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한 달이 지났다.
시간의 흐름을 요람 속에서 감각하는 방법은 단순했다. 창밖 나뭇잎의 색이 바뀌고, 박선희의 배가 조금씩 부풀어 오르고, 김철웅이 벌어오는 돈의 액수가 미묘하게 늘어나는 걸 보면 됐다. 나는 아직 이가 두 개 났을 뿐인 갓난아기였지만, 셈하는 머리만큼은 서른 넘은 회사원 그대로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머리가 사라지지 않은 덕에 나는 이 집구석의 흐름을 계속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신전에서 회계 담당이 찾아왔다.
최은주. 이름은 서류철 표지에 적혀 있는 걸 몇 번이나 훔쳐봐서 외웠다. 처음 왔을 때는 그냥 사무적인 얼굴로 숫자를 확인하고 갔었다. 두 번째, 세 번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그저 이 집에 돈을 대주는 신전의 말단 관리자쯤으로 분류해 두고 있었다.
이번엔 달랐다.
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알았다. 서류철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걸음걸이도 평소보다 조심스러웠다. 마치 깨질 것 같은 걸 들고 오는 사람처럼.
요람 속에서 나는 그 떨림을 놓치지 않았다. 정확히는, 놓칠 이유가 없었다. 요람에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이 관찰밖에 없으니까.
"장부 좀 볼게요."
목소리도 낮았다. 평소의 사무적인 말투가 아니라, 뭔가를 억누른 듯한 소리였다.
박선희는 눈치채지 못한 듯 웃으며 서류를 건넸다.
"이번엔 신경 써서 정리했어요. 은주 씨가 지난번에 오탈자 얘기했던 거 반영했고."
"고마워요, 선희 씨."
말은 부드러웠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나는 그 부조화를 셈에 넣었다. 표정과 말투가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대개 뭔가를 감추고 있거나, 뭔가를 견디고 있거나.
최은주는 서류를 받아 훑어보기 시작했다. 숫자를 짚어가며 확인하는 손가락이 종이 위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처음엔 추운가 싶었지만, 방 안은 난롯불 덕에 충분히 따뜻했다. 오히려 박선희가 부채질을 할 정도로 더운 날이었다.
추워서 떠는 게 아니라면, 남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러다 그녀의 시선이 다시 나를 향했다.
요람 속에서 손가락을 빨고 있던 나는 최은주를 마주 봤다. 딱히 의도한 건 아니었다. 갓난아기가 시선을 피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니까, 그냥 눈이 마주친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눈이 순간 커졌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쉬는 게 보였다.
숨을 들이쉬는 방식이 이상했다. 놀라서 헉 하는 게 아니라, 참았던 걸 억지로 삼키는 소리였다.
"괜찮으세요?"
박선희가 그제야 물었다. 서류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든 게 몇 초 늦었다. 최은주는 손을 저으며 괜찮다고 했지만,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그냥, 좀, 요즘 잠을 못 자서요."
거짓말이었다. 회사에서 밤새 야근한 사람들을 하도 많이 봐서 안다. 잠 못 잔 사람의 눈은 이런 눈이 아니다. 붉게 충혈되어 있어도 초점은 흐릿한 법인데, 저 여자의 눈은 나에게 정확히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저건 뭔가를 억지로 참는 사람의 눈이었다.
정확히는, 뭔가를 보고 있으면서도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의 눈이었다.
서류 확인이 끝나갈 무렵, 김철웅이 나를 안아 올려 최은주 쪽으로 조금 가까이 데려갔다. 아들을 자랑하는 부모의 흔한 습관 같은 거였다. 나는 그 순간 속으로 작게 탄식했다. 하필 이 타이밍에.
"많이 컸죠? 벌써 이가 나기 시작했어요."
자랑스러운 목소리였다. 진심으로 아들이 예쁘다는 듯, 진심으로 그게 좋은 소식이라는 듯.
최은주가 나를 봤다. 정면으로.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호흡이 급격히 빨라지기 시작했다.
"흑, 흐윽..."
처음엔 웃음소리로 오해할 만큼 짧은 소리였다. 나조차 잠깐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곧 명확해졌다. 흐느낌이었다. 그녀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고, 숨이 가빠지며 헐떡이는 소리로 바뀌었다.
이건 예상 밖이었다. 계산에 없던 변수였다.
"은주 씨?"
박선희가 놀라서 다가갔다. 최은주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흐느낌은 멈추지 않았다. 숨을 쉬려고 애쓰는데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소리, 과호흡이었다. 들이쉬는 숨보다 내쉬는 숨이 짧고, 그 사이사이 억지로 참는 딸꾹질 같은 소리가 끼어들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그녀는 사과를 반복하며 벽에 등을 대고 앉았다.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팔을 얹은 자세가, 몸을 최대한 작게 만들려는 것처럼 보였다. 숨어들 곳이 없어서 스스로를 접는 사람처럼.
김철웅이 물을 떠오려고 부엌으로 뛰어갔다. 그 뒷모습에도 이상한 게 있었다. 당황한 건 맞는데, 놀란 기색보다는 익숙한 기색이 더 강했다. 이런 일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한 몸놀림.
박선희는 최은주의 등을 두드려주며 뭔가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표정이 이상했다. 위로하는 표정이 아니라, 뭔가를 감추려는 표정이었다. 입은 부드럽게 움직이는데 눈썹은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두 개의 표정을 동시에 짓는 사람은, 대개 진짜 감정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다.
