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야근왕의 이계 공장 제국

2화

화요일 새벽 1시 12분. 퇴근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시각이었다. 팀장이 "이거 내일까지만 되면 돼, 내일까지만"이라고 말한 지 정확히 사흘째였고, 그 "내일"은 오늘도 회의실 화이트보드 위에서 또 다른 "내일"로 갈아탔다. 지하철 막차를 놓쳐 택시를 잡아탔는데, 기사님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를 크게 틀어놓은 채 신나게 흥얼거리는 걸 보며 나는 창문에 이마를 기대고 이 세상에 나 혼자만 불행한 것 같다는, 지극히 흔하고 지극히 유치한 생각을 했다. 집에 들어와서도 씻지 않았다. 씻을 힘이 없었다. 노트북 가방을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고, 셔츠 단추를 두 개쯤 풀어젖힌 채로 책상 앞에 앉았을 때, 시선이 자연스럽게 책상 구석으로 향했다. 그 검은 큐브. 어제부터 저놈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서 야근하는 내내 코드를 짜다가도 문득 손이 멈추곤 했다. 팀장이 "너 오늘 좀 이상하다"라고 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회사 폐기물 창고에서 주워온 정체불명의 물건이 이렇게까지 사람을 잡아끌 수 있다는 게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10년 차 백엔드 개발자가 미신에 홀린 초등학생처럼 돌덩이 하나에 집착하는 꼴이라니, 누가 보면 정신과 진료를 권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인터넷을 뒤져봐도 이런 큐브에 관한 자료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검색어를 바꿔가며 시도했다. "검은 큐브 유물", "흑요석 정육면체 문양", "고대 유물 큐브", "손에 잡으면 따뜻한 돌", "정체불명 정육면체 온기". 전부 헛수고였다. 검색 결과라고 나오는 건 큐브 퍼즐 판매 사이트나 인테리어 소품 블로그가 전부였고, 그나마 유의미해 보이는 링크 하나는 클릭하자마자 "이 사이트에 연결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만 띄우고 죽어버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커뮤니티 게시판에 사진을 올려볼까 하다가, 이상하게도 손가락이 게시 버튼 위에서 멈췄다.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설명할 수 없는 직감이 발목을 잡았다. 마치 누군가가 뒤에서 "그거 올리지 마"라고 속삭이는 느낌이었는데, 방 안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기분 탓이겠지. 나는 애써 그렇게 결론짓고 게시글 작성 창을 닫았다. 손끝으로 큐브 표면을 다시 쓸어보았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따뜻했다. 방 안은 히터도 켜지 않아 서늘했는데, 이 물건만 유독 체온과 비슷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표면은 매끈했지만 완전히 평평하지는 않아서, 손끝으로 문지르면 아주 미세한 결이 느껴졌다. 마치 지문 같기도 하고,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 같기도 한 그 결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다 보면, 심장처럼 어딘가에서 규칙적으로 뭔가가 뛰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퉁, 퉁, 퉁. 착각일까. 나는 큐브를 귀에 가까이 대봤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손바닥에는 분명히 그 박동 같은 게 전해졌다. 미친놈처럼 심장 검사를 받아야 하는 건 내 쪽이 아니라 저 돌덩이 쪽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반쯤 장난으로, 반쯤 진지하게 큐브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눈을 감았다.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날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그저 어릴 적 게임에서 보던 것처럼, 뭐라도 외쳐보면 반응이 있을까 하는 유치한 심정이었다. "열려라 참깨" 같은 말을 실제로 중얼거리기엔 서른다섯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에, 나는 그냥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되뇌었다. 뭔가 좀 보여줘.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세게 눌러봤다. 손바닥이 하얗게 될 정도로 힘을 줬는데도 여전히 아무 반응 없었다. 큐브 표면을 손톱으로 긁어보고, 스마트폰 플래시로 이리저리 비춰보고, 심지어 냄새까지 맡아봤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그냥 매끈하고 따뜻한 돌덩이였다. 