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부품을 구하려면 결국 행성 표면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회의가 필요하지 않았다. 청단호 자체 스캐너로는 신호의 발신지 좌표만 겨우 잡아낼 수 있었고, 그 정체가 뭔지는 직접 가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함선의 항법 컴퓨터가 뱉어낸 좌표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속으로 '아니 이럴 거면 스캐너를 왜 달아놓은 거야'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는데, 어차피 예산 문제로 저가형 장비를 쓰고 있었으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함장님이 직접 나가시는 건 반대입니다"라고 도현이 단호하게 말했고, 나는 그 말투에서 이미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걸 읽어냈다.
"함장이 등급 재평가 대상이니까 오히려 내가 나가야 데이터가 쌓이는 거 아니야?"
"그건 함장님 개인 사정이고, 지휘관을 최전선에 세우는 건 원칙에 어긋납니다"
"원칙 지키다가 부품 못 구해서 함선이 우주 한복판에서 멈추면 그건 누구 책임인데"
도현은 잠시 말이 없었는데, 그 침묵이 길어질수록 내가 이기고 있다는 확신이 강해졌다. 사실 이길 것도 없는 논쟁이었다. 조사대 규모를 최소화하고, 나 대신 다른 인원을 보낸다 해도 결국 전투력이 필요한 상황이 오면 답이 없었으니까. 함선에 남은 인력 중에서 근접전을 감당할 수 있는 건 나와 도현뿐이었고, 그마저도 도현은 총기 위주라 근접전에서는 내가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결국 우리는 몇 차례의 실랑이 끝에 절충안을 냈는데, 나와 도현, 그리고 정비드로이드 수리-05를 포함한 소규모 조사대를 편성해서 함께 내려가기로 한 것이었다. 함선을 완전히 비워두는 것도 위험했지만, 부품 조달이라는 목적을 생각하면 정비 인력은 반드시 필요했으니까. 남은 승무원들에게는 궤도상에서 대기하며 신호를 감시하라는 지시를 남겼는데, 다들 표정이 밝지 않았다. 뭐, 이해는 갔다. 함장이 내려가겠다는데 좋아할 부하가 어디 있을까.
셔틀을 타고 표면으로 하강하는 동안, 나는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대기층의 색깔을 멍하니 바라봤다. 붉은빛과 갈색이 뒤섞인 흐릿한 하늘이었는데, 그게 왠지 오래된 필름 사진 같은 느낌을 줘서 묘하게 정취가 있었다. '이런 데서 죽으면 좀 억울하겠다' 싶은 생각이 스쳤지만, 곧 지워버렸다. 죽는다는 상상까지 하고 나가면 오히려 몸이 굳으니까.
행성 표면은 예상외로 척박했다. 붉은 흙먼지가 낮게 깔려 있고, 발을 디딜 때마다 그 먼지가 뭉근하게 흩어지면서 발목 근처를 맴돌았다. 지평선 너머로는 뭔가 인공적으로 보이는 거대한 구조물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였는데, 그게 바로 신호의 발신지였다. 거리가 상당했는데도 그 윤곽이 뚜렷하게 잡히는 걸 보면 크기가 어마어마하다는 뜻이었고, 나는 그 규모에 살짝 압도되는 기분을 느꼈다.
"저게 뭐야, 유적처럼 생겼는데"라고 내가 중얼거리자, 도현이 스캐너를 들이대며 말했다.
"에너지 반응이 상당합니다. 아직 작동 중인 시설로 추정됩니다"
"작동 중이라니, 몇 년이나 지났을 텐데 아직 살아있다고?"
"동력원의 종류를 특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표준 항성 전지의 수명을 훌쩍 넘긴 반응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속으로 계산을 좀 해봤다. 이 정도 규모의 시설이 자체 동력으로 이 정도 세월을 버텼다면, 그 안에 있는 부품들도 웬만한 함선 부품보다 훨씬 상위 등급일 가능성이 컸다. 요컨대 이건 단순한 부품 조달이 아니라, 사실상 보물찾기에 가까운 일이었다.
[경고: 구조물 주변에서 다수의 생체 반응이 감지되었습니다.]
그 문구를 보자마자 나는 반사적으로 무기 팔을 전개했다. 인간이었다면 심장이 쿵쾅거렸겠지만, 지금은 그저 내부 회로에 전류가 급격히 흐르는 감각—모래주머니를 벗어던진 듯한 그 특유의 가벼운 긴장감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이 감각에는 아직도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는데, 매번 겪을 때마다 '아, 인간이 아니게 되니까 이런 것도 신박하네'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함장님, 뒤쪽입니다!"
도현의 경고가 끝나기도 전에, 뭔가 검은 형체 여러 개가 흙먼지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자세히 보니 그건 낡고 부식된 소형 전투 드로이드들이었는데, 아무래도 이 유적을 지키는 방어 시스템의 일부인 모양이었다. 개체 수는 얼추 예닐곱 정도 되어 보였고, 몸체 표면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인지 녹과 흙먼지가 뒤엉겨 붙어 있었다. 그런데도 관절부의 움직임만은 이상하게 매끄러워서, 겉모습만 낡았지 내부 기능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파그작!!
