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새벽 한 시.
방송을 시작하기엔 최악의 시간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때는 그냥, 잠이 안 왔을 뿐이었다.
정확히는 잠이 안 오는 게 아니라 잠들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해고당한 날 밤에 이불 덮고 쿨쿨 자면 그게 인간인가. 짐승도 그렇게는 안 잘 거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예전에 깔아만 두고 켜본 적 없는 방송 앱을 열었다. 왜 하필 그 앱이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손이 그리로 갔다.
"안녕하세요... 이도진입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십 년 넘게 마수 부산물만 만지던 손으로 마이크 볼륨을 조절하려니 손가락이 낯설었다.
화면 구석에 뜬 시청자 수. 3명.
3명이라니. 이건 방송이 아니라 그냥 혼잣말 아닌가. 아니, 혼잣말도 이것보단 청중이 많겠다. 벽에 대고 말해도 벽은 최소한 도망은 안 가니까.
채팅창에 뭔가 올라왔다.
[뭐야이거]
[아저씨 누구세요]
[퇴장ㅋ]
퇴장이라는 글자를 남기고 시청자 수가 2명으로 줄었다.
괜찮다. 괜찮다고 생각했다. 처음이니까. 처음이니까 다 그런 거다. 뭐든 처음엔 다 이렇게 초라한 거라고, 스스로에게 세뇌하듯 되뇌었다.
박스에서 마수 부산물 하나를 꺼냈다. 예전에 클랜에서 몰래 챙겨온, 아니 정확히는 폐기 예정이라 아무도 신경 안 쓰던 삼급 마수의 사체 일부였다. 냉동실에 처박아뒀던 걸 꺼내니 비린내가 훅 끼쳤다. 이 냄새마저 반가운 걸 보면 나도 참 갈 데까지 간 모양이다.
"이게 삼급 마수 '아이언 보어'의 견갑 부위인데요, 여기 보시면..."
칼을 대는 순간,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십 년의 습관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뼈와 살 사이 결을 따라 칼끝이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이 감각 하나는 확실히 남아 있었다. 회사도 나를 버렸고 동료도 나를 버렸지만, 이 손끝의 감각만큼은 아직 배신하지 않았다.
[뭐하는거임]
[해체쇼임?]
[핏자국 너무 리얼한데 CG인가]
CG가 아니라 진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채팅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화면 하나, 카메라 각도 하나, 자막 하나 없이 맨몸으로 방송이란 걸 하려니 손발이 따로 노는 기분이었다.
"여기 이 부분이 실제로는 골동품상들이 눈독 들이는 부위인데, 대부분 그냥 버려지거든요."
남은 시청자는 1명.
1명한테 설명을 계속하는 게 맞는 걸까.
이럴 거면 그냥 카메라 끄고 자는 게 낫지 않을까.
근데 지금 자면, 오늘 하루가 완전히 실패로 끝나는 거 아닐까.
실패로 끝나는 게 뭐가 무섭다고, 이미 실패했잖아.
그래도, 그래도.
생각이 꼬리를 물었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했다. 다른 뭘 해야 할지 몰랐으니까.
삼십 분쯤 지났을 때, 시청자 수가 갑자기 5명으로 늘었다. 누군가 방송 링크를 어디선가 퍼트린 모양이었다.
[오 손 빠른데]
[이거 실제 해체사인듯]
[근데 왜 이 시간에 방송함]
[백수인가봄ㅋㅋ]
백수.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늘 해고당했으니까.
하지만 그 말이 가슴 한구석을 콕 찔렀다. 아무렇지 않게 던진 저 두 글자가 마치 오늘 하루 종일 참았던 뭔가를 건드린 것 같았다.
"저... 오늘 일을 그만두게 되어서요. 앞으로는 이렇게 방송으로 뵙게 될 것 같습니다."
말해놓고 나도 놀랐다. 이걸 왜 말했지. 3명, 아니 5명한테 이런 걸 고백할 이유가 있었나. 근데 이상하게 말하고 나니 속이 조금 뚫리는 기분이었다.
[불쌍하다ㅋㅋㅋ]
[망한거 축하드립니다]
[퇴장]
또 퇴장이었다.
마음 한구석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나는 계속 칼을 움직였다. 손을 멈추면 그 자리에서 무너질 것 같아서였다. 칼질이라도 하고 있어야 숨이 쉬어졌다.
