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안개는 순식간에 골목 절반을 뒤덮었다.
색은 새까맸고, 냄새는 젖은 종이 태운 것 같았다.
거기다 살짝 비릿한 냄새까지 섞여 있었다.
'이거 뭐 조합하면 딱 오래된 만화방 냄새인데.'
이런 상황에서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역시 사람은 안 변한다.
"사장님, 이거 뭐예요?" 소하가 뒷걸음질치며 물었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당연했다. 방금까지 커피 내리는 냄새가 나던 골목에 갑자기 저승사자 마중 나온 듯한 안개가 깔렸으니.
"몰라도 돼." 나는 짧게 답했다.
'알면 더 무서울 걸.'
정확히는, 알면 소하 얼굴이 하얗게 질릴 정도의 정보였다.
이 세계관에서 이 안개가 뭘 의미하는지,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안개 속에서 형체가 걸어 나왔다.
사람 크기지만 사람은 아니었다.
팔다리가 이상하게 꺾여 있고, 얼굴 자리에는 눈만 세 개 박혀 있었다.
걸음걸이가 마치 관절 반대로 접힌 인형 같았다.
게임에서 '잔재체'라고 불리던 몬스터였다.
이 시점에 등장하는 것치고는 스탯이 지나치게 높았다.
원작이라면 주인공이 동료 셋을 대동하고도 겨우 상대하는 놈이었다.
체력 게이지 하나 깎는데도 포션을 몇 병씩 들이켜야 했던, 그런 놈.
지금 이 자리엔 나 혼자였다.
소하까지 지켜야 하니 사실상 핸디캡 두 개.
거기다 정체까지 숨겨야 하니 핸디캡 세 개.
이쯤이면 그냥 난이도 지옥 모드 아닌가.
"소하야, 안으로 들어가." 나는 낮게 말했다.
"사, 사장님도 같이!" 소하가 팔을 붙잡았다.
손톱이 파고들 정도로 세게 잡고 있었다.
"금방 갈게." 나는 웃으며 그 팔을 떼어냈다.
웃고 있었지만 속은 하나도 안 웃겼다.
'뭐, 어차피 이럴 거 알고 카드 꺼냈지.'
나는 손끝으로 왼쪽 눈가를 슬쩍 짚었다.
의안 안쪽, 봉인해 둔 마법진이 반응하며 뜨거워졌다.
살갗 밑에서 뭔가가 지글지글 끓는 느낌이었다.
이 감각도 여러 번 느껴봤지만 여전히 유쾌하진 않았다.
[가면의 계약 - 일부 해제]
[경고: 페널티 누적 예상. 계속하시겠습니까?]
"당연히 계속해야지, 안 그럼 여기 데코레이션인가." 나는 혼자 대답하며 진행했다.
경고창이라는 게 참 웃긴다.
이미 안개 걷어내고 잔재체까지 등장한 마당에 이제 와서 '계속하시겠습니까'라니.
취소 버튼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이건 그냥 형식적인 절차였다.
순간 몸을 감싸는 감각이 바뀌었다.
목소리, 자세, 존재감 전부가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뼈마디 하나하나가 다시 배열되는 것 같은 느낌.
후드가 얼굴을 덮었고, 눈부터 아래까지 완전히 가려졌다.
소하가 눈을 크게 떴다.
"사장님이... 없어졌어요?"
정확히는 여기 있는데, 사장님이 아니게 된 거였다.
강도윤이라는 껍데기는 그대로 서 있는데, 안에 들어앉은 게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 셈.
비유하자면 카페 알바가 갑자기 프로게이머로 바뀌는 느낌이랄까.
물론 이쪽은 그보다 훨씬 흉악한 전환이었다.
"물러서 있어." 목소리가 낮고 낯선 여자 목소리로 바뀌어 나왔다.
'이거 몇 번을 들어도 적응 안 되네.'
내 원래 목소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남의 목소리도 아닌.
애매하게 낯익은데 애매하게 낯선, 그런 목소리였다.
옛날 게임 더빙 다시 듣는 기분이랑 비슷했다.
잔재체가 세 개의 눈을 번뜩이며 달려들었다.
콰자자작!
놈의 팔이 지면을 찍었다.
아스팔트가 종이처럼 갈라졌다.
파편이 튀어 소하의 발밑까지 날아들었다.
'저거 한 방 맞으면 소하까지 통구이 되는데.'
계산이 그 순간 자동으로 돌아갔다.
거리, 각도, 잔재체의 다음 동작 예측치까지.
