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몽이는 예상보다 많이 먹었다.
아니, 예상보다 훨씨-이-이-인 많이 먹었다.
처음 몽이를 데려오던 날, 나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세 시간 동안 뒤졌다.
"초급 슬라임 사육 꿀팁", "슬라임 배양액 급여량 정리", "슬라임 안 죽이고 키우는 법" 같은 글들을 다 읽었다.
결론은 하나였다.
하루에 반 캔.
그 이상 주면 오히려 소화 불량으로 죽는다고, 어느 슬라임 덕후가 목숨 걸고 적어놓은 것 같은 게시글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배양액 한 캔을 사서, 정확히 반만 부어줬다.
알뜨래, 뭐 이런 것도 있구나 싶었다.
촤르르르륵.
몽이는 그 반 캔을 3초 만에 흡입했다.
말 그대로 흡입이었다.
빨대로 음료수 마시는 것보다 빨랐다.
그리고 빈 그릇을 향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꿀렁, 꿀렁.
저건 분명 "더 줘"라는 뜻이었다.
"안 돼. 반 캔이 정량이래."
몽이가 다시 꿀렁거렸다.
나는 인터넷 글을 믿었다.
그래서 나머지 반 캔은 냉장고에 넣어두려고 했는데, 뚜껑을 닫는 그 짧은 틈에 몽이가 몸을 쭉 늘려서 캔을 통째로 삼켜버렸다.
촤륵. 촤륵.
"야! 야! 그거 내일 거잖아!"
빈 캔이 바닥에 떨어졌다.
몽이는 그 빈 캔을 향해서도 여전히 꿀렁거리고 있었다.
마치 편의점 마감 세일 다 팔린 도시락 진열대를 보는 손님 같은 눈빛이었다, 슬라임한테 눈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없어. 진짜 없어."
다음 날 아침, 나는 몽이를 보고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색이 달라져 있었다.
걸레 물색이었던, 그 존재감 없던 몸이 은은한 하늘색으로 변해 있었다.
크기도 야구공만 하던 게 자몽만 해져 있었다.
[개체 '몽이'의 상태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성장 속도 : 이상 수치]
이상 수치.
시스템이 저렇게 대놓고 당황한 티를 내는 건 처음 봤다.
나만큼 당황했나 보다.
동병상련이라고 해야 하나, 시스템하고.
일주일이 지나자 몽이는 자몽에서 배구공만 해졌다.
배구공이다.
사람 머리통보다 큰 슬라임을 나는 가방에 넣어서 등교시키고 있었다.
2주가 지나자 색은 완전히 청록색으로 안착했고, 표면에 미세한 무늬가 생겼다.
꼭 손금 같기도 하고, 대리석 무늬 같기도 한 그 패턴을 나는 매일 아침 관찰했다.
관찰이라고 해봤자 "어제보다 진해졌나?" 정도의 감상평이었지만.
인터넷에 다시 찾아봤다.
이런 성장 속도를 보이는 초급 슬라임 사례는 없었다.
있다면 다 '희귀 개체' 태그가 붙어 있었는데, 몽이의 시스템 정보창은 여전히 '무명 슬라임'이었다.
희귀도조차 매겨지지 않은 존재.
이건 뭐, 등급 심사 자체를 거부한 프리랜서 같은 느낌이었다.
[욥기 39:1, 산 염소가 새끼 낳을 때를 네가 아느냐]
몽이가 뭘 낳는 건 아니었지만, 뭔가 낳고 있는 건 확실히 맞았다.
문제, 상황, 사고 같은 것들을.
매일 하나씩, 아주 성실하게.
문제는 학교였다.
아카데미 규정상 계약 몬스터는 특수 케이지 없이는 등교 시 반입 금지다.
케이지 가격을 알아봤을 때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제일 싼 게 한 달 생활비의 절반이었다.
그럴 돈이 있으면 내가 배양액을 캔 단위로 사 먹였겠나.
반 캔씩 계량하면서 살았겠나.
그래서 나는 그냥 가방에 몽이를 넣고 다녔다.
지퍼를 꽉 채우고, 겉에 담요까지 덮어서.
