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심문실 안은 램프 하나만 밝혀져 있었고, 그 불빛이 벽에 걸린 오래된 태피스트리 위로 흔들리는 그림자를 드리우며 방 전체에 무거운 정적을 채워 넣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이미 밤이 깊었는지 정원수의 그림자가 유리창에 어른거렸고, 그 흔들림이 마치 방 안의 침묵을 대신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강준서는 팔짱을 낀 채 창가에 서 있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천천히 몸을 돌렸는데, 그 동작이 어찌나 느리고 정확한지 마치 미리 정해진 각도만큼만 움직이도록 훈련된 기계 같았다. 그의 구두 소리조차 절제된 박자로만 바닥을 두드렸고, 그 소리가 멈추는 순간 방 안의 시선은 자연스레 문 쪽으로 향했다.
끌려오듯 들어온 하녀 미나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고개를 떨어뜨린 채 서 있었고, 어깨가 잘게 떨리는 것이 램프 불빛 아래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녀의 치맛자락 끝이 문지방을 넘어서면서도 자꾸만 뒤로 끌리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것은 그녀의 발이 저절로 뒤로 물러나려 하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는 탓이었다.
"보름 전 밤, 서관 응접실에 누가 있었는지 다시 말해보아라." 강준서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그 안에 서린 냉기가 방 안 공기를 한층 서늘하게 만들었다. 미나는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가 겨우 소리를 냈다. "저는... 그저 지나가는 길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본 게 없어요." "거짓을 고할 셈이냐." 그가 한 발짝 다가서자 미나의 무릎이 눈에 띄게 꺾였고, 결국 바닥에 주저앉듯 몸을 낮추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정말입니다, 저는 그저... 그 방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서 문을 열었을 뿐이에요. 그런데 벽에 이상한 문양이 타들어가 있었고, 유리창이 깨져 있었어요. 그리고... 그리고 문 밖으로 누가 뛰어나가는 걸 봤습니다."
강준서는 그녀 앞에 한 발짝 더 다가서며 무릎을 살짝 굽혀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 행동은 배려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상대를 더욱 옥죄기 위한 자세였다. "그 냄새는 어떤 것이었나. 향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그의 질문이 세밀해질수록 미나의 호흡은 짧아졌고, 그녀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손톱으로 손바닥을 파고들며 대답을 짜냈다. "타는 냄새였습니다... 종이가 타는 냄새와 비슷했지만, 좀 더... 매웠어요. 눈이 시릴 정도로."
강준서의 눈썹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누구였나."
미나는 한동안 대답을 미루었는데, 그 침묵이 방 안을 가득 메우며 램프 불꽃마저 잠시 숨을 죽이는 듯했다. 벽에 걸린 태피스트리의 그림자가 그녀의 등 뒤에서 스멀스멀 커지는 것처럼 보였고, 그 어둠 속에서 그녀의 숨소리만이 유일하게 살아있는 증거처럼 들렸다. 이윽고 그녀가 고개를 들어 강준서를 바라보았을 때, 그 눈동자에는 두려움과 함께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체념이 섞여 있었다. "백작님의... 혼외자라고 들었습니다. 서하린이라는 이름이었어요. 그날 저녁 가사 일로 잠시 저택에 들어왔었는데, 사건이 있던 그 시간에 서관 쪽으로 걸어가는 걸 본 사람이 여럿입니다."
그 이름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강준서의 손끝이 미세하게 굳었다. 팔짱을 낀 채로 서 있던 그의 손가락이 옷소매를 움켜쥐듯 힘이 들어갔으나, 얼굴에는 그 어떤 동요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오랫동안 그런 식으로 감정을 얼굴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법을 익혀온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 훈련이 몸에 배어 나온 듯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지만, 목덜미 언저리로 서늘한 것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서하린. 그 이름을 곱씹는 그의 속에서는 다른 얼굴이 겹쳐 떠올랐다. 오래전, 이 저택의 복도를 걷던 한 여인의 뒷모습이었다. 발소리조차 조심스러웠던, 그러나 그 조심스러움 뒤에 감춘 것이 무엇인지 끝내 알아내지 못했던 여인. 윤서영. 그 이름을 삼키며 그는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 여자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딸이라니.*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의 관자놀이 근처 힘줄이 살짝 도드라졌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그는 그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짧게 문지르는 척으로 감추었다.
