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후방 진영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조용해서 더 이상했다.
전쟁터의 후방이라면 이래야 정상이었다. 부상병들의 신음, 보급을 나르는 수레바퀴 소리,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 그런데 지금 이곳엔 그 소음들이 절반쯤 죽어 있었다. 사람은 있는데 생기가 없었다.
천막 사이를 지나며 병사들의 얼굴을 훑었다. 다들 지쳐 있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얼굴에 배어 있었다.
두려움이라기엔 애매했고, 안도라기엔 부족했다.
한 병사가 나를 보고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다른 병사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시선을 피했다. 지휘관이라는 자리가 이런 건가.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걸 느낄 때마다 속이 미묘하게 뒤틀렸다.
"도윤!"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니 낯익은 얼굴 셋이 서 있었다.
"박현우, 살아 있었네."
"당연하지. 누구 덕에 살아있는데."
박현우는 파티의 검사였다. 덩치는 크지만 성격은 실없었다. 팔뚝에 새로 생긴 붕대가 눈에 띄었지만, 정작 본인은 그걸 자랑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이거? 별거 아니야. 마족 하나 썰다가 긁힌 거지."
"긁힌 게 저 정도면 앞으로 조심해."
"걱정해주는 거야? 감동인데."
그 옆에 서 있던 여자, 최은영이 팔짱을 끼고 웃었다.
"지휘관이 되셨다면서요. 강도윤 백작님."
"놀리지 마."
"놀리는 거 아닌데. 진짜 잘 어울리세요."
최은영은 파티의 궁수였다. 말투는 항상 삐딱했지만, 그 안에 진심이 섞여 있다는 걸 안다. 예전에 던전에서 같이 밤을 새울 때도 저런 식으로 말했다. 겉으로는 시비 걸듯, 속으로는 걱정하듯.
"다들 무사한 거지."
"우리야 뭐, 늘 이 모양이지."
박현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백작님 실종 소식 들었어?"
"들었어."
"진짜 골치 아프게 됐네. 그 인간이 그래도 방패막이는 됐었는데."
방패막이라는 표현이 묘하게 걸렸다. 사람 하나가 사라졌는데 다들 그 자리의 기능만을 걱정하고 있었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실종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지휘 체계의 공백이었으니까.
"서아는 어디 있어."
내 물음에 두 사람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 짧은 침묵이 신경을 긁었다. 박현우와 최은영은 웬만한 소식엔 텐션이 안 죽는 인간들이었다. 그런 둘이 순간적으로 말을 고르는 모습은 처음 봤다.
"막사에."
박현우가 짧게 답했다.
"컨디션이 좀 안 좋아."
안 좋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어느 정도로 안 좋은데."
"그게…"
박현우가 최은영을 쳐다봤다. 대답을 넘기는 눈치였다.
최은영은 잠깐 입술을 깨물었다가 말했다.
"직접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직접 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말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뜻이었다. 좋은 신호일 리 없었다.
용사의 막사로 걸어가는 동안, 최은영이 조용히 옆에 붙었다.
"요즘 좀 이상해요."
"뭐가."
"말이 없어졌어요. 원래도 조용한 편이었지만, 요즘은 아예... 텅 빈 것 같아요."
텅 빈 것 같다는 표현이 낯설게 들렸다.
윤서아는 원래 감정 표현이 서툰 사람이었다. 말을 아끼고, 웃음도 아끼고, 화도 아꼈다. 하지만 그 아낌 안에는 늘 뭔가가 있었다. 시선의 방향이나 손끝의 움직임, 그런 데서 감정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텅 비었다는 건 다른 얘기였다. 아끼는 게 아니라 아예 없는 상태.
"밥은 먹어?"
"먹긴 하는데... 그냥 씹고 삼키는 느낌이에요. 맛을 느끼는 것 같지가 않아요."
"잠은."
"자긴 하는데 자주 깨요. 어젠 새벽에 밖에 나가서 한참 서 있더라고요. 뭘 보는 것도 아니고 그냥 서 있기만."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막사 앞에서 잠시 멈췄다.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 이게 걱정인지, 다른 감정인지 스스로도 헷갈렸다.
박현우와 최은영은 눈치껏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들어가도 돼."
안으로 들어서니 그녀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흑발이 어깨 아래로 흘러내렸고, 어깨선은 예전보다 야위어 보였다. 촛불 하나만 켜진 막사 안은 어두웠고, 그 어둠 속에서 그녀의 뒷모습은 더 작아 보였다.
"서아."
그녀가 천천히 돌아봤다. 눈빛이 예전 같지 않았다.
예전엔 늘 무언가를 응시하는 눈이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응시하지 않는 눈이었다. 초점이 나를 향해 있긴 했지만, 그 뒤편에 있는 무언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셨네요."
