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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아침 여섯 시. 창밖은 아직 푸르스름했다. 한지운이 물그릇을 들고 들어왔다. 물그릇 안의 물이 살짝 흔들렸다. 그가 걷는 걸음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겨우 상반신을 일으켰다. 팔에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근육이 삐걱거렸다. 어제보다는 나았지만 여전히 손끝이 저렸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감각이 손가락 끝에서 손목까지 이어졌다. 물그릇을 받아 든 손이 살짝 떨렸다. 한지운이 그 떨림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오늘은 나가시면 안 됩니다." 한지운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평소보다 한 톤 낮았다. "상가에 가야 해요." "몸이 이런 상태로는 안 됩니다." 물을 한 모금 삼켰다. 목구멍이 뻣뻣했다. 물이 넘어가는 느낌마저 낯설었다. "채권자들 기한이 앞당겨질 수도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렇다고 아가씨가 쓰러지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쓰러지지 않아요." "방금도 걸을 힘이 없으셨습니다." 말이 막혔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열 걸음도 안 되는 거리를, 벽을 짚고서야 겨우 걸어갔던 게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하지만 물러날 수도 없었다. 물러나면, 그 순간 모든 게 끝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제 만든 마카롱, 상자에 그대로 있죠?" "있습니다." "그거라도 들고 가면 안 돼요?" "아가씨는 안 됩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집사님이 대신 갈 순 없어요. 반응을 봐야 해요. 제가 직접 봐야 다음 걸 어떻게 만들지 알 수 있어요." 한지운은 잠시 말을 멈췄다. 창문 밖으로 아침 햇살이 스며들었다. 빛이 방 안 먼지를 비추며 천천히 떠다녔다. 그 사이로 한지운의 표정이 잠깐 흔들리는 게 보였다. "아가씨,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알아요." 알고 있었다. 의식을 잃기 직전, 눈앞이 하얗게 번쩍이던 순간. 몸속 어딘가가 텅 비어버리는 듯한 느낌. 숨을 쉬는 것조차 힘겨웠던 그 몇 초. "마력이 완전히 바닥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대답하지 못했다. 전생의 기억에는 이런 종류의 마법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이 세계의 이야기였다. 전생에서 나는 그저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마력이니 마법이니 하는 건 소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개념이었다. 지금 이 몸에 붙은 감각들이, 여전히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최악의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한지운의 목소리가 낮았다.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숨이 막혔다. 목숨. 그 단어가 실감으로 다가왔다. 머릿속으로 어제의 순간이 다시 스쳐 지나갔다. 의식이 흐려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보였던 게 한지운의 얼굴이었다. 그가 나를 붙잡고 뭐라고 소리쳤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저는 아가씨의 부모님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나온 말이었다. 방 안 공기가 순식간에 달라졌다. "그건 집사님 잘못이 아니에요." "그래도 저는 이번엔 지키고 싶습니다." 한지운의 눈이 붉어져 있었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항상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사람이었다. 설가에서 오래 일했던 그가, 이 저택의 몰락을 얼마나 많이 지켜봐 왔을지 짐작이 갔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그날도, 이 사람은 아마 지금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마음 한구석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동시에, 고집이 꺾이지 않았다.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게 이상했다. 고맙다는 마음과, 그래도 멈출 수 없다는 마음. 둘 중 어느 것도 사라지지 않았다. "저도 알아요. 위험하다는 거." "그런데도 계속하시겠다는 겁니까." "멈추면 어떻게 되는데요." "…" "멈추면 이 주 안에 저택을 뺏겨요. 저는 친척 집에 보내지고, 집사님은 다른 곳에 일자리를 구해야 하고, 몽실이는 갈 곳이 없어져요." 숫자를 하나씩 세듯 말했다. 금화 삼천 냐. 남은 시간 열흘 남짓. 마카롱 여덟 개. 이 숫자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밤에 눈을 감아도, 눈을 뜨고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숫자가 줄어들 때마다 심장이 조여드는 감각이었다. "이게 유일한 방법이에요." 한지운은 오래 침묵했다. 창밖에서 새소리가 들렸다.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하지만 방 안의 공기는 무거웠다. 몽실이가 문 앞에서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긴장을 감지한 걸까. 평소 같으면 벌써 방 안으로 뛰어들어왔을 텐데, 오늘은 문턱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럼 조건을 걸겠습니다." "조건이요?" "하루에 마법을 쓰는 횟수를 제가 정하겠습니다." "…" "그 이상은 절대 안 됩니다. 제가 지켜보겠습니다." 타협처럼 들렸지만, 사실상 통제였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원하는 대로 다 할 수는 없다는 걸 알았다. 