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청하촌(靑河村)은 장백령(長白嶺) 아래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이었다.
안개가 아침마다 산자락을 타고 내려와 지붕 위에 얕게 깔렸다.
그 안개는 유난히 짙어서, 마을 사람들은 아침마다 처마 밑에 서서 손을 뻗어보곤 했다.
손끝에 물기가 묻어나면 그날은 날이 좋으리라 여겼고, 손끝이 그저 서늘하기만 하면 하루 종일 흐릴 것이라 여겼다.
그런 소박한 점괘로 하루를 시작하는 곳, 그것이 청하촌이었다.
마을 서쪽 끝에는 낡은 현판이 걸린 문파가 하나 있었으니, 이름하여 청연문(靑燕門)이었다.
한때는 인근 삼백 리를 호령하던 명문이었으나 지금은 제자 스물 남짓, 그저 명맥만 잇는 작은 문파로 쇠락한 지 오래였다.
현판의 글씨는 이미 반쯤 벗겨져 靑자의 마지막 획이 겨우 형태만 남아 있었고, 그 밑을 지나는 제자들은 이제 그 글씨를 읽기보다는 그저 습관처럼 고개를 숙였다.
마당의 흙은 오랜 세월 발길에 다져져 단단했고, 담장을 따라 심어진 소나무 몇 그루가 그 옛 영화(榮華)의 흔적처럼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청연문의 마당 한켠에서, 열다섯 살 소년 강찬(江燦)이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자세가 어설펐다.
검을 쥔 손목이 자꾸 꺾이고, 보법을 밟는 발끝이 흔들렸다.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 눈썹 끝에 매달렸다가 툭, 떨어졌다.
숨은 벌써 거칠어져 있었으나, 그는 멈추지 않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목검의 끝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퍽퍽거렸다.
그 소리는 시원스럽지 못했다.
마치 무언가에 걸린 듯 매번 끊어졌다.
"또 그러는구나."
원로 목상현(木尙賢)이 팔짱을 낀 채 마루에서 혀를 찼다.
그의 흰 수염이 바람도 없는데 가늘게 떨렸다.
"기(氣)를 단전(丹田)에 모으라 몇 번을 일렀느냐. 마음이 앞서면 몸이 따라오지 못한다."
강찬은 검을 늦추고 어깨를 늘어뜨렸다.
땀에 젖은 옷자락이 등에 달라붙어 있었다.
"저는 아무래도 재목(材木)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조님."
그 말에는 진심으로 지친 기색이 섞여 있었다.
벌써 삼 년이었다.
삼 년을 매일같이 같은 자세, 같은 보법을 반복했는데도 그의 몸은 여전히 서툴렀다.
목상현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짧게 웃었다.
"세상에 처음부터 재목인 나무는 없다. 다만 자라기를 게을리하는 나무만 있을 뿐이지."
"저는 게을리한 적이 없는데도……."
"안다. 네가 게으르다는 말이 아니다."
목상현은 마루에서 천천히 내려와 강찬의 옆에 섰다.
그의 손이 강찬의 어깨를 짚었다.
"다만 나무의 뿌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 지금 네가 흙 밑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지. 너 자신도 모른다."
강찬은 그 말을 곱씹었으나 딱히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그저 사조님이 자신을 아주 포기하지는 않았다는 사실만이 어렴풋이 전해졌을 뿐이었다.
강찬의 아버지 강규(江奎)는 청연문의 문주였다.
체구는 크지 않았으나 눈빛이 매서워, 문도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위엄을 인정받는 인물이었다.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문파의 살림을 꾸리는 데 썼다.
쇠락한 문파를 이끈다는 것은 검을 휘두르는 일보다 훨씬 고단했다.
제자들의 끼니를 걱정하고, 낡은 지붕을 손보고, 인근 상단(商團)과의 거래를 살피는 일까지 모두 그의 몫이었다.
어머니 설아령(薛雅玲)은 본디 인근 약방(藥房)의 딸로, 시집온 지 스무 해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손끝이 여물어 약초를 다루는 솜씨가 문파 안에서 제일이었다.
그녀는 약초의 이름과 성질을 줄줄이 외웠는데, 특히 세 가지를 강찬에게 자주 일러주었다.
