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십 년이었다.
여명 클랜 지하 3층, 해체실 조명 아래서 보낸 세월이 딱 그만큼이었다. 마수의 가죽을 벗기고, 뼈를 발라내고, 쓸모없다고 버려지는 부산물 속에서 진짜 값나가는 걸 찾아내는 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었지만, 나는 그 일을 사랑했다.
가죽 한 장을 벗기는 데도 순서가 있다. 어디서부터 칼을 넣어야 상품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지, 어느 각도로 힘을 줘야 뼈에서 살이 깔끔하게 분리되는지. 그런 걸 하나씩 익히는 데 삼 년이 걸렸다. 나머지 칠 년은 그 감각을 몸에 새기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 십 년이 서류 한 장으로 끝났다.
"이도진 씨. 이번 기부터 소재 부문 예산이 재편됩니다."
노형준이었다. 스물아홉, 여명 클랜의 에이스. S급 마수를 혼자 잡아 온다는 그 노형준이 이번엔 경영진 자리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불과 이 년 전만 해도 저 자식은 내 밑에서 가죽 벗기는 법을 배우던 신입이었다. 손이 서툴러서 가죽을 다 망쳐놓고는 울상을 짓던 게 아직도 눈에 선한데.
"재편이라뇨?"
"말 그대로예요. 해체 인력 아웃소싱으로 전환합니다. 형님 자리는... 없어졌다고 보시면 돼요."
형님이라니. 어제까지만 해도 존댓말 한 마디 안 쓰던 놈이었다.
"제가 십 년을 여기서 일했습니다."
"알아요. 그래서 퇴직금은 규정대로 챙겨드리는 거고요."
규정대로.
그 말이 참 편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십 년을 규정 한 줄로 정리해버릴 수 있다니.
"혹시... 제 실력에 문제가 있었습니까?"
노형준은 웃었다. 비웃음인지 조소인지 구분이 안 되는, 딱 그 중간의 웃음이었다.
"실력은 좋죠. 근데 실력이 좋다고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AI 해체 로봇이 시간당 처리량이 형님의 네 배예요. 네 배."
숫자.
결국 다 숫자였다.
"그 로봇이 부산물에서 숨겨진 마정석을 찾아낼 수 있습니까? 겉가죽만 보고 안쪽 뼈 상태를 짐작할 수 있어요?"
내 목소리가 조금 떨렸던 것 같다.
"그런 건 이제 스캐너가 다 해요, 형님. 세상이 바뀌었다니까요?"
세상이 바뀌었다는 그 말이, 마치 내가 낡아빠진 유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뭐라 대답을 하려다 말았다. 어떤 말을 해도 이미 결정된 걸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짐 정리는 오늘 안에 부탁드립니다. 보안팀이 동행할 거예요."
보안팀이라니. 십 년 일한 사람을 도둑 취급하는 건가.
"제가 뭘 훔쳐 나갈까 봐 그러십니까?"
"절차예요, 절차. 다 그렇게 해요."
절차와 규정. 이 클랜에서 사람을 자를 때 쓰는 단어는 딱 그 두 개뿐인가 보다.
그래도 될까? 이게 맞는 걸까?
생각이 꼬리를 물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지하 3층으로 내려가는 길, 후배들이 하나둘 고개를 숙였다.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다들 알고 있었던 거다. 나만 몰랐던 거고.
복도에서 마주친 정 대리는 아예 다른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삼 년 전 회식 때 내 어깨를 두드리며 "형님 덕분에 배운 게 많다"고 하던 그 입으로, 오늘은 인사 한 마디 건네지 않았다.
원래 이런 건가. 사람 관계라는 게 이렇게 얇은 건가.
해체실 문을 열었다. 익숙한 냄새, 익숙한 조명, 익숙한 작업대.
작업대 위에 남은 칼자국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삼 년 전 오크 킹 가죽을 벗기다 실수로 낸 자국이고, 저쪽 건 재작년 트롤 뼈를 바르다가 힘 조절을 잘못해서 생긴 흠집이다. 이 방 어디를 봐도 내 십 년이 새겨져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칼을 챙겼다. 십 년 동안 써온 내 손때 묻은 칼. 손잡이 가죽이 다 닳아서 반질반질했다. 이것만은 규정에도 없을 테니 가져가도 되겠지.
보안팀 직원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내가 뭐라도 훔쳐 갈까 봐 걱정하는 것처럼. 서른 살이나 됐을까 싶은 젊은 직원이었는데, 눈도 못 마주치고 발끝만 보고 있었다. 저 사람도 이 일이 편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서러웠다.
서럽다는 감정이 이렇게 배 속부터 올라오는 건 줄 몰랐다.
