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설원에 새긴 견장

3화

설한지구로 가는 길은 열흘이 걸렸다. 마차가 아니라 화물 수레였다. 바닥에는 밀가루 포대와 소금 자루가 쌓여 있었고, 나는 그 틈에 끼어 앉아 흔들리는 대로 몸을 맡겼다. 임관 성적이 삼 위인데도 이런 대우를 받는다는 게 어이없었지만, 굳이 항의하지 않았다. 항의할 상대가 없었다. 그저 규정대로 배치된 것뿐이라는 얼굴로 모두가 나를 바라봤으니까. 수레가 덜컹거릴 때마다 소금 자루가 등을 찔렀다. 아프진 않았다. 그냥, 계속 그런 식이었다. 뭔가 나를 슬쩍슬쩍 찔러오는 느낌. 대놓고 밀어내진 않지만, 편하게 두지도 않겠다는 태도. 닷새쯤 지났을 때, 마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소위님, 설한지구는 처음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거기 가는 사람들, 표정이 다 비슷해요." 그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지금 소위님 표정이랑 똑같습니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표정 관리는 내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곽태산을 만난 건 출발 사흘 전이었다. 서지아가 소개해준 사람이었다. 묵한족 출신, 거구, 설한지구 인근 지형을 잘 안다는 게 첫 소개였다. 만나기로 한 곳은 병영 근처 국밥집이었다. 서지아는 자기 일이 있다며 자리를 비웠고, 나는 혼자 앉아 그를 기다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사람 하나가 들어오는데 문틀이 좁아 보일 정도였다. 곽태산이었다. "소위님 호위 자리, 하겠습니다." 그가 짧게 말했다. 목소리가 낮고 굵었다. 자리에 앉는데 의자가 삐걱, 소리를 냈다. 두 배는 넓은 어깨, 팔뚝에는 낡은 흉터가 여러 겹 겹쳐 있었다. 오래된 흉터였다. 새로 생긴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굳고 색이 바랜 것들. "급료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 대신 필요할 때 절 믿어주십시오." "믿는다는 게, 뭘 뜻하는 겁니까." 나는 물었다. "제가 나서야 할 때, 말리지 마시라는 뜻입니다." 짧고 명료한 대답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나는 잠시 그를 살폈다. 서지아가 소개한 사람이라면 믿을 만하다는 뜻이었고, 실제로 저 체격을 보면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다만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왜 저를 선택했습니까. 삼 위로 임관했지만, 배치는 최전선입니다. 좋은 조건이 아닌데." 곽태산이 국밥을 한 숟갈 뜨다가 멈췄다. "묵한족은 몰락한 부족입니다." 그가 말했다. "제국이 우릴 받아준 건, 우리가 쓸모 있어서지 우릴 좋아해서가 아닙니다. 그런 자리에서 오래 살면, 사람 보는 눈이 생깁니다." "그래서요." "소위님은 겁을 감정으로 미뤄두는 사람 같더군요. 그런 사람이 오래 삽니다."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겁을 미뤄둔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두려움을 못 느끼는 게 아니라, 지금 처리할 목록에서 뒤로 미뤄두는 것. 나는 고용 계약서에 서명했고, 그는 그날부터 내 곁을 지켰다. 설한지구로 가는 열흘 동안, 곽태산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수레 옆을 걸으며 주변을 살폈다. 나무 사이 그림자가 이상하다 싶으면 걸음을 늦췄고, 눈이 쌓인 방향이 바뀌면 손으로 슬쩍 짚어보곤 했다.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말보다 행동으로 알 수 있었다. 설한관은 회색 벽으로 둘러싸인 요새였다. 멀리서부터 그 회색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도 회색, 벽도 회색, 그 사이를 채운 눈만 하얬다. 눈이 이미 발목까지 쌓여 있었고, 성벽 위로 바람이 칼처럼 스쳤다. 정문에 다가가자 초병 둘이 창을 든 채 우리를 막았다. "신원 확인." 한 명이 사무적으로 말했다. 나는 임명장을 꺼내 보였다. 초병이 그것을 훑어보더니, 다른 한 명에게 눈짓을 했다. 뭔가 미묘한 눈짓이었다. 이 사람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어떤 소대로 배치되는지, 거기가 어떤 곳인지. 정문에서 나를 맞은 건 늙은 대좌였다. "최무성이다." 그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손등이 굳은살로 두꺼웠다. 잡는 순간 그 딱딱함이 느껴졌다. 평생 검을 쥔 손이었다. "삼 위가 여기 오다니, 재밌군." "배치받았을 뿐입니다." 나는 손을 맞잡았다. "그렇겠지." 그가 웃음도 아닌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 오는 놈들은 다 그렇게 말해. 배치받았을 뿐이라고. 근데 다들 삼 개월을 못 버텨." "저는 버틸 겁니다." 그는 잠시 나를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도 아니고 무시도 아닌 애매한 반응이었다. 대좌실로 자리를 옮겼다. 방 안에는 낡은 지도와 무기 몇 개가 벽에 걸려 있었고, 책상 위에는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가 서류 하나를 꺼내 내 앞에 던졌다. "제8소대를 맡게 될 거다." 그가 말했다. "미리 말해두는데, 그 자식들은 낙오자들이야. 훈련 부실, 규율 파탄, 조장이라는 놈은 상관 명령을 대놓고 씹는 놈이고. 세 명이 그 자리에서 병원에 실려 갔지. 하나는 다시 못 걸어." "부속 서류에서 봤습니다." "봤으면 겁이 안 나?" "겁은 나중에 나도 되는 감정이라고 배웠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진짜 웃었다. 짧고 거친 웃음이었다. 손으로 책상을 툭 치며 웃음을 멈췄다. "마음에 드는 대답이군. 그럼 직접 가서 확인해봐." "조장 이름이 뭡니까." "박기석." 최무성이 서류를 다시 챙기며 말했다. "그놈만 잡으면 소대 전체가 따라올 거다. 