백지초(白芷草)는 열병을 다스리는 데 쓰이고, 뿌리가 희고 향이 은은하여 봄철 습한 땅에서 잘 자란다는 것.
황련(黃連)은 쓴맛이 강하나 염증을 가라앉히는 데 그만한 것이 없다는 것.
당귀(當歸)는 몸을 보하는 데 쓰이나, 성질이 따뜻하여 열병 환자에게는 함부로 쓰지 않는다는 것.
강찬은 그 설명을 들을 때마다 지루해했으나, 몸에는 어느새 그 지식이 새겨져 있었다.
강찬은 그 두 사람의 외아들이었다.
재능이랄 것은 딱히 없었으나, 그 대신 근면함과 고집이 남달랐다.
문파의 다른 제자들이 몇 달이면 익히는 보법을 그는 몇 배의 시간을 들여야 겨우 흉내 냈다.
하지만 한번 익힌 것은 결코 잊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유일한 재주라면 재주였다.
"찬아."
어머니가 마당으로 나오며 소쿠리를 내밀었다.
소쿠리 안에는 낡은 호미와 작은 천 주머니가 들어 있었다.
"뒷산에서 백지초(白芷草)를 좀 캐 오려무나. 마을에 열병이 돌아 약이 급하다는구나."
강찬은 목검을 벽에 세워두고 소쿠리를 받았다.
"몇 명이나 앓고 있어요?"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강씨네 막내와 오씨 어른댁 손주가 벌써 사흘째 열이 내리지 않는다더구나."
강찬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그도 그 아이들을 알고 있었다.
"오늘은 좀 더 깊이 들어가 볼게요. 요즘 뒷산 초입에는 도무지 남은 게 없더라고요."
그가 소쿠리 끈을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조심해서 다녀오너라. 요즘 산세가 어수선하다고들 하니."
어머니의 그 말에는 별다른 무게가 없었다.
다만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 말이 그날의 유일한 경고였다는 것을 강찬은 아직 알지 못했다.
강찬은 마당을 나서기 전, 목상현에게도 짧게 목례를 했다.
목상현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이 평소와 조금 달랐다.
"사조님?"
"……아니다. 다녀오너라."
목상현은 말을 삼켰다.
그저 산자락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무언가를 곱씹는 얼굴이었다.
강찬은 그 얼굴을 오래 기억하지는 못했다.
당시에는 그저 사조님이 평소처럼 무뚝뚝한 것이라 여겼을 뿐이었다.
장백령은 늙은 산이었다.
소나무 향이 짙게 배어 있었고,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안개가 낮에도 완전히 걷히지 않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산길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발길이 다져놓아 평탄했으나, 초입을 벗어나면 곧 거칠어졌다.
바위와 뿌리가 뒤엉킨 길목마다 강찬은 이미 익숙하게 발을 놓았다.
그는 이 산을 제 손바닥처럼 알고 있다고 여겼다.
강찬은 그 안개 낀 골짜기 중 하나로 발을 들였다.
평소보다 발이 미끄러웠다.
돌들이 이상하게 젖어 있었고, 이끼는 색이 짙어 검푸르게 보일 지경이었다.
그는 손등으로 이끼를 슬쩍 문질러보았다.
축축하고 차가운 감촉이 손끝에 남았다.
평소의 이끼와는 감촉부터 달랐다.
'이상하다.'
강찬은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다.
새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산속에서 새소리가 사라진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그는 그 순간 깨달았다.
바람도 이상하게 잦아들어 있었다.
소나무 가지가 흔들리지 않았고, 나뭇잎 부딪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마치 산 전체가 숨을 참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강찬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목덜미를 스쳤다.
하지만 뒤에는 그저 안개 낀 소나무 숲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헛기침을 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소쿠리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골짜기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무너진 돌무더기가 나타났다.
오래된 사당이었던 듯, 기둥의 흔적과 깨진 향로가 이끼 사이로 삐죽 솟아 있었다.
강찬은 이 골짜기를 몇 번 지나친 적이 있었으나, 이런 사당의 흔적을 본 적은 없었다.
'이런 게 여기 있었나.'
그는 소쿠리를 내려놓고 그 돌무더기에 다가섰다.
