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문을 두드린 사람은 최은주라는 여자였다. 박선희가 그렇게 불렀다. 나이는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드워프치고는 수염이 짧고 손질이 잘 되어 있어서 어딘가 사무직 느낌이 났다. 실제로도 사무직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아직 목도 제대로 못 가리는 몸이라 눈알만 굴려 문 쪽을 살폈다. 이런 몸으로 정찰이라니, 스스로도 우습긴 했지만 안 할 수는 없었다.
"장부 확인하러 왔어요. 이번 달 신전 회계 말이에요."
최은주는 가죽 서류철을 들고 있었다. 서류철 귀퉁이가 닳아 있는 걸 보니 하루 이틀 쓴 물건이 아니었다. 마을 신전 쪽에서 파견 나온 회계 담당이라고 했다. 김철웅과 박선희가 매달 정리하는 장부를 그녀가 받아 신전 본부로 넘긴다는 구조였다.
이 세계에도 회계 담당이 따로 있고, 그 사람이 정기적으로 방문한다는 게 흥미로웠다. 마법과 제물이 일상인 세계에서도 결국 서류 작업은 돌아간다는 사실이 웃겼다. 어디를 가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싶었다.
신이든 정령이든 갈취 구조가 있는 곳엔 반드시 그걸 정리하는 사람이 붙는다. 착취에도 영수증이 필요한 법이니까.
"애기 많이 컸네요."
최은주가 나를 보며 인사치레처럼 말했다. 그러다 시선이 조금 오래 머물렀다.
오래 머물렀다는 건 정확히 얼마나였을까. 삼 초? 사 초? 회사에서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사람의 시선이 원래 필요한 시간보다 길어지면 거기엔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인사치레 시선은 보통 일 초를 넘지 않는다. 상대의 표정을 확인하고, 웃어주고, 다음 말을 준비하는 데 딱 그 정도면 충분하니까.
최은주의 시선은 그보다 길었다.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눈가 근육이 아주 조금 당겨졌다가 풀렸다.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그녀의 얼굴 근육을 하나씩 읽고 있었다. 전생에 클라이언트 눈치나 보며 밥 벌어먹던 짬이 아기 몸에서도 죽지 않았다는 게 씁쓸하면서도 다행이었다.
"눈이 참 맑네요."
그녀가 덧붙였다. 목소리가 살짝 떨렸던 것 같기도 했다. 아니, 착각일 수도 있었다.
착각이라고 치기엔 떨림의 결이 너무 구체적이었다. 목소리 끝이 아주 살짝 꺾이는, 뭔가를 참는 사람 특유의 억양이었다.
박선희는 웃으며 나를 안아 올려 최은주 앞으로 살짝 내밀었다.
"인사해봐, 도윤아."
나는 손을 뻗어 허공을 휘적거렸다. 아기다운 몸짓이었다. 실제로는 최은주의 표정을 관찰하는 중이었지만.
손끝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서 그냥 허공을 휘젓는 꼴이 됐지만, 뭐 어떤가. 애초에 목적은 손짓이 아니라 시선이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그 밑에 다른 게 있었다. 뭐랄까, 웃음의 두께가 얇았다. 얇은 웃음 아래로 뭔가 다른 감정이 비치고 있었는데, 그게 뭔지는 정확히 짚을 수 없었다.
동정일까. 아니면 걱정. 혹은 둘 다 아니고, 뭔가 미안함 비슷한 것.
세 가지 감정을 한 얼굴에서 동시에 읽어내려니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아기 뇌로 이런 걸 분석하는 게 맞나 싶었지만, 이미 습관이 된 걸 어쩌겠나.
"장부 여기 있어요."
김철웅이 서류를 건네며 화제를 돌렸다. 최은주는 그걸 받아 빠르게 넘겨보며 숫자를 확인했다. 손가락으로 종이를 짚어가며 뭔가를 중얼거리는데, 아마 합계를 검산하는 모양이었다.
"이번 달도 정확하네요. 늘 그렇지만."
그녀가 말하며 다시 웃었다. 이번 웃음은 아까보다 조금 더 자연스러웠다. 서류 얘기를 하니 원래의 태도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하니까. 사람이 제일 안심하는 대상이 결국 숫자라는 걸, 회계 담당 아니어도 다들 안다.
"요즘 신전 쪽 분위기는 어때요?"
박선희가 슬쩍 물었다. 별 뜻 없는 안부인사처럼 들렸지만, 나는 그 질문의 타이밍이 묘하다고 생각했다. 최은주가 아기를 오래 쳐다본 직후에 나온 질문이었다.
"그냥... 늘 그렇죠. 요즘 좀 어수선하기는 한데."
