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발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둥, 둥, 둥.
일정한 간격으로 다가오는 그 소리는, 마치 시간을 재는 것처럼 정확했다.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
그것은 진동의 세기로 거리를 짐작했다. 발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미세한 떨림이 나무 궤짝의 몸통을 타고 전해졌고, 그 떨림의 크기가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아직은 복도 어딘가였다. 하지만 그 복도가 길지 않다는 것도 동시에 느껴졌다. 발소리의 울림이 벽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시간이 짧았다. 좁은 공간이라는 뜻이었다.
'하나, 둘...'
걸음의 수를 세어보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걸음마다 간격이 똑같아서, 셈을 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이 확실했다.
스스로를 둘러보았다. 낡은 나무 궤짝의 형태. 뚜껑에는 녹슨 쇠 장식이 붙어 있었고, 몸통 표면에는 오래된 흠집들이 나 있었다. 세월의 흔적처럼 보이는 그 흠집들도, 사실은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위장이라는 능력이 몸의 형태만 바꾸는 게 아니라 그 위에 쌓인 시간의 흔적까지 흉내 낸다는 사실을, 그것은 방금 알았다.
'위장이 스킬이라면, 이 형태 그대로 버티면 되는 건가.'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이었다. 상자처럼 있으면, 상자로 보일 것이었다. 움직이지 않고, 소리를 내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놓인 물건인 척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바닥이었다.
그것이 놓인 자리 주변으로 마른 핏자국이 넓게 퍼져 있었고, 자신의 몸통 아래쪽에도 미처 닦이지 않은 핏물이 스며 있었다. 색이 이미 짙게 변해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아무도 이 방을 치우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대로 발견되면, 이 핏자국이 나를 가리킬 것이다.'
보물상자 주변에 웬 핏자국이 있다면, 누구라도 의심할 것이다.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상자는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물건이어야 했다. 핏자국은 방금 벌어진 사건의 증거였다. 두 가지가 함께 놓여 있다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러웠고, 부자연스러운 것은 곧 발각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자신의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부위, 혀를 떠올렸다. 몸의 다른 부분은 상자의 형태를 유지한 채 굳어 있었지만, 혀만은 예외였다. 왜 혀만 예외인지는 그것도 알지 못했다. 그저 그렇게 만들어졌을 뿐이었다.
혀는 입 안쪽 깊숙이 말려 있다가, 의지에 따라 스르르 풀려 나왔다.
스르륵-
혀끝이 바닥에 닿았다. 차갑고 축축한 감촉이 먼저 전해졌다. 나무 바닥의 결이 혀끝에 그대로 느껴졌고, 그 결 사이사이에 말라붙은 핏덩이가 걸렸다.
'닦아내자. 흔적을 없애야 살 수 있다.'
혀가 바닥을 훑기 시작했다. 핥는 동작이었다. 지우려는 목적이었지만, 그 목적과 다른 것이 함께 딸려 들어왔다.
맛이었다.
비릿하고 짙은 그 맛이 혀를 타고 몸통 안쪽까지 흘러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이물감이었다. 그러나 곧 그 이물감이 다른 감각으로 바뀌었다.
순간, 그것의 안에서 무언가가 요동쳤다.
'이건...'
배 속 어딘가, 존재조차 몰랐던 감각이 터지듯 깨어났다. 공복이었다. 단순한 배고픔이 아니었다. 뼛속까지 텅 비어 있는 듯한, 존재 자체가 갈구하는 결핍이었다. 마치 처음 태어난 순간부터 굶고 있었는데, 그 사실을 지금까지 몰랐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먹어야 하는 존재였나.'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에도 혀는 멈추지 않았다. 핥는 속도가 빨라졌다. 지우려던 손, 아니 지우려던 혀가 어느새 탐욕스럽게 바닥을 훑고 있었다. 핏자국을 지우려던 처음의 목적은 이미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지금 혀를 움직이는 것은 생존을 위한 위장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였다.
'멈춰야 한다.'
이성이 소리쳤다. 그러나 몸은 다른 명령을 따르고 있었다. 위장이라는 스킬이 형태를 흉내 낼 뿐이라면, 이 갈망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상자에게는 없어야 할 감각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 갈망은 무엇보다도 선명했다.
혀는 핏자국을 넘어, 구석에 놓인 잘린 팔뚝 쪽으로 뻗어가기 시작했다. 팔뚝의 단면은 이미 검붉게 말라 있었지만, 그 마름조차 혀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그 마름 속에 스며 있을 무언가를 향해, 혀는 더 빠르게 다가갔다.
'안 돼.'
그것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외쳤다. 하지만 그 외침조차 공복감의 소음에 묻혀 희미해졌다. 마치 자신의 몸 안에 두 개의 존재가 있는 것 같았다. 하나는 발각을 두려워하며 멈추라고 외치는 존재였고, 다른 하나는 그 두려움조차 안중에 없이 그저 뻗어나가는 존재였다. 그리고 지금은, 후자가 이기고 있었다.
둥, 둥, 둥.
발소리가 이제는 문턱 바로 너머까지 다가와 있었다. 진동은 더 이상 짐작할 필요가 없을 만큼 뚜렷했다. 발바닥이 바닥을 딛는 순간의 무게감까지도 전해질 정도였다.
숫자를 셀 필요도 없이 확실했다. 두 걸음, 아니 한 걸음이면 이 방 안으로 들어설 거리였다.
'시간이 없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생각은 거기서 끊겼다. 몸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했다. 혀는 여전히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고, 그 움직임을 멈추려는 의지는 마치 물속에서 손을 뻗는 것처럼 더디고 무력했다.
그것의 혀가 팔뚝의 잘린 단면에 거의 닿을 듯 다가간 순간, 문 너머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안쪽인가?"
낮고 담담한 남자의 음성이었다. 서두르는 기색도, 경계하는 기색도 없는, 그저 확인하듯 묻는 말투였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은, 도망칠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것의 온몸이 그 소리에 얼어붙었다. 혀는 여전히 팔뚝 앞에서 떨고 있었다. 멈춘 것도, 나아간 것도 아닌 상태였다. 공복감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소리치고 있었지만, 목소리 하나가 그 모든 소음을 순간적으로 덮어버렸다.
'지금 이대로 발각되면...'
발각되면 어떻게 될지, 그것은 알지 못했다. 다만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지금 이 상태로 사람의 눈에 보이면, 그 다음은 없다는 것을.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문틀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