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예상은 어긋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휴대폰을 켜는 거였다.
습관이란 게 참 무섭다.
반년 전까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실시간 검색어를 확인했었는데, 은퇴하고 나서는 그 버릇도 같이 은퇴한 줄 알았다.
그런데 손가락이 저절로 화면을 켜고 있었다.
실시간 검색어 3위.
'얼굴 없는 마녀'.
'...아직 안 죽었네, 이 별명.'
반년 전 은퇴하면서 지웠다고 생각했던 이름이, 하룻밤 사이에 무덤에서 기어 나왔다.
관련 게시글은 벌써 수백 개였다.
제목만 훑어봐도 각 잡고 쓴 게 티가 났다.
[속보] 종로 뒷골목에서 목격된 정체불명의 마녀
[루머] 그 전설의 '얼굴 없는 마녀'가 돌아왔다?
[짤] 세 개의 눈 괴물 순삭당하는 영상 (원본)
'와, 원본이라는 표현까지 붙었네.'
원본이라니.
무슨 명작 영화 재개봉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커피 머신에 물을 붓다가 잠깐 멈춰서 화면을 다시 넘겼다.
조회수가 이미 백만을 넘어가고 있었다.
'반년 쉬었다고 세상이 나 잊었을 줄 알았는데.'
역시 사람은 안 변하고, 인터넷도 안 변한다.
댓글 창은 게시글보다 더 심했다.
반년 만에 복귀라니, 은퇴 번복 콘서트 같은 거 하나.
목소리 톤 완전 그때 그 마녀 맞음. 나 그때 팬이었는데 진짜 반가움.
국가마법관리원은 왜 이걸 방치하냐, 민간인 지역에서 저런 힘을 쓰는데.
'마지막 댓글이 좀 아프네.'
관리원 얘기가 나온다는 건, 이게 단순 화제성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냥 인터넷 밈으로 흘러가면 다행인데, 저런 댓글이 하나씩 붙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관리원 산하 감시부서가 움직인다는 소리고, 감시부서가 움직인다는 건 결국 사람을 보낸다는 소리였다.
'설마 벌써?'
나는 애써 그 생각을 커피포트에 물 따르는 소리에 묻어버리기로 했다.
물이 끓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소하는 아무것도 모른 채 평소처럼 밝은 얼굴로 출근했다.
"사장님, 좋은 아침이요!" 그녀가 문을 열며 인사했다.
"어, 좋은 아침." 나는 최선을 다해 평범한 카페 사장 톤으로 받았다.
그런데 소하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사장님, 이거 보셨어요?" 그녀가 화면을 들이밀었다.
하필 그 영상이었다.
세 개의 눈 괴물이 폭죽 터지듯 터져나가는 그 영상.
화질도 좋았다.
누가 이렇게 화질 좋은 폰으로 찍었는지, 신고를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 봤지. 신기하더라." 나는 최선을 다해 남 얘기하듯 말했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린 것 같았는데, 소하는 눈치채지 못한 눈치였다.
"그 마녀, 진짜 있는 거예요?" 소하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있지. 여기, 네 눈앞에, 커피 내리고 있는 사람이 그 마녀거든.'
"글쎄, 세상에 별의별 사람이 다 있으니까." 나는 얼버무렸다.
'세상에 별의별 사람 아니고 나거든.'
속으로는 완전히 다른 대답을 하고 있었다.
소하가 아쉽다는 듯 입을 삐죽였다.
"저는 마녀 팬이었는데. 그때 그 목소리, 진짜 멋있었거든요."
"...그래?" 나는 살짝 당황해서 반문했다.
"네! 뭔가 츤데레 같은 느낌이었어요. 세상 다 구해주고 정작 자기는 은퇴해버리고."
'너 지금 그거 나 앞에서 얘기하는 거 알아?'
속으로 진땀을 흘리며, 나는 그냥 웃어넘겼다.
이 순간이 얼마나 아슬아슬한지 소하는 모르는 게 다행이었다.
그날 낮, 손님이 뜸한 시간이었다.
카페 창밖으로 오후 볕이 나른하게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원두를 정리하며 잠깐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그 괴물, 몇 년 만에 잡은 거지?'
반년 만에 손이 근질거렸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이었다.
그 생각을 하던 참에 카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었다가 나는 커피포트를 놓쳤다.
쨍그랑!