이 사람이 이렇게까지 나오는 이상,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의 눈에 담긴 건 명령이 아니라 애원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몇 번인데요." "오늘은 세 번입니다." "세 번밖에요?" 목소리가 살짝 커졌다. 세 번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제 스물세 번을 쓰고 쓰러지셨습니다." 반박할 말이 없었다. 스물세 번. 그 숫자가 얼마나 무모했는지, 지금 다시 들으니 새삼 실감이 났다. "세 번으로 뭘 할 수 있어요." "오늘은 시식만 하시죠. 만드는 건 이미 있는 걸로 충분합니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가 답답했다. 시간이 없는데, 속도를 늦춰야 한다니. 머릿속으로 계산이 빠르게 돌아갔다. 열흘. 그 안에 상가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고, 개선하고, 다시 만들고, 팔아야 한다. 세 번이라는 제한이 그 계산을 전부 어그러뜨릴 것 같았다. "알겠어요." 마지못해 대답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뭔데요." "오늘 상가에 가시는 건 허락하겠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마차로 이동하시고, 걷는 건 최소한으로 줄이십시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승리였다. 하지만 완전한 승리는 아니었다. 한지운이 방을 나가고,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손을 들여다보았다. 손끝은 여전히 저렸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펴 보았다. 움직임은 어제보다 훨씬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확실히 나아졌다. 몸이 회복하는 속도, 마력이 채워지는 속도. 둘 다 알아내야 할 것들이었다. 전생에서 배운 어떤 지식도 이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알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번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다음번에도 똑같이 무리하게 될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불편하게 느껴졌지만, 부정할 수도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세면대 앞에 섰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어제보다 조금 나아 보였다. 눈 밑의 그림자는 여전히 짙었지만, 입술 색은 돌아와 있었다. 옷을 갈아입는 동안에도 손끝의 저림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옷 매듭을 묶는 데만 평소보다 두 배는 오래 걸렸다. 방문을 열고 나가자 몽실이가 꼬리를 흔들며 다리에 몸을 비볐다. 그 부드러운 온기가 잠깐이나마 마음을 풀어주었다. 주방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오늘따라 길게 느껴졌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한지운이 계단 아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시선이 무슨 뜻인지는 분명했다. 혹시라도 넘어지면 바로 붙잡겠다는 태세였다. 주방에는 마카롱 상자가 놓여 있었다. 뚜껑을 열어 안을 확인했다. 여덟 개의 마카롱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색깔은 조금씩 달랐다. 연분홍, 연녹색, 그리고 아이보리. 며칠 밤을 새워가며 겨우 완성한 결과물이었다. 각각의 색과 맛의 조합을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이것들이 상가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상자 뚜껑을 다시 닫고 품에 안았다. 무겁지 않은데도 어깨에 무게가 느껴졌다. 창밖으로 마차가 준비되는 소리가 들렸다. 말발굽 소리, 마부의 낮은 인사, 바퀴가 자갈길에 닿는 소리. 그 소리들이 하나씩 겹쳐지며 오늘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왕도 상가. 오늘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이 여덟 개의 작은 디저트가 설가의 운명을 바꿀 첫 걸음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현관을 나서는데 아침 공기가 차가웠다. 숨을 들이쉬자 폐 속까지 서늘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그 서늘함이 오히려 정신을 또렷하게 만들어 주었다. 마차에 오르기 전, 한지운이 나를 붙잡았다. "아가씨." "네?" "약속을 어기시면… 다음번엔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 그의 눈빛이 진지했다. 평소의 침착함 아래로, 무언가 억누르고 있는 감정이 언뜻 비쳤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상자 안의 마카롱이 성공을 거둔다면, 나는 분명 그 약속을 어길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찾아올 것 같았다. 마차 문이 닫히고,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저택이 점점 멀어졌다. 한지운은 그 자리에 서서 마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 뒷모습이 창틀 너머로 작아지는 걸 지켜보며, 나는 상자를 조금 더 세게 끌어안았다. 세 번. 오늘 쓸 수 있는 마법은 딱 세 번뿐이었다. 그 세 번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마차가 흔들릴 때마다 머릿속으로 계산이 다시 시작되었다. 상가까지의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오늘의 여덟 개가 어떤 반응을 불러올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바퀴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왕도의 거리가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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