존댓말이었다. 우리 사이에는 원래 존댓말이 반, 반말이 반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존댓말로 시작했지만, 몇 번의 던전을 함께 넘긴 뒤로는 반말이 섞여 들었다. 반말이 나올 때는 대체로 그녀가 편안할 때였고, 존댓말로 돌아갈 때는 뭔가 거리를 두고 싶을 때였다.
지금은 온전히 존댓말뿐이었다.
"몸은 좀 어때."
"괜찮아요."
짧은 대답. 더 물을 말이 없었다.
괜찮다는 말이 괜찮지 않다는 뜻으로 들렸다. 사람이 정말 괜찮으면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진짜 괜찮은 사람은 괜찮다는 말 대신 다른 얘기를 꺼낸다. 밥을 먹었다거나, 잠을 잘 잤다거나. 그녀는 아무것도 꺼내지 않았다.
나는 그녀 옆에 앉았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촛불이 흔들리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지휘관이 되셨다고."
"어쩌다 그렇게 됐어."
"잘 어울려요."
그 말도 최은영과 똑같았다. 다들 나를 안심시키려고 그러는 걸까, 아니면 진심일까. 아니면 그냥 할 말이 없어서 아무 말이나 하는 걸까.
"백작님이 실종됐대."
"들었어요."
그녀는 더 말하지 않았다. 원래라면 왜 실종됐을지, 마왕성 근처에 무슨 일이 있었을지 물었을 거다. 서아는 궁금한 게 있으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아무리 지쳐 있어도 정보 앞에서는 눈이 반짝였던 사람이었다.
지금의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마왕성 진격 루트, 내일 회의에서 확정한대."
"..."
"서아."
"네."
대답은 있었지만 반응은 없었다. 마치 인형에게 말을 거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살짝 잡았다.
차가웠다. 여름밤인데도 얼음처럼 차가웠다. 손끝을 감싸 쥐어도 온기가 돌아오지 않았다.
"괜찮아질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뭐가 괜찮아질 건지 나도 확신이 없었다. 이 손이 다시 따뜻해질 거라는 말인지, 눈빛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올 거라는 말인지. 아무런 근거도 없는 말이었다.
그녀는 내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조차도 나를 위한 배려처럼 느껴졌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나는 뭔가 더 말을 걸어보려 했지만, 목구멍에서 말이 자꾸 걸렸다. 무슨 말을 해도 겉돌 것 같았다.
"내일 다시 올게."
그녀는 대답 없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등을 보이는 그 자세가 익숙한 듯 낯설었다.
밖으로 나오니 박현우와 최은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때요."
최은영이 물었다.
"모르겠어."
정말 몰랐다.
"손이 얼음장이야. 여름인데."
"그거 며칠 됐어요. 처음엔 그냥 컨디션 문제인가 했는데,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아서."
박현우가 팔짱을 끼며 말을 받았다.
"치유 계열 스킬 써봐도 소용없더라. 신체적인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정신적인 문제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정신적인 문제라면, 원인을 짚어내기가 훨씬 더 어려웠다.
"내일 작전 회의가 있어. 마왕성 진격 루트 확정할 거야."
박현우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인가."
드디어라는 말에 안도와 불안이 동시에 섞였다. 오랜 시간을 끌어온 전쟁의 끝이 보인다는 안도, 그리고 그 끝에 뭐가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
"백작님 실종 건도 회의에서 다뤄지려나."
최은영이 물었다.
"당연히 다뤄지겠지. 그게 정상적인 실종이 아니니까."
"정상적인 실종이 어디 있어."
박현우가 실없이 웃었지만, 아무도 따라 웃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잠들지 못했다.
막사 밖에서 병사들이 순찰을 도는 발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그 소리가 어느 순간부터 오히려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발소리가 끊기는 순간이 두려웠다.
지도 위의 이상한 좌표.
측정 불가능한 마력.
텅 빈 눈빛의 윤서아.
조각들이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길함은 하나로 모이고 있었다.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들이 감각적으로는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몇 번이나 몸을 뒤집었다. 눈을 감아도 서아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야윈 어깨선과 차가운 손끝.
새벽이 다가올 무렵, 멀리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짐승의 울음도 아니고, 바람 소리도 아닌.
뭔가가 우는 것 같은, 낮고 긴 소리였다.
처음엔 착각인가 싶었다. 하지만 소리는 끊이지 않고 계속됐다. 낮게 깔리면서도 귀 안쪽을 긁는 듯한 울림이었다.
병사들이 하나둘 막사 밖으로 나오는 기척이 들렸다.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진영 전체로 퍼졌다.
나도 검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섰다.
하늘은 여전히 붉었고, 그 소리는 마왕성 방향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그 울음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마치 뭔가가 깨어나고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