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링크를 눌렀을 때, 화면에 뜬 건 다행히 얼굴이 아니었다.
흐릿한 뒷모습 사진 한 장과, 그 아래 달린 수백 개의 댓글이었다.
사진 속 인물은 롱코트를 입고 옥상 난간에 서 있었는데, 각도상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안도의 숨을 삼키며 화면을 넘겼다.
“누가 진짜 얼굴 나온 거라고 낚시글 올린 거였네. 아쉽다.” 소미가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목구멍이 잠깐 뜨거워졌다가, 곧 식었다.
이런 종류의 안도는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누군가 나를 찍었다는 사실 자체가, 얼굴이 나왔든 안 나왔든, 이미 하나의 경고였으니까.
그날 저녁, 나는 노트를 펼쳤다.
두 달 넘게 혼자 기록해온 경계층 밀도 지도였다.
각 구역별로 격수가 형체를 갖추기 시작하는 시간, 밀도가 임계치를 넘는 주기, 지형에 따른 편차까지 손으로 그려 넣은, 이 서울에서 나 말고는 아무도 갖고 있지 않을 자료였다.
격수라는 게 원래 그렇다.
한 개체가 나타나는 건 우연이지만, 같은 구역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건 지형적 요인이 있다는 뜻이고, 그 요인을 계산해내면 다음 출현 지점과 시간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관리국은 이런 걸 통계로 관리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정작 현장에 나오는 마법소녀들은 그날그날 배정받은 구역을 도는 것뿐, 이런 세밀한 패턴까지 들여다볼 여유는 없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 이 지도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였다.
그리고 그 앎은, 정작 나를 지켜주지는 못했다.
노트를 접고 신도림 근처 폐쇄된 상가 건물로 향하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주변을 살폈다.
사진 한 장이 마음에 걸려서였다.
누군가 나를 봤을지도 모른다는 감각은, 목덜미에 닿는 밤바람보다 더 차갑게 파고들었다.
예상대로 그 구역에는 격수 두 마리가 동시에 형체를 갖춰가고 있었다.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가는 동안 들리던 낮은 진동음이, 옥상에 다다랐을 때는 거의 울음소리처럼 커져 있었다.
나는 옥상에서 자세를 잡고 첫 번째 표적을 조준했다.
손끝에 마력이 모이는 감각, 차갑게 응축되다가 순식간에 뜨거워지는 그 낙차는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누구야?”
나는 총을 즉시 흩어 없앴다.
손끝이 저릿했다. 방금 응축시켰던 마력이 갈 곳을 잃고 순식간에 흩어지는 감각은, 마치 숨을 참다가 갑자기 놓아버린 것 같았다.
뒤를 돌아봤다.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 인영은 놀랄 만큼 익숙한 실루엣이었다.
붉은 장미 문양이 들어간 코트.
매직걸 청장미 님이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소리를, 나는 실제로 들은 것 같았다.
팬 커뮤니티에서 몇 번이고 봤던 그 코트, 그 실루엣이 실제로 눈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 머리보다 몸에 먼저 전달됐다.
방송에서는 카메라 앞에서 조곤조곤 존댓말을 쓰는 걸로 유명했지만, 실제로는 사투리가 섞인 털털한 성격이라는 게 팬들 사이 정설이었다.
나는 그 소문이 진짜라는 걸, 이 순간 처음으로 실감했다.
“너 방금 뭐 했나. 이 근처에 격수 두 개 있는 거 알고 왔나?”
청장미 님의 말투에는 경상도 억양이 살짝 섞여 있었다.
방송용 존댓말과는 전혀 다른, 훨씬 날카롭고 훨씬 사람 같은 말투였다.
“그냥 지나가다가……”
“지나가다가 이 시간에 이 건물 옥상에 올라오는 사람이 어딨노.”
청장미 님은 팔짱을 낀 채 나를 훑어봤다.
그 시선이 발끝에서 얼굴까지 천천히 올라오는 동안, 나는 숨을 죽였다.
손끝에 다시 마력이 모이려는 걸 억지로 억눌렀다.
지금 여기서 총을 만들어내면 모든 게 끝이었다.
관리국 소속도 아니고, 등록된 마법소녀도 아닌 존재가 밤중에 격수를 조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나는 더 이상 그림자 속에 숨어 있을 수 없게 될 터였다.
그 순간, 건물 아래쪽에서 격수 두 마리가 동시에 현실화를 마쳤다.
굵은 울음소리 같은 진동이 옥상까지 전해졌다.
