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취독관을 살짝 들어 올린 채로, 나는 벽에 등을 붙였다.
'침입자다.'
삼 년 만이었다.
이 미궁에 나 말고 다른 인간이 있다는 걸 확인한 게.
[경고: 미확인 개체 접근]
장갑에 박힌 낡은 감지석이 파랗게 깜빡였다.
그럼 그렇지, 이제야 알려주면 어떡하냐.
이 감지석도 옛날 물건이라 반응이 한 박자씩 느렸다.
가끔은 이게 감지석인지 그냥 야간등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이럴 때마다 새 걸로 바꿔야지, 바꿔야지 하면서 벌써 삼 년째다.
'돈이 없어서 못 바꾸는 거지만.'
일단 정리부터 하자.
나는 이다홍, 스물한 살, 이 지하 미궁을 세 번째 해째 홈그라운드로 쓰고 있는 침입자였다.
원래 여긴 무진시의 지하 제13구역, 옛날엔 관리소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아무도 관리 안 한다.
관리소 흔적이라고는 녹슨 셔터 하나랑, 누가 붙였는지도 모를 "안전 제일" 표지판 하나가 전부였다.
안전은 개나 줘버린 표지판이었다.
대신 이 미궁 아래에는 닭도깨비들이 산다.
금속 좋아하는 닭 괴물들.
닭 모가지에 금속 조각을 주렁주렁 걸고 다니는 놈들인데, 처음 봤을 땐 웬 패션 감각 뛰어난 괴물인가 했다.
알고 보니 그냥 반짝이는 거 좋아하는 습성이었다.
까치도 아니고 닭인데 왜 그러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내가 여기서 사는 이유는 별거 없었다.
지상에는 내가 있을 자리가 없었으니까.
여긴 아무도 없었으니까, 남들과 부딪힐 일이 없어서 좋았다.
사람 얼굴 볼 일도 없고, 사람 말 들을 일도 없고, 사람한테 뭐라 설명할 일도 없었다.
그게 참 편했다.
독침 재료도 여기서 다 나고, 잡은 닭도깨비 몸에서 나온 금속을 지상에 몰래 팔러 나가면 그걸로 생활이 됐다.
[특주 기술 장비: 취독관]
[등급: 유물급 (개조 불가)]
[유지 조건: 정기 세척 및 재료 보급]
이 장비 하나가 내 목숨줄이었다.
대신 유지비가 살인적이었다.
독침 한 대에 들어가는 재료값을 계산하면, 웬만한 하루 벌이가 그대로 날아갔다.
한 번은 이걸로 밥 세 끼를 굶은 적도 있었다.
그날 저녁, 취독관 세척하면서 혼자 중얼거렸던 게 기억난다.
'이게 나야, 밥이야.'
물론 답은 항상 이거였다.
'그래서 함부로 못 쓴다는 거지.'
방금처럼 세 발에서 두 발로 줄어드는 걸 볼 때마다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남은 두 발로 오늘을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이 빛나는 침입자 때문에 계획이 다 틀어질 판이었다.
'오늘 사냥 목표 세 마리였는데.'
이제 한 마리도 못 잡을 판이었다.
나는 조심조심 빛을 따라갔다.
발밑에 자갈 하나라도 밟을까 봐 발끝으로 살살 걸었다.
이 미궁, 삼 년 살면서 어디에 뭐가 있는지 눈 감고도 훤한데, 오늘은 그 익숙한 길이 낯설게 느껴졌다.
통로 너머로, 작은 인영이 보였다.
보라색 머리카락이었다.
그것도 어깨까지 오는 짧은 머리에, 특이하게 곳곳이 잘려나간 흔적이 있었다.
누가 가위로 대충 자른 건지, 아니면 뭔가한테 뜯긴 건지 구분이 안 갔다.
손에 들고 있는 건 확실히 횃불이었다.
진짜 불이 붙어 있는 나무 막대기.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물건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저거 미쳤나.'
