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그 로맨스, 제가 막겠습니다

5화

다음 날 오전, 학원 훈련장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정확히는 눈이 떠진 게 아니라 심장이 먼저 깬 느낌이었다. 창밖을 보니 아직 어두운데, 몸은 벌써 전투 모드로 전환되어 있었다. 밥은 먹었다. 긴장한다고 굶으면 나중에 배가 고파서 집중력이 흐트러진다는 걸 나는 이미 몸으로 배웠다. 상급 기사 자격의 감각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훈련장에 도착하니 이미 관람석이 절반 넘게 차 있었다. 교두단 전원이 관람석에 앉아 있었고, 소문을 듣고 몰려온 학생들 몇몇도 담벼락 너머로 목을 빼고 있었다. 저 담벼락, 안전한 거 맞나. 넘어지면 다칠 것 같은데. [사람들이 오늘 축제인 줄 아는 것 같은데요.] 축제 아니야. 내 인생 최대 위기 중 하나야. 훈련장 한복판, 나를 둘러싼 다섯 명의 마법기사가 각자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검사, 창병, 궁수, 그리고 두 명의 마법사. 다섯 개의 시선이 나 하나에게 꽂혀 있는 감각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등에 식은땀이 배는 게 느껴졌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심사를 맡은 교두 하나가 설명했다. "한서준 님이 다섯 명 중 세 명 이상을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거나, 5분간 버티시면 통과입니다." "만약 못 버티면요?" "겸임교사 임명은 취소되고, 왕실 경호 임무만 계속 수행하시게 됩니다." [취소되면 그냥 원래대로 사는 거네요. 나쁘지 않은데.] 효율적으로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왕실 경호는 월급도 나쁘지 않고, 야근도 상대적으로 적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냥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왜일까. 아마 저 다섯 명의 눈빛에 섞인 얕은 무시가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자격증 도둑, 잡학 다식한 애송이. 대충 그런 걸 보는 눈빛이었다. 【심사 개시. 제한시간 05:00.】 삐이익. 호각 소리가 울렸다. 검사가 먼저 달려들었다. 궤적이 정확했다. 3급 기사답게 기본기가 탄탄했다. 검끝이 그리는 선이 교본에 나오는 그림 같았다. 나는 상급 기사 자격을 근거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검을 흘렸다. 철컹. 손목이 저릿했다. 힘은 강했지만 방향이 뻔했다. 동시에 궁수가 쏜 화살이 날아왔다. 【상급 연금술사 스킬: 즉석 방어진 생성.】 손끝에서 만든 작은 방어막이 화살을 튕겨냈다. 퍽, 하고 화살이 튕겨나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관람석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새어나왔다. 창병이 측면에서 찔러 들어왔다. 나는 발을 살짝 틀어 창끝을 비껴 냈다. 균형이 아슬아슬하게 흐트러졌지만, 상급 기사의 균형감각이 그걸 바로 잡았다. 발끝에 힘을 주는 감각, 무게중심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그 짧은 순간이 이상하게 선명했다. [이거 완전 게임에서 봤던 밸런스 붕괴 몬스터 패턴인데요.] 지금 그런 소리가 왜 나와. 두 명의 마법사가 동시에 화염 마법을 캐스팅했다. 화르르륵. 열기가 얼굴에 확 닿았다. 냄새는 탄 재 같은 냄새, 온도는 순간적으로 확 오른 감각. 눈썹이 그슬릴 것 같은 뜨거움. 나는 상급 마술사 자격으로 냉기 마법을 반사적으로 겹쳐 걸었다. 치이이익. 화염과 냉기가 부딪히며 증기가 훈련장을 가득 채웠다. 시야가 순식간에 하얗게 흐려졌다. 관람석에서 낮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저게 대체 몇 개의 계열을……" "기사, 연금술, 마술까지 동시에?" 증기가 걷힐 때쯤, 검사와 창병은 이미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검사는 손목을 붙잡고 있었고, 창병은 그냥 넋이 나간 표정으로 창을 놓친 상태였다. 궁수는 무기를 놓친 채 뒷걸음질 쳤다. 남은 건 두 마법사뿐이었다. 【제한시간 03:12 남음.】 아직 절반도 안 지났는데 벌써 셋이 나갔다. [예상보다 빠르네요. 이 정도면 학원 역사에 기록될 것 같은데요.] 기록 같은 거 필요 없다. 그냥 빨리 끝내고 밥 먹고 싶다. 오늘 점심은 뭐였더라. 두 마법사가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동시에 광역 마법을 준비했다. 지팡이 끝에서 룬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저건 아까와는 격이 다른 마력량이었다. 