"그 아이가 서관에 들어간 것을 직접 본 사람이 있느냐." 그가 물었을 때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으나, 그 안에 실려 있는 무게는 조금 전과 달랐다. 미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이의 이름을 몇 개 흘렸다. "정원사 박씨도 보았다고 했고, 세탁실의 순덕이도... 그날 서하린 님이 평소와 다르게 서둘러 걸어가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고 했습니다." 강준서는 그것을 낱낱이 받아 적으며 겉으로는 냉정한 조사관의 얼굴을 유지했지만, 펜을 쥔 손끝에 힘이 조금씩 더해지는 것을 그 자신도 느끼고 있었다.
"그 문양이라는 것을 정확히 묘사해보아라. 어떤 모양이었나."
미나는 눈을 감고 그날의 기억을 더듬는 듯하더니, 손으로 허공에 무언가를 그려 보였다. "원 안에 여러 개의 선이 교차하는 모양이었습니다. 마치... 마법진 같았어요. 저는 그런 것을 본 적이 없어서 무서워서 바로 문을 닫았습니다." 강준서는 그 설명을 듣는 순간 눈을 가늘게 떴다. 흔한 방화의 흔적이 아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시도했다는 뜻이었고, 그 배후로 지목된 이름이 하필이면 서하린이라는 사실이 그의 머릿속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다른 말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여자의 딸이란 말이지.*
짧은 문장이었으나 그 안에는 오래 삭혀둔 감정의 응어리가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그는 그 감정을 다시 마음의 서랍 깊은 곳으로 밀어 넣으며, 미나에게 물러가라 손짓했다. 하녀는 안도한 듯 몸을 일으켜 문을 향해 걸어갔는데, 그 뒷모습이 마치 위험을 벗어난 작은 짐승처럼 서둘러 사라지는 것을 강준서는 무심히 지켜보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고, 그 소리의 여운이 사라진 뒤에도 그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혼자 남은 그는 창가로 다시 걸어가 유리창 너머 어둠에 잠긴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저택 안에서는 이미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서관 사건의 배후가 백작의 혼외자라는 말이 하녀들 사이에서 낮은 속삭임으로 오가고 있었고, 그 속삭임에는 경멸과 호기심이 뒤섞인 기묘한 흥분이 실려 있었다. 혼외자, 라는 단어가 입에서 입으로 옮겨질 때마다 그 무게는 조금씩 더 가벼워지고, 대신 조롱의 색이 짙어지는 법이었다. 그는 그 소문이 어디까지 퍼져나갈지, 그리고 그것이 백작의 귀에 어떤 형태로 도달할지를 가늠해보았다.
강준서는 손끝으로 서류를 정리하며 백작에게 올릴 보고서의 첫 문장을 머릿속으로 가늠해보았다. 사실만을 적어야 한다. 감정을 섞을 수는 없다. 하녀의 증언, 목격자의 명단, 벽에 남은 문양의 형태와 그 의미까지도. 그러나 서하린이라는 이름을 종이 위에 옮겨 적는 그 순간, 그의 손이 잠시 멈추었다.
펜 끝에서 잉크 한 방울이 종이 위로 떨어져 작은 얼룩을 남겼다. 그는 그 얼룩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손수건을 꺼내 조심스럽게 눌러 닦았다. 하지만 얼룩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고 옅은 자국으로 남았고, 그것이 마치 지금 그의 마음속에 남은 어떤 흔적처럼 보였다.
창밖에서 바람이 불어와 유리창을 가볍게 흔들었고, 그 소리가 마치 오래전 잊었던 발소리처럼 그의 등줄기를 타고 스며들었다. 그는 눈을 감고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는데, 그 침묵이 얼마나 길었는지는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그는 문득 이 조사가 끝나는 곳이 어디일지, 그 끝에서 마주해야 할 얼굴이 누구의 것일지를 예감하며 미간을 좁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