이 미궁에서 저런 걸 들고 다닌다는 건, 자살하고 싶다는 소리랑 같았다.
닭도깨비가 얼마나 빛에 민감한지 저 애는 아는 걸까.
모를 것 같았다.
알면서 저러는 거라면 그건 미친 거고, 몰라서 저러는 거면 그건 그냥 신입이었다.
둘 중 뭐든 나한텐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등에는 낡은 지팡이 같은 걸 메고 있었다.
지팡이 끝에 보라색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미궁 안 빛을 받아서 흐릿하게 반사됐다.
마법사구나, 싶었다.
요즘 세상에 마법사가 남아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저렇게 무지한 마법사가 있다는 게 더 놀라웠다.
마법 학교 같은 데서 첫날 배우는 게 "미궁에서 횃불 들고 다니지 마라" 아니었나.
아니, 그런 학교가 있긴 한가.
내가 마법사를 실제로 본 게 몇 년 만인지도 기억이 안 났다.
"저기, 거기..." 나는 조심스레 소리를 낮춰 불렀다.
애가 화들짝 놀라며 이쪽을 돌아봤다.
횃불이 흔들리면서 그림자가 벽을 타고 확 커졌다.
'아 진짜, 그거 좀 가만히 들고 있어.'
"뭐, 뭐꼬! 거서 뭐하는데!" 사투리가 진했다.
'말투부터 심상치 않네.'
지역 사투리도 그렇고, 목소리 톤도 그렇고, 딱 봐도 겁먹은 게 티가 났다.
겁먹은 애가 불을 들고 있으니 더 위험했다.
"그 불, 당장 꺼." 나는 손짓하며 다급하게 말했다.
"싫다! 이거 없으면 앞이 안 보이는데!" 애가 팔을 뒤로 빼며 소리쳤다.
하아, 이건 진짜.
나는 관자놀이를 짚었다.
'이 미궁 규칙을 하나도 모르는 애구나.'
앞이 안 보이면 조명을 들라는 게 아니라 그냥 안 들어오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여긴 관광지가 아니라 무덤이라고.
닭도깨비는 빛을 보면 흥분한다.
흥분하면 운다.
울면 동료를 부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울음소리가 이쪽으로 오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 삼 단계 인과관계, 삼 년 동안 몸으로 배운 규칙이었다.
배우는 과정에서 하마터면 죽을 뻔한 적도 두 번은 있었다.
그 기억이 지금 이 순간 통째로 되살아났다.
"빨리 꺼." 나는 다시 한번 다급하게 말했다.
목소리에 날이 서는 걸 스스로도 느꼈다.
애는 오히려 나를 경계하며 뒤로 물러났다.
'아니, 지금 나보다 저 불이 더 문제인데.'
낯선 사람보다 낯선 위협을 더 무서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얘는 우선순위가 좀 이상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얘 입장에서는 갑자기 어둠 속에서 나타난 내가 훨씬 무서운 존재일 수도 있었다.
'그럴 만도 하지.'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머리를 굴리는 사이, 애는 여전히 횃불을 꼭 쥐고 놓지 않았다.
그 순간, 저 멀리서 소리가 들렸다.
끼에에엑—!
닭도깨비 울음이었다.
이런 큰 울음은, 이 미궁에서 삼 년 동안 들어본 적이 없었다.
보통은 한 마리, 두 마리 짧게 우는 소리였다.
이건 달랐다.
길고, 크고, 그리고... 여러 겹으로 울리는 소리였다.
'설마.'
나는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여러 마리가 동시에 우는 소리, 이건 삼 년 만에 처음 듣는 규모였다.
취독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남은 독침은 두 발.
닭도깨비 무리를 상대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는 그 위기를 만든 원흉이 횃불을 든 채로 멍하니 서 있었다.
'이거, 오늘 안에 안 죽으면 다행이겠다.'
울음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