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차은성이 다음 날부터 나를 은근히 관찰하기 시작했다는 걸 눈치챈 건 셋째 날 즈음이었다.
같은 반 애가 갑자기 내 사물함 근처를 서성거리면 그건 관찰이 아니라 감시다.
첫째 날엔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학년, 같은 층, 사물함이 근처면 지나갈 일도 있는 거지.
둘째 날엔 좀 이상했다.
쉬는 시간마다 어김없이 내 자리 근처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으니까.
휴대폰을 보는 척, 물을 마시는 척, 친구랑 얘기하는 척.
근데 시선은 계속 내 책상 위 가방 쪽에 꽂혀 있었다.
그 가방 안에 몽이가 들어있다는 걸 이 자식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
셋째 날엔 확신이 들었다.
이건 관찰이 아니라 감시다.
그리고 감시하는 놈치고 숨기는 재주가 이렇게 없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몽이라는 애 방어막, 그거 진짜 종특이야?"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차은성이 성큼 다가와서 물었다.
식판을 든 채로 내 옆에 자연스럽게 앉는 그 태도가 벌써 수상했다.
원래 밥은 자기 검술부 애들이랑 먹는 놈이었는데.
"응, 그렇다니까."
숟가락을 입에 문 채로 대충 대답했다.
더 길게 말하면 말이 꼬일 것 같았다.
"근데 나 검사 도장에서 15년 배웠는데, 그런 종류의 반응은 처음 봐."
15년이라는 숫자가 은근히 무게감 있게 들렸다.
15년이면 이 자식 나이보다 더 오래 검을 잡은 거 아닌가?
아니, 그건 아니겠지, 산수가 안 맞잖아.
아무튼 그런 경력을 들이대며 물어보니 대충 넘기기가 더 힘들어졌다.
"세상엔 처음 보는 게 많잖아. 배달앱만 봐도 매달 신메뉴 나오는데."
비유가 이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밀어붙였다.
밀어붙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그건 좀 다른 얘기 같은데..."
차은성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 표정, 뭔가 계속 캐물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때 그 막... 뭔가 마력 반응이 좀 이상했어. 우리 검술부 코치님한테 물어봤는데, 방어형 슬라임 특성 중에 그런 거 없다더라."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이 자식, 코치한테까지 물어봤다고?
그럼 그 코치는 또 누구한테 물어볼 텐데?
꼬리에 꼬리를 물면 결국 어디까지 퍼지는 거야, 이게.
"코치님이 뭘 알아. 슬라임 전문가도 아니잖아."
"그건 그런데... 좀 신기해서."
차은성이 순수하게 흥미로운 표정을 짓는 게 더 무서웠다.
적대감보다 관심이 훨씬 다루기 어렵다는 걸 이날 처음 배웠다.
적대감은 무시하면 그만인데, 관심은 자꾸 파고들잖아.
호기심 넘치는 인간이 세상에서 제일 상대하기 힘든 부류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근데 너 왜 그렇게 궁금해해? 검술부면 검이나 잘 휘두르면 되는 거 아냐?"
화제를 돌려보려는 시도였다.
성공할 리가 없지, 알면서 던졌다.
"몽이인지 뭔지, 그거 마력 파장이 보통 슬라임이랑 결이 완전 달랐거든. 나 그런 거 좀 민감해."
차은성이 자기 숟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검술부 특유의 감각인지, 그냥 얘가 유난히 눈치가 좋은 건지 판단이 안 갔다.
어느 쪽이든 나한테는 골치 아픈 재능이었다.
"기분 탓이겠지."
"기분 탓이 아니라니까."
이 대화는 답이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결국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망치는 게 최선의 전략일 때가 있다.
지금이 딱 그런 순간이었다.
*
방과 후, 헌터 아카데미 부속 실습장에 몽이를 데려갔다.
실습장은 초급 던전 시뮬레이션 룸으로, 저학년 계약 몬스터의 전투 반응을 테스트하는 곳이다.
