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오늘도 매출은 시원찮았다.
서울 변두리 골목, 간판도 작은 카페 '온기'.
사장인 나, 강도윤의 하루 매출이 그렇다는 얘기다.
정확히 말하면 오늘 오전 매출은 아메리카노 두 잔, 라떼 한 잔.
이게 전부였다.
이 정도면 매출이 아니라 부고장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손님이 없는 시간엔 딴짓을 해도 아무도 뭐라 안 한다는 거였다.
카페 사장이라는 직업의 유일한 장점이 바로 이거다.
눈치 볼 상사가 없다는 것.
오늘의 딴짓은 외장하드 정리.
먼지 쌓인 하드디스크 안에는 옛날에 즐겼던 게임 '마녀 혹은'의 자료가 한가득이었다.
공략집, 팬아트, 엔딩 분기표까지.
심지어 폴더 이름을 '중요', '진짜중요', '진짜진짜중요'로 세 단계나 나눠놓은 걸 보고 나조차도 헛웃음이 나왔다.
'이 정도면 취미가 아니라 신앙이지.' 나는 스스로 인정했다.
전생에도 이 게임만 파다가 밤을 새운 적이 몇 번인지 셀 수 없었다.
시험 기간에도, 면접 전날에도, 심지어 헤어진 다음 날에도 이 게임을 켰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게임 속 세계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말이 되나 싶지만, 말이 안 되는 일들 중에서도 가장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가끔은 이게 꿈이 아닐까 생각도 해봤는데, 매출이 이렇게 시원찮은 걸 보면 꿈치고는 너무 현실적이라 오히려 확신이 든다.
"사장님, 원두 다 됐어요." 소하가 카운터 너머에서 말했다.
윤소하, 스무 살, 알바 경력 반년.
표정 변화가 적고, 목소리도 낮고 조용한 편이었다.
처음 면접 볼 때부터 이상하게 눈빛이 마음에 걸렸는데, 이유는 나중에 알았다.
"오케이, 잠깐만." 나는 하드디스크를 서랍에 밀어 넣었다.
'취미생활은 은밀하게.' 사장이 대낮부터 옛날 게임 파일 뒤적이는 거 들키면 그림이 좀 이상하니까.
안 그래도 요즘 애들은 '레트로 게임'이라고 하면 나보다 먼저 태어난 물건인 줄 안다.
소하는 별말 없이 원두 봉지를 뜯었다.
손끝이 야무졌다.
분쇄기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 익숙한 소음이 오늘따라 유독 크게 느껴졌다.
그 순간이었다.
창밖에서 뭔가 검은 것이 스치듯 떨어졌다.
깃털이었다.
까마귀 것처럼 새까만, 유난히 큰 깃털 하나.
바람도 없는데 그 깃털만 유독 느리게, 마치 연출된 것처럼 떨어졌다.
소하가 무심코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아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그 깃털을, 아무 생각 없이.
'어.'
나는 순간 숨을 멈췄다.
그 장면, 그 동작, 그 각도.
낯설지 않았다.
낯설지 않다 못해 너무 익숙했다.
'마녀 혹은' 1장, '잊혀진 마녀의 잔재' 편.
주인공이 검은 깃털을 무심코 받아내는 순간부터, 배드엔드로 향하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는 장면이었다.
게임에서는 컷신으로 처리되던 그 동작을, 지금 눈앞에서 실제로 봤다.
심지어 카메라 각도까지 똑같았다.
컷신에서는 왼쪽에서 45도로 페이드인 되던 그 구도가, 지금 내 눈앞에 실사로 재생되고 있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사장님?" 소하가 이상하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괜찮으세요, 얼굴이 하얘요."
"아, 어, 어어. 괜찮아. 잠 못 자서 그래." 나는 억지로 웃었다.
속으로는 전혀 안 괜찮았다.
'이거 진짜였구나.'
반년 전, 나는 이 세계가 그 게임 속이라는 걸 확신하고 조용히 손을 뗐다.
최강의 마녀 노릇도 그만두고, 평범한 카페 사장으로 은퇴 선언을 했다.
행운의 회귀자인 척, 아무 일도 없는 척.
솔직히 반년 동안은 그게 통했다.
시스템 메시지도 안 뜨고, 분기점도 안 열리고, 그냥 평범한 자영업자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매출이 시원찮은 것 빼고는 딱히 위협적인 일도 없었으니까.
'적당히 숨어 살면 그냥 이대로 조용히 끝나겠지.'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그 장면은 확인시켜줬다.