대지가 진동했다. 두구구구. 땅이 갈라지며 흙덩이가 솟아올랐다. 발밑이 흔들리는 감각,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진동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나는 정원사 자격으로 흙과 뿌리의 흐름을 읊었다. 상급 정원사는 단순히 화초를 가꾸는 자격이 아니라, 대지의 생명력을 다루는 자격이었다. 솔직히 나조차도 이걸 이렇게 쓸 줄은 몰랐다. 상급 정원사 자격을 딸 때는 그냥 마당에 화분 몇 개 놓고 싶어서 딴 거였는데. 갈라진 땅 사이에서 넝쿨이 솟아나 두 마법사의 발목을 휘감았다. "이, 이게 뭐야!" 관람석이 완전히 침묵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크게 느껴졌다. 건축사 자격으로 그 자리에 즉석에서 작은 결계 구조를 세워 넝쿨의 힘을 증폭시켰다. 원래 건축사 자격은 이런 데 쓰는 게 아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었다. 돌기둥 모양의 작은 결계가 순식간에 지면에서 솟아올랐다. 그 안에서 넝쿨이 더 굵어지고, 더 세게 조여들었다. 두 마법사가 지팡이를 놓치며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 【제한시간 02:47 남음. 심사대상 승리 조건 충족.】 호각이 다시 울렸다. 삐이이익. "경, 경기 종료! 승자, 한서준 님!" 관람석이 순간 폭발하듯 웅성거렸다. "자격증이 몇 개래?" "기사, 연금술사, 마술사, 정원사, 건축사까지 다 상급이라던데." "저게 사람이 맞나?" 누군가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쳤고, 또 누군가는 그냥 입을 벌린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기 뒷줄에 앉은 학생은 아예 옆 사람 팔을 붙잡고 흔들고 있었다. [사람 맞아요. 그냥 취미가 좀 많은 사람이에요.] 너 자꾸 이상한 데서 참견하지 마. 나는 숨을 고르며 학장 쪽을 바라봤다. 학장의 표정은 미묘했다. 만족스러움과 경계심이 반쯤씩 섞인 표정. "놀랍군요. 예상보다 훨씬 뛰어나십니다." "감사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예의를 차렸지만, 속으로는 이미 지쳐 있었다. 다섯 자격을 순식간에 오가며 쓴다는 게, 겉으로는 멋있어 보여도 실제로는 뇌가 다섯 개의 언어를 동시에 통역하는 느낌이라 진이 다 빠졌다. 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목이 마르고 다리가 조금 후들거렸다. 이거 이겨놓고 왜 더 피곤하지. [근데 아까 그 넝쿨 마법, 원래 게임엔 없던 스킬이었어요. 이거 좀 이상한데요.] ···뭐? 그 순간 【세계선 안정도】 알림이 다시 눈앞에 떠올랐다. 【세계선 안정도: 84.1%. 이상 편차 감지: 3건.】 숫자가 더 떨어져 있었다. 아까 확인했을 때보다 확실히 더. [제가 아는 게임 데이터랑 지금 상황이 점점 안 맞아요. 당신이 뭔가 새로운 능력을 쓸 때마다 저 숫자가 떨어지는 것 같은데요.] 농담이면 좋겠는데,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평소라면 저 뒤에 장난스러운 말이라도 하나 붙였을 텐데, 이번엔 아무것도 붙지 않았다. 그 침묵이 더 불안했다. 숫자가 왜 떨어지는지, 원인이 나 자신인지, 아니면 이 세계 전체의 문제인지,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확실한 건 이게 좋은 방향은 아니라는 것뿐. 관람석 뒤쪽, 학생들 사이에서 누군가 소란을 피우며 뛰어오는 게 보였다. "큰일 났어요! 정문 쪽에!"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학생이 소리쳤다. "몬스터가, 몬스터가 학원 안으로 들어왔어요!" 훈련장의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비명으로 바뀌었다. 방금까지 나를 향해 환호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서로를 밀치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누군가는 담벼락을 넘어 도망치려다 발이 걸려 넘어졌다. 학장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던전 게이트라니, 그게 갑자기 왜……" 학장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방금까지의 위엄 있는 태도는 어디로 사라진 건지, 지금은 그냥 놀란 노인의 얼굴이었다. 【경보: 던전 게이트 이상 발생. 학원 부지 내 몬스터 침입 확인.】 5분 전까지 웃고 있던 관람석이, 지금은 완전히 다른 공기로 뒤덮여 있었다. [세계선 안정도가 떨어진 것과 이게 관련이 있을까요.] 몰라. 알고 싶지도 않아. 라고 생각했는데, 몸은 이미 정문 쪽으로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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