테이머 등록증만 있으면 방과 후 개인 사용이 가능했는데, 이용자가 나밖에 없어서 늘 텅 비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특유의 서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바닥엔 충격 완화용 매트가 깔려 있고, 벽면엔 각종 훈련용 인형이 정리되어 있었다.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조명도 절반만 켜져 있어 좀 을씨년스러운 느낌이었다.
이런 데를 혼자 쓰는 게 익숙해질 정도로 여기 자주 왔다는 게 좀 슬프기도 했다.
간단하게 슬라임용 훈련 인형을 세워두고, 몽이한테 공격 지시를 내려봤다.
"몽이, 저거 때려봐."
몽이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몸을 튕겨서 인형에 부딪혔다.
퍽!
인형이 살짝 흔들렸을 뿐, 큰 데미지는 없었다.
[전투력 측정 : 미미함]
역시.
방어막은 특별한데 공격은 그냥 평범한 슬라임이구나.
뭔가 안도감과 실망감이 동시에 들었다.
전투력이 강했으면 관리청 눈에 더 빨리 띄었을 텐데, 그건 다행이다.
근데 이왕 특별한 개체면 공격력도 좀 세면 좋았을 텐데, 그건 좀 아쉽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한 번 더 시켜봤다.
"다시 해봐, 몽이."
몽이가 다시 몸을 웅크렸다가 인형으로 돌진했다.
퍽!
결과는 똑같았다.
[전투력 측정 : 미미함]
세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네 번째쯤엔 몽이도 좀 지친 기색이었다.
표면이 살짝 처지는 느낌.
마치 "이거 더 해야 돼?"라고 묻는 듯한 몸짓이었다.
"그래, 그만하자."
내가 손을 흔들자 몽이가 안심한 듯 몸을 다시 둥글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몽이가 다시 인형을 바라보며 몸을 웅크렸다.
아까와는 다른 웅크림이었다.
뭔가 집중하는 듯한, 좀 더 팽창된 형태.
그리고 이번엔 표면에 아까와 다른 문양이 떠올랐다.
마치 나이테 같은, 혹은 지문 같은 무늬였다.
색깔도 평소의 투명한 초록빛이 아니라 은은한 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무심코 그 무늬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호기심이 문제였다.
그냥 넘어갔으면 이런 일 안 생겼을 텐데.
순간, 시야가 하얗게 번쩍였다.
[유니크 스킬 '진화 루트 看破'가 발동합니다]
뭐?
뭐라고?
나한테 스킬이 있었어?
지금까지 테이머 자격 시험을 볼 때도, 헌터 아카데미 정기 검사를 받을 때도 이런 스킬은 뜬 적이 없었다.
스킬이 없다는 게 검사 결과였는데.
근데 지금 이 순간에, 그것도 이렇게 뜬금없이?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마치 게임 스킬 트리 같은 형태였는데, 중심에 몽이의 이름이 있고, 거기서 여러 개의 가지가 뻗어 나갔다.
색색깔로 구분된 가지들, 각 가지마다 작은 아이콘이 붙어있는 게 무슨 스마트폰 앱 UI를 보는 것 같았다.
[개체 '몽이' 진화 루트 분석 중...]
[1단계 : 태초슬라임 유체 변이종]
[2단계 : 상위 슬라임계 (분류 다수)]
[3단계 : ??? (봉인된 정보)]
[특기 사항 : 도달 가능성 극히 희귀]
3단계가 왜 물음표인지, 왜 정보가 봉인되어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봉인된 정보'라는 문구를 몇 번이고 눈으로 읽었다.
누가 봉인했는데?
언제부터 봉인되어 있었는데?
질문은 쌓이는데 답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게 아카데미에서 가르쳐준 그 어떤 슬라임 진화 트리와도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슬라임 진화는 딱 세 갈래, 그것도 다 이름 붙은 상위종으로 명확하게 나눠지는 게 정석이었다.
근데 이건 3단계 전체가 그냥 물음표다.