나는 회귀자가 아니었다.
나는 지금도 이 불안정한 세계 안에서, 선택 하나만 잘못되면 통째로 배드엔드로 빨려 들어가는 게임 속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배드엔드의 시작이, 방금 소하의 손끝에서 열렸다.
소하는 깃털을 신기하다는 듯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그냥 쓰레기통에 버렸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까마귀 깃털인가 봐요. 큰 게 다 떨어졌네." 그녀가 별 감흥 없이 중얼거렸다.
나는 그 말에 대답도 제대로 못 하고 그저 쓰레기통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마치 저 안에서 뭔가 다시 튀어나올 것처럼.
하지만 나는 알았다.
저 깃털이 떨어진 순간부터, 이미 시계는 돌기 시작했다는 걸.
[분기 발생: '제1장 - 잊혀진 마녀의 잔재' 조건 충족]
눈앞에 익숙한 문구가 반투명하게 떠올랐다.
예전엔 매일 보던 것이었는데, 반년 동안 안 보이니까 반갑기까지 하네.
반갑기는 개코나, 지금 이거 완전 재앙 예고문이잖아.
'그러니까 이제 와서 나타난다고?'
무슨 드라마도 마지막화 다 끝나고 재방송 예고 뜨는 것도 아니고.
나는 서랍 속 하드디스크를 다시 꺼내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지금 공략집 뒤진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싶으면서도, 손이 자꾸 서랍 쪽으로 갔다.
'참자, 참자. 소하 보는 데서 이상한 행동 하면 안 되지.'
대신 창밖을 봤다.
하늘은 멀쩡했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랬다.
너무 멀쩡해서 더 불길했다.
원래 이 장르가 그렇다.
조용할 때가 제일 무섭다.
시나리오 작가들이 꼭 이런 식으로 낚시를 친다.
평온한 오후, 잔잔한 배경음악, 그러다 갑자기 마을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는 전개.
내가 그 전개를 셀 수 없이 봐왔으면서도 지금 이 상황에 몸이 굳는 게 웃기지도 않았다.
소하는 여전히 태연하게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자기 손으로 무슨 문을 열었는지도 모르고.
포터필터를 탁탁 털어내는 그 손목 움직임이 평소랑 똑같아서,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미안하다, 소하야.' 나는 속으로 사과했다.
너를 여기서 일하게 한 것도 다 내 계산이었으니까.
감시하기 편한 위치에 놔두고,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알아차리려고.
그런데 정작 무슨 일이 생기는 걸 못 막았다.
이러니 진짜 옛날 애니에서 결말 뻔히 알면서도 못 막는 관찰자 캐릭터가 된 느낌이었다.
주인공 뒤에서 "안 돼, 거기 가지 마!" 소리치는데 정작 주인공은 못 듣는, 딱 그런 각도.
"저, 사장님." 소하가 다시 나를 불렀다.
"응?"
"오늘 좀 이상해요." 그녀가 말했다.
"뭐가?"
"손님이 이상하게 없어요. 원래 이 시간엔 좀 있는데."
나는 창밖을 다시 봤다.
골목길이 텅 비어 있었다.
사람 그림자 하나 없이.
원래 이 시간이면 옆 건물 세탁소 아저씨가 담배 피우러 나와 있어야 하고, 맞은편 편의점 알바생이 재고 정리하러 박스 나르는 게 보여야 하는데.
지금은 그 흔한 길고양이 한 마리도 안 보였다.
마치 무대 세트에서 배경 엑스트라를 전부 치워버린 것처럼, 골목 전체가 텅 빈 세트장 같았다.
등골이 다시 서늘해졌다.
나는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두 시 십칠 분.
평소라면 뉴스 알림이 두어 개는 와 있어야 할 시간인데, 화면엔 아무 알림도 없었다.
신호도 멀쩡히 잡히는데, 이상하게 조용했다.
'설마 벌써?'
나는 카운터 아래 손을 뻗어 서랍을 살짝 열었다.
하드디스크 옆에 숨겨둔 낡은 목걸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반년 전, 최강의 마녀 노릇을 그만두면서 봉인해뒀던 물건이었다.
'설마 이걸 다시 꺼내게 될 줄은 몰랐지.'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는 손끝이 떨렸다.
떨리는 건 무서워서가 아니라, 반년 만에 다시 느껴지는 이 익숙한 긴장감 때문이었다.
솔직히 조금은... 반가운 것도 같았다.
'아니, 그것보다.'
지금 이 상황을 즐길 처지가 아니다.
이건 확실히,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