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숲으로 가는 길, 나는 은채가 한 말을 계속 곱씹었다.
'견습생이든 뭐든이라니.'
이상하게 그 말이 자꾸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나는 억지로 생각을 끊고 의뢰서를 다시 확인했다.
[약초 채집: 숲 초입 은엽초 10뿌리, 보수 銅貨 30]
'서른넷 인생 최초의 알바 공고 확인이네.'
나는 피식 웃었다.
'그것도 초등학생 몸으로.'
숲 초입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나무 사이로 햇빛이 드문드문 떨어지고, 바람에 풀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몬스터가 없다더니, 진짜 없네.'
나는 반신반의하며 은엽초를 찾아 걸었다.
은엽초는 잎 뒷면이 은색으로 빛나는 게 특징이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건 뭐, 학교 자연 관찰 숙제 수준인데.'
나는 뿌리째 뽑아서 배낭에 담았다.
한 뿌리, 두 뿌리, 세 뿌리...
숫자를 세면서 뽑다 보니 은근히 리듬이 생겼다.
'이게 은근 힐링이네.'
도시에서 야근하다가 갑자기 숲에서 나물 캐는 기분이랄까.
'전생에 무슨 약초꾼이었나.'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손을 움직였다.
반나절 만에 10뿌리를 채우고 길드로 돌아왔다.
'첫 성공이다.'
나는 작게 흐뭇해했다.
배낭 속에서 흔들리는 은엽초 뭉치가 오늘 하루의 전부를 증명하는 것 같아서, 괜히 어깨가 펴졌다.
접수처로 가니 윤소이 씨는 자리에 없었다.
대신 다른 접수원이 앉아 있었다.
명찰에 '박현아'라고 쓰여 있었다.
서늘한 눈매의 여자였다.
'윤소이 씨는 어디 갔지.'
나는 살짝 아쉬워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약초 채집 완료했어요."
나는 은엽초 뭉치를 내밀었다.
박현아 씨가 뭉치를 대충 훑어봤다.
"...견습생이 이걸 해왔다고?"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뭐야, 그 반응.'
"네?"
나는 되물었다.
"아니, 됐고요."
그녀가 말을 돌렸다.
그녀는 은엽초 개수를 세는 척하며 손을 빠르게 놀렸다.
손가락이 뭉치 사이를 스치는 속도가 묘하게 빨랐다.
'뭐 저렇게 빨리 세지?'
나는 그 순간 이상함을 느꼈어야 했다.
하지만 알아채지 못했다.
"7뿌리네요. 보수는 銅貨 21."
그녀가 말했다.
"어, 저 10뿌리 캤는데요."
나는 놀라서 말했다.
"제가 세어보니 7뿌리예요."
그녀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했다.
'분명 10뿌리 챙겼는데...'
나는 속으로 혼란스러웠다.
'다시 세어보자고 할까?'
하지만 이미 뭉치는 그녀 손에 넘어가 있었다.
'증명할 방법이 없잖아.'
서류 위에 놓인 은엽초는 이미 그녀의 영역이었고, 나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설마 나 지금 사기당한 거야?'
"보수 여기 있어요."
그녀가 동전 몇 개를 밀어줬다.
원래 기대했던 30의 3분의 1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나는 동전을 세어봤다.
하나, 둘, 셋...
21이 아니라 심지어 그보다도 더 적었다.
'이게 뭐야, 알바비 떼먹는 사장님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저기, 이거 21보다 적은데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등록비 차감했어요. 견습생은 초기 등록 수수료가 따로 붙어요."
그녀가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그런 규정을 왜 지금 말해요.'
나는 항의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냉랭한 표정 앞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거 완전 소액결제 유도하는 게임 약관 같은 소린데.'
서른 넷 인생의 경험으로도, 이건 뭔가 이상했다.
'분명 뭔가 조작하는 것 같은데.'
'등록비니 수수료니 하는 건 처음 듣는 소리잖아.'
하지만 열 살짜리 견습생의 말을 누가 들어줄까.
나는 억울함을 삼키고 동전을 챙겨 자리를 떠났다.
'다음엔 세는 거 옆에서 지켜봐야겠다.'
속으로 다짐하면서도, 뒷맛이 씁쓸했다.
그때 뒤에서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강태오가 어느새 다시 길드에 와 있었다.
"어이구, 사기당하는 거 잘 보고 있었지."
그가 조롱했다.
'뭐? 알고 있었으면서 왜 말 안 해줬어.'
나는 순간 화가 확 치솟았다.
'이 자식 진짜 끝까지 얄밉네.'
"이게 견습생 대접이라는 거야."
