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레벨1 미믹, 첫 사냥감

1화

어둠뿐이었다. 빛도 소리도 없는 공간이었다. 위도 아래도 구분되지 않았고, 시간이 흐르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 완전한 무(無)의 한가운데에서, 그것은 처음으로 '나'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나는... 무엇인가.' 질문은 단순했다. 그러나 답을 찾을 방법이 없었다. 눈을 뜨려 했으나 눈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숨을 쉬려 했으나 숨이 필요한지도 몰랐다.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눈앞에 흐릿한 글자들이 떠올랐다. 마치 누군가 어둠에 붓으로 써넣은 듯했다. [개체명: 미지정] [종족: 미믹] [레벨: 1] [보유 스킬: 위장(고정), 흡수의 혀] [상태: 자아 각성 – 최초 발생] 글자는 잠시 떠 있다가 스르륵 사라졌다. 그것은 그 문구를 세 번 다시 읊었다. 첫 번째는 그저 소리 없는 나열이었다. 두 번째는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곱씹었다. 세 번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뜻이 몸통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미믹이라... 나는 몬스터로구나.' 감정이라 부를 만한 것이 가슴 어딘가에서 울렸다. 놀람도 아니고 두려움도 아니었다. 그저 낯선 무게였다.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정해진 이름표를 목에 걸고 나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레벨 1이라.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이겠지.' 그것은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부정할 근거가 없었다. 자신이 강한지 약한지조차 알 방법이 없었으니까. 몸을 움직여 보려 했다. 팔을 뻗으려 했으나 팔이 없었다. 다리를 디디려 했으나 다리도 없었다. 손가락 하나조차 까딱할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씩 실감으로 다가왔다. 대신 딱딱하고 각진 몸통이 있었다. 나무로 짜인 궤짝의 형태였다. 뚜껑이 있었고, 그 안쪽에 이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손끝으로 만져본 적은 없었지만, 그 이의 존재감만은 또렷하게 느껴졌다. 날카롭고, 촘촘하고, 무언가를 물어뜯기 위해 만들어진 형태였다. '보물상자로군.' 그것은 자신의 정체를 그렇게 정리했다. 정리는 쉬웠지만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 안을 들여다볼 것이다. 그리고 손을 뻗겠지.' 그 순간 자신의 이가 어떤 용도로 쓰일지 짐작이 갔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으나, 등골이라 부를 만한 것 자체가 없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다. 몸통 안쪽 어딘가에서 비슷한 감각이 일었다는 것만이 확실했다. 주변을 살폈다. 눈이라 부를 만한 감각기관은 없었지만, 대신 공기의 떨림과 냄새로 방의 형태가 그려졌다. 이것이 스킬 목록에 있던 '기척감지'였다. 냄새는 진했다. 쇠 냄새, 흙냄새, 그리고 그 사이를 파고드는 비릿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좁은 석실이었다. 벽은 거칠게 다듬어진 돌로 쌓였고, 천장은 낮아서 사람이 서면 머리가 닿을 듯했다. 바닥은 축축했고, 그 축축함의 근원은 피였다. 사방에 마른 핏자국과 덜 마른 핏자국이 겹쳐 있었다. 마른 것은 검붉게 굳어 갈라졌고, 덜 마른 것은 아직 끈적한 채로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사람의 팔뚝이 잘려 나간 채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부서진 방패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방패에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으나 반쪼가리만 남아 있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좀 더 안쪽에는 녹슨 검 한 자루가 바닥에 박힌 채 서 있었다. 누군가 마지막 순간에 힘껏 내리찍었으나, 그 검을 다시 뽑지 못한 채 이 방을 떠난 모양이었다. '여긴 무덤이구나.' 남의 무덤이 아니라, 어쩌면 자신의 무덤이 될 수도 있는 곳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 몸통 안쪽에 말려 있던 혀가 저절로 움찔했다. 마치 스스로도 그 생각에 동의한다는 듯이.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도망칠 수단이 없었다. 팔이 없으니 기어갈 수 없었고, 다리가 없으니 뛸 수 없었다. 오직 몸통 안에 말려 있는 긴 혀만이 유일하게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부위였다. 시험 삼아 혀를 조금 풀어 보았다. 혀는 몸통 밖으로 손가락 한 마디만큼 삐져나왔다가 다시 움츠러들었다. 차갑고 축축한 석실의 공기가 혀끝에 닿는 순간의 감각이 낯설었다. 이것이 지금 자신이 가진 유일한 무기이자 유일한 손이었다. '혀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흡수의 혀라는 이름이 다시 떠올랐다. 이름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시험해 볼 대상도, 시험해 볼 여유도 없었다. '움직일 수 없다는 건, 결국 여기서 뭐든 일어나는 대로 당해야 한다는 뜻인가.' 절망이 스치고 지나갔다. 스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절망은 몸통 밑바닥에 눌어붙어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이 석실의 핏자국처럼, 마르지도 씻기지도 않은 채로 그 자리에 남았다. 그것은 다시 한번 상태창을 떠올려 보려 애썼다. 위장(고정)이라는 스킬이 마음에 걸렸다. '고정이라 함은, 나는 늘 이 모습으로만 있어야 한다는 뜻인가.' 다른 미믹들은 책이나 항아리, 문짝의 모습으로도 위장한다고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기억이 정확히 어디서 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마치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누군가의 이야기를 주워듣고 있었던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었다. '고정이니 나는 보물상자 외에는 될 수 없다는 뜻이겠지.' 그것으로 충분한 설명이 되었다. 더 캐물을 시간도, 캐물을 방법도 없었다. 그때였다. 둥, 둥, 둥. 바닥을 통해 낮고 규칙적인 진동이 전해졌다. 발자국이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최소한 셋 이상의 리듬이 겹쳐서 울리고 있었다. 무겁고 일정한 발걸음이었다. 서두르지 않는, 그러나 분명한 목적을 가진 걸음이었다. '가까워지고 있다.' 그것은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몸통 안의 무언가가 차갑게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이 급했다. 지금은 살아남는 것이 급해졌다. 혀를 다시 몸통 안으로 완전히 말아 넣었다. 뚜껑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닫으려 애썼다. 위장이라는 스킬이 고정되어 있다면, 최소한 그 위장만은 완벽해야 했다. '저들이 사람이라면, 나는 그저 낡은 보물상자로 보여야 한다.' '저들이 몬스터라면...' 그 다음 생각은 이어지지 않았다. 이어질 필요가 없었다. 몬스터든 사람이든, 지금 이 순간 그것에게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으니까. 숨을 죽이고, 이 검붉은 석실의 어둠 속에 스스로를 완전히 파묻는 것. 둥, 둥, 둥. 진동은 점점 커졌다. 발소리의 주인이 이 방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걸음 사이로 낮게 웅웅거리는 목소리 같은 것이 섞여 들렸다. 사람의 말인지, 그저 숨소리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시간이 없다.' 그것은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가 이 어두운 석실 안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온몸으로 실감했다. 눈도 없고, 팔도 없고, 다리도 없는 몸으로, 오직 다가오는 발소리의 수를 세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발소리는, 이제 방문 바로 앞에 멈춰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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