콘크리트 바닥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발바닥으로 느껴졌다.
“이런, 하나는 못 잡을 각도네.” 청장미 님이 혀를 차며 앞으로 나섰다.
순간 나는 그가 격수 처치에 완전히 집중하는 틈을 노릴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동시에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사각으로 빠져나가는 궤적도 계산해냈다.
건물 구조상 청장미 님이 서 있는 위치에서는 왼쪽 격수의 이동 경로가 옥상 난간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그 격수는 지금 속도로 약 삼 초 안에 완전히 사각으로 빠져나갈 것이었다.
셈은 늘 이럴 때 빠르게 나왔다.
위기일수록 머릿속에서 숫자들이 먼저 정렬됐다.
답은 금방 나왔다.
청장미 님이 첫 번째 격수를 향해 서포트 마법을 펼치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손끝에 총을 응축시켜 사각으로 빠져나가려는 두 번째 격수의 핵을 쏘았다.
탄환이 손끝을 떠나는 그 짧은 순간에도, 발각의 대가와 격수를 그대로 놔뒀을 때의 피해를 저울질하는 계산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탄환은 정확히 명중했고, 격수는 소리 없이 흩어졌다.
정적이 흘렀다.
멀리서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어딘가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 같은 도시의 잡음들이 그제야 다시 귀에 들어왔다.
청장미 님이 천천히 나를 돌아봤다.
그 눈빛에는 놀라움과 경계가 반씩 섞여 있었다.
“너, 관리국 소속 아니제?”
나는 대답 대신 침을 삼켰다.
목구멍이 뜨겁게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하든, 어떤 대답을 고르든, 그 선택 하나가 앞으로 내가 계속 이 짓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할 거라는 걸 알았다.
“됐다, 지금 캐물을 시간 없다. 이 근처 격수 밀도 계속 올라가고 있는 거, 니도 느꼈제?”
예상 못한 질문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면, 느낀 게 아니라 계산해서 알고 있었다.
노트에 적어둔 밀도 곡선이 이미 지난주부터 이상한 방향으로 꺾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관리국에서도 이거 이상하다 캤다. 요 몇 주 사이에 신도림, 청담, 왕십리 이 세 구역만 유독 격수가 몰린다. 우연이 셋을 넘으면 우연이 아니다 캤는데, 이게 딱 그 짝이다.”
세 구역.
나는 그 세 지명을 노트 속에서 이미 몇 번이나 밑줄 쳐뒀다는 걸 떠올렸다.
관리국이라는, 나보다 훨씬 많은 정보와 인력을 가진 조직이 도달한 결론이, 나 혼자 밤마다 지도를 그려가며 도달한 결론과 정확히 겹친 순간이었다.
처음이었다.
혼자만 알고 있던 정보가, 다른 누군가의 정보와 이렇게 정확히 겹친 건.
그 사실이 반가움보다 먼저 서늘함으로 다가왔다.
우연이 아니라면, 그건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의도적으로 그 세 구역에 격수를 몰아넣고 있다는 뜻이었다.
청장미 님은 나를 위아래로 다시 훑어보다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오늘 일은 못 본 척해줄게. 근데 다음에 또 마주치면 그때는 얘기 좀 해야 할 거다.”
그 말에는 경고와 배려가 애매하게 뒤섞여 있었다.
봐준다는 말 속에 봐주지 않을 다음이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나는 그 이중적인 어조를 놓치지 않고 읽어냈다.
그 말을 남기고 청장미 님은 몸을 돌려 건물 아래로 뛰어내렸다.
코트 자락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 짧은 순간, 붉은 장미 문양이 마지막으로 한 번 반짝였다.
나는 옥상에 홀로 남아 방금 벌어진 일을 되새겼다.
처음으로, 등록된 마법소녀가 나를 알아본 순간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 혼자 알고 있던 정보가 다른 누군가의 정보와 겹친 순간이기도 했다.
바람이 옥상 난간을 스치며 낮은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마치 방금 사라진 격수의 울음소리 잔향처럼 귓가에 남아 있었다.
나는 노트를 다시 펼쳐 신도림, 청담, 왕십리 세 지명 옆에 작게 물음표를 그려 넣었다.
세 구역에 몰리는 격수.
우연이 아니라는 그 말이, 밤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 남은 건, 낮에 봤던 그 흐릿한 뒷모습 사진이었다.
각도상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고 해서, 그게 정말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뜻은 아닐 수도 있었다.
나는 그 생각을 애써 지우며 노트를 덮었지만, 손끝에 남은 저릿함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