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방법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한지운의 목소리에 경계가 섞였다.
나는 손을 펼쳐 보였다.
아무것도 없었다.
빛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손바닥을 몇 번이나 뒤집어 보았다.
평범한 여덟 살 아이의 손이었다.
가늘고, 하얗고, 아무 힘도 없어 보이는 손.
방금까지 그 손에서 빛이 났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까 이 손에서 빛이 났어요."
"빛이라니요."
"저도 몰라요. 그런데 뭔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한지운은 미간을 좁혔다.
믿지 않는 눈치였다.
당연했다.
나라도 안 믿었을 거다.
어느 날 갑자기 여덟 살 아이가 손에서 빛이 났다고 말하면, 그건 의사를 부를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니, 정확히는 몰랐다.
다만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게 있었다.
전생의 기억.
카페를 운영하던 시절, 새벽마다 반죽을 치대던 그 손의 감각.
나는 다시 노트를 집어 들었다.
어머니의 필체가 눈에 들어왔다.
[생산 마법 — 재료의 성질을 읽고, 그것을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하는 힘]
한 줄이 적혀 있었다.
그 아래로 작은 글씨가 더 있었다.
"이 힘은 재료를 다루는 자의 것이다. 상인이 아니라, 만드는 자의 것."
나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읽었다.
"어머니가 이걸 쓸 줄 알았던 거예요."
"부인께서는… 그런 힘을 쓰신 적이 없습니다."
"쓰셨을 거예요. 상점을 하실 때."
한지운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침묵이 오히려 확신을 더해 주었다.
어머니는 알고 있었다.
이 힘의 존재를, 이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그런데 왜 나에게 한 번도 말해주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말할 시간이 없었던 걸지도.
오후 두 시.
나는 부엌으로 내려갔다.
한지운이 뒤따라왔다.
표정이 굳어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그의 발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느릿하고, 무거운 소리였다.
그 소리 하나만으로도 그가 이 상황을 얼마나 못마땅해하는지 알 수 있었다.
부엌 찬장을 열었다.
밀가루 한 봉지, 설탕 조금, 계란 두 알.
많지 않았다.
하지만 시작하기에는 충분했다.
찬장 안을 훑어보는데 손끝이 저절로 움직였다.
마치 재료들이 나를 향해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밀가루의 결, 설탕의 입자, 계란 껍질의 두께.
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이었다.
"이걸로 될까요."
한지운이 옆에서 물었다.
"해봐야 알아요."
나는 계란을 깨뜨렸다.
손끝에 힘을 모았다.
전생의 기억 속에서 배운 대로, 마음속으로 형태를 그렸다.
머랭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온도와 속도였다.
너무 빠르면 거품이 무너지고, 너무 느리면 부피가 안 나온다.
전생의 나는 그걸 손목의 힘으로 조절했다.
이번엔 다르게 해야 했다.
손끝이 다시 뜨거워졌다.
계란 흰자가 그릇 안에서 스스로 떠올랐다.
거품이 일었다.
순식간에 하얀 머랭이 만들어졌다.
"이게…"
한지운의 눈이 커졌다.
나도 놀랐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머랭의 질감을 손끝으로 느낄 수 있었다.
결이 곱고, 윤기가 흘렀다.
전생에서 수백 번을 만들었지만, 이 정도로 완벽한 머랭은 처음이었다.
도구도 없이, 오직 마음속 형태만으로.
밀가루와 설탕이 스스로 섞였다.
작은 반죽 덩어리가 손바닥 위에서 뭉쳐졌다.
둥근 모양, 매끄러운 표면.
마카롱의 코크였다.
전생의 기억 속, 파티시에가 아니었어도 카페 사업을 하며 수도 없이 봤던 그 모양이었다.
작고, 동그랗고, 비싸게 팔리는 디저트.
색깔은 아직 없었다.
색소가 없으니 흰색 그대로였다.
하지만 형태만으로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마카롱의 코크, 그 특유의 매끈한 표면과 살짝 부풀어 오른 발.
"이걸로 사업을 할 거예요."
한지운의 얼굴이 하얘졌다.
"아가씨,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마카롱을 만들어서 팔 거예요. 왕도 상가에서요."
"안 됩니다."
단호한 목소리였다.
"아가씨는 여덟 살입니다. 사업이라니요."
"그럼 다른 방법이 있어요?"
"방법을 찾는 건 제 몫입니다."
"찾으셨어요?"
한지운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침묵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이 주 동안 그가 백방으로 뛰어다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결과가 없었다는 것도.
"이 주밖에 안 남았잖아요."
한지운이 말을 멈췄다.
숫자가 다시 방 안을 채웠다.
금화 삼천 냐.
남은 시간 이 주.
그 숫자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삼천 냐라는 빚, 그리고 이 주라는 시간.
둘 다 줄어들기만 하는 숫자였다.
하나는 갚아야 할 돈, 하나는 남은 유예.
"이 힘으로 뭘 할 수 있는지도 모르잖습니까."
"해봐야 알죠."
"실패하면 남은 것도 다 잃습니다."
"실패하지 않을 거예요."
말은 자신 있게 나왔다.
하지만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한지운은 그것을 보았다.
그의 시선이 내 손끝에 오래 머물렀다.
나는 그 손을 슬쩍 뒤로 감췄다.
