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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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주, 마을에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시작은 별거 아니었다.
미륵상 관리를 맡고 있던 이장님 할머니가 저녁마다 석상 앞에서 반짝이는 부스러기를 발견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거다.
"거 이상하다니까. 요새 미륵님 앞에 반짝이는 게 자꾸 떨어져 있어."
할머니는 마을 회관 평상에 앉아있는 노인들을 붙잡고 그 얘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처음엔 그냥 웃어넘기던 사람들도, 두 번 세 번 같은 얘기를 듣자 슬슬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게 뭔 색이여? 금색이여?"
"아녀, 불그스름한 게 꼭 보석 같더라니까."
"미륵님이 영험하신 게지."
그 얘기가 정미소 아저씨 귀에 들어가고, 그 아저씨가 마트 아줌마한테 얘기하고, 마트 아줌마가 우리 옆집 할아버지한테 얘기하는 걸 나는 하필 마트 앞에서 두 귀로 똑똑히 들었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다홍이 흘리고 다닌 거잖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소문이 이렇게까지 퍼졌으면 조만간 누군가 직접 확인하러 갈 게 뻔했다. 그리고 만약 그 부스러기가 진짜 마석이라는 게 밝혀지면, 그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날 저녁, 나는 다홍을 붙잡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조심 좀 해. 사람들 눈치 채면 어쩌려고."
"흘린 거 아니고 남은 거예요. 마석 만들다 보면 부스러기 좀 생겨요."
다홍이 뻔뻔하게 대꾸했다.
"그니까 그걸 좀 치우라고."
"오빠가 치워요. 저는 손이 안 닿잖아요."
소녀가 손을 뻗어 부스러기 하나를 집으려 했지만, 손끝이 그대로 바닥을 통과했다. 마치 물속에 손을 담그듯 아무런 저항 없이 스윽 지나가버렸다.
"거봐요."
다홍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그럼 애초에 흘리질 말든가."
"마석이 원래 좀 흘려요. 저도 이거 처음 만들어봐서 그래요."
말은 그렇게 해도 표정엔 미안한 기색이 살짝 스쳤다. 나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내가 몰래 부스러기를 주워 주머니에 넣으려는 순간, 하필 그때 이장님 할머니가 골목을 돌아 나왔다.
"어이구, 도현이 아니냐."
할머니가 눈을 크게 떴다.
"밤늦게 여기서 뭐 해."
나는 순간 얼음이 됐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주머니 속 마석 부스러기가 손안에서 뜨끈하게 느껴졌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 그냥... 산책이요."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산책은 무슨. 너 요즘 여기 자주 오더라. 그 소문 들었니? 미륵님 앞에 반짝이는 거 떨어진다는."
할머니가 미륵상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손전등을 켜고 바닥을 이리저리 비추면서.
다홍의 형체는 이미 빛 알갱이로 흩어져 있었지만, 만약 할머니가 저 근처를 살피다가 뭔가 이상한 걸 발견하면 곤란했다. 마석 부스러기가 저기 몇 개 더 떨어져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급하게 할머니 앞을 막아섰다.
"할머니, 저기 요즘 길고양이들 많아서요. 걔들 눈이 반짝이는 거 아닐까요?"
말이 되든 안 되든 일단 뱉었다. 사실 고양이 눈이 밤에 반짝이는 건 맞지만, 저렇게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잠깐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하긴 요새 고양이가 늘긴 했지. 뒷집 삼순이네 고양이가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았다더라."
다행히 위기를 넘겼다. 할머니는 삼순이네 고양이 얘기를 몇 마디 더 늘어놓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갔다.
할머니가 돌아가자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 있었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다홍이 다시 형체를 갖추고 나타나 킥킥 웃었다.
"고양이래요, 오빠."
"웃지 마.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근데 오빠 진짜 순발력 좋아요. 저였으면 그냥 얼어붙었을 텐데."
