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소년가장 던전헌터

5화

다음 날 아침, 협회에서 전화가 왔다. 지잉- 지잉- 휴대폰이 방바닥을 긁으며 진동했다. 새벽 여섯 시 반. 이 시간에 전화가 온다는 건, 좋은 소식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설마 벌써 걸린 건가.' "강도윤 학생, 지부장님이 좀 보자고 하시네요." 직원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목소리 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전화 받는 사람도 뭔가 급하다는 걸 숨기지 못하는 목소리. '저쪽도 뭔가 큰일이 난 것처럼 말하는데.'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츄릅. 아니, 이건 긴장할 때 나는 소리가 아니라 그냥 입이 마른 소리였다. "지금 바로 가면 될까요?"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되물었다. "네, 최대한 빨리요." 직원이 답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한동안 천장만 바라봤다. 22분. 그 숫자가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침착하자. 익명으로 처리한다고 했잖아.' 근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서인이가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인아, 나 오늘 아침 좀 부탁해도 돼? 협회에서 급하게 오라네." 나는 방문을 열고 소리쳤다. "어, 오빠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서인이가 프라이팬을 든 채 고개를 내밀었다. "별일 아니야. 그냥 좀 보자고 하시네." 나는 웃으며 손을 저었다. '별일이 아니길 바라는 거지, 사실은.'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신는 손이 유독 굼떴다. 끈을 두 번이나 다시 묶었다. 이러니 진짜 시험 성적표 받으러 가는 초등학생 같았다. 협회로 가는 길, 지하철 창밖으로 지나가는 건물들이 유난히 빨리 지나갔다. 아니, 사실은 내 심장이 빨리 뛰어서 그렇게 느껴졌을 뿐이다. 지부장실 앞, 백서연이 서류를 든 채 기다리고 있었다. 표정이 어제와는 사뭇 달랐다. 장난기가 사라지고 진지함만 남아 있었다. 평소라면 나를 보고 눈웃음이라도 한 번 지었을 텐데, 오늘은 서류 모서리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거, 진짜 큰일인가 보다.' "22분이라니." 백서연이 낮게 말했다. 목소리에 감탄과 걱정이 반씩 섞여 있었다. "그게, 저도 왜 그런지..." 나는 말을 더듬었다. '솔직히 나도 몰라요, 왜 그런지.' 카드빚처럼 갑자기 늘어난 능력치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나조차도 감이 안 잡혔다. "괜찮아요. 일단 신기록은 익명으로 처리했어요." 그녀가 손을 저었다. '익명? 그럼 다행인가?' 나는 안도의 숨을 살짝 내쉬었다. "근데 문제는 협회 내부예요." 백서연이 말을 이었다. "신기록 세운 실습생이 있다는 소문이 벌써 다 퍼졌어요." 그녀가 이마를 짚었다. "이름은 안 새어나갔지만, 얼굴을 본 직원들이 있잖아요." [알림: 위탁 실습생 관련 소문 확산 감지] [협회 내부 관심도 급상승] 시스템 메시지가 뜨자마자, 나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와, 시스템도 이 소문을 감지한다고?' 이 정도면 그냥 소문이 아니라 협회 전체가 다 아는 공식 뉴스 아닌가. 소문이라니. 나는 이제야 실감이 났다. 하루아침에 유명해진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일이었나. 옛날 예능에서 무명 가수가 하루아침에 스타 되는 거 보면 다들 좋아했는데, 나는 왜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걸까. "직원들 사이에서는 벌써 별명까지 붙었어요." 백서연이 덧붙였다. "별명이요?" 나는 불안하게 물었다. "'익명의 신인'이라고." 그녀가 살짝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그거 뭔가... 무슨 특촬물 히어로 이름 같은데.' 나는 억지로 웃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등골이 서늘했다. "그리고 이건 좋은 소식일 수도 나쁜 소식일 수도 있는데." 