몸에 새겨진 전투 감각이라는 게 이런 식으로 튀어나오는구나 싶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었다.
검은 마력이 손끝에서 채찍처럼 뻗어 나갔다.
촤아악!
놈의 팔이 그대로 잘려나갔다.
절단면에서 검은 액체가 튀어 아스팔트를 적셨다.
"끄어어어어!" 괴물이 비명을 질렀다.
비명 소리가 마치 오래된 스피커에서 나오는 잡음 같았다.
이 정도 위력이면 원작 게임 3장 보스 클래스였다.
1장 잔챙이한테 쓰기엔 확실히 과했다.
체감으로 치면 초등학교 산수 문제 풀라고 미분방정식을 던진 셈.
'뭐, 어쩔 수 없지, 산탄총으로 파리 잡는 것도 재미는 있으니까.'
놈이 남은 팔로 다시 덤벼들었다.
속도가 아까보다 확연히 빨라져 있었다.
원래 저런 놈들은 팔 하나 잘려나가면 더 흥분하는 습성이 있었다.
버그인지 설계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옆으로 미끄러지듯 피하며 손바닥을 펼쳤다.
[스킬: 잔영 결계 - 시전]
허공에 검은 문양이 그려졌다.
문양은 마치 오래된 부적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놈이 그 안으로 뛰어드는 순간, 문양이 폭발했다.
퍼어어엉!
골목 전체가 흔들렸다.
가로등이 흔들리다 못해 한쪽 유리가 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먼지가 걷히고 나니, 잔재체는 흔적도 없었다.
바닥에 남은 건 그림자 같은 얼룩 하나뿐이었다.
소하가 입을 벌린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숨소리조차 못 내고 있었다.
주변 상가 창문마다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편의점 알바생, 세탁소 아저씨, 심지어 저 위층 원룸에 산다는 대학생까지.
동네 사람들이 이렇게 한 번에 창밖을 내다본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일 거였다.
몇몇은 휴대폰을 든 채였다.
카메라 셔터음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아... 저거 다 찍혔겠구나.'
나는 순간 아득해졌다.
머릿속으로 이미 다음 장면이 그려졌다.
'미친 안개 속 여자, 골목에서 팔 자르다', 이런 제목의 게시글이 벌써 떠오르는 것 같았다.
골목 하나를 정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십 초.
원작이었다면 삼십 분짜리 보스전이었을 텐데.
그것도 파티원 전체가 포션 다 쓰고 나서야 겨우 잡는, 그런 급의 전투였는데.
너무 완벽하게, 너무 빠르게 이겼다.
이게 문제였다.
최소한만 움직이겠다는 결심은, 결과가 이렇게 화려하면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조용히 살자는 목표와 방금 벌어진 상황 사이의 거리가,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쯤이었다.
안개가 걷히자 후드도 자연스럽게 풀렸다.
다시 카페 사장, 강도윤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몸이 다시 뒤바뀌는 느낌은 늘 좀 어지러웠다.
마치 롤러코스터에서 내린 직후처럼.
소하가 나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사장님... 아까 그 사람 어디 갔어요?" 소하가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사람? 못 봤는데."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대답했다.
연기력만큼은 자부심이 있었다.
'전직 최강 마녀인데 이 정도 연기는 해야지.'
정확히는 최강 마녀라기보단, 최강 마녀 취급받다가 도망친 몸이지만.
그런 세세한 디테일까지 소하한테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근데 사장님, 방금 그 목소리..." 소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목소리? 내 목소리가 왜?"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반문했다.
"아니, 여자 목소리가 들렸는데..."
"환청이야. 요즘 카페인 과다 섭취했나 봐." 나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소하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 녀석, 눈치가 생각보다 빠른데.'
이건 나중에 더 조심해야 할 부분이었다.
하지만 골목 저편, 상가 창문마다 카메라 렌즈가 반짝이고 있었다.
다들 저마다 뭔가를 찍고 있었다.
몇몇은 벌써 손가락을 움직여 뭔가를 올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알림: SNS 게시글 급증 감지]
메시지는 아직 뜨지 않았지만, 굳이 시스템이 안 알려줘도 예감이 왔다.
오늘밤 인터넷은 아주 시끄러울 거였다.
나는 골목 끝, 아직 걷히지 않은 안개 한 줄기를 바라봤다.
그 안개 너머 어딘가에서, 뭔가 더 큰 것이 이쪽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그냥 기분 탓이겠지.'
그렇게 믿고 싶었지만,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이 서늘한 느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