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휴대폰을 붙든 누나의 손가락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통화를 끊자마자 누나는 다급히 말했다.
"탑에 오류가 생겼대. 부모님이 지금 3층에서 못 나오고 있어."
"오류가 뭔데."
"탑은 원래 정해진 층에서만 몬스터가 나와야 하는데, 가끔 상위 층 몬스터가 아래로 내려오는 사고가 있어. 최근에 그런 사고가 늘고 있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누나답지 않았다. 누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손끝을 떠는 걸 보니,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굳이 설명 들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신발을 신는 데 3초, 현관문을 여는 데 1초. 생각은 그 뒤에 따라왔다.
"위치가 어디야."
"저기, 준호야. S랭크 등록됐다고 함부로 나서면 안 돼. 관리국에서 허가 없이 던전 들어가면..."
"부모님이 위험하다는데 허가를 왜 기다려."
허가서 한 장 받으러 다니는 동안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그런 절차를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관리국이 뭐라고 하든, 규정이 뭐라고 하든, 지금 이 순간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말들이었다.
누나는 잠깐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를 포기한 표정이었다.
"택시 잡을게. 서쪽 탑, 30분 거리야."
택시가 도로를 가르는 동안 누나는 창밖을 보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나는 창문에 이마를 대고 지나가는 가로등 불빛을 세었다. 서른두 개를 셀 즈음 누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부모님이 5년 전 그 탑에 '선택'된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어. 당시 그 탑 주변에 살던 사람들 중 일부가 강제로 소환되듯 탑 안으로 끌려갔다고 해. 나가지 못하면 죽고, 나가면 능력을 얻는 구조였대."
"뽑기 같은 거네."
"장난이 아니야, 준호야. 실제로 그때 끌려간 사람 중에 절반은 못 나왔어."
나는 입을 다물었다. 절반. 부모님은 살아서 나온 절반에 속했다는 뜻이었다. 운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부모님은 원래 평범한 회사원이었어. 그런데 탑에서 나온 뒤로 완전히 달라졌어. 힘도 세지고, 겉모습도 젊어지고. 근데..."
누나가 말을 멈췄다. 나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택시 기사가 라디오 채널을 바꾸는 소리가 어색하게 정적을 메웠다.
"근데 뭐."
"두 분 다 요즘 자꾸 탑에 다시 들어가. 위험한데도. 왜 그러는지 나도 몰라.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줘. 처음엔 취미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야. 매번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나왔어. 즐기는 사람 얼굴이 아니었어."
나는 그 말을 듣고 뭔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유 없이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사진 속에서도 두 분은 늘 계산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뭔가 목적이 있는 게 분명했다. 다만 그 목적이 뭔지는, 10년 동안 얼굴도 못 본 아들 입장에서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탑에 도착하니 정부 차량 여러 대가 이미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검은색 SUV, 사이렌을 끈 구급차 두 대, 완전무장한 인력들. 탑은 거대한 검은 첨탑처럼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고, 입구에는 붉은 경광등이 요란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빙글. 빙글.
경광등이 돌아가는 소리마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입니다."
경비원이 우리를 막아섰다. 방탄복 위에 무전기를 두 개나 매달고 있는, 딱 봐도 신참이 아닌 인상이었다. 지은 누나가 신분증을 내밀며 다급히 설명했지만 소용없었다.
"3층 오류로 구조대 이미 투입했습니다. 민간인은 대기해 주세요."
"저희 부모님이 안에 있어요. 서태석, 서영숙."
"명단은 확인해 드릴 수 없습니다. 물러나 주세요."
절차. 규정. 확인 불가. 그 세 단어를 세 번쯤 들었을 때, 나는 경비원 뒤편의 탑 입구를 봤다. 붉은 빛이 안쪽에서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조짐이었다.
"들여보내 주세요." 나는 짧게 말했다.
"안 됩니다. 규정입니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 규정을 지키다가 부모님이 죽으면 그건 규정이 사람보다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그런 계산은 하고 싶지 않았다. 관리국 담당관 앞에서 며칠 전 서약서에 도장을 찍은 게 떠올랐지만, 그 종이 한 장이 지금 이 순간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미안합니다."
나는 경비원을 살짝 밀어내고 탑 입구로 걸어갔다. 밀어냈다기보다는, 그가 버티지 못하고 두 걸음 밀려났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었다. 경비원이 뒤에서 무전을 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이미 계단을 뛰어 오르고 있었다.
"준호야!"
누나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미안하지만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탑 내부는 이세계 던전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돌벽으로 이루어진 좁은 통로가 위로 이어져 있었고, 벽에는 은은한 붉은 빛이 스며 있었다. 공기가 무거웠다. 마치 방금 전까지 누가 불을 피워 놓은 것 같은 열기가 훅 끼쳤다.
1층을 지날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부서진 돌조각과 누군가 흘린 것으로 보이는 장비 파편들뿐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는 발밑에서 뭔가가 바스락거렸다. 내려다볼 여유는 없었다.
3층 입구에 다다르자, 강렬한 열기와 함께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렸다.
"엄마! 아빠!"
나는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쿠아앙.
문짝이 경첩째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났다. 넓은 원형 공간이었다. 천장은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았다. 그 안에 거대한 도마뱀 형태의 몬스터가 서 있었고, 그 앞에서 두 사람이 등을 맞대고 서 있었다.
검을 든 남자와, 손끝에서 푸른 불꽃을 일으키는 여자였다. 사진에서 봤던 그 얼굴이었다. 10년치 세월이 통째로 빠져나간 것처럼, 두 사람 모두 내 기억보다 젊었다.