백서연이 말을 흐렸다. "저희 훈련 교관님이 학생을 직접 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녀가 말했다. "교관님이요?" 나는 되물었다. '교관까지? 이건 그냥 대기업 신입 면접 수준 아닌가.' 지부장실 문이 열리고, 덩치 큰 중년 남자가 들어왔다. 짧게 깎은 머리, 얼굴에 흉터 하나. 딱 봐도 백전노장 느낌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실내 공기가 확 무거워졌다. 마치 교실 뒷문으로 담임 선생님이 들어올 때 같은 그 느낌. 그 얼굴을, 나는 알고 있었다. '어, 저 사람...' 초등학교 5학년 때, 정부가 운영했던 '유망주 발굴 프로그램'. 체육 시간에 몇 달간 나를 지도했던 사람이었다. 그때는 이름도 제대로 못 외웠는데, 얼굴은 절대 잊을 수 없었다. 특히 저 흉터. 체육관 철봉에서 떨어지는 애들을 몸으로 받아주다가 생긴 상처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던 기억이 스쳤다. "어라." 교관이 나를 보고 멈춰섰다. "...도윤이냐?" 그가 물었다. 목소리마저 그대로였다. 세월이 십 년쯤 흘렀는데, 목소리 톤이 하나도 안 변했다는 게 신기했다. "교관님, 기억하세요?"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그럼, 그때 달리기 하나는 진짜 재능 있었지." 그가 씩 웃었다. "근데 지금은 재능이 좀 더 이상한 쪽으로 폭발한 것 같은데." 그가 덧붙이며 나를 흘겨봤다. '그 말, 왠지 칭찬인지 걱정인지 모르겠다.' 백서연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두 분이 아는 사이예요?" 그녀가 물었다. "제 어머니가 그 프로그램에서 급식 봉사를 하셨어요." 나는 설명했다. 그때는 엄마도 살아있었고, 우리 집도 이렇게까지 가난하지 않았다. 그 시절이 갑자기 확 떠오르니, 마음이 이상하게 저릿했다. 급식실 창문 너머로 손을 흔들던 엄마의 모습이, 어제 본 것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앞치마에 밥풀이 튀어도 신경 안 쓰고, 나만 보면 웃었던 그 얼굴. "어머니는 잘 지내시냐?" 교관이 물었다. 나는 잠깐 말을 멈췄다. 공기가 순간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돌아가셨어요."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교관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랬구나. 미안하다, 몰랐다." 그가 진심으로 사과했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백서연이 헛기침을 하며 상황을 정리했다. "교관님, 도윤 학생 실력 좀 검증해주시겠어요?" 그녀가 화제를 돌렸다. "22분 기록, 저도 못 믿겠어서요." 백서연이 덧붙였다. 교관이 나를 다시 위아래로 훑어봤다. 마치 중고차 딜러가 매물 상태 확인하는 눈빛이었다. "좋다. 훈련장에서 한번 붙어보자." 그가 씩 웃었다. '붙어본다니, 뭘로?' 나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협회 지하 훈련장, 목검을 든 교관이 마주 섰다. 훈련장 벽에는 오래된 스크래치 자국이 가득했다. 여기서 얼마나 많은 실습생들이 두들겨 맞았는지 짐작이 갔다. '저 자국들, 다 사람 몸에서 나온 흔적이겠지.' 생각만 해도 등에 식은땀이 났다. "마나 없이, 순수 신체 능력만으로 3분 버텨봐라." 그가 말했다. "진짜요?" 나는 당황했다. "진짜 3분이면, 저 그냥 벽에 붙어있어도 3분은 버틸 수 있는데요." 나는 농담을 던졌다. "그럼 벽에 붙어 있다가 맞아봐라." 교관이 목검을 들며 대답했다. '농담이 안 통하는 상대구나.' "싫으면 관둬도 돼. 근데 나는 마나 재능보다, 몸이 먼저 튼튼해야 오래 산다고 믿는 사람이야." 그가 목검을 겨눴다. [특별 훈련 개시] [마나 사용 금지] 시스템 메시지가 뜨자마자, 나는 무의식적으로 마나를 끌어올리려던 손을 다시 내렸다. '습관이 무섭다니까.' 교관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휙! 목검이 얼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와, 진짜 빠른데.' 바람이 뺨을 훑는 느낌마저 선명했다. 나는 몸을 낮춰 피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몸이 생각보다 훨씬 잘 움직였다. 