최은주의 숨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소매로 닦으며 그녀가 나를 다시 흘끗 봤다. 그 시선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건 짧지 않았다.
"애가... 너무 순수해서요."
말도 안 되는 이유였다. 순수해서 과호흡할 정도로 운다는 게 정상적인 반응일 리 없었다. 순수하다는 이유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있어도,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오열하는 사람은 없다. 저건 감동이 아니라 공포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나는 요람 속에서 조용히 그 광경을 지켜보며 계산을 이어갔다.
마력이 없다. 이건 확정된 사실이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신전 사람들이 나를 검사했고, 결과는 명확하게 실망스러웠다고 들었다. 마력 없는 아이. 이 세계에서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직 정확히는 몰랐지만, 좋은 의미가 아니라는 건 분위기로 알 수 있었다.
신전 회계 담당이 나를 보고 과호흡을 일으킨다. 이건 새로운 변수였다.
부모의 표정이 위로가 아니라 은폐에 가깝다. 이건 이전부터 짐작하던 것이었지만, 오늘 그 짐작이 확신에 가까워졌다.
세 가지 사실을 나란히 놓으면 결론은 하나였다. 저 여자는 나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고, 그게 눈물이 날 정도로 끔찍한 사실이라는 것.
문제는 그 끔찍한 사실이 무엇인지였다. 단순히 마력이 없어서 앞으로 험난한 인생을 살 거라는 동정심 정도라면 이렇게까지 반응할 리 없다. 저건 동정이 아니라, 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의 두려움이었다.
"물 가져왔어요."
김철웅이 컵을 들고 돌아왔다. 최은주는 물을 몇 모금 마시고 조금 안정을 찾았다. 컵을 쥔 손이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붉었고, 나를 향한 시선은 여전히 무거웠다. 마치 무언가를 계속 확인하려는 것처럼, 물을 마시는 중에도 시선이 자꾸 요람 쪽으로 미끄러졌다.
"오늘은 그만 가볼게요. 다음 달에 다시..."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을 흐렸다. 서류철을 챙기는 손짓이 평소보다 느렸다. 문 쪽으로 향하다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 뒤돌아서 박선희와 김철웅을 바라봤다. 그 눈빛에 처음으로 원망이 섞여 있었다.
"두 분은..."
말을 이으려던 최은주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 짧은 몇 초 동안 방 안의 공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박선희의 표정이 굳었다. 김철웅도 시선을 피했다. 두 사람 모두 그 문장의 뒷부분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알고 있어서 더 두려워하는 얼굴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던 거였을까.
두 분은, 뭔데. 두 분은 알고 계셨어요? 두 분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두 분은 후회 안 하세요?
수십 가지 가능한 문장이 머릿속에서 지나갔지만,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최은주는 결국 그 문장을 끝내지 않고 서류철을 챙겨 문을 나섰다. 문이 쿵 닫히는 소리가 방 안에 무겁게 울렸다. 그 뒤,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박선희와 김철웅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각자 다른 방향을 보고 서서, 서로에게 말을 걸지도,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두 사람 모두 뭔가를 알고 있었고, 그 뭔가는 나와 관련된 것이었다.
이건 확실했다. 회계 서류나 마력 검사 결과 같은 표면적인 문제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무언가였다. 최은주의 과호흡은 그 근본적인 무언가의 표면에 살짝 드러난 균열이었다.
그날 오후 내내 집 안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박선희는 평소처럼 나를 안고 노래를 불러주지도 않았고, 김철웅은 저녁 준비를 하면서 몇 번이나 칼질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봤다. 두 사람 다 뭔가를 정리하려는 것처럼 보였는데, 정리가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저녁 식사 시간에도 대화는 거의 없었다. 평소라면 오늘 신전에서 들어온 지원금이 얼마인지, 다음 달엔 뭘 살지 같은 이야기가 오갔을 텐데, 그날은 숟가락 소리만 들렸다.
그날 밤, 두 사람이 방문을 닫고 낮은 목소리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확한 말은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몇 개의 단어는 벽을 넘어 요람까지 흘러왔다.
"...말했으면..."
"...아직은..."
"...은주 씨가 그렇게까지..."
그리고 그 사이사이, 박선희가 울고 있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흐느낌을 참으려는 소리와, 참지 못해 새어 나오는 숨소리가 반복해서 들렸다. 김철웅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고, 위로하는 말투인지 자기 자신을 다독이는 말투인지 구분이 안 갔다.
나는 요람 속에서 어둠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최은주가 끝내지 못한 그 문장. 그 뒤에 무슨 말이 있었을지, 그리고 저 방문 너머에서 두 사람이 삼키고 있는 그 진실이 무엇인지.
마력 없는 아이로 태어난 것. 그것만으로는 이 정도의 은폐와 눈물을 설명할 수 없었다. 뭔가 더 있었다. 뭔가 더 크고, 더 오래된, 나와 이 두 사람을 묶고 있는 무언가가.
다음번엔 반드시 알아내야 했다. 이대로 요람 속에서 이가 나고, 말을 배우고, 걸음을 걷는 동안 계속 모른 채로 지낼 수는 없었다.
나는 손가락을 다시 입에 넣고 어둠 속에서 눈을 감았다. 잠은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