최은주가 서류철을 다시 정리하며 말을 흐렸다. 어수선하다는 말 뒤에 뭔가 더 있었는데, 그녀는 굳이 이어붙이지 않았다.
말줄임표가 붙는 대답은 항상 알아둘 가치가 있다. 사람이 말을 아낄 때는 두 가지 경우뿐이다. 몰라서, 혹은 알아서 못 하는 것.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요람에 누운 채 계속 최은주를 관찰했다. 그녀는 서류 이야기를 할 땐 멀찍이 서서 사무적으로 말했지만, 대화 사이사이 눈이 자꾸 나를 향했다. 그 시선이 반복될 때마다 나는 확신이 커졌다.
이 여자는 나를 뭔가 다른 시선으로 보고 있다.
단순한 호기심이라면 한두 번으로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최은주의 시선은 대화 주제가 바뀔 때마다, 잠깐의 침묵이 생길 때마다 습관처럼 나를 향해 돌아왔다. 뭔가를 확인하려는 사람의 눈이었다. 혹은 뭔가가 맞는지 아닌지 계속 되짚어보는 눈.
"다음 달에 또 뵐게요."
최은주가 서류철을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 앞에서 신발을 신으면서, 그녀가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봤다. 이번엔 웃음이 없었다.
"애기, 건강하게 잘 자라요."
그 말투가 이상했다. 보통 인사치레라면 "건강하게 커요" 정도로 끝났을 텐데, 그녀는 마치 뭔가를 비는 것처럼 말했다. 소원이라도 빌듯이.
문 앞에 선 그녀의 등이 잠깐 굳었다가 다시 풀렸다. 뒤돌아서는 발걸음이 평소보다 조금 느렸다.
문이 닫히고 최은주가 떠난 뒤, 박선희가 나를 다시 안아 올렸다. 그녀의 표정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웃고 있었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도마 위에서 야채 썰리는 소리가 리듬감 있게 울렸다. 평범한 저녁 풍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평범함이 조금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다. 방금 벌어진 장면을 박선희만 못 본 것처럼 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김철웅은 조금 달랐다. 문이 닫힌 뒤 한참 동안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난 듯 고개를 젓고 부엌으로 향했다.
그 고갯짓이 마음에 걸렸다. 뭔가를 떨쳐내려는 몸짓이었다.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의 동작이었다.
나는 요람에 누운 채 방금 벌어진 짧은 방문을 다시 곱씹었다. 회계 담당이 정기적으로 서류를 확인하러 온다. 그건 평범한 일이다. 하지만 그 회계 담당이 갓 태어난 아기를 볼 때마다 이상한 시선을 던지는 건 평범하지 않다.
계산해보면 이렇다. 마력 검사에서 이상 반응이 나온 게 몇 주 전이었다. 그 소식이 신전에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신전 회계 담당이라면 그 소식을 접했을 확률도 높다. 그렇다면 최은주가 나를 보는 시선의 근원은 아마 그 마력 검사 결과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경로를 따라가보면 그럴듯했다. 검사 담당 사제가 결과를 신전 본부에 보고했을 것이고, 본부 안에서 그 정보가 도는 동안 회계 담당인 최은주의 귀에도 들어갔을 것이다. 작은 마을일수록 소문의 반경은 짧고 속도는 빠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저 눈빛의 무게를 설명하기엔 부족했다. 저건 단순한 호기심이나 걱정의 눈빛이 아니었다. 뭔가를 아는 사람이, 뭔가를 알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단순한 이상 반응 정도라면 저렇게까지 심각한 얼굴을 할 필요가 없었다. 저건 뭔가 더 크고, 더 불편한 사실을 품고 있는 얼굴이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얼굴.
다음 달에도 최은주는 올 것이다. 그때 조금 더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 게 답답했지만, 아기 몸으로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었다. 정보를 캐낼 방법도, 먼저 다가가 물어볼 입도 없었다. 지금은 그저 지켜보고 기다리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었다.
그날 밤, 잠들기 전 창밖으로 또 종소리가 울렸다. 짧게 한 번뿐이었다. 이번엔 마을 반응이 유난히 조용했다. 마치 그 종소리를 다들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평소라면 창문 너머로 두런거리는 목소리나 발소리가 들렸을 텐데, 오늘은 그마저도 없었다. 마을 전체가 숨을 죽인 듯한 정적이었다. 그 정적이 오히려 더 크게 들렸다.
이불 속에서 눈을 감았지만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종소리의 의미도, 최은주의 시선도, 마력 검사 결과도, 전부 조각난 채로 머릿속을 떠다녔다. 어느 것 하나도 완전한 그림을 만들지 못했다.
퍼즐 조각은 늘어나는데 그림은 여전히 흐릿했다. 다만 하나는 분명해졌다. 이 마을에서 나에 관한 뭔가가 조용히 알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