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일단 앉아."
나는 두 사람에게 자리를 권했다.
영업 끝난 시간이라 손님은 없었다.
소하도 눈치껏 먼저 퇴근했다.
뒷방으로 사라지기 전에 나한테 눈짓을 하고 갔는데, 그 눈빛이 딱 '알아서 잘 처리하십쇼, 사장님' 이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조용히 고맙다고 속으로 말했다.
'너 없었으면 이 상황 어떻게 열었을지 감도 안 온다.'
한수아와 이면주가 마주 앉았다.
둘 다 표정이 복잡했다.
한수아는 팔짱을 낀 채로 다리를 떨고 있었고, 이면주는 무표정한데 손끝만 미세하게 테이블을 두드리고 있었다.
'저것도 나름 초조하다는 신호겠지.'
"반년 동안 연락 한 번을 안 했어."
한수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나 진짜..."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주먹을 꽉 쥐고 있는 게 보였다.
"미안해."
나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변명할 말이 사실 없긴 해.'
연락을 끊은 이유는 단순했다.
은퇴한다고 선언했으면서 옛 동료들과 계속 얽히면, 다시 그 세계로 끌려 들어갈 것 같았다.
최강의 마녀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평범한 삶은 끝이니까.
카페 사장으로 조용히 늙어가는 것, 그게 내 은퇴 후 목표였는데.
하지만 결국 이렇게, 반년 만에 다시 시작해버렸다.
'인생 계획이란 게 다 이런 식이지.'
"괜찮아졌어?"
이면주가 뜬금없이 물었다.
"뭐가?"
나는 되물었다.
"눈이랑, 그거."
그녀가 자기 왼쪽 눈을 가리켰다.
"아, 이거야 뭐, 원래 안 돌아오는 거니까."
나는 가볍게 웃으며 넘겼다.
이면주는 표정을 안 바꿨지만, 손끝이 살짝 떨리는 게 보였다.
'냉정한 척은 여전하네.'
하지만 저 사람이 나 걱정해서 서울 시내 카메라를 죄다 뒤졌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CCTV 접속 권한만 몇 개를 해킹했는지 모른다.
'무서운 여자야, 진짜.'
"어제 그거, 다시 시작할 거야?"
한수아가 물었다.
직접적인 질문이었다.
나는 잠시 침묵했다.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벌었다.
이런 질문엔 대충 답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최소한만."
나는 신중하게 답했다.
"소하랑 주희, 두 사람만 배드엔드에서 건져낼 만큼만."
"배드엔드?"
이면주가 눈썹을 살짝 들었다.
'아, 이 설명을 또 처음부터 해야 하나.'
나는 한숨을 쉬고 게임 얘기부터 다시 시작했다.
이 세계가 원래는 내가 즐겼던 게임이라는 것.
선택 하나마다 배드엔드로 갈리는 구조라는 것.
소하가 그 게임의 주인공이고, 주희가 라이벌 히로인이라는 것.
설명하는 동안 두 사람 다 표정 하나 안 바꾸고 듣기만 했다.
가끔 이면주가 미간을 좁히는 정도가 반응의 전부였다.
'하긴, 나였어도 이런 소리 들으면 저 표정이겠지.'
한 시간 가까이 떠들었나.
목이 다 말라서 물을 두 잔이나 마셨다.
다 듣고 나서 한수아가 먼저 반응했다.
"그러니까, 당신은 이 세계가 다 정해진 대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거야?"
그녀가 물었다.
"어느 정도는."
나는 인정했다.
"근데 그걸 알면서 왜 은퇴를 해? 그럼 계속 지켜야지."
한수아가 목소리를 높였다.
테이블을 짚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몸이 안 남으니까."
나는 짧게 답했다.
"이거 쓰면 뭔가 하나씩 없어져. 다음엔 뭐가 없어질지 나도 몰라."
나는 왼쪽 눈을 가리켰다.
"눈 다음엔 팔일지, 목소리일지, 아니면 아예 기억일지. 그건 그때 가서 알아."
가볍게 말했지만 사실 별로 안 가벼운 얘기였다.
방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한수아도 뭔가 말하려다 멈췄다.
이면주가 낮게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가 도우면 되잖아."
그녀가 말했다.
"당신 혼자 다 지불하지 말고."
"..."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이거 원, 예상 못한 전개인데.'
