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용주는 내가 되찾는다

3화

다음 날 아침, 시험장으로 가는 길은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혈룡경 진입 시험을 앞둔 문파 아이들이 저마다 마지막 점검을 하느라 여기저기서 기합 소리가 터졌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손끝을 몇 번이나 쥐었다 폈다. 어제부터 감각이 둔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시험 전엔 늘 그랬으니까. 금서아가 나를 부른 건 아침 식사가 끝난 직후였다.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어요?" 그녀는 평소처럼 웃으며 물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거절해본 적이 없었다. 연무장 뒤편,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절벽 아래 공터로 그녀를 따라갔다. 발밑에서 마른 잎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바스락. 바스락. 절벽 아래는 늘 그렇듯 조용했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매번 이곳을 골랐다는 걸, 그때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도와주세요."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시험 전 마지막 조율이라고 했다. 벌써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었다. 처음엔 별거 아닌 부탁이었다. 기운을 나눠달라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손끝이 저리기 시작했고, 눈앞이 흔들리는 날이 늘었다. 나는 그걸 피로라고 생각했다. 시험이 코앞이니 다들 예민해지는 거라고. 오늘만 넘기면 된다고. 나는 별다른 의심 없이 손을 내밀었다. 이미 손끝이 저리고 시야가 흔들리는 상태였지만, 그날만 넘기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내 손목을 잡았다. 손은 차가웠다. 평소보다 더. 그리고 이번엔 뭔가 달랐다. 늘 있던 그 잔잔한 흐름이 아니었다. 마치 무언가가 통째로 뽑혀 나가는 감각이었다. "이게 무슨--" 나는 말을 채 끝내지 못했다. 가슴 한복판, 용주가 있던 자리에서 격렬한 통증이 치솟았다. 시야가 새하얗게 번쩍였다. 쿠웅. 무언가 뽑혀 나가는 소리가 몸속에서 울렸다.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손을 뻗어 가슴을 움켰지만,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비어 있었다. 방금까지 그 자리에 있던 온기가, 무게가, 존재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서아 님..." 나는 그녀를 올려다봤다. 목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손바닥 위에 작은 청록색 구슬을 들고 있었다. 내 용주였다. 그녀의 표정은 놀랍도록 차분했다. 방금 산책이라도 다녀온 사람 같았다. "고마워요. 정말 도움이 됐어요." 그녀가 말했다. 웃음이 걸려 있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봤던 그 완벽한 웃음이었다. 다만 이번엔 그 완벽함이 소름 끼치게 느껴졌다. 나는 그 웃음을 아주 좋아했었다. 안심이 된다고 생각했었다. 이제야 그게 왜 늘 조금씩 어긋나 보였는지 알 것 같았다. "돌려주십시오." 나는 겨우 목소리를 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구슬을 손안에서 굴리며 나를 내려다봤다. 구슬은 손가락 사이에서 옅은 빛을 냈다. 마치 원래부터 그녀의 것이었던 양 자연스럽게. "돌려달라니. 이건 이제 제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에서 처음으로 냉소가 묻어났다. "당신은 재능은 있었지만, 그릇이 작았어요. 저에게 다 내주고도 눈치를 못 채더군요. 어리석다고 해야 할지,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처음부터...였습니까." 나는 물었다. 대답이 필요한 질문은 아니었다. 그냥, 뭐라도 붙잡고 싶었을 뿐이다. "처음부터요."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당신처럼 의심 없는 사람은 찾기 힘들어요. 다들 한 번쯤은 물어보거든요. 왜 자기한테 도움을 청하냐고. 근데 당신은 안 물었어요. 그게 참 편했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로 그녀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런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걸음걸이는 조금도 서두르지 않았다. 마치 이 일이 그녀의 하루 중 아주 사소한 용무였다는 듯이. "걱정 마세요.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그냥 그렇게 살다 가세요." 그 말을 남기고 그녀는 절벽 위로 사라졌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졌다. 바닥의 흙냄새가 코끝에 닿았다. 눅눅하고 차가웠다. 하늘이 뿌옜다. 구름이 흘러가는 게 보였는데, 그것조차 흐릿했다. 몸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명령이 팔다리까지 전달되지 않았다. 의식이 흐릿해지는 가운데,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얼마 전이었나. 문 앞에서 짐을 챙기며 했던 말이었다. 누구도 함부로 믿지 말라. 그때는 그냥 흘려들었다. 어른들은 늘 그런 말을 했으니까. 그 말이 이제야 정확한 무게로 다가왔다. 너무 늦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정신이 반쯤 나간 채로 나는 산길을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발이 이끄는 대로 걸었다. 나뭇가지가 얼굴을 긁고 지나갔지만 아프지 않았다. 아픔을 느낄 자리가 이미 다른 곳에서 다 써버린 것 같았다. 몇 번이나 넘어졌다. 그때마다 다시 일어났다. 왜 일어나는지도 몰랐다. 그냥 몸이 그렇게 움직였다. 결국 다다른 곳은 청룡동 외곽의 버려진 동굴이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오래전에 무너진 낡은 수련장의 잔해였다. 입구를 반쯤 막고 있는 돌더미 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다. 안쪽은 어둡고 습했다. 오래된 곰팡내가 났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가슴속이 텅 비어 있었다.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숨을 들이켤 때마다 가슴 안쪽에서 이상한 공명이 울렸다. 아무것도 없는 자리가 소리를 낸다는 게 이상했다. "이대로 죽는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그 생각에 저항할 힘이 없었다. 몸도 마음도 텅 비어 있었으니까. 두렵지도 않았다. 두려움을 느낄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순간, 동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스으으. 낮고 긴 울림이 동굴 벽을 타고 흘렀다. 나는 겨우 고개를 돌렸다. 목뼈가 무겁게 삐걱였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형체가 서서히 떠올랐다. 인간의 형상이었지만, 인간이라 부르기엔 지나치게 거대하고 지나치게 오래된 기운을 두르고 있었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붉은 빛이 두 점, 천천히 깜빡였다. [살고 싶으냐.] 목소리가 아니었다. 머릿속에 직접 울리는 무언가였다. 나는 대답할 힘조차 없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분명히 대답했다. 살고 싶다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그 대답이, 이상하게도 그 순간엔 선명했다. [좋다.] 그 형체가 천천히 다가왔다. 발소리도 없이. [네 그릇은 텅 비었으나, 텅 빈 그릇은 무엇이든 담을 수 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겨우 물었다. 입술이 갈라져 피 맛이 났다. 대답은 없었다. 그저 붉은 두 점이 더 가까워졌을 뿐이다. 그 목소리를 끝으로, 나는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뜬 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는 시간 뒤였다. 동굴 안은 그대로였다. 아니, 뭔가 달랐다. 공기가 조금 더 무거워진 것 같았다. 몸은 여전히 텅 빈 채였다. 하지만 머릿속 어딘가에, 낯선 감각이 남아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기억 한 조각이 내 것인 양 자리를 잡은 느낌이었다. 나는 손을 들어 내 가슴을 만졌다.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텅 빈 자리에서,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심장이 아니었다. 심장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여전히 뛰고 있었다. 이건 그보다 더 안쪽, 더 깊은 자리에서 나는 낯선 박동이었다. 동굴 밖에서 새벽 안개가 들이치고 있었다. 나는 그 안개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무엇이 나를 살렸는지, 아니 무엇이 나를 살아 있게 하고 있는지,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어제까지의 나는, 이미 절벽 아래 그 공터에 두고 왔다. 지금 이 텅 빈 몸을 움직이고 있는 게 정말로 나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