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언니, 저도 마법소녀예요

1화

자정. 폐건물 옥상. 3월의 끝자락이었지만 밤바람은 여전히 살을 벨 듯 차가웠다. 나는 콘크리트 난간에 몸을 바짝 붙이고 숨을 죽였다. 손끝에서부터 미세한 입자들이 뭉쳐지는 감각이 시작됐고, 그것들은 순식간에 총구의 형태로 응축되며 손아귀에 무게감을 남겼다. 처음 이 능력을 발견했을 때는 이게 마법인지 착시인지도 헷갈렸지만, 이제는 눈을 감고도 총열의 길이와 균형을 가늠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해져 있었다. 손바닥에 남는 이 서늘한 무게감이 나는 아직도 좀 낯설었다. 총이라는 걸 실제로 만져본 적도 없었으면서, 몸은 마치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정확한 자세를 잡았다. 어깨에 힘을 빼고, 팔꿈치를 살짝 접고, 조준선을 눈높이에 맞추는 이 일련의 동작들이 어디서 왔는지 나는 아직도 설명할 수 없었다. 표적은 3백 미터 아래, 재개발 부지의 철골 사이에서 서서히 형체를 갖춰가는 중이었다. 격수(隔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것은 아직 완전히 현실화되지 않은 상태였고, 검은 안개 같은 몸통 위로 희미하게 빛나는 점 하나만이 또렷했다. 나는 그 빛을 핵이라고 불렀다. 격수의 유일한 약점이자, 저격이 성립하는 유일한 이유였다. 격수에 대해서라면 나는 이 도시 어느 관리국 요원보다도 많이 알고 있었다. 경계층이라는 완충 공간에서 에너지를 축적한 뒤에야 현실로 넘어올 수 있다는 것, 현실화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물리력이 거의 통하지 않는다는 것, 신체 접촉이 일어나면 접촉 부위부터 급속히 부패한다는 것, 그리고 핵의 밝기가 진해질수록 현실화까지 남은 시간이 짧아진다는 것까지. 이런 지식들은 원래 팬으로서 설아 님의 전투 브리핑 영상을 백 번쯤 돌려보며 저절로 외운 것들이었는데, 지금은 그게 내 목숨을 지키는 유일한 데이터가 되어 있었다. 핵의 밝기가 살짝 짙어졌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숨을 반쯤 내뱉고, 나는 트리거를 당겼다. 압축된 마력탄이 밤공기를 가르는 소리는 실제 총성과는 달랐다. 낮고 무거운, 유리가 아주 멀리서 깨지는 듯한 소리였다. 탄환은 정확히 핵을 관통했고, 격수는 형체를 완성하지 못한 채로 안개처럼 흩어졌다. 또 하나, 처리 완료. 난간에서 몸을 떼며 나는 셈을 했다. 이번 달 들어 열한 번째였다. 하루 평균으로 치면 대략 사흘에 한 번 꼴, 관리국이 공개하는 격수 발생 통계와 비교해보면 신도림 일대에서만 이 정도 밀도로 격수가 나타난다는 게 정상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관리국 공식 통계에는 하나도 잡히지 않을 숫자였다. 등록된 마법소녀가 아닌 나 같은 존재는 처치 기록 자체가 남지 않았고, 남더라도 “원인 불명 소멸”로 처리될 뿐이었다. 알아도 소용없는 지식이라는 걸, 나는 매번 이 순간에 다시 확인했다. 옥상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무릎이 살짝 떨렸다. 총을 쥐는 순간의 긴장이 풀리고 나면 늘 이랬다. 아무리 익숙해져도 몸은 완전히 무뎌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휴대폰을 열어보니 타임라인은 오늘도 설아 님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청담대로 상공에서 벌어진 전투 영상, 조회수 이백만. 댓글창에는 설아 님의 검이 그려낸 빛의 궤적을 분석하는 팬들의 글이 수십 개씩 달려 있었다. 화면을 넘길 때마다 손끝이 저릿했다. 나는 그 빛의 궤적을 실제로도 알고 있었다. 브리핑 영상에서 몇 번이나 봤던, 설아 님이 검을 회전시키기 직전에 반드시 반박자 숨을 고르는 습관까지도. 그 밑에 누군가 짧게 남긴 댓글 하나가 눈에 걸렸다. “근데 요즘 신도림 쪽에서 격수 자꾸 조용히 사라진다던데. 그거 뭐임?” 대댓글은 없었다. 나는 그 댓글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화면을 그냥 꺼버렸다. 나는 마법소녀가 아니다. 처음 이 힘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그 문장을 몇백 번은 되뇌었을 것이다. 마법소녀란 관리국에 등록되고, 코드네임을 받고, 팬클럽이 생기고, 인터뷰를 하고, 광고 모델까지 하는 존재였다. 화려한 변신 시퀸스와 반짝이는 슈트, 그리고 대중의 사랑. 그게 내가 알던 마법소녀였고, 그게 내가 원하던 세계였다. 나는 그런 걸 원한 적이 없었다. 나는 그저 설아 님을 좋아하는, 청람중학교에 다니는 평범한 열일곱 살이었다. 설아 님의 굿즈를 사려고 용돈을 몇 달씩 모았고, 설아 님이 나오는 인터뷰 영상은 자막까지 외울 정도로 돌려봤을 뿐이었다. 딱 거기까지였어야 했다. 세 달 전 그날 밤을 나는 아직도 감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학원을 마치고 늦게 귀가하던 길, 골목 안쪽에서 무언가가 나를 덮쳤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가방에서 설아 님 열쇠고리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대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지금도 설명할 수 없다. 그냥 그게 나를 지켜줄 것 같았다. 손에 쥔 그 작은 아크릴 조각이,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방패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열쇠고리가 빛을 뿜었고, 손끝에서부터 낯선 힘이 흘러나와 격수의 형체를 산산조각 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골목은 조용했고, 손바닥에는 화약 냄새 비슷한 잔향만 남아 있었다. 