"칭찬이야, 뭐야."
"칭찬이죠. 킥킥."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냈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일어나는 데도 시간이 좀 걸렸다.
"이런 일 또 생기면 진짜 곤란해. 부스러기 좀 알아서 잘 처리해."
"노력할게요."
"노력 말고 확실하게."
"넵넵."
건성으로 대답하는 게 영 미덥지 않았지만, 더 따져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폐창고 지하실로 향했다.
뒷산 초입에 있는, 오래전 마을 창고로 쓰이던 낡은 건물이었다. 예전에는 농기구나 비료 포대를 쌓아두던 곳이라고 들었는데,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건물 외벽은 페인트가 다 벗겨져 회색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지붕 한쪽은 반쯤 내려앉아 있었다.
녹슨 철문 안쪽으로 계단이 지하로 이어져 있었다. 계단 난간은 이미 부식돼서 손을 대면 바스러질 것 같았다.
삐걱.
낡은 문이 힘겹게 열렸다.
먼지 냄새가 훅 끼쳤다. 오랫동안 사람 손이 닿지 않은 공간 특유의, 눅눅하고 텁텁한 냄새였다.
손전등을 켜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발밑에서 콘크리트 부스러기가 서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벽면 곳곳엔 거미줄이 두껍게 얽혀 있었고, 천장에서 물방울이 똑, 똑 떨어지는 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여기 진짜 아무도 모르는 거 맞죠?"
"몰라. 아무도 안 오는 거 확실해. 마을 사람들도 여기 폐창고 있는 거 잊은 지 오래야."
"그럼 다행이고요."
지하실 안쪽까지 내려가자 제법 넓은 공간이 나왔다. 원래 뭘 보관하던 곳인지 바닥엔 녹슨 선반들이 쓰러져 있고, 구석엔 정체 모를 부대자루들이 곰팡이가 핀 채 방치돼 있었다.
"여기예요."
다홍이 지하실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여기다 마석 씨앗을 심으면, 던전이 자라기 시작해요."
나는 다홍이 건넨 주먹만 한 마석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손끝이 저릿했다. 마석 표면은 매끄러우면서도 미세한 요철이 있었고, 만지는 순간 손끝을 타고 알 수 없는 기운이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시작이구나.'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게 성공하면 정말로 던전을 소유하게 되는 거다. 나만의 던전, 나만의 사냥터. 상상만 해도 짜릿했다.
다홍이 손을 뻗어 마석 위에 얹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마석 표면에 닿는 순간, 지하실 공기가 미묘하게 변하는 게 느껴졌다.
웅.
낮은 진동음이 지하실 전체를 울렸다.
바닥에서 희미한 빛줄기가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뿌리가 자라듯, 사방으로 실금 같은 빛이 퍼져 나갔다. 빛은 처음엔 은은한 푸른빛이었다가, 점점 밝기를 더해갔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봤다. 벽을 타고 오르는 빛줄기, 천장까지 뻗어가는 실선들. 지하실 전체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은은하게 맥동하는 것 같았다.
"성공이다."
나는 감탄했다.
목소리에 흥분이 그대로 묻어났다.
그런데 그 순간, 빛줄기 하나가 갑자기 방향을 바꿨다.
원래대로라면 바닥과 벽을 타고 은은하게 퍼져야 할 빛이, 한곳으로 확 쏠리며 검붉게 변했다.
지지직.
전기가 튀는 듯한 소리가 지하실을 채웠다.
"어, 어?"
다홍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이거... 이상해요."
"뭐가."
목소리가 저절로 낮아졌다.
"이 반응, 제가 만든 게 아니에요."
다홍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지금까지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던 그녀가, 지금은 눈에 띄게 당황하고 있었다.
'뭔가 잘못됐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손전등 불빛이 흔들렸다. 나도 모르게 손이 떨리고 있었던 거다.
지하실 안쪽, 어둠에 잠긴 벽면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