가까이서 보니 돌무더기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된 것이었다.
돌 표면에는 알아볼 수 없는 문양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는데, 이끼와 세월에 깎여 그 형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는 그 자리에서 손을 뻗었다.
왜 손을 뻗었는지, 강찬 자신도 나중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그 순간에는 그것이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다.
돌 틈 사이, 흙 속에 반쯤 파묻힌 채 자주색 광택을 은은히 내는 무언가가 있었다.
강찬은 조심스레 흙을 파냈다.
손톱 밑에 흙이 끼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은 두개골(頭蓋骨)이었다.
사람의 것이라기엔 지나치게 컸고, 뼈 표면이 마치 자수정을 깎아 만든 듯 자주빛으로 번쩍였다.
크기는 강찬의 두 손을 합친 것보다도 컸다.
이빨은 사람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형태로, 날카롭고 길게 뻗어 있었다.
'이게 대체…….'
강찬은 숨을 삼켰다.
그는 짐승의 뼈일 것이라 스스로를 다독였다.
장백령에는 이따금 큰 짐승들이 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자주빛 광택은 어떤 짐승의 뼈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손끝이 그 표면에 닿는 순간, 미약한 전류 같은 것이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기이한 감각이었다.
그는 얼른 손을 뗐다.
심장이 갑작스럽게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개골은 이미 그의 시선을 붙잡은 뒤였다.
강찬은 몇 번이나 그 자리를 떠나려 했으나, 발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두개골을 흙에서 완전히 파냈다.
그것을 옷자락으로 대충 감싸 소쿠리 안, 백지초 위에 조심스레 얹었다.
왜 그것을 가져가야 한다고 느꼈는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순간, 그것을 그 골짜기에 그대로 두고 가서는 안 된다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을 뿐이었다.
돌아오는 길, 강찬은 몇 번이나 소쿠리를 내려다보았다.
자주빛이 옷자락 사이로 은은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평소보다 걸음이 빨라진 것을 스스로도 느꼈다.
그날 밤, 하늘에 이상이 생겼다.
청하촌 사람들은 자시(子時)가 넘어갈 무렵, 서쪽 하늘 한 자락이 옅은 자줏빛으로 물드는 것을 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밤이었는데도 하늘은 마치 멀리서 무언가가 타오르는 듯 빛났다.
마을의 개들이 일제히 짖어대다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 침묵이 오히려 짖는 소리보다 더 불길했다.
목상현은 그 광경을 마당에 서서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그의 손은 지팡이를 쥔 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불길하다."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강규가 뒤늦게 나와 옆에 섰다.
그 역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장로님, 저것이 무엇입니까."
"모르겠다. 다만 저런 빛을 이야기로만 들은 적이 있다."
목상현의 눈동자에 옛 기억이 스쳤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지팡이 끝으로 바닥을 짚었다.
"천계(天界)의 봉인이 흔들리면, 하늘이 저렇게 물든다고 했다. 옛 선사(先師)의 유훈(遺訓)에 그리 적혀 있었지."
"천계의 봉인이라니, 그것이 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나도 그 뜻을 온전히 알지는 못한다. 다만 선사께서는 그것이 다시 물들면, 세상에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 하셨다."
강규는 그 말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등줄기를 스치는 서늘한 기운만은 분명히 느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자줏빛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미약하게 일렁였다.
밝아졌다가, 다시 옅어졌다가.
그 리듬이 어딘가 심장의 박동과 닮아 있었다.
"제자들에게는 알리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강규가 낮게 말했다.
"불필요한 불안을 심어줄 이유는 없으니까요."
목상현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 얼굴에는 여전히 무거운 그늘이 걸려 있었다.
"그리하되, 문의 경계는 늦추지 말아라. 오늘 밤부터 당장."
그 시각, 강찬은 자기 방에서 소쿠리 속 두개골을 몰래 꺼내어 바라보고 있었다.
자주빛이 방 안 어둠 속에서도 은은히 빛났다.
그는 손을 뻗었다가, 다시 거둬들이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낮에 느꼈던 그 기이한 감각이 다시 되살아날까 두려웠던 것이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할까.'