나는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도 몸이 떨려서 한참을 이불 속에 웅크려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마력을 압축해서 총의 형태로 뽑아낼 수 있게 되었다. 변신복도, 요술봉도, 반짝이는 슈트도 없었다. 그냥 롱코트 하나를 걸치고 어둠 속에서 총을 쏘는 것, 그게 내가 가진 힘의 전부였다. 처음 몇 번은 조준이 어긋나서 격수를 완전히 소멸시키지 못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열 번에 아홉 번은 한 발로 끝낼 수 있게 됐지만, 그 아홉이라는 숫자를 만들기까지 몇 번이나 도망쳐야 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어릴 때 나는 나만의 히어로명을 지어놓은 적이 있었다. 설아 님의 곁을 지키는 이름 없는 별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붙인 이름, 설백성(雪白星). 초등학생 시절 다이어리 한 귀퉁이에 적어놓았던 그 이름을, 지금은 누군가 인터넷에서 실제로 부르고 있었다. 격수가 사라진 자리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하얀 흔적이 남았고,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SNS에 “설백성”이라는 이름을 붙여 퍼뜨리기 시작했다는 걸, 나는 오늘 처음으로 확실히 알았다. 다행히 아직은 목격담 수준이었다. 사진도 없고, 영상도 없고, 그저 “뭔가 있었다”는 증언만 몇 개. 그 이름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웃어야 할지 두려워해야 할지 몰랐다. 열 살짜리가 다이어리에 적어놓은 이름이, 이런 방식으로 세상에 나올 줄은 몰랐으니까. 우연이 하나였다면 그냥 넘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흔적의 색깔, 사라지는 방식, 심지어 이름까지, 겹치는 게 세 개가 넘어가면 그건 우연이 아니었다. 집에 도착해서 침대에 눕기 전, 나는 거울 앞에서 옷매를 다시 정리했다. 코트 안쪽에 남은 화약 냄새 비슷한 마력 잔향을 지우고, 손끝에 남은 저릿한 감각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손을 문질렀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평범한 열일곱 살, 청람중학교 3학년 강하은이었다. 그 얼굴 어디에도 총을 쥐던 손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내일도 나는 그 얼굴로 등교해야 했다. 창밖에서 멀리 구급차 사이렌이 울렸다. 그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눈을 감지 못했다. 사이렌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겨우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아침, 교실 문을 열자마자 소미가 휴대폰을 들이밀며 소리쳤다. “하은아, 이거 봤어? 신도림 목격담!” 나는 순간 심장이 턱 막히는 걸 느꼈지만,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었다. 웃음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반 박자도 안 됐을 텐데, 그 반 박자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뭔데.” “설백성이라는 애가 있대. 사람들이 그러는데, 격수를 총으로 쏴서 없앤다는 거야. 총이라니, 완전 신선하지 않아? 관리국 애들은 다 검이나 지팡이 쓰는데.” 소미의 눈이 반짝였다. 순수한 흥미, 딱 그뿐이었다. 이 애는 이 이름 뒤에 내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반짝임을 정면으로 보지 못하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신기하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 정도였다. 목소리가 너무 평평하게 나왔나 싶어서 뒤늦게 걱정이 됐지만, 소미는 이미 다른 화면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서윤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교실 안이 소란스러운데도 서윤 자리만 이상하게 조용했다. 나는 애써 그쪽을 보지 않으려 했지만, 시선이 계속 그 방향으로 끌려갔다. 서윤은 팔짱을 낀 채로 창가 자리에 앉아, 소미의 휴대폰 화면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는데, 그게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그 시선이 유난히 오래 머문다는 걸, 나는 뒤늦게 알았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나는 자리에 앉으면서도 서윤 쪽으로 향한 시선을 완전히 거두지 못했다. 서윤은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앞을 봤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뭔가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칠판 앞에 선생님이 출석부를 펼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책상 위에 손을 올려놓고, 어젯밤 총을 쥐었던 손끝의 감각이 아직 남아있는지 조용히 확인했다.
첫 화입니다 목록 다음화 ›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