몽이는 원래 얌전한 편이었다.
배가 부를 때는.
문제는 배가 고플 때, 혹은 자극을 받을 때였다.
몽이는 가방 안에 얌전히 있어 줄 성격이 아니었다.
둘째 주 화요일, 체육 시간.
운동장 구석에 가방을 두고 축구 실습을 하다가 돌아왔더니, 가방 지퍼가 열려 있었다.
정확히는 열려 있는 게 아니라 뜯겨 있었다.
안에서 뭔가 밀고 나온 것처럼.
몽이가 없었다.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드라마에서 보던 그 표현을 실제로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심장이 발끝까지 내려가는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저쪽 스탠드 밑에서 뭔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엔 항상 사고가 있다.
확률상 그랬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확률이 나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었다.
뛰어가 보니, 사람들이 둘러싼 원 안에 몽이가 있었다.
청록색 몸을 한껏 부풀린 채, 배구공만 한 크기로 바닥에 앉아 있는 그 모습이 어이없게도 귀여워 보였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감안하면 그런 감상은 사치였지만.
그리고 그 원 중심, 몽이 앞에 서 있는 건 다름 아닌 차은성이었다.
이 학교에서 가장 마주치기 싫은 인간 랭킹을 매기라면 부동의 1위.
성검사, 명문가 자제, 그리고 나 같은 무명 테이머를 은근히 얕보는 부류.
정확히는 얕본다는 표현조차 과분할 만큼 아예 관심이 없는 부류였다.
지금까진.
"뭐야 이거, 야생 슬라임이잖아."
차은성이 발끝으로 몽이를 툭 건드렸다.
가볍게, 아마 벌레 만지듯이.
몽이가 반응했다.
부글부글부글!
순식간에 몸을 부풀리더니, 표면에서 옅은 청록색 빛이 새어 나왔다.
그 빛이 마치 심야 편의점 냉장고 불빛처럼 은은하게 주변을 밝혔다.
분위기랑 전혀 안 어울리는 비유라는 건 나도 안다.
"어어?"
주변 애들이 놀라 뒤로 물러섰다.
차은성도 반사적으로 검에 손을 얹었다.
그 동작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는 게 더 무서웠다.
평소에 저런 동작 연습을 얼마나 했다는 뜻인가.
나는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가방을 어깨에 걸치지도 못한 채 그냥 손에 쥐고 흔들면서 뛰었다.
이런 순간에도 남들 시선이 신경 쓰였다.
운동장 한복판을 전력 질주하는 테이머, 그림이 좋을 리 없었다.
"잠깐, 잠깐만!"
목이 터지도록 외쳤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면서, 나는 제발 늦지 않았기를 빌었다.
빌 대상이 딱히 없었다는 게 함정이었지만.
평소엔 신학과 다니는 사람이 이럴 때 기도 안 하냐고 물으면 나도 할 말이 없다.
간신히 도착했을 때, 몽이는 이미 반투명한 청록색 막을 몸 주위에 형성하고 있었다.
마치 비눗방울 같은데 실제로는 방어막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빛이 안쪽에서 밖으로 새어 나오는 그 모습이 꼭 편의점 아이스크림 냉동고 유리 같기도 했다.
비유가 계속 이런 식이라 나도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차은성의 검이 그 막에 닿는 순간,
챙!
하는 소리가 나며 검이 미끄러졌다.
[초급 슬라임의 방어 반응이 아닙니다]
[분석 실패]
시스템도 분석에 실패하는 슬라임이라니, 이쯤, 이거 참, 재밌게 됐다.
재밌기는커녕 심장이 쫄려 죽을 것 같았지만, 이럴 때라도 여유 있는 척 안 하면 진짜 쓰러질 것 같았다.
"뭐야, 이거 왜 안 뚫려?"
차은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검을 휘둘렀다.
쨍!
또 미끄러졌다.
검 끝이 막 표면을 스치며 옅은 청록색 파문이 번졌다.
물 위에 돌 던진 것 같은 그 파문이 예뻤다.
지금 이 상황에서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 나도 정신 상태가 좀 이상한 거 아닐까.
"차은성, 그만해!"