그는 몇 번이나 그리 생각했지만, 왜인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이것이 자신만이 알아야 할 비밀인 것처럼, 두개골은 그를 향해 조용히 숨을 쉬는 듯했다.
강찬은 결국 그것을 낡은 궤짝 밑바닥, 옛 옷가지 아래에 숨겨두었다.
그러고도 한참을 그 궤짝을 바라보다가야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밤 그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어느 거대한 문 앞에 서 있었는데, 문 너머에서 자줏빛 안개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누군가 그를 부르는 듯했으나, 그 목소리는 말이 아니라 그저 진동으로만 전해졌다.
잠에서 깼을 때, 강찬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배어 있었다.
그날 이후 사흘, 마을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표면적으로는 평온한 나날이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골목을 뛰어다녔고, 어른들은 밭일을 나갔다.
다만 목상현은 매일 밤 문파의 담벼락을 따라 걸으며 무언가를 살폈다.
그의 발걸음은 느렸으나 규칙적이었고, 담장의 그늘마다 눈길을 멈추었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제자들 몇몇은 그런 원로의 모습에 불안을 느꼈으나,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강찬 역시 그 사흘 동안 평소와 다름없이 지냈다.
목검을 휘두르고, 어머니를 도와 약초를 다듬고, 저녁이면 아버지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만 밤이 되면 그 궤짝을 몰래 열어 두개골을 꺼내 보는 습관이 생겼다.
자주빛은 밤마다 조금씩 더 강해지는 듯했다.
그는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흘째 되는 날, 저녁 무렵이었다.
하늘은 이미 붉게 저물어 산등성이를 물들이고 있었다.
장백령 초입에서 나무를 하던 문도 하나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산을 뛰어 내려왔다.
그의 지게는 어깨에서 이미 반쯤 벗겨져 있었고, 나뭇단은 산길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장로님! 산 아래…… 산 아래에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목상현의 낯빛이 순식간에 굳었다.
"몇이더냐."
"세, 셋…… 아니, 넷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데,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이쪽을 보고만 있었습니다."
문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움직이지도, 다가오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서 있었습니다. 마치…… 마치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요."
목상현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의 머릿속으로 며칠 전 밤하늘의 자줏빛이 다시 떠올랐다.
'설마 벌써…….'
그는 눈을 뜨고 문도를 향해 물었다.
"그들이 어느 방향에서 왔는지 보았느냐."
"모,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놀라서 도망쳐 왔을 뿐이라……."
"알겠다. 가서 몸을 추스르거라."
강규가 검을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검집을 쥔 손에 이미 힘이 들어가 있었다.
"문을 걸어라. 모든 제자들을 안으로 들이고."
그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으나, 눈빛만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제자들이 급히 마당으로 모여들었다.
몇몇은 이미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몇몇은 애써 태연한 척했으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모두 안심하거라."
강규가 낮으나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 문의 담장은 이미 오래되었으나,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각자 자리를 지키고, 함부로 밖으로 나가지 마라."
목상현이 그 곁에 서서 덧붙였다.
"검을 지닌 자는 검을, 지니지 않은 자는 무엇이든 손에 쥐어라. 오늘 밤은 아무도 잠들지 못할 것이다."
강찬은 그 소란을 방문 틈으로 지켜보았다.
손안에는 여전히 그 자주색 두개골이 있었다.
그는 마당의 소란을 듣고 궤짝에서 그것을 꺼내온 참이었다.
뼈 표면에서 아까보다 조금 더 강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다가오는 무언가에 반응하듯이.
강찬은 그 빛을 내려다보며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설마 저들이 온 것이…….'
그는 그 생각을 끝맺지 못했다.
차마 끝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담장 너머, 해가 완전히 저문 산자락에 검은 그림자 몇이 조용히 늘어서 있었다.
바람이 멎었다.
소나무 향조차 그 순간만큼은 사라진 것 같았다.
마당에 켜진 등불의 불꽃마저 흔들리지 않고 곧게 서 있었다.
문파 전체가 마치 숨을 참고 있는 것처럼 고요했다.
그 침묵 속에서, 그림자들의 눈만이 어둠을 뚫고 청연문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다만 강찬의 손안에서, 자주빛 두개골이 그 어느 때보다도 밝게, 마치 대답하듯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