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꼬마 배신자, 정체 들켰다

2화

파란빛은 순식간에 록그렘린 세 마리 사이를 관통했다. 쾅! 록그렘린 한 마리의 머리가 그대로 터져 나갔다. 살점 같은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쾅! 두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세 번째는 뒤로 도망치려 했지만, 파란빛이 다시 한번 그 앞을 가로질렀다. 쾅! 세 마리 모두 사라졌다. 던전 안이 순간적으로 조용해졌다. 물소리도,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굳은 채 서 있었다. 손끝이 떨려서 스마트폰을 든 손을 겨우 붙잡았다. '뭐야, 저거.'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세 마리를 한 번에 죽였어.' 내가 사흘째 붙어 다니며 몰아넣으려던 록그렘린이었다. 그걸 누군가 순식간에, 그것도 아무렇지 않게 처리해버렸다. "괜찮아?" 누군가가 쓰러진 남자에게 물었다. 목소리가 밝고 높았다. 남자는 고개만 끄덕였다. 방금 록그렘린에게 밀려 넘어졌던 탐험가였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청색 쌍둥이 테일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핀은 상어 모양이었다. 파란 눈동자가 나를 바로 응시했다. 웃을 때 살짝 드러나는 이빨은 톱니바퀴처럼 뾰족했다. 옷차림도 눈에 띄었다. 검은 후드에 은색 지퍼가 달려 있었는데, 브랜드 로고가 왼쪽 가슴에 작게 박혀 있었다. 내가 인터넷에서 몇 번 본 적 있는, 한정판으로만 풀린다는 그 브랜드였다. '리아.' 나는 곧바로 알아챘다. 구독자 백만 명의 스타 배신자, 리아였다. 방송에서 몇 번 본 얼굴이었다. 실제로 보니 방송보다 체구가 작았다. 키는 나보다 조금 큰 정도였고, 어깨도 좁았다. 그런데 방금 그 화력은 체구랑 전혀 안 맞았다. "어? 방금 그거 너였어?" 리아가 나를 향해 걸어오며 물었다. "록그렘린한테 몰래 다가가던 거." 발소리가 가벼웠다. 거리를 좁히는 속도가 빨랐다. 나는 대답 없이 뒷걸음쳤다. 발뒤꿈치가 돌부리에 걸려 순간 균형이 흔들렸다. "와, 진짜 조막만 하네." 리아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몇 살이야, 너? 여기 혼자 온 거야?" "..." 나는 입을 다물었다. 말을 하면 뭔가 들킬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계산이 빠르게 돌아갔다. '나이를 말하면 안 돼.' '몸에 안 맞는 목소리를 내면 안 돼.' '최대한 짧게, 최대한 적게.' "이름이 뭐야?" 리아가 다시 물었다. "에이라고 해요." 나는 겨우 대답했다. "에이? 방송하는 애구나!" 리아가 손뼉을 쳤다. "난 몰랐는데, 이런 애가 있었네!" 리아가 갑자기 무릎을 굽혀 내 눈높이에 맞췄다. 가까이서 보니 향수 냄새가 났다. 달콤하면서도 화한 향이었다. 리아는 시선을 내 발끝으로 내렸다. "어, 잠깐." 리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신발..." 나는 신고 있던 운동화를 보았다. 밑창이 다 닳은 만 원짜리 짝퉁이었다. 한쪽 끈은 아예 풀려서 질질 끌리고 있었다. 숨길 것도 없었다. "신발이 왜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발 사이즈가 이상하게..." 리아가 중얼거렸다. "뭔가 안 맞아, 이 몸에."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뭘 느낀 거지.'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설마.' '발 크기로 뭘 알아챈 건가.' '아니면 그냥 감으로 하는 소리인가.' 머릿속이 하얘졌다. "저, 저는 이만 가볼게요." 나는 말을 더듬으며 몸을 돌렸다. "잠깐만!" 리아가 손을 뻗어 내 어깨를 잡았다. 손목의 힘이 생각보다 강했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뼈에 닿는 느낌이었다. "왜 도망가?" 리아가 물었다. 눈빛이 장난스럽지만, 놓아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방송, 계속해야 돼서요..." 나는 겨우 대답했다. "방송? 나도 같이 나가면 되잖아!" 리아가 씩 웃었다. "너 방송 구독자 몇 명이야?"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말하기 싫었다. 그래도 계속 붙잡혀 있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팔... 명이요." 나는 작게 대답했다. "팔 명?!" 리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가 숲 전체에 울릴 정도로 컸다. "진짜 신기하다, 이 정도 실력인데 팔 명이라니!"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웃긴 게 아니라 부끄러웠다. '팔 명이 뭐가 웃겨.'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나라도 있는 게 감사한 거지.' "저 진짜 가야 돼요." 나는 다시 어깨를 빼려 했다. 그런데 리아가 내 앞으로 몸을 낮춰 다시 내 발을 유심히 쳐다봤다. 시선이 발목에서 종아리로, 종아리에서 다시 발등으로 오갔다. 관찰하는 눈빛이 아니라 뭔가를 확인하려는 눈빛이었다. "이상하다." 리아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발이... 뭔가 나이랑 안 맞는 느낌이야."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목덜미까지 축축해지는 게 느껴졌다. '들켰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야, 그냥 감이겠지.' '설마 이 몸이 원래 내 몸이 아니란 걸 알 리가 없어.' 머릿속으로 온갖 변명을 준비했다. 혹시 리아가 다시 물어보면 뭐라고 답할지 계속 되풀이했다. 그런데 리아가 갑자기 씩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됐다, 오늘은 여기까지." 리아가 말했다. "근데 나 너 진짜 궁금해졌어." 리아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손톱에 짙은 붉은 젤네일이 칠해져 있었다. "다음에 또 보자, 에이." 리아가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남기고 리아는 파란 궤적을 남기며 사라졌다. 라피도 마법이었다.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진 걸 보니, 방금 록그렘린 세 마리를 죽인 것도 저 마법이었을 게 분명했다. 남은 건 쓰러졌던 탐험가와 나뿐이었다. 탐험가는 아직도 바닥에 앉아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한참 서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움직일 수 없었다. 숨을 크게 몰아쉬고 나서야 겨우 다시 걸을 수 있었다. '또 보자니, 무슨 뜻이지.' 나는 계속 그 말을 되씹었다. '진짜 궁금해졌다는 게 무슨 뜻이지.' '그냥 지나가는 소리였을까.' '아니면 진짜로 다시 찾아올 생각인가.' 생각할수록 불안이 커졌다. 리아는 구독자 백만 명을 가진 스타였다. 방송에서 몇 번 본 얼굴이 아니라, 사실은 게시판에서도 종종 이름이 오르내리던 유명인이었다. 그런 사람이 나 같은 소규모 방송인에게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이유가 있다면, 그건 좋은 쪽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다시 들었다. 채팅창을 확인해보니 처음 보는 계정 하나가 새로 구독을 눌러 놓은 게 보였다. 닉네임은 '리아공식'이었다. 프로필 사진에는 상어 모양 머리핀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나는 그 이름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손이 떨려서 화면이 흔들렸다. '설마 진짜로.'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던전 안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등 뒤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