내가 소리치며 몽이 앞으로 뛰어들었다.
차은성이 검을 거두는 타이밍이 정확히 내가 뛰어드는 타이밍과 겹쳤다.
운이 좋았다고밖에 설명이 안 됐다.
몽이가 나를 알아본 듯 막을 살짝 열어줬다.
다행히 그 틈에 나는 무사히 몽이를 안아 들 수 있었다.
품 안에서 몽이는 여전히 부글거리고 있었다.
경계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흥분이 안 가라앉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이거 네 거야?"
차은성이 검을 거두며 물었다.
표정이 순수한 궁금증에 가까웠는데, 그게 더 무서웠다.
얘는 지금 상황을 재밌는 구경거리로 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어, 그, 내 계약 몬스터."
"테이머가 계약을 했다고?"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익숙한 소리였다.
입학 초부터 지금까지 계속 들어온 소리.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른 종류의 웃음이었다.
놀림이 아니라, 놀람이 섞여 있었다.
그게 더 낯설었다.
"방금 그 방어막, 뭐였어?"
차은성이 진지하게 물었다.
이 자식, 성검사인데 눈치는 있다.
저 검, 아무 데나 함부로 안 뽑는 성격인 것도 알겠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그냥... 슬라임 종특이야. 스트레스 받으면 막 치는 종류."
완전히 지어낸 말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 진실을 말할 배짱은 없었다.
진실을 말하면 뭐라고 해야 하나.
"나도 몰라, 걔가 무슨 종인지도 몰라, 그냥 밥 많이 먹고 이상하게 커"라고 하면 그건 그거대로 더 수상해 보일 게 뻔했다.
"그런 종특이 있어? 처음 듣는데."
"희귀종이니까 처음 들었겠지."
나는 뭔가 그럴듯한 말을 지껄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나도 몽이가 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희귀종이라는 단어를 쓴 순간, 시스템 정보창에 여전히 '무명 슬라임'이라고 적혀 있을 몽이의 상태를 떠올리며 속으로 조금 웃었다.
스스로 지어낸 거짓말이 우연히 진실 근처를 스쳐 지나갔다는 게 웃겼다.
[마태복음 6:34,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오늘 일도 감당 못 하는 마당에 내일 걱정은 사치였다.
성경 말씀이 이렇게 편할 때가 없다.
몽이를 품에 안고 자리를 벗어나면서, 나는 뒤통수에 꽂히는 시선들을 온몸으로 느꼈다.
특히 차은성의 시선이 유독 오래 머물렀다.
등 뒤로 느껴지는 그 시선의 온도가 평소랑 달랐다.
무시나 조롱의 온도가 아니라, 뭔가를 계산하는 듯한 온도였다.
"저거 진짜 방어막 맞아?"
뒤에서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답을 안 해도 됐다, 다행히도.
누군가 다른 애가 "성검사님 검을 튕겨낸 슬라임이라니" 하며 감탄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톤으로 말했지만, 그것도 안 들리는 척했다.
집에 돌아와서 몽이를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가방은 이미 못 쓰게 됐다.
새로 사야 하는데, 이번 달 생활비를 다시 계산해봐야 할 것 같았다.
몽이는 여전히 청록색 막을 살짝 두르고 있다가, 천천히 풀었다.
막이 사라지는 모습이 마치 비눗방울이 서서히 투명해지며 꺼지는 것 같았다.
"너 대체 뭐냐."
몽이가 살짝 부풀었다가 줄었다.
Mwaa...
대답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미안하다는 뜻처럼 들렸다.
아니면 그냥 배고프다는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녀석은 뭘 해도 결론이 배고픔으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문제는, 학교에서 목격자가 하필 차은성이었다는 것.
다른 애들이었다면 그냥 소문 몇 번 돌고 끝났을 텐데, 차은성이 얽히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명문가 자제의 눈에 든 이상한 슬라임이라는 타이틀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조용히 묻히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몰랐지만, 관리소 CCTV 서버 어딘가에서 내 계약 기록이 조용히 상위 시스템으로 플래그되고 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그저 몽이 옆에 누워서, 내일은 또 어떤 사고가 터질지 걱정하며 잠들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