숨기고 싶었던 게 아니라, 숨겨야 한다고 느꼈다.
어른 앞에서 아이가 두려움을 들키면 안 된다는, 그런 이상한 자존심이었다.
"몸도 아직 어리십니다. 방금도 무리하신 것 같은데요."
"괜찮아요."
"아가씨."
"괜찮다니까요."
한지운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부엌 창으로 오후 햇살이 들어왔다.
반죽 덩어리 위로 빛이 얼룩졌다.
빛을 받은 반죽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매끈한 표면 위로 그림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나는 그것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내 손에서 나온 첫 결과물이었다.
"…한 가지만 약속해 주십시오."
"뭔데요."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즉시 멈추셔야 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는 지킬 수 없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이 약속을 지키려면, 이 사업을 아예 시작하지 않아야 했다.
어차피 위험은 처음부터 예정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한지운이 더 걱정할 게 뻔했다.
"그럼 재료가 필요해요."
"뭐가 필요하십니까."
"아몬드 가루, 설탕, 버터, 계란. 그리고 색소도요."
"그런 건 시장에서 구해야 합니다."
"돈이 얼마나 남았어요?"
한지운이 잠시 눈을 감았다.
"금화 백열여덟 냐입니다."
"그걸로 재료 사고 나면요?"
"거의 남지 않습니다."
숨을 삼켰다.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돌이킬 여유가 없는 것이었다.
한 번의 승부.
실패하면 끝이었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봤다.
아몬드 가루의 가격, 설탕의 가격, 버터와 색소.
전생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배운 원가 감각이 다시 살아났다.
백열여덟 냐로 얼마나 만들 수 있을까.
넉넉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실패를 한 번도 허용하지 않는 액수였다.
"그래도 해야 해요."
한지운은 나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 걱정과, 아주 작은 인정이 함께 섞여 있었다.
그 눈빛을 나는 정확히 읽을 수 있었다.
믿고 싶지만 믿을 수 없는 눈.
동시에, 믿어보고 싶은 눈.
한지운도 나만큼이나 절박했다.
설가의 마지막 사람으로서, 그도 무언가에 걸어야 했다.
"내일 아침에 시장에 다녀오겠습니다."
"고마워요, 집사님."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건 아가씨를 위한 게 아니라, 설가를 위한 겁니다."
그 말이 차가웠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설가를 위한다는 말은, 결국 나를 위한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이 집안에 남은 유일한 핏줄이 나였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어머니의 노트를 펼쳤다.
페이지마다 낯선 도형이 그려져 있었다.
원가 구조, 재구매율, 입소문 확산 곡선.
어머니는 이 세계에서 조용히 이 모든 걸 실험하고 있었던 걸까.
노트를 넘길수록 어머니의 흔적이 더 선명해졌다.
어떤 페이지에는 손님의 반응을 기록한 짧은 문장들이 있었다.
"단맛이 강하다는 평이 많음. 다음엔 줄여볼 것."
"포장을 예쁘게 하면 재구매율이 오른다."
전생의 마케팅 서적에서 본 것과 똑같은 원리였다.
어머니도 나처럼,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순전히 이 세계에서 스스로 깨우친 걸까.
알 수 없었다.
다만 노트 속 어머니는 상인이었고, 동시에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 순간 몽실이 방문을 밀고 들어왔다.
갈색 털이 푹신한 고양이 마물, 내가 재작년에 정원에서 길들인 아이였다.
몽실은 내 무릎 위로 올라와 몸을 말았다.
몽실의 무게가 무릎 위에 느껴졌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평온한 무게였다.
이 저택 안에서 유일하게 아무 걱정도 없는 존재가 몽실이었다.
나는 그 사실이 묘하게 위로가 됐다.
손끝의 감각이 아직 남아 있었다.
뜨겁지만 기분 좋은 열이었다.
나는 몽실을 쓰다듬으며 창밖을 보았다.
달이 뜨고 있었다.
이 주 후, 이 저택은 내 것이 될 수도, 남의 것이 될 수도 있었다.
그 갈림길 앞에서 내가 가진 건 손에서 나오는 빛과, 어머니가 남긴 노트 한 권, 그리고 나를 믿지 않으면서도 곁을 지키는 한지운뿐이었다.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밤이 깊어지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손을 펼쳐 보았다.
빛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아마 힘을 쓸 때만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다음번에도 통할까.
확신할 수 없었다.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자꾸 목을 마르게 했다.
다음 날 아침, 한지운이 시장에서 돌아왔다.
그의 손에 들린 바구니 안에는 재료가 가득했다.
아몬드 가루, 설탕, 버터, 계란, 그리고 몇 가지 색소까지.
필요한 건 다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바구니를 내려놓는 그의 손이 평소보다 느렸다.
뭔가를 말하기 전에 늘 하는 버릇이었다.
나는 그 버릇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가씨, 문제가 생겼습니다."
"뭔데요."
"시장에서 소문을 들었는데요."
한지운이 말을 잠시 멈췄다.
"채권자들이 기한을 앞당길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 말에 부엌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이 주라는 시간조차 이제는 확실하지 않았다.
남은 시간이 며칠일지, 아니 며칠도 안 남았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방금 만든 마카롱 코크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색도 입히지 못한, 완성되지 않은 코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