작업대 서랍을 열었다. 숫돌 하나, 여분의 장갑 몇 켤레, 그리고 언젠가 후배가 선물이라며 준 손목 보호대. 다 챙겼다. 어차피 다시는 못 쓸 물건들이지만, 그냥 두고 가기는 싫었다.
"이도진 선배님..."
후배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반입 담당 막내였다. 입사한 지 이제 육 개월쯤 됐을까. 나한테 가죽 벗기는 법을 배운 지 얼마 안 된 아이였다.
"괜찮아. 다 괜찮아."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다고 말하는 게 어른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목이 메어서 다음 말은 나오지 않았다.
막내가 뭔가 더 말하려다가, 보안팀 눈치를 보더니 그냥 고개를 숙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 뒷모습이 유독 작아 보였다.
짐은 박스 하나에 다 들어갔다.
십 년의 무게가 겨우 박스 하나라니.
박스를 들고 해체실을 나서는데, 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 뒤를 돌아봤다. 이제 두 번 다시 볼 일 없을 방이었다.
클랜 건물 밖으로 나오자 저녁 공기가 차가웠다. 늦가을이었고, 가로등 불빛 아래 내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건물 정문을 나서면서 뒤를 한 번 더 돌아봤다. 여명 클랜. 십 년 전 처음 저 간판을 올려다볼 때는 여기서 뼈를 묻을 줄 알았는데.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계속 생각했다.
이제 뭘 해야 하나?
서른넷. 마수 해체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나이. 이력서에 뭐라고 써야 하나. "마수 해체 10년 경력"이라고 써봤자, 세상은 그걸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걸 오늘 확인했으니까.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봤다. 십 년 전보다 눈가에 주름이 늘었고, 머리도 좀 셌다. 그 십 년을 다 여명 클랜에 갈아 넣었는데, 돌아온 건 박스 하나와 통장에 찍힌 숫자 몇 개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보다 먼저 잘린 선배들, 다들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집에 도착했을 때는 밤 열 시가 넘어 있었다.
작은 원룸, 낡은 컴퓨터 한 대, 그리고 텅 빈 통장 잔고.
월세는 다음 주가 마감이었다.
통장을 확인했다. 퇴직금이 들어와 있긴 했지만, 그것도 몇 달이면 바닥날 액수였다.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월세, 관리비, 최소한의 식비. 아무리 아껴 써도 다섯 달을 넘기기 힘들었다.
뭘 해야 하나.
뭘 해야, 살아남을 수 있나.
핸드폰을 꺼내 구인 사이트를 뒤져봤다. 마수 해체 관련 채용 공고는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마저도 전부 대형 로봇 운용 인력을 뽑고 있었다. 사람 손으로 하는 해체는 이제 정말로 사양산업이 되어버린 건가.
컴퓨터를 켰다. 딱히 목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뭐라도 보고 싶었다.
인터넷 방송 플랫폼이 화면에 떴다. 실시간 인기 순위에는 게임 방송, 먹방, 잡담 방송들이 줄지어 있었다.
화면 속 사람들은 다들 웃고 있었다. 채팅창은 실시간으로 후원 알림이 올라오고 있었고. 저 사람들은 저렇게 웃으면서 돈을 버는데, 나는 오늘 십 년 일한 직장에서 박스 하나 들고 쫓겨났는데.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내가 할 줄 아는 건 하나뿐이라는 걸.
마수를 해체하는 일.
그걸... 보여주면 안 될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누가 마수 해체하는 걸 보겠다고 방송을 보나. 먹방도 아니고, 게임도 아니고. 하지만 그 순간, 통장 잔고를 다시 확인하며 나는 계정을 하나 만들고 있었다.
채널명을 뭐라고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냥 내 이름을 넣기로 했다. 화려한 이름은 어차피 생각도 안 났고, 꾸밀 여유도 없었다.
[이도진의 해체실]
프로필 사진을 넣을까 하다가 그냥 넘겼다. 방송 제목도 뭐라고 써야 할지 몰라서 한참을 비워뒀다가, "마수 해체 십 년 경력, 첫 방송입니다"라고만 적었다.
방송 시작 버튼에 마우스 커서를 올려놓은 채,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이게 맞는 선택일까?
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손가락은 이미 클릭을 누르고 있었다.
화면 한쪽 구석에 조그맣게 시청자 수가 떴다.
0명.
당연했다. 방금 만든 채널을 누가 알겠나. 그래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마치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마이크를 켜고 뭐라도 말을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 안녕하세요."
내 목소리가 텅 빈 방 안에 어색하게 울렸다.
시청자 수는 여전히 0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