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야근 대신 마수 잡습니다

3화

밥을 먹는 내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숟가락질조차 서툴렀다. 손목에 힘이 부족했고, 팔은 짧아 밥그릇까지 거리가 애매했다. 숟가락을 쥐는 손아귀 힘 자체가 예전과 달랐다. 서른둘 해 동안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가락이, 이제는 숟가락 하나 제대로 쥐지 못했다. 국물이 자꾸 턱으로 흘렀다. 한 숟갈 뜨려다 반은 흘리고, 겨우 입에 넣은 것도 절반은 옷깃으로 샜다. '이게 뭐야, 손이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머릿속으로는 분명 정확한 궤적을 그리고 있었는데, 실제로 움직이는 팔은 전혀 다른 곳으로 갔다. 옆에 앉은 서너 명의 아이들이 나를 힐끔거렸다. 그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서아 언니 왜 그래?"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물었다. 언니라는 말에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서른둘 살 강민준이,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 무리에서 언니 소리를 듣는다는 게, 우습다 못해 서글펐다. '언니라니. 나 회사에서 팀장님 소리 듣던 사람인데.' 그 생각이 들자마자 더 헛웃음이 났다. 이제 팀장님은 무슨, 언니 소리도 감사히 받아야 할 처지였다. "아니야." 짧게 답했다. 목소리마저 내가 알던 그것이 아니었다. 가늘고 높은, 낯선 음색. 내 목소리라는 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식탁 너머로 아까 그 여자, 원장 선생님이라 불리는 사람이 나를 계속 살펴보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눈빛이었다. 마치 병원에서 환자 상태를 살피는 간호사 같은 표정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나는 원장실로 불려 갔다. 좁은 방, 낡은 책상, 서류철들. 한쪽 벽에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이 압정으로 고정되어 있었고, 색이 바랜 달력이 걸려 있었다. 책상 위에는 종이컵에 담긴 믹스커피가 놓여 있었는데, 김이 채 다 가시지 않은 걸 보니 방금 타 온 모양이었다. 원장 선생님은 내 앞에 앉아 눈높이를 맞추려 애썼다.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숙여 내 시선과 맞추는 그 자세가,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서아야, 아까 한 말 있잖아. 강, 뭐였지?" "강민준이요." 또박또박 말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발음이 뭉개져서 나왔다. "그래, 그 얘기 좀 더 해줄 수 있어?" 나는 잠시 고민했다. 말해도 되는 걸까. 여기서 또 말해봤자 똑같은 반응이 돌아올 게 뻔했다. 하지만 지금 이 답답함을 풀 곳이 여기 말고는 없었다. 이 세상에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다. "저는 원래 서른둘 살 남자였어요. 회사에서 일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옥상에서 뛰어내렸는데, 깨어나 보니까 이 몸이었어요." 말을 뱉는 내 목소리가 스스로도 이상하게 들렸다. 새된 발음, 어눌한 발화. 마음속으로는 또박또박 설명하고 있다고 느꼈는데, 실제로 나온 문장은 뚝뚝 끊기고 발음이 뭉개졌다. 원장 선생님은 잠시 침묵하더니, 부드럽게 웃었다. 그 미소가 오히려 더 아팠다. "서아야, 그거 꿈 아니었을까?" "아니에요, 진짜예요." "그래, 그래. 서아가 상상력이 참 풍부하구나." 상상력. 그 두 글자가 가슴을 후벼팠다. '상상력이 아니라 기억이라고. 진짜 살았던 삶이라고.' 속으로 아무리 외쳐도, 겉으로 나오는 건 어눌한 아이의 목소리뿐이었다. "진짜라니까요! 저 정일산업 다녔고, 조태영 팀장이라는 사람이 있었고, 손끝이 저렸고···" 말이 빨라질수록 발음은 더 뭉개졌다. 혀가 입안에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어금니 사이로 바람 새는 소리가 섞여 나왔다. 원장 선생님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안타깝다는 듯한 미소만 짙어졌다. 책상 위 서류철을 슬쩍 끌어당기며, 뭔가를 적어두려는 듯한 손짓도 보였다. '저거, 나 상담 기록 남기려는 거지.' 정신과 진료 소견서 같은 걸 떠올리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우리 서아, 요즘 텔레비전에서 회사원 나오는 드라마 봤나 보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래그래, 알았어. 이제 나가서 놀아도 돼."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나는 원장실 문을 나서며 깨달았다. 이 세계에서 내가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그건 그저 다섯 살짜리 아이의 헛소리로 취급된다는 사실을. 허망했다. 그마저도 회사원으로서의 지식과 경험은 여기서 써먹을 수 없다. 엑셀 함수를 다룰 줄 알고, 보고서 양식을 외우고 있고, 상사의 눈치를 보는 법을 안다는 게, 지금 이 작은 몸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이상한 아이로 낙인찍힐 뿐이었다. 