마치 예전부터 이런 동작을 해온 것처럼. 발끝이 바닥에 닿는 감각,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타이밍, 모든 게 머리로 계산하기 전에 몸이 먼저 알아서 반응했다. [알림: 신체 반응 속도, 동 연령대 평균 대비 320% 상회] '320%? 이거 그냥 인간 반열에서 좀 벗어난 수치 아닌가.' 나는 속으로 태클을 걸면서도, 몸은 계속 목검을 피했다. 휙! 휙! 두 번, 세 번 더 목검이 스쳐 지나갔다. 간격이 좁아질수록 나는 오히려 편안해졌다. '이상하다, 왜 익숙하지?' 교관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 녀석, 몸도 예사롭지 않은데." 그가 중얼거렸다.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 그는 목검을 고쳐 잡았다. "한 번 더 간다." 그가 말했다. 이번엔 속도가 더 빨라졌다. 휙! 휙! 휙! 나는 계속 몸을 틀며 피했다. 땀이 등을 타고 흘렀지만, 이상하게 숨은 크게 차오르지 않았다. 3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 동시에, 이렇게 짧게 지나간 적도 없었다. [특별 훈련 종료] [결과: 회피율 100%] 목검이 멈추자, 나는 그 자리에 잠깐 멍하니 서 있었다. '100%? 이거 그냥 무슨 게임 치트 쓴 거 아닌가.' 백서연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팔짱을 낀 채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 뒤에는 뭔가 걱정스러운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서류철을 다시 고쳐 안으며, 뭔가를 계속 메모하고 있었다. '저거 지금 내 성적표 쓰는 건가.' "저기, 두 분..." 나는 훈련이 끝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숨을 고르며,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아까 소문 얘기 하셨잖아요. 그거 저한테 무슨 문제가 되는 거예요?"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백서연과 교관이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뭔가, 나만 모르는 이야기가 있는 표정들이었다. 교관이 목검을 벽에 세워두며 팔짱을 꼈다. "...협회 상층부에서 이미 이 소문을 들었대요." 백서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본부에서 직접 조사관이 내려온다는 얘기가 있어요." 그녀가 덧붙였다. 조사관. 그 단어가 유난히 무겁게 들렸다. '조사관이라니, 무슨 세무조사도 아니고.' 나는 그 단어를 몇 번이고 속으로 되뇌었다. 교관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조사관이 온다는 건, 이미 이 소문이 그냥 소문 수준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가 말했다. "본부에서 관심을 가질 정도면, 뭔가 특이 케이스로 분류됐다는 거지." 그가 덧붙였다. '특이 케이스라니. 그거 좋은 뜻은 아니겠지.' 백서연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학생,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은 못 하겠어요." 그녀가 솔직하게 말했다. "근데 준비는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녀가 서류를 만지작거리며 덧붙였다. 나는 통장에 찍힌 200만 원을 떠올렸다. 그 숫자가 처음 찍혔을 때는 세상 다 가진 기분이었는데. 그 돈이 지금, 갑자기 훨씬 위험한 돈처럼 느껴졌다. 마치 어디선가 누군가가 그 돈의 출처를 하나하나 따져 물을 것처럼. '이거 잘못하면 200만 원짜리 폭탄인 건가.' 훈련장 조명이 유독 차갑게 느껴졌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목검이 세워진 벽을 바라봤다. 저 스크래치 자국들처럼, 나도 언젠가 저 벽에 흔적 하나 남기게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이 스치자마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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