솔직히 각오했던 반응은 두 가지였다.
'미쳤냐, 그만둬' 아니면 '알겠으니 우리도 끼워달라'.
근데 이건 그 두 개를 합쳐놓은 것 같은, 좀 더 무거운 쪽이었다.
한수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우리가 놀았을 것 같아? 시내 감시카메라 접속 권한, 좌표 추적, 마력 파형 분석. 다 실전용으로 다듬었어."
그녀가 말했다.
"당신 하나 찾는 데 반년 걸렸는데, 이제는 놓칠 생각 없어."
뭔가 든든하면서도 무서운 말이었다.
'스토커 기술이 그대로 전력이 되는 이 상황, 참 아이러니하네.'
"반년 동안 그거만 판 거야?"
내가 물었다.
"밥 먹고, 일하고, 남는 시간엔 그거."
한수아가 태연하게 답했다.
이면주도 옆에서 고개를 까딱였다.
'두 사람 다 취미 생활이 이상한 방향으로 가버렸구나.'
나는 결국 웃음이 터졌다.
허탈한 웃음이었는데, 그 안에 고마움도 반쯤 섞여 있었다.
"그래, 알겠어. 같이 하자."
나는 손을 내밀었다.
한수아가 그 손을 툭 쳤다.
잡는 게 아니라 그냥 툭.
'이 사람 스킨십 방식이 원래 이래.'
"먼저 카페 알바 등록부터 해. 신분 세탁 겸."
그녀가 말했다.
"뭐?"
내가 되묻자 이면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감시 겸 은신처. 완벽하잖아."
그녀가 말했다.
"어차피 여기 자주 드나들어야 하는데, 손님으로 앉아 있으면 눈에 띄어. 알바면 자연스럽지."
한수아가 덧붙였다.
논리는 완벽했다.
너무 완벽해서 반박할 말이 없었다.
'이거 실화냐, 카페 알바로 위장 전투원 확보라니.'
"그럼 시급은?"
내가 슬쩍 물었다.
"최저시급."
한수아가 딱 잘랐다.
"세계 구하는데 최저시급이라니, 너무한 거 아니야?"
"불만 있으면 관둬."
'아, 못 관둬요, 죄송합니다.'
이렇게 카페 '온기'는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작은 동네 카페였지만, 이면으로는 세계를 관측하고 개입하는 작은 본부가 되어버렸다.
간판은 그대로, 메뉴판도 그대로.
달라진 건 뒷방에 몰래 깔린 노트북 세 대와, 창가 자리에서 커피 마시는 척하며 좌표를 확인하는 이면주뿐이었다.
'이게 무슨 첩보 영화도 아니고.'
*
다음 날, 카페 문이 열리며 낯선 얼굴이 들어왔다.
짧은 머리에 눈빛이 강한 여자애였다.
키는 소하보다 조금 작았는데, 걸음걸이에서부터 딱 봐도 훈련받은 티가 났다.
일반인이라면 절대 저런 자세로 안 걷는다.
"여기 알바 구한다고 해서 왔는데요."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눈빛만큼은 이쪽을 훑어보는 게 느껴졌다.
'경계하는 눈이네.'
순간 나는 굳었다.
백주희였다.
게임 속 라이벌 히로인, 소하와 같은 연구실에서 태어난 프로토타입 인공 마녀.
원작 스틸컷에서 봤던 그 얼굴이 그대로, 살아서 내 눈앞에 서 있었다.
'실물이 훨씬 낫네, 이건 좀 반칙인데.'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원작대로라면, 그녀는 곧 국가 지정 던전 원정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원정 일정은, 하필이면 게임 속 최악의 배드엔드 분기와 정확히 겹쳐 있었다.
'하필 지금, 이 타이밍에.'
머릿속으로 캘린더가 빠르게 넘어갔다.
원정 D-데이가 며칠 남았는지, 그 사이에 뭘 준비해야 하는지.
한수아와 이면주도 뒷방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텐데, 지금 문 열고 나와서 정체 밝히면 그것도 그림이 이상해진다.
'일단은 알바 면접부터 처리하고.'
나는 애써 웃으며 면접용 종이를 내밀었다.
"어서 와, 자리 앉아. 몇 가지만 물어볼게."
목소리는 태연하게 나갔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겉으로는.
하지만 속으로는 이미 새로운 경보음이 울리고 있었다.
'배드엔드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