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서울 헌터협회 던전관리센터.
건물 자체가 이미 압도적이었다.
웬만한 은행 본사보다 컸다.
아니, 은행이 아니라 무슨 국회의사당을 옮겨놓은 것 같았다.
유리로 된 외벽이 아침 햇살을 받아서 번쩍거렸다.
'세금이 여기로 다 들어가는 건가.'
정문 앞에는 커다란 홀로그램 간판이 떠 있었다.
[대한민국 헌터협회 서울 지부 — 안전한 던전, 확실한 미래]
캐치프레이즈부터 벌써 위화감이 들었다.
'안전한 던전이라니. 던전이 안전하면 그게 던전이냐.'
접수처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다들 성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체격도 좋고, 눈빛도 형형했다.
무슨 오디션 대기줄 같기도 했고, 군대 신병 훈련소 같기도 했다.
'나만 좀... 아니, 많이 어색한데.'
교복까지는 안 입고 나온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최대한 어깨를 펴고 줄을 섰다.
허리도 좀 펴고, 턱도 살짝 들었다.
키가 갑자기 자랄 리는 없지만, 기세라도 채워야 했다.
삼십 분쯤 기다려서야 창구에 도착했다.
다리가 조금 저릴 정도였다.
"모험가 등록하러 왔는데요." 나는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창구 직원이 서류와 내 얼굴을 번갈아 봤다.
한 번, 두 번, 세 번.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이 정도면 시선 처리 훈련이라도 받은 거 아닐까.'
"학생, 나이가..." 직원이 서류를 다시 확인했다.
목소리에 벌써 곤란함이 섞여 있었다.
"열다섯입니다. 법적으로 성인인데요."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대답했다.
준비했던 대답이었다.
이런 반응, 어제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그건 일반 법이고요." 직원이 딱딱하게 잘랐다.
"헌터협회 규정 제3조. 던전 실전 입장은 만 17세 이상부터 가능합니다."
뭐?
머릿속에서 뭔가 툭 끊기는 소리가 났다.
국가는 나를 어른이라고 부르는데, 협회는 애라고 부르는 거였다.
'이게 무슨 소린가.'
같은 나라 안에서 법이 이렇게 서로 딴소리를 해도 되는 건가.
"성인 연령이 15세로 바뀌었잖아요." 나는 다시 물었다.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네, 근데 그거랑 던전 입장 규정은 다른 법이에요." 직원이 한숨을 쉬듯 말했다.
이 대화, 오늘 몇 번째로 하는 걸까 하는 표정이었다.
"던전은 사망률이 높은 특수 구역이라, 협회 자체 규정으로 최소 연령을 못박아 놨거든요."
직원이 옆에 있는 작은 화면을 톡톡 두드렸다.
[헌터협회 규정 제3조: 만 17세 미만은 던전 실전 입장 불가. 위반 시 즉시 자격 박탈 및 5년간 재등록 금지]
빨간 글씨로 떠 있는 문구였다.
읽는 순간 위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5년.
5년이면 서인이가 대학 갈 나이가 됐다.
동생 서나는 그때쯤 중학생일 테고.
나는 그 5년을 버틸 방법이 없었다.
'통장에 남은 돈이 얼마였더라.'
굳이 계산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몇 번이나 세어본 숫자였으니까.
"그럼 견습 등록은요?" 나는 다시 매달렸다.
지금 물러설 데가 없었다.
"견습은 되는데, 실전 던전엔 못 들어가요. 이론 수업만." 직원이 사무적으로 답했다.
이론 수업.
그 단어가 귀에 들어오는 순간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이론 수업으로 월세를 낼 수 있나?
낼 수 없다.
동생들 밥을 먹일 수 있나?
못 먹인다.
교과서 살 돈은?
당연히 없다.
그럼 이론 수업이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나?
없다.
'차라리 그 시간에 알바를 하나 더 뛰는 게 낫겠다.'
나는 잠시 서류를 바라봤다.