냄새는 특별히 나지 않았고, 굳이 표현하자면 오래된 서랍 냄새 같은, 아무 특징 없는 무취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원 콘센트 근처에 놓아보기도 하고, 자석을 가까이 대보기도 했다. 서랍 속에 굴러다니던 냉장고 자석을 꺼내 큐브 표면에 붙여보는 나 자신이 얼마나 우스운지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물리적으로든 전자기적으로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물건이 아니라면, 애초에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게 잘못된 방식일 수도 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할수록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인터넷 커뮤니티 채팅창을 열어 아무 채널에나 질문을 던져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익명1] 혹시 손에 쥐면 따뜻한 돌 물건 아시는 분 있나요 [익명2] 그거 그냥 손난로 아니냐 ㅋㅋ [익명1] 아니 진짜로 심장처럼 뛰는데 [익명3] ㅋㅋㅋㅋ 병원 가세요 [익명1] ...넵 머릿속으로 상상만 해봤는데도 그 반응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져서, 실제로 올릴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어차피 아무도 진지하게 믿어주지 않을 거였다. 나조차도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상황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아, 조졌다." 나는 결국 큐브를 책상 위에 툭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30만 원짜리 미신 소품에 낚인 기분이었다. 정확히는 돈을 주고 산 것도 아니고 폐기물 창고에서 주워온 거였지만, 이 며칠간 쏟아부은 시간과 관심을 생각하면 30만 원어치는 족히 낭비한 셈이었다. 회사 폐기물 창고에서 주워온 게 신비한 유물일 확률이 얼마나 되겠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냥 누군가의 실험용 방열판이거나, 인테리어 소품일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어쩌면 옆 팀 하드웨어 개발자가 실험하다 실패한 시제품일 수도 있었다. 발열 테스트용 블록이라든가, 아니면 그냥 누군가의 장난감. 그렇게 생각하니 며칠간 밤잠을 설친 내가 더욱 처량해졌다. 허탈함이 밀려왔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뭔가 특별한 일이 생길 것 같다는 기대를 품었던 스스로가 우스웠다. 서른다섯 인생, 특별한 일이라고 해봐야 승진 누락, 연봉 협상 실패, 그리고 재작년 헤어진 애인이 결혼했다는 소식을 SNS에서 접한 게 전부였다. 그런 인생에 갑자기 미스터리한 유물이 등장한다는 서사 자체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거였다. 나는 세수도 하지 않고 침대에 그대로 쓰러졌다. 내일도 똑같은 회사, 똑같은 코드, 똑같은 105도 의자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의자는 여름이면 등받이가 유난히 뜨끈해져서 팀 내에서 "105도 의자"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아무도 바꿔주지 않았다. 총무팀에 세 번이나 요청했지만 "예산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잠들기 직전, 문득 이상한 생각이 스쳤다. 왜 하필 지금, 그 큐브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은 걸까. 간절하게 원했을 때는 반응이 없더니,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을 때는 어떨까. 나는 몸을 일으켜 다시 큐브를 집어 들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손끝이 이불 밖으로 삐죽 나와 있었는데, 그것마저 다시 넣기 귀찮았다. 그냥 눈을 감았다. 의식이 흐릿해지는 와중에도 머릿속 어딘가에서는 계속 그 질문이 맴돌았다. 간절함. 기대. 반응. 세 단어가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빙빙 돌았는데, 결국 답을 찾지 못한 채로 잠에 빠져들었다. 그날 밤, 나는 첫 번째 실패를 겪었다. 간절함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첫 번째 단서였는데, 나는 그때까지 그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정말 우연일까? 나는 아직 몰랐다. 이 검은 큐브가 반응하는 조건이, 내가 상상조차 못 한 방향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조건을 알게 되는 순간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훨씬 엉뚱한 방식으로 찾아올 거라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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