다행히 안에는 물만 있어서 큰 사고는 안 났다.
바닥에 물이 흥건히 퍼졌고, 나는 그걸 닦을 생각도 못 한 채 문 앞에 선 두 사람을 바라봤다.
한수아.
예전 동료, 서울 시내 모든 감시카메라에 접근 권한을 가진 인물.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반년 동안 나를 찾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잔 얼굴이었다.
머리도 예전보다 조금 길어져 있었는데, 그마저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사람처럼 아무렇게나 묶어놓은 상태였다.
그 옆엔 이면주.
마찬가지로 예전 동료, 표정은 늘 그렇듯 얼음장 같았다.
옷차림은 늘 그렇듯 깔끔했고, 흐트러진 곳 하나 없었다.
하지만 저 얼음장 밑에 뭐가 있는지는, 나만 알고 있었다.
"...어." 나는 그 한 마디밖에 못 했다.
목소리가 완전히 갈라져 나왔다.
"도윤 씨." 한수아가 낮게 불렀다.
목소리에 원망과 반가움이 반씩 섞여 있었다.
"오랜만이야, 진짜."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바닥에 흥건한 물을 힐끗 내려다봤다.
'하필 이 타이밍에.'
다른 날도 많았을 텐데, 굳이 소문 터진 다음 날 찾아온다.
타이밍 하나는 예술이었다.
내가 저 두 사람이랑 연락을 끊고 산 게 반년인데, 하필 세 개의 눈 괴물 잡은 다음날 짚신도 짝이 있다고 이렇게 딱 맞춰서 나타나나.
소하가 눈치 없이 물었다.
"사장님, 아는 분들이세요?"
그녀는 아까 흘린 물을 대신 걸레로 닦으면서 나와 손님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응, 뭐... 옛날 직장 동료." 나는 최대한 무난하게 대답했다.
한수아의 눈이 순간 매섭게 좁아졌다.
"직장 동료라고요." 그녀가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시선이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훑고 지나가는데, 마치 X-레이라도 되는 기분이었다.
어제 그 영상 속 인물의 마력 파형이랑, 당신 반년 전 은퇴할 때 파형이 완전히 일치한다는 얘기를, 지금 이 자리에서 할까요.
말은 안 했지만 표정이 다 말하고 있었다.
이면주가 조용히 카운터 위 태블릿을 꺼내 화면을 켰다.
손끝 하나 흐트러짐 없는 동작이었다.
어제 골목 CCTV 영상이 그대로 재생되고 있었다.
화면 속 나는 등을 돌린 채 손끝에서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고, 목소리는 살짝 변조되어 있었지만 그 미묘한 억양까지 감출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확인은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이면주가 담담하게 말했다.
'아... 이제 진짜 걸렸구나.'
나는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그냥 눈 감고 지나갔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 괴물이 애들 노는 놀이터 쪽으로 가고 있었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소하는 세 사람 사이 흐르는 기묘한 긴장을 눈치채고 조심스레 뒷방으로 자리를 피했다.
문을 닫기 직전, 그녀가 살짝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돌아본 것 같았다.
그 배려가 눈물 나게 고마웠다.
다만 그렇다고 이 상황이 풀리는 건 아니었다.
카페 안엔 이제 나와 두 사람뿐이었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웅- 하고 예열되는 소리만 어색하게 공간을 채웠다.
"자, 그러니까..." 나는 말을 고르며 시간을 벌었다.
머릿속에서 온갖 변명이 후보로 떠올랐다가 하나씩 탈락했다.
닮은 사람이다, 라고 하기엔 목소리가 너무 똑같았다.
가족이다, 라고 하기엔 나는 외동이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는 게 제일 빠르겠지.'
그런데 입이 안 떨어졌다.
한수아가 팔짱을 끼고 나를 노려봤다.
그 눈빛에 반년치 원망이 다 담겨 있는 것 같았다.
"할 말 있으면 지금 다 해." 그녀가 말했다.
"안 그러면 여기서 다 뒤집어놓을 거니까."
뒤집어놓는다는 게 카페를 말하는 건지, 내 삶을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면주는 여전히 태블릿을 손에 든 채 조용히 서 있었는데,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말없이 서 있는 저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서울 시내 모든 카메라를 뒤져서 내 반년치 행적을 하루 만에 복원할 수 있다는 걸,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안 좋은 예감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