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삐걱거리는 소리가 두 번째로 울렸을 때, 나는 이미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머릿속 계산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의 무게, 사슬이 걸린 각도, 그 사슬이 끊어졌을 때 떨어질 궤적, 이현이 있는 위치, 윤하은이 서 있는 자리─그 다섯 가지를 대충 겹쳐 놓았을 때, 답은 하나였다.
이현은 늦는다.
각도로 보면 사슬이 끊어지는 지점에서 윤하은까지는 대략 두 걸음. 이현이 앉은 상석에서 그 자리까지는 최소 다섯 걸음. 아무리 빨라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거리였다.
원작에서는 정확히 이 순간, 화면이 전환되며 그가 순식간에 달려와 그녀를 밀쳐낸다. 남자 주인공답게 등장부터 화려했다. 카메라 워크까지 완벽했던 그 장면을, 나는 관전자로서 몇 번이나 돌려봤던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여전히 상석에 앉아 있었다. 사슬이 이상하다는 걸 아직 눈치채지 못한 얼굴로, 옆 사람과 담소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왜 안 움직여.'
답은 뻔했다. 원작에서 이 장면이 발동하는 조건은 아마 특정 대사, 특정 타이밍, 어쩌면 윤하은이 특정한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었을 것이다. 지금 이 세계는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었고, 현실은 스크립트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트리거가 없으면 이벤트는 발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트리거가 사람의 목숨이라면, 발동하지 않는 게 오히려 정상 아닌가.
'생각할 시간이 없어.'
계산이 끝나기도 전에 다리가 먼저 튀어 나갔다. 머리보다 몸이 빨랐다는 게, 나중에 돌이켜 보면 우스울 정도로 명확했다.
사슬이 끊어지는 소리를 들은 건 거의 동시였다. 짧고, 날카롭고, 되돌릴 수 없는 소리. 쇠와 쇠가 갈리다가 끝내 뚝, 하고 끊어지는 그 소리는 마치 시간이 잘려 나가는 소리 같았다.
나는 앞으로 몸을 던지며 윤하은의 어깨를 밀쳤다. 그녀가 균형을 잃고 반대쪽으로 넘어지는 걸 보았다. 그 순간에는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직후, 시야 왼쪽이 뜨거워졌다.
뜨겁다고 인식한 순간에는 이미 통증이었다.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얼굴 왼쪽을 긋고 어깨로 떨어졌다. 유리와 금속이 부서지는 소음이 귓속을 가득 채웠다. 크리스털 조각들이 바닥에 부딪히며 튀는 소리, 촛대가 넘어지며 불씨가 흩날리는 소리, 그 위로 겹쳐지는 사람들의 비명. 바닥이 흔들렸다.
'생각보다.'
아프다. 그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에는 아무런 계산도 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각도와 거리를 재던 머리가, 지금은 통증 하나에 완전히 잠식당해 있었다.
시야가 흐려졌다. 붉은 것이 뚝뚝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눈앞이 흔들리는 촛불처럼 자꾸만 번져 보였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윤하은의 목소리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강서리 양…… 강서리 양!"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다급하고, 갈라지고, 울음이 섞인 목소리였다. 나는 대답하려 했지만, 입에서는 이상한 숨소리만 나왔다.
'괜찮다고 해야 하는데.'
그런데 그 말이, 지금 상황에서는 도저히 사실이 아니었다.
안 괜찮았다.
머릿속으로는 세 글자를 만들었다가, 그 세 글자를 발음할 근육조차 지금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상황을 정리하려 하고 있었다.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누군가 소리쳤다.
"의료반, 의료반 불러!"
또 다른 목소리가 겹쳤다. "샹들리에가 왜 갑자기……" "저 아가씨가 밀친 거 봤어?" "숙녀분이 대신 맞은 거야, 세상에." 발소리가 뒤엉켰다. 치맛자락이 스치는 소리,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 누군가 유리 조각을 밟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까지 뒤섞여 홀 전체가 하나의 아우성이 됐다.
나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와 얼굴을 쪼갠 듯한 통증 사이에서 필사적으로 눈을 뜨려 했다. 눈을 뜨는 것조차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싶을 정도로, 눈꺼풀이 천근처럼 무거웠다.
멀리서, 아니 어쩌면 가까이서, 이현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다. 확신할 수는 없었다. 소리들이 전부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뭉개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눈에 들어온 건, 새하얗게 질린 윤하은의 얼굴이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아니라 공포가 먼저 차오르는 걸 보았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두 손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허공에서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저 얼굴, 낯익다.'
원작 CG에서 본 적이 있는 표정이었다. 다만 그 CG에서는 그녀가 이현에게 안겨 있었고,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심지어 그 장면에서 나는 존재조차 언급되지 않는 조연이었다.
'계획대로 안 됐네.'
의식이 끊기기 직전, 어이없게도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서지 않겠다던 세 번째 계획은, 몸이 먼저 반응하는 순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첫 번째 계획도, 두 번째 계획도 이미 물 건너간 뒤였다. 이번이 세 번째였다. 세 번 연속으로 계획이 무너진 셈이었다. 이쯤이면 계획이라는 단어 자체를 재검토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음엔 계획을 세우지 말아야 하나.'
이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어이없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와중에도 머리는 끝까지 실무적인 결론을 내리려 하고 있었다.
어둠이 시야를 완전히 덮기 전,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단순했다.
'이것도, 예지가 맞았다는 뜻인가.'
내가 봤던 그 꿈─아니, 예지라고 불러야 할 그 조각들─그 안에서 나는 분명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그때는 그저 흐릿한 장면 하나로만 남아 있던 것이, 지금 이 순간과 정확히 겹쳐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다음 장면도 이미 정해져 있는 걸까.
그 질문에 답을 내릴 틈도 없이, 모든 것이 검게 변했다.
암전 속에서도 희미하게, 누군가의 손이 내 어깨를 붙잡는 감각만은 끝까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