첫 번째 드로이드가 내 팔에 부딪혀 그대로 반파됐고, 나는 그 손맛에 순간적으로 '어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보다 훨씬 쉽게 부서졌으니까. 팔에 전해지는 충격도 예상보다 훨씬 가벼웠는데, 마치 두꺼운 종이박스를 후려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알림: 잠재능력 재평가 프로토콜 진행 중. 근접 전투 데이터 수집됨.]
'아, 이게 그 시스템이 계속 지켜보고 있다는 거구나' 하고 실감하면서, 나는 남은 드로이드들을 향해 몸을 던졌다.
퍼억! 콰크작!
두 번째, 세 번째 드로이드가 연달아 박살 났는데, 그 손맛이 마치 오래 눌러둔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푸는 것 같아서 묘하게 시원했다. 네 번째 개체는 팔이 아니라 다리로 걷어찼는데, 뜻밖에도 그게 더 시원한 손맛을 남겼다. 부서진 파편이 흙먼지 사이로 튕겨 나가면서 사방에 흩날렸고, 나는 그 파편들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걸으며 다음 목표를 찾았다.
도현도 근처에서 소형 총기로 남은 개체들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그 사격이 한 치의 낭비도 없이 정확해서 3년 경력이 허투루 붙은 게 아니라는 걸 새삼 느꼈다. 총성이 울릴 때마다 드로이드 한 대씩 정확하게 관절부가 관통되어 그대로 주저앉았는데, 마치 미리 짜놓은 각본처럼 깔끔했다.
"함장님, 지금 움직임이 처음 데이터와 완전히 다릅니다"라고 도현이 사격 중간에 말을 걸었다.
"뭐가 다른데?"
"반응 속도가 표준 고위전술드로이드 기준을 30% 이상 초과하고 있습니다"
"그거 좋은 소리야, 나쁜 소리야?"
"둘 다입니다. 전투에는 유리하지만, 등급 산정 기준으로는 이례적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눈앞에 새로 뜬 창을 확인했다.
[알림: 개체 한별-392의 잠재 전투력이 기존 등급 산정 범위를 초과하여 감지되었습니다. 재평가 프로토콜 가속화됩니다.]
'...개사긴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요컨대 지금까지 서류상 존재하지도 않던 등급이, 이 소규모 전투 하나만으로 이미 눈에 띄게 상향되고 있다는 뜻이었고, 그렇다면 이 몸이—원래 김서린이라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나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잠재력을 품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회사에서 야근하다가 과로로 쓰러졌을 때만 해도 내 인생에 '잠재 전투력'이라는 단어가 붙을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는데, 세상일이란 참 모를 일이었다.
남은 두 개체는 도현과 내가 협공해서 순식간에 정리했다. 마지막 놈은 자폭이라도 하려는 듯 몸체 중앙부에서 붉은 불빛이 깜빡이기 시작했는데,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도현이 정확히 그 부위를 저격해서 무력화시켰다.
"자폭 기능이 있었나 보네"
"그런 것 같습니다. 다음부터는 몸체 중앙부의 발광 패턴을 우선적으로 확인해 주십시오"
그 말이 왠지 잔소리 같아서 픽 웃음이 났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방어 드로이드들을 모두 정리한 뒤, 우리는 구조물 정문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문 앞에 도착했다. 가까이서 보니 그 규모는 상상 이상이었는데, 문 하나의 높이가 웬만한 건물 몇 층은 될 법했고, 표면에는 알 수 없는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문양들이 은은하게 빛을 내며 문 주변으로 에너지 장벽 같은 걸 형성하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문양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깜빡이는 패턴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치 뭔가를 계속 계산하거나 감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거 뭔가 관문 같은 느낌인데"라고 내가 말하자, 수리-05가 조심스럽게 스캐너를 들이대며 대답했다.
"함장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내부 구조가 시험장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시험장이라니, 무슨 시험인데?"
"정확한 종류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다만 진입자의 능력치에 따라 시험 난이도가 조정되는 방식으로 추정됩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순간적으로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 능력치에 따라 난이도가 조정된다는 건, 지금 이 순간에도 저 문이 우리를 스캔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경고: 구조물 내부는 미확인 위험 지역입니다. 진입 시 생명체 반응에 따른 시험이 자동으로 시작됩니다.]
'시험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이유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부품을 구해야 했고, 이 유적이 그 힌트를 쥐고 있을 가능성이 컸으니까. 도현은 여전히 미묘한 표정으로 문을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그 표정에서 '이거 진짜 들어가실 겁니까'라는 무언의 물음이 읽혔다.
"함장님, 진입 전에 다시 한번 확인해 주십시오. 위험도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확인해서 뭐 하는데, 어차피 여기서 돌아가면 부품도 못 구하고 함선은 계속 고철이잖아"
"그건 맞습니다만..."
도현의 목소리가 살짝 흔들렸는데, 나는 그게 걱정에서 나온 흔들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두 달이나 함께 일한 사이였으니, 이 정도 눈치는 이제 자연스럽게 붙었다.
"들어가자"라고 짧게 말했지만, 문이 스르륵 열리는 순간 안쪽에서 뿜어져 나온 서늘한 공기와 함께 뭔가—형체는 아직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이는 저음의 진동이 발밑까지 전해져 왔고, 나는 그 순간 이 관문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문 안쪽 어둠 속에서 뭔가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무기 팔의 출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며 도현과 수리-05를 향해 짧게 외쳤다.
"뒤로 물러나. 이거, 생각보다 큰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