이런 케이스는 교과서 어디에도 없었다.
[시편 139: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지식이 기이한 게 아니라 이해가 안 가는 거지, 이거 완전 다른 얘기잖아.
성경 말씀도 가끔 상황에 안 맞게 튀어나올 때가 있다.
지금이 딱 그런 경우였다.
창이 사라지고, 정신을 차렸을 땐 몽이가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표면이 살짝 물결치는 게, 꼭 "괜찮아?" 라고 묻는 듯한 몸짓이었다.
"몽이야, 너 방금 뭐 했어?"
몽이가 살짝 부풀었다.
Mwoo?
대답할 리가 없지, 알면서 물었다.
근데 이 녀석 표정 -표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은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자기가 뭘 했는지도 모르는 채로 스킬을 발동시킨 거라면, 이건 또 다른 문제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 스킬이 발동하는 순간, 실습장 천장 구석에 달린 관리청 표준 감시 카메라의 렌즈가 살짝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지이잉-
그 작은 기계음이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헌터 아카데미의 모든 실습장은 안전 관리를 이유로 관리청과 실시간 연동되어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게 실제로 뭔가를 '보고'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안전 관리용이라며, 안전 관리용 카메라가 왜 저렇게 사람처럼 렌즈를 돌리는데.
CCTV가 나 쳐다보는 느낌이 든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집에 가는 길, 나는 방금 본 스킬창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진화 루트 看破'라는 이름부터 이상했다.
看破, 한자로 보아하니 '꿰뚫어 본다'는 뜻이었다.
꿰뚫어 본다는 게 이렇게 부담스러운 스킬명일 줄은 몰랐다.
차라리 '슬라임 감정사' 같은 이름이었으면 마음이 편했을 텐데.
왜 나한테 이런 스킬이 있는데 지금까지 몰랐을까.
생각해보니 답은 간단했다.
지금까지 이 스킬을 발동할 대상, 즉 이런 식으로 성장하는 개체를 본 적이 없었으니까.
스킬이란 게 원래 그런 거잖아.
쓸 일이 없으면 있는지도 모르고 사는 거.
집에 마늘 다지기가 있는데 한 번도 안 써본 것처럼.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나는 아직 뭘 믿어야 할지도 몰랐다.
일단 몽이가 배가 고프다는 건 확실한 증거였다.
가방 지퍼 틈으로 몽이가 꼼지락거리는 게 느껴졌다.
배고프다는 신호였다.
이 녀석은 우주의 비밀을 품고 있으면서도 배고픈 건 똑같이 느끼는구나.
"밥 먹자."
몽이가 신나게 부풀었다.
좀 전까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그 존재가, 밥 얘기 한 마디에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웃음이 나왔다.
뭐가 됐든, 오늘 저녁은 편의점 삼각김밥이었다.
그날 밤, 나는 스킬창의 내용을 노트에 옮겨 적으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했다.
몽이가 그냥 평범한 슬라임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이걸 계속 숨겨야 할지, 아니면 관리청에 신고해야 할지.
노트에 3단계, 봉인된 정보라는 글자를 쓰고 또 지웠다.
뭘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관리청에 신고하면 절차대로 몽이는 정밀 검사 대상이 될 거고, 정밀 검사라는 게 그냥 검사만 받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희귀 개체는 대부분 연구소로 이송된다.
연구소로 이송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도 알고 있었다.
결론은 나지 않았다.
다만 어쩐지, 이걸 신고하면 몽이를 다시는 못 볼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예감이 너무 선명해서, 나는 노트를 덮고 몽이를 끌어안았다.
따뜻하고 물컹한 촉감이 그나마 마음을 좀 가라앉혔다.
그 예감은, 불행히도 아주 정확했다.
다음 날 아침, 등굣길에 낯선 승용차 한 대가 우리 집 앞에 서 있었다.
검은 세단, 옆면에 작게 새겨진 마크는 한국헌터관리청 로고였다.
차 문이 스르륵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나는 가방끈을 꽉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