손이 조금 떨렸다.
어제 그 골목에서 튕겨낸 남자의 팔이 떠올랐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담벼락까지 날아가던 그 몸.
그건 분명히 사람의 힘이 아니었다.
그 힘을, 나는 정말 아무데도 못 쓰는 걸까.
이렇게 규정 몇 줄에 막혀서?
"저... 혹시 신분증에 나이를 좀..." 나는 말을 하다 스스로 놀라 멈췄다.
'지금 뭐라고 하려던 거야.'
위조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직전이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미쳤나, 진짜.'
직원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눈빛이 순식간에 경찰 취조하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학생, 그런 말은 여기서 하지 마세요. 그거 걸리면 5년이 아니라 영구 금지예요." 직원이 낮게 경고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무게감이 확실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맞다, 그건 진짜 최악의 선택이다.'
영구 금지면 서인이랑 서준이는 어떻게 되는 거지.
상상만 해도 등골이 서늘했다.
줄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 슬쩍 이쪽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와, 여기서 이러고 있으니까 완전 문제학생 된 기분이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지부장님 오세요!" 다른 직원이 갑자기 자세를 고쳤다.
말투에 화들짝 긴장이 묻어 있었다.
모두가 일어서서 인사하는 분위기가 됐다.
접수처 전체가 순식간에 정렬됐다.
무슨 사열식이라도 벌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뭔지도 모르고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뭐지, 갑자기 웬 대통령이라도 오나.'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가까워졌다.
박자가 일정하고, 걸음이 짧고 빨랐다.
작은 체구의 여자가 걸어왔다.
키는 나보다도 작았는데, 눈빛이 이상하게 날카로웠다.
옷차림은 깔끔한 정장인데, 걷는 폼이 어딘가 사냥감을 노려보는 짐승 같았다.
명찰에는 '백서연'이라고 적혀 있었다.
'서울 던전관리센터 지부장? 이렇게 젊은데?'
내가 상상했던 지부장은 배 나온 아저씨였는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그녀는 내 서류를 스쳐보고는 잠시 멈춰섰다.
시선이 서류에서 내 얼굴로, 다시 서류로 옮겨졌다.
"이 아이, 반려 처리했어?" 백서연이 창구 직원에게 물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또렷했다.
"네, 규정상 어쩔 수 없어서..." 직원이 대답했다.
직원의 말투가 갑자기 존댓말 톤이 한층 더 올라갔다.
백서연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마치 상품 검수하듯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뭔가를 계산하는 눈빛이었다.
'뭐야, 왜 저렇게 봐.'
내가 뭐 불량식품인가.
"이름이 뭐예요?" 백서연이 나에게 직접 물었다.
"강도윤입니다." 나는 얼떨결에 존댓말로 대답했다.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자기 손목에 찬 기계를 내 쪽으로 들이댔다.
작고 매끈한, 시곗줄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삐빅.
작은 소리가 났다.
기계 화면에 뭔가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백서연의 눈이 순간 커졌다.
딱 그 순간의 표정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당황도 아니고, 놀람도 아니고,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표정.
마치 카드 뽑기에서 있을 수 없는 확률이 뜬 사람의 표정이었다.
"...이거 재측정해봐야겠는데." 그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직원이 슬쩍 화면을 보려다가 그녀가 손을 살짝 틀어버리는 바람에 실패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씩 웃었다.
입꼬리가 딱 각도까지 계산된 것처럼 올라갔다.
"강도윤 학생, 오늘 시간 있어요?" 백서연이 물었다.
뭔가, 이거 좋은 예감인지 나쁜 예감인지 구분이 안 갔다.
방금까지 나를 문전박대하던 규정이라는 벽이, 이 작은 여자 앞에서는 뭔가 다르게 작동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방금 저 기계가 뭔가를 봤고, 그게 예사롭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 예사롭지 않은 무언가가, 앞으로 내 인생을 또 한 번 뒤흔들려 하고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