐. 여신님도 참 편애가 심하셔."
"뭐, 죽어도 자기 자식 아니니까 아깝지 않은 거지."
두 사람은 낄낄거리며 지나갔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주먹을 꾹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만큼.
···웃을 일이 아니야, 씨발.
형이 저 방 한 장에 인생을 저당 잡힌 거였다.
그것도 본인 동의 따위는 구하지도 않고, 여신이라는 놈이 마음대로 골라서.
머릿속에서 형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맨날 나한테 밥그릇에 고기 몇 점 더 얹어주던, 그 흔한 표정.
그 형이 지금 마왕성이라는 데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게 실감이 안 났다.
아니, 실감이 안 나는 게 아니라 실감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는 길드 건물을 찾아갔다.
청운자작령 모험가 길드는 성 안에서 가장 큰 건물 중 하나였다.
간판에는 낡은 검과 방패가 교차된 문양이 그려져 있었고, 페인트가 벗겨진 자리마다 세월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후끈한 열기와 온갖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땀, 가죽, 술, 그리고 뭔가 탄 냄새.
누군가 벽난로 앞에서 고기라도 굽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사람 자체가 타는 냄새를 풍기는 건지 구분이 안 갔다.
안쪽 카운터에 앉아 있던 여자가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어머, 처음 보는 얼굴이네요."
밝은 목소리였다.
이름표에는 '한소미'라고 적혀 있었다.
나이는 스무 살 남짓 되어 보였고, 눈매가 둥글둥글해서 첫인상부터 경계심이 살짝 풀렸다.
어, 이 사람은 좀 사람 같네.
"등록하러 왔어요."
"나이는?"
"열넷입니다."
한소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열넷? 보통 열다섯부터 받는데···."
"예외 규정이 있긴 합니다. 보호자 동반이나 특별 추천이 있으면요."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돌아보니 덩치 큰 남자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갑옷도 아니고 가벼운 경장 차림이었는데, 몸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어깨가 문틀 반쪼가리만한 게, 그냥 서 있어도 존재감이 방을 다 잡아먹는 느낌이었다.
허리춤에는 흠집 가득한 검이 걸려 있었다.
검집도 여기저기 긁혀서, 저게 관리를 안 한 건지 아니면 그만큼 많이 썼다는 뜻인지 헷갈렸다.
"강태민 씨."
한소미가 반갑게 인사했다.
"돌아오셨네요."
"이번 던전에서 좀 늦게 나왔습니다."
남자, 강태민이 나를 훑어봤다.
마치 물건 감정하는 눈빛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니 정확히는 눈과 손을 번갈아 보는 식이었다.
뭘 그렇게 뜯어봐, 사람 처음 봐요?
"애송이가 왜 혼자 왔지?"
"강해지고 싶어서요."
짧게 답했다.
괜히 자세하게 말했다가 트집 잡힐 게 뻔했다.
강태민이 피식 웃었다.
"다들 그렇게 말하지. 근데 넌 눈빛이 좀 다르네."
"뭐가 다른데요."
"목숨 걸고 뭘 해야 하는 놈 눈이야."
···이 아저씨, 사람 보는 눈은 있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더 얹었다간 진짜 목적까지 술술 불어버릴 것 같았다.
한소미가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자, 여기 이름과 출신지만 적으시면 돼요. 등급 심사는 따로 받아야 하고요."
"등급 심사요?"
"길드 등급이 있어요. F부터 시작해서 SS까지. 등급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임무가 달라져요."
한소미가 손가락으로 카운터 위에 붙어 있는 표를 가리켰다.
F, E, D, C, B, A, S, SS.
글자가 올라갈수록 색깔이 점점 진해지는 게, 딱 봐도 등급이 오를수록 위험도가 높다는 티가 났다.
"F등급은 심부름이나 약초 채집 정도예요. 시체 안 볼 확률이 제일 높은 등급이죠."
"그럼 위로 갈수록요?"