반대로 그놈을 못 잡으면, 나머지도 못 잡는다. 간단한 산수지." 간단한 산수.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간단하다는 건, 대개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었으니까. 제8소대 막사는 요새 가장 외곽, 눈바람이 제일 먼저 닿는 자리에 있었다. 걸어가는 동안 곽태산이 옆에서 낮게 말했다. "소위님, 저기 저 창문 보이십니까." 막사 창문 하나에 금이 가 있었다. 테이프로 대충 막아둔 흔적이 있었다. "싸움 흔적입니다." 그가 말했다. "여기 오래 있던 소대장들이 몇 번 부딪힌 자국이지요." "몇 번이나 됩니까." "제가 듣기로는, 소위님이 네 번째입니다." 네 번째. 앞선 셋은 다 실패했다는 뜻이었다. 셋 다 실려 나갔다는 최무성의 말이 그제야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문을 열자마자 담배 냄새와 술 냄새가 뒤섞여 밀려왔다. 마흔 명 규모라고 들었는데, 절반쯤 겨우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머지는 어디 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근무 중일 수도 있고, 그냥 안 나온 걸 수도 있었다. 이 소대에서는 그 둘의 구분이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한 남자가 침상에 발을 올린 채 나를 훑어봤다. 체격이 크지는 않았지만 눈빛이 날카로웠다. 조장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박기석이었다. "새 소대장님 오셨나." 그가 콧방귀를 뀌었다. "평민이라고 들었는데, 진짜였네." "이하준입니다." 나는 짧게 말했다. "오늘부터 이 소대를 지휘합니다." "지휘." 그가 그 단어를 곱씹듯 반복했다. "여기 놈들, 삼 년 동안 지휘라는 걸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게 뭔지 모를 텐데." 뒤에서 몇 명이 낮게 웃었다. 조롱이었다. 한 명은 아예 대놓고 침을 뱉었다. 바닥에, 내 발치 가까이. 그가 웃으며 옆 사람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기립."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명령입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곽태산이 문가에서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었다. 나서지 않았다. 아직은. 그의 시선이 나와 박기석 사이를 오갔다. 저 사람은 지금 계산 중이다. 언제 나서야 할지, 나설 필요가 있을지. "소위님." 박기석이 침상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키가 나보다 조금 작았지만, 몸에서 나오는 위압감이 만만치 않았다. 어깨를 펴고 다가오는 걸음이 느릿느릿, 마치 시간을 끄는 것처럼 보였다. "명령 같은 거, 여긴 안 통해. 대좌님도 우리 건드리기 껄끄러워서 그냥 내버려두는 거고. 신참이 와서 명령 몇 번 지르면 우리가 알아서 따를 거라 생각했으면, 큰 착각이야." 그가 다가섰다. 거리가 두 걸음 남았다. 술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낮부터 마신 모양이었다. "여기서 정말 지휘하고 싶으면, 방법이 하나 있지." 그가 씩 웃었다. "주먹으로 증명하는 거. 예전 소대장들도 그렇게 해보려다 다 실려 나갔지만." 소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쏟아졌다. 시험이었다. 노골적이고, 유치하고, 그러면서도 진짜였다. 이 막사 안에서는 저 유치한 시험이 곧 법이었다. 나는 손목의 봉인문을 슬쩍 만졌다. 아직 여기서 벽라를 꺼낼 순간은 아니었다. 이건 마봉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필요한 건 다른 종류의 대답이었다. 주먹으로 이겨봤자, 다음 날 또 다른 놈이 시험을 걸어올 것이다. 이건 힘으로 눌러서 풀 문제가 아니라, 다르게 풀어야 하는 문제였다. "방법을 하나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그를 마주 보며 말했다. "근데 저는 그 방법 대신, 이 소대가 왜 삼 년째 낙오자로 남아 있는지부터 확인해볼 생각입니다." 박기석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뭐?" "조장님 명령 불복종 기록이 상당하더군요. 그런데 정작 소대 성적표를 보니, 훈련 참여율이 조장님 본인부터 가장 낮았습니다." 나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서류에서 본 숫자를 기억나는 대로 하나씩 짚었다. "지난 반년간 훈련 불참 십칠 회, 그중 절반이 조장님 본인 명의였습니다. 이 소대가 낙오자가 된 게, 정말 저 사람들 탓입니까. 아니면 조장님 탓입니까." 정적이 흘렀다. 몇몇 소대원의 눈빛이 흔들렸다. 등 뒤에서 누군가 낮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박기석의 손이 서서히 주먹을 쥐었다. 막사 안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조롱 섞인 웃음을 흘리던 자들도 지금은 입을 다물고 두 사람만 지켜보고 있었다. 벽에 걸린 낡은 등불이 흔들리며 그림자를 길게 늘였고, 그 그림자가 박기석의 발치까지 닿았다. "말이면 다야." 그가 낮게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전보다 더 가라앉아 있었다. "숫자 몇 개 외워왔다고, 여기 알던 사람처럼 말하지 마."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합니다."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필요하면 대좌님 앞에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그의 눈이 순간 흔들렸다. 대좌라는 이름이 나오자 확실히 반응이 달랐다. 곽태산이 문가에서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지금이 나설 때인지 가늠하는 자세였다. 나는 그에게 눈짓하지 않았다. 아직은, 이건 내가 풀어야 하는 문제였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