강태오가 신나게 말했다.
"등급이 낮으면 원래 이렇게 굴러가는 거지."
김민재도 옆에서 거들었다.
'구조적인 문제라는 소린가.'
나는 그 말을 듣고 순간 머리가 차가워졌다.
'이거 완전 신입 갈아먹는 회사 시스템이잖아.'
나는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서른넷까지 살면서 이런 구조는 지겹게 봤는데, 여기서도 똑같네.'
분노보다 먼저 든 생각은, 이게 나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였다.
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정당한 대가를 못 받는 시스템.
이게 견습생 하나에게만 적용되는 룰이 아니라면...
'다른 F, G등급 모험가들도 다 이런 대접을 받는 건가?'
그렇다면 이건 그냥 재수 없는 하루가 아니었다.
'이 길드 전체가 이런 식으로 굴러가는 거라면.'
누군가는 매번 이런 식으로 뜯기고, 항의도 못 하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거였다.
'무슨 하청업체 노동착취 구조가 여기서도...'
나는 씁쓸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마침 그 순간, 조용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누군가 다가왔다.
키가 크고 단정한 인상의 남자였다.
길드 마크가 새겨진 정복을 입고 있었다.
걸음걸이부터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저 사람은 또 누구지.'
"무슨 일이지."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강태오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방금까지 신나 있던 얼굴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강윤석 삼촌."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삼촌?'
나는 놀라서 그를 쳐다봤다.
'저 능글맞은 놈도 삼촌 앞에서는 얌전해지네.'
강윤석이라는 이름, 그가 이 길드의 간부라는 건 등록할 때 들었던 것 같았다.
'그때는 그냥 흘려들었는데.'
"박현아 접수원."
강윤석 씨가 접수처를 향해 말했다.
"이 모험가의 채집량과 보수 지급 내역을 다시 확인해주시죠."
그가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에 힘이 있으면서도, 화를 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저 톤, 회사에서 팀장 잘못 갈굴 때 임원이 나서는 느낌이네.'
박현아 씨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예,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녀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손끝이 아까와 달리 조심스러워졌다.
강윤석 씨가 나를 돌아봤다.
"이름이 뭔가."
그가 물었다.
"이도훈이요."
나는 대답했다.
"견습생이라고 들었네."
그가 짧게 말했다.
'또 시작이네.'
나는 방어적으로 굳었다.
'이 아저씨도 견습생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소리 하려는 건가.'
하지만 이어진 말은 예상 밖이었다.
"길드 규약에는 등급에 따른 보수 차별이 없다."
그가 말했다.
"신분도, 직업도, 등급도, 정당한 대가를 막는 이유가 될 수 없어."
그가 강태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태오, 이 길드 안에서는 네 신분도 마찬가지다."
그가 조카에게 낮게 경고했다.
강태오는 입을 다물었다.
김민재도 슬쩍 뒤로 물러났다.
방금까지의 기세가 눈에 보이게 쪼그라들었다.
'오, 이 아저씨 좀 멋있는데.'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회사에도 이런 상사 하나만 있었어도 인생이 달랐을 텐데.'
하지만 곧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없었으면 나는 그냥 당하고 끝났을 거잖아.'
그 생각이 들자 감탄이 조금 씁쓸해졌다.
박현아 씨가 다시 계산을 마치고 부족한 보수를 내밀었다.
동전이 하나씩 짤그랑거리며 쌓였다.
"...확인 결과 10뿌리가 맞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녀가 감정 없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엔 사과와는 거리가 먼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저 사람, 진짜 사과하는 게 아니야.'
나는 그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저건 사과가 아니라 짜증이지.'
강윤석 씨가 자리를 떠난 뒤, 나는 정정된 보수를 받아 들었다.
숫자는 맞았지만, 뭔가 개운하지 않았다.
동전을 손에 쥐고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이게 끝이 아닐 것 같은데.'
박현아 씨는 서류를 정리하며 낮게 중얼거렸다.
"견습생 같은 게 왜 하필 내 구역에..."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나는 분명히 들었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저 사람, 아직 안 끝났다는 소리네.'
오늘 일은 우연한 실수가 아니었다.
이건 시작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실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길드 문을 나서면서, 나는 뒤를 한 번 돌아봤다.
박현아 씨는 여전히 서류에 시선을 박고 있었지만, 그 눈빛만은 정확히 내 등을 따라오고 있었다.
'저 사람, 다음엔 무슨 수를 쓸까.'
나는 괜히 목덜미를 문지르며 걸음을 서둘렀다.
'설마 은엽초 뽑는 것마다 시비 걸겠어.'
그렇게 애써 넘기려 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자꾸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