"준호야?!"
여자, 아니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30대로밖에 보이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그 목소리는 분명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것이었다. 열 살 때 학교 앞에서 들었던 목소리와, 지금 눈앞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정확히 같은 파형으로 겹쳐졌다.
"여긴 어떻게..."
"나중에 설명할게요." 나는 짧게 말했다.
지금은 설명할 시간이 아니었다. 거대한 도마뱀이 포효하며 꼬리를 휘둘렀다. 콰앙. 아버지가 검으로 그 꼬리를 막았지만, 충격으로 몸이 뒤로 밀려났다. 발끝으로 바닥을 긁으며 삼사 미터를 밀려나는 아버지의 모습이, 순간 낯설게 느껴졌다. 저 사람도 다치는 사람이구나. 당연한 사실인데도 이상하게 생소했다.
"저놈, 원래 5층에 있어야 할 놈이야. 왜 여기 내려왔는지..." 아버지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나는 그 순간, 몬스터의 입가에서 피 같은 액체가 흐르는 걸 봤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괜찮다. 저건 몬스터 체액이다. 사람 피가 아니다.
속으로 그렇게 되뇌며 애써 몸을 움직였다. 도마뱀이 다시 꼬리를 휘둘렀다. 나는 그 꼬리를 손으로 붙잡았다. 힘이 어마어마했지만, 내 쪽이 더 세다는 걸 바로 느꼈다.
꼬리의 비늘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아프지 않았다. 그보다는, 손안에서 느껴지는 몬스터의 근육이 팽창하고 수축하는 리듬이 더 신경 쓰였다. 이놈은 지금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하고 있다. 5층에서 3층으로 잘못 내려온 것도 어쩌면 이놈 입장에서는 재앙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은 이제 와서 아무 의미도 없었다.
"두 분, 뒤로 물러나세요."
부모님이 놀란 눈으로 나를 봤다. 나는 몬스터의 꼬리를 잡은 채 그대로 힘을 실어 바닥에 내리쳤다.
쿠웅.
원형 공간 전체가 흔들렸다. 천장에서 돌가루가 부슬부슬 떨어졌다.
몬스터가 비틀거렸다. 나는 그 틈을 노려 몬스터의 목덜미를 손날로 세게 타격했다. 죽이지 않을 만큼, 정신을 잃힐 만큼의 힘으로. 힘의 크기를 조절하는 게 제일 어려운 부분이었다. 조금만 세게 치면 목이 그대로 꺾일 거고, 조금만 약하게 치면 다시 일어나서 꼬리를 휘두를 거였다. 그 중간값을 손끝의 감각으로 찾아내야 했다.
몬스터가 옆으로 쓰러지며 크게 울부짖었다. 콰당. 거대한 몸이 바닥을 울리며 부딪혔다. 이내 움직임이 멈췄다.
정적이 흘렀다.
숨소리만 들렸다. 세 사람의, 서로 다른 세 개의 숨소리.
"괜찮으세요." 나는 부모님을 돌아보며 물었다.
두 분 다 멍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검을 쥔 아버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건 몬스터를 상대하던 긴장 때문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준호냐. 정말 준호야?"
"네, 아버지."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게 보였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손으로 입을 가렸다. 손끝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방금 전까지 불꽃을 일으키던 손이었다.
그 순간, 뒤늦게 구조대가 원형 공간으로 밀려들어 왔다. 방탄복을 입은 사람들이 무기를 든 채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앞장선 사람이 상황을 보고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몬스터가... 벌써 제압됐다고?"
구조대원들이 우리를 둘러싸며 웅성거렸다. 무전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상황 종료를 알리는 보고와, 그 보고를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그 소란 속에서 부모님께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이제 나가요."
어머니가 내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10년 만에 처음 느끼는 온기였다. 손바닥의 굳은살이 예전과 다르게 느껴졌다. 회사원 시절에는 없던 굳은살이었다. 그게 무슨 흔적인지 짐작이 가면서도,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탑을 나서는 길, 계단을 하나씩 내려가는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붉은 경광등 빛이 계단 벽을 따라 어지럽게 흩어졌다.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열기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밖으로 나오자 아버지가 나를 흘끗 보며 물었다.
"너,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을 겪은 거냐."
나는 대답을 미뤘다. 할 얘기가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대신 되물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왜 자꾸 위험한 탑에 들어가시는 거예요. 이번처럼 오류가 생기면 죽을 수도 있잖아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뭔가 말하기 곤란한 표정이었다. 그 눈빛의 교환이 너무 빨라서, 마치 미리 짜 놓은 신호처럼 보였다.
"그건..." 어머니가 말을 꺼내려다 멈췄다.
입구 근처에서 정장을 입은 낯익은 사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아침 나를 면담했던 관리국 담당관이었다. 서류 뭉치를 옆구리에 낀 채, 표정 없는 얼굴로 서 있었다.
"서준호 씨. 허가 없이 던전에 진입하신 것에 대해선 나중에 얘기하죠." 담당관의 시선이 부모님 쪽으로 옮겨갔다. "서태석 씨, 서영숙 씨. 두 분도 오늘 얘기 좀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부모님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뭔가 감추고 있던 게 들킨 사람의 얼굴이었다.
담당관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저 서류를 다시 한번 옆구리에 고쳐 끼며, 우리 세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 시선이 유독 오래 부모님께 머물렀다.
나는 그 표정을 보며 직감했다. 부모님이 탑에 다시 들어가는 이유는, 단순한 습관이나 우연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