두 시간쯤 흘렀을까. 시청자는 여전히 열 명 안팎을 오갔다. 늘었다가 줄었다가, 마치 파도치듯. 밀물과 썰물처럼, 왔다가 가고 왔다가 갔다.
손이 아팠다. 눈도 침침했다. 목도 잠겨서 말할 때마다 갈라진 소리가 났다.
그만할까.
그래도 될까.
어차피 아무도 안 보는데.
근데 열 명이라도 보는 사람이 있으니까 아무도 안 보는 건 아니잖아.
열 명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의미는 내가 부여하는 거 아닌가.
생각이 사슬처럼 이어졌지만,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새벽 세 시가 넘어 방송을 종료했다. 종료 버튼을 누르는 순간, 이상하게 허탈했다. 손끝에 남은 감각과 화면 속에 남은 숫자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컸다.
방송이 끝나고 통계 화면을 봤다. 최고 동시 시청자 수 열두 명. 누적 시청 시간 삼십칠 분.
초라했다. 이걸 방송이라고 부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이상하게, 조금은 후련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내 손을, 내 십 년을 보여줬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위안이 됐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나는 새벽마다 방송을 켰다. 시청자는 여전히 한 자릿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어떤 날은 세 명, 어떤 날은 일곱 명. 늘 그 언저리였다.
[또 저 아저씨네]
[진짜 매일 하네ㅋㅋ]
[취미로 하는건가]
취미가 아니라 생존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런 말을 채팅창에 쓸 용기는 없었다. 취미로 보이는 게 차라리 나았다. 생존이라고 하면, 진짜 내가 벼랑 끝에 서 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니까.
매일 새벽 한 시, 나는 냉동실에서 뭔가를 꺼내 칼을 댔다. 어떤 날은 삼급 마수의 부산물, 어떤 날은 예전에 챙겨둔 손질 도구들. 재료가 떨어지면 예전 사진첩을 뒤져서 과거에 손질했던 부위들을 설명하기도 했다. 채팅창은 늘 한산했지만, 어느샌가 나는 그 한산함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일주일째 되던 날, 방송 도중 한 계정이 눈에 띄었다.
[다인다인]
닉네임이었다. 그 계정이 채팅을 남겼다.
[이 장면 다시 보여주실 수 있나요?]
처음 받아보는, 제대로 된 질문이었다. 심장이 살짝 뛰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반가운지.
"아, 네. 어느 부분 말씀이신가요?"
[방금 뼈 발라내는 부분이요. 각도 좀 다르게 잡아주실 수 있어요?]
각도라니. 이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지금까지는 그냥 화면에 뭐가 잡히든 상관없이 손만 움직였는데, 저런 요청은 처음이었다.
나는 카메라 각도를 조금 조정했다. 손이 떨렸다. 누군가 진지하게 내 작업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 줄 몰랐다.
[감사합니다. 손 진짜 정확하시네요]
칭찬. 이게 얼마 만에 듣는 칭찬인지 몰랐다. 회사에서 잘리기 직전까지 들었던 말은 죄다 질책이거나 비아냥이었으니까. 정확하다는 말 한마디에 눈시울이 뜨거워질 뻔했다.
[이거 편집해서 짧게 올려도 될까요? 제 채널이 작은데]
채널을 하나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 네. 괜찮으시면요."
별생각 없이 허락했다. 어차피 시청자도 몇 명 없는 방송인데, 편집이든 뭐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작은 채널이라니, 나만큼이나 초라한 곳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날 밤, 그 결정이 내 인생을 바꿔놓을 줄은 몰랐다.
방송을 끄고 잠자리에 들려는데, 스마트폰 알림이 미친 듯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뭐지?
처음엔 오작동인 줄 알았다. 알림이 이렇게 연달아 울리는 건 살면서 몇 번 겪어보지 못한 일이었다.
알림창을 열어보니, 낯선 앱에서 온 알림들이 수십 개가 쌓여 있었다.
[다인다인님이 회원님을 태그했습니다]
[조회수 1만을 돌파했습니다]
1만.
숫자가 잘못 뜬 게 아닐까 싶어서 다시 확인했다. 손가락이 화면을 몇 번이고 눌러댔다. 새로고침을 해도, 앱을 껐다 켜도 숫자는 그대로였다.
분명히 1만이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열두 명, 열두 명이었던 세상이 갑자기 만 명으로 불어난 기분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손이 벌벌 떨려 화면을 제대로 넘길 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