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크르르르르릉···!"
울음소리와 동시에, 골목 안쪽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콘크리트가 갈라지는 듯한 육중한 소리.
곧이어 철제 셔터가 우그러지는 소리가 뒤따랐다.
요원들의 표정이 일순간 굳었다.
"뭐야, 저놈 왜 이쪽으로 와!"
"오수정 요원, 상황 보고!"
무전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뒤섞였다.
"놓쳤습니다, 반복합니다, 놓쳤습니다! 크기가 예상치를 벗어났어요!"
오수정의 목소리가 잡음 사이로 끊어질 듯 이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골목 어귀에서 검은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보다 훨씬 커져 있었다.
처음 골목 초입에서 봤을 때는 사람 두어 명 크기였는데, 지금은 거의 트럭 한 대를 세워둔 것 같은 덩치였다.
뿔은 더 길어졌고, 눈 자리의 빛은 더 강렬하게 흔들렸다.
그 빛이 흔들릴 때마다, 마치 화면이 깨진 텔레비전을 보는 것처럼 시야 가장자리가 지끈거렸다.
오수정, 태양검사라 불리던 그녀가 그 뒤를 쫓으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지만, 형체는 그녀의 공격을 흘리듯 피해 앞으로 밀고 나오고 있었다.
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노란 빛줄기가 잔상처럼 남았다가 흩어졌다.
"놓치면 안 돼!"
그녀가 외쳤다.
목소리에 이미 지친 기색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이미 형체는 요원들이 모여 있는 골목 중앙까지 다다랐다.
요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전투 태세를 취했다.
누군가는 방패를 들었고, 누군가는 총구를 겨눴지만, 그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를 붙잡고 있던 요원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의 시선은 이미 형체에게로 쏠려 있었다.
손아귀의 압력이 사라진 순간, 나는 그것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애는 뒤로!"
누군가 외쳤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실제로 옮겨주지 않았다.
다들 저마다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싸움을 준비하느라, 다섯 살짜리 하나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다섯 살 아이의 몸으로, 나는 그저 그 자리에 굳어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움직여야 해. 움직여야···'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머리는 아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게 이렇게 절망적인 감각이라는 걸, 나는 그제야 실감했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못으로 바닥에 고정된 것 같았다.
발목부터 허벅지까지, 감각이 아예 사라진 것처럼 무거웠다.
숨을 쉬려 해도 가슴이 딱딱하게 뭉쳐서 잘 들어가지 않았다.
형체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흔들리는 빛 두 점이, 정확히 내 쪽을 향했다.
숨이 멎었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한순간 뚝 끊긴 것 같았다.
"크르르르릉···"
낮은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 소리가 배 속까지 진동으로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요원 하나가 앞을 막아섰지만, 형체는 그를 가볍게 튕겨냈다.
퉁-! 탁-!
요원의 몸이 벽에 부딪혀 나가떨어졌다.
비명이 골목을 가득 채웠다.
"으악!"
떨어진 요원은 팔을 감싸 쥐며 바닥을 굴렀다.
다른 요원들이 달려들었지만, 형체는 그마저 흘려내며 계속 내 쪽으로 다가왔다.
방패를 든 요원 하나가 형체의 팔에 부딪혀 뒤로 튕겨나갔고, 총성이 몇 번 울렸지만 검은 살덩이는 흠집조차 나지 않는 듯했다.
마치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오직 나만을 목표로 삼은 것처럼.
'왜 나야, 왜···'
답을 찾을 시간은 없었다.
형체가 거리를 좁혀왔다.
한 걸음, 한 걸음, 지면이 울릴 정도로 무겁게.
검은 안개 같은 팔이 뻗어 나왔다.
그 팔의 형상이, 순간 낯익게 느껴졌다.
조태영 팀장의 손짓.
메신저를 보낼 때마다 눈치도 없이 웃던 그 표정이, 검은 형체의 흔들리는 빛 위에 겹쳐 보였다.
'오늘까지 맞춰야 해. 알지?'
귓가에 그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책상 위에 쌓인 서류 더미, 모니터 오른쪽 아래 깜빡이는 시계, 그 시계가 자정을 넘길 때마다 느꼈던 그 익숙한 무기력함까지, 전부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환상인지 진짜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분명 여기가 골목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 몸은 그때 그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처럼 반응하고 있었다.
허리가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등이 굽고, 목이 아래로 처졌다.
마치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처럼.
숨이 가빠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손바닥은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
무섭다.
그 한마디가 겨우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 형체의 팔이 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썩은 흙냄새 같은, 아니 그보다 더 짙고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서아야!"
오수정이 외치는 소리가 멀게 들렸다.
그녀가 달려오고 있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검을 쥔 손이 허공을 갈랐지만 형체의 등에도 닿지 못했다.
요원들도 다시 일어나 달려오고 있었지만, 역시 늦었다.
누군가 무전기에 대고 "지원 요청, 즉시 지원 요청!"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소리조차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완전히 갇혀 있었다.
앞은 검은 형체, 뒤는 부서진 담벽.
도망칠 곳이 없었다.
담벽을 붙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손끝이 벽돌 표면을 스치기만 할 뿐, 몸을 지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순간, 손끝에서 그 익숙한 저릿함이 폭발적으로 치솟았다.
예전, 회사 책상 앞에서 느꼈던 그 미세한 감각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렬했다.
그때는 손끝이 살짝 가려운 정도였는데, 지금은 마치 정전기가 온몸을 관통하는 것 같았다.
마치 손끝에서부터 무언가가 터져 나오려는 것처럼.
'이게 뭐야, 이게 왜···'
손가락 끝이 뜨거워졌다.
아니, 뜨거운 게 아니라, 무언가가 그 안에서 형태를 갖추려 하고 있었다.
혈관을 타고 그 저릿함이 손목, 팔꿈치, 어깨까지 순식간에 번져 올라갔다.
검은 형체의 팔이 나를 붙잡으려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짧은 순간에도 머릿속엔 오만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야근하던 밤들, 팀장의 웃음, 다섯 살짜리 몸으로 다시 태어난 이 낯선 삶까지.
온몸에서 억눌려 있던 무언가가, 한꺼번에 터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10년 넘게 참아왔던 모든 감정이 한 번에 폭발하는 것처럼.
손끝에서 무언가가 쩌저저적, 소리를 내며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순간 골목 전체가 갑자기 새하얀 빛에 휩싸였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빛은 눈을 감고 있는데도 눈꺼풀을 뚫고 들어올 만큼 눈부셨고, 그 안에서 누군가의 비명 같은 소리와 오수정의 외침이 뒤섞여 들려왔다.
'뭐지, 이거···'
몸 안에서 무언가가 계속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멈추고 싶어도 멈춰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나는 내 손끝이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