"위로 갈수록 시체 볼 확률이 높아지는 거고요."
···되게 직관적인 설명이네.
간단히 말하면, 낮은 등급은 잡일이나 하고 높은 등급은 진짜 위험한 걸 한다는 뜻이었다.
금기 기술을 배우려면 아마도 낮은 등급으로는 접근도 못할 것이다.
그럼 등급을 빨리 올려야 한다는 얘긴데, 문제는 방법이었다.
"등급은 어떻게 올려요?"
"임무 완수 횟수, 던전 클리어 기록, 시험 통과. 뭐 여러 갈래가 있는데, 제일 빠른 건 역시 던전이죠."
강태민이 옆에서 낮게 덧붙였다.
"빠른 만큼 뒈지기도 제일 빠르지."
한소미가 곱게 눈을 흘겼다.
"강태민 씨, 애 앞에서 그런 말 좀."
"애가 강해지고 싶다잖아. 현실을 알아야지."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를 듣고 있자니, 이 길드가 어떤 곳인지 대충 감이 왔다.
겉으로는 친절하게 웃으면서, 실제로는 사람 목숨 갈아넣는 곳이라는 것.
뭐, 어차피 나도 목숨 좀 갈아넣을 각오는 하고 왔으니까.
서류를 작성하는 내 손을 강태민이 계속 지켜봤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글씨체까지 관찰하는 건지, 손가락 움직임 하나까지 눈으로 쫓는 게 느껴졌다.
다 쓰고 나자 그가 물었다.
"목적이 뭐냐. 그냥 강해지고 싶다는 거로는 안 믿겨서."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 사람 눈은 못 속일 것 같았다.
저런 눈빛은, 형이 사냥에서 짐승 발자국 볼 때 짓던 눈빛과 비슷했다.
거짓말이 통하는 부류가 아니다.
"고대 기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순간 길드 안 온도가 확 낮아진 것 같았다.
한소미의 손이 서류 위에서 멈췄다.
강태민의 표정도 바뀌었다.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주변에서 술 마시던 다른 모험가 몇몇도 힐끗 이쪽을 돌아보는 게 느껴졌다.
"···금기 말하는 거냐."
낮게 깔린 목소리였다.
"필요합니다."
"애송아, 그거 배우다 걸리면 목이 날아가."
"알고 있습니다."
"안다고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는 게 아닌데."
강태민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한참을 그러더니, 그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에서 담배 냄새 비슷한 게 훅 풍겼다.
"···왜 필요한 건지 물어봐도 되나."
나는 잠시 망설였다.
형 이야기를 꺼내는 게 맞을까.
하지만 이 남자, 왠지 거짓말은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우물쭈물했다가는 등록조차 못 하고 쫓겨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형이 용사로 뽑혔습니다. 평민 출신이라 죽을 확률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시간 안에 형을 따라잡아야 합니다."
강태민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용사 이도윤이 네 형이라고?"
"압니까?"
"방금 시내 방에 붙은 거 봤으니까 알지."
그가 팔짱을 풀며 낮게 중얼거렸다.
"···재밌는 놈이 왔네."
한소미가 서류와 우리 얼굴을 번갈아 보며 눈치를 살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강태민은 잠깐 뭔가 생각하는 얼굴을 하더니, 카운터에 팔을 기댔다.
그 팔뚝에 새겨진 흉터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금기라는 게 그냥 위험한 마법 몇 개 배우는 수준이 아니야. 배우는 순간부터 니 몸이 니 것이 아니게 되는 거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설명을 더 듣고 싶었지만, 강태민은 거기서 말을 끊고 나를 다시 훑어봤다.
그 시선이 아까보다 훨씬 무거웠다.
"등록은 해주지. 근데 그다음부터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골치 아픈 일이 될 거다."
그가 마지막으로 덧붙인 그 한마디가, 왠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예고처럼 들렸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저 남자가 아는 '골치 아픈 일'이 대체 어느 정도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