복도를 걸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서른둘 살 성인 남자의 몸으로 이런 소리를 했다면, 적어도 누군가는 진지하게 들어줬을 텐데.' 하지만 지금은 다섯 살배기 여자아이일 뿐이었고, 그 사실만으로 모든 말은 헛소리가 되어버렸다. 몸이 작아지니 말의 무게마저 작아진 셈이었다. 며칠이 지났다. 나는 조금씩 이 몸에 익숙해져 갔다. 걸음걸이는 안정되었고, 숟가락질도 그럭저럭 흘리지 않게 됐다. 계단을 오를 때 다리가 후들거리던 것도 조금씩 줄었고, 손끝으로 작은 크레파스를 쥐는 것도 어렵지 않아졌다. 그런데 이상한 건, 몸이 익숙해질수록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도 나에게 야근을 요구하지 않았다. 아무도 나에게 오늘까지 맞춰야 한다고 카톡을 보내지 않았다. 새벽 두 시에 팀장의 전화가 울리는 일도 없었고, 월요일 아침 회의를 준비하며 밤을 새울 필요도 없었다. 밥은 정해진 시간에 나왔고, 잠은 원하는 만큼 잘 수 있었다. 낮잠 시간이 되면 이불을 덮고 눈을 감기만 하면 됐다. '이거,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스스로도 놀랐다. 서른둘 해를 살아온 어른의 자존심이, 다섯 살 아이의 몸속에서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보육원 원생들 사이에서 나는 서서히 '이상한 아이'로 굳어지고 있었다. "서아는 이상한 말만 해." "회사원이었대. 웃기지 않냐." "어제도 팀장이 어쨌다고 그랬어." "쟤랑 놀지 말자." 아이들의 놀림이 하나씩 쌓여갔다. 처음엔 그저 어이없다는 반응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시선에는 경계심마저 섞여 들어갔다. 몇몇 아이는 내가 다가가면 슬쩍 자리를 옮기기까지 했다. 선생님들도 나를 볼 때마다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다. 마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한 번은 보육사 한 명이 다른 보육사에게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쟤, 상담 받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계속 이상한 얘기 하던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상담이라니. 다음엔 무슨 검사까지 받게 되는 거야.' 그 눈빛이 쌓일수록, 나는 점점 입을 닫았다.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밥 먹을 때도, 놀이 시간에도, 나는 점점 혼자가 되어갔다. 혼자 구석에 앉아 벽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었고,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조태영 팀장의 얼굴을, 사무실 형광등 불빛을, 옥상의 차가운 바람을 떠올렸다. 그날 밤, 나는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다. 보육원 마당 너머로 골목길이 어둡게 뻗어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드문드문 웅덩이처럼 고여 있고, 그 사이사이는 깊은 어둠이었다. '나가고 싶다.' 어디로 갈지도 모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 답답한 시선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곳에 있는 한, 나는 영원히 '이상한 아이'로만 남을 것 같았다. 다섯 살 아이의 몸으로 무슨 대책이 있겠냐만, 서른둘 해를 산 머리는 자물쇠쯤은 딸 수 있었다. 나는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경첩이 삐걱거리지 않게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손잡이를 돌렸다. 복도는 어두웠고, 다른 아이들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작은 코 고는 소리와 이불 뒤척이는 소리만 방마다 새어 나왔다. 현관문 자물쇠는 다행히 아이 손으로도 돌릴 수 있는 종류였다. 딸깍- 문이 열렸다. 밤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서늘하고 습한 밤바람이 볼을 훑고 지나갔다. 나는 맨발에 슬리퍼만 신은 채로 골목으로 나섰다. '멀리는 안 가. 그냥, 잠깐만.' 그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다. 발이 향하는 대로 걷다 보니, 보육원의 불빛은 이미 저 멀리 사라져 있었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낯선 거리까지 나와 있었다. 가로등이 드문드문 서 있는 좁은 골목. 발밑으로 슬리퍼가 자꾸 벗겨질 듯 미끄러졌고, 아스팔트의 냉기가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났다. 타는 냄새 같기도 하고, 비린 냄새 같기도 한. '이게 무슨 냄새야.' 코를 찡그리며 걸음을 멈췄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인적은 전혀 없었고, 낡은 간판 하나가 바람에 삐걱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돌아가야 하나.' 발걸음을 돌리려는 그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저 멀리 골목 끝에서 뭔가 번쩍하는 빛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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