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구슬을 집은 건 나였다. 서윤의 손끝이 아주 근소한 차이로 허공을 짚었고, 나는 그 순간을 지금도 손바닥의 감각으로 기억하고 있다.
구슬은 별거 아닌 물건처럼 보였다. 학원 앞 문구점에서 이천 원짜리 한 봉지로 파는 야광 구슬, 밤이 되면 파랗게 빛나는 그 흔한 소품과 겉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달랐다. 그 안쪽에는 어젯밤 격수를 처치하고 남은 마력의 잔여물이 옅게 맺혀 있었고, 그건 남들 눈에는 절대 들켜서는 안 될 흔적이었다. 남들 눈에는 장난감으로 보일 물건이, 나에게는 존재를 감춰야 할 유일한 위험이었다.
서윤이 살짝 눈을 크게 뜬 채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게 뭐야?”
“학원에서 파는 이상한 팔찌 재료. 야광 구슬이야.”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지만,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는 걸 스스로도 알았다. 손끝으로 구슬을 감싸 쥐면서 나는 숨을 짧게 삼켰다. 서윤은 잠깐 나를 응시하다가 더는 묻지 않았다. 대신 아주 짧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은아, 나 너 요즘 좀 이상한 거 안다.”
그 말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에 미안함이 없다는 걸 알아채는 것처럼, 나는 서윤의 문장에서 의심의 밀도를 곧바로 읽어낼 수 있었다. 서윤은 나를 추궁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냥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서윤은 예전부터 그런 애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서윤은 내가 뭔가를 숨기려 하면 그 숨기려는 티를 먼저 알아챘다. 시험 성적을 숨겼을 때도, 좋아하던 애가 있었을 때도, 서윤은 캐묻지 않고 그저 알고 있다는 눈빛만 보내왔다. 그게 서윤의 방식이었다. 몰아붙이지 않고, 다만 거짓말의 무게를 스스로 느끼게 하는 방식.
“이상할 거 없어. 그냥 요즘 좀 바빠서.”
나는 애써 웃으며 대답했고, 서윤은 더 캐묻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목구멍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거짓말을 하는 게 익숙해질 리 없다는 걸, 매번 새삼 깨달았다.
교실 창밖으로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곧 비가 올 것 같은 하늘이었다.
그날 밤, 나는 옥상에서 격수 세 마리를 연속으로 처치하고 돌아오는 길에 결심 하나를 굳혔다. 세 마리 모두 크기가 작고 움직임도 둔했지만, 세 번째 격수는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등 뒤에서 튀어나온 놈을 반사적으로 쳐낸 게 다였다. 만약 그 순간 반응이 반 박자만 늦었어도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없을 수도 있었다.
그 생각이 들자 손끝이 저릿해졌다.
더는 우연히 마주치는 격수를 상대로 즉흥적으로 움직이지 않겠다는 것. 그게 그날 밤의 결심이었다. 관리국의 경계층 탐지 데이터를 볼 수는 없었지만, 팬으로 지내던 시절 쌓아온 지식만으로도 격수의 출현 패턴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설아 님의 전투 브리핑 영상에서 격수 출몰 지도가 흘러나온 걸 몇 번이나 캡처해두었던 게,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설아 님의 브리핑 영상은 원래 팬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콘텐츠였다. 정식 방송에는 절대 나오지 않는, 관리국 내부 교육용으로 유출된 영상이었는데, 화질이 나빠서 자막도 없이 돌아다니는 걸 소미가 어렵게 구해다 준 게 시작이었다. 그 영상 속에서 설아 님은 지도 위에 붉은 점을 하나씩 찍어가며 설명했다. “여기, 여기, 여기. 이 세 구역은 경계층 밀도가 항상 평균보다 높습니다. 신입 요원들은 반드시 외우세요.” 나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모른다. 그때는 그냥 좋아서 봤을 뿐인데.
격수는 경계층 밀도가 높은 구역, 즉 지하철 환승 구간이나 오래된 재개발 부지 근처에서 유독 자주 목격되었다. 나는 그 패턴을 노트 한 권에 정리해두었다. 표지가 낡은 스프링 노트였는데, 원래는 중학교 때 좋아하던 아이돌 굿즈 정보를 정리하던 노트였다. 이제는 그 노트가 완전히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어느 요일, 어느 시간대에 어느 구역에서 밀도가 올라가는지, 나만의 지도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화요일과 목요일 밤, 환승역 3번 출구 쪽. 주말 오후, 재개발 부지 담벼락 안쪽. 비 오는 날에는 밀도가 평소보다 약 이십 퍼센트가량 높아지는 것 같았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었지만, 세 번 겹치면 우연이 아니라는 걸 나는 몸으로 배워가고 있었다.
관리국에도 없는 데이터를, 나 혼자 만들고 있었다.
그 사실이 주는 묘한 우월감과, 그것을 아무에게도 자랑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아는 게 많아질수록 혼자 짊어져야 하는 무게도 함께 늘어난다는 걸, 나는 매번 새로운 각도로 배우고 있었다. 노트를 덮으며 나는 생각했다. 이걸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보여줄 상대가 없다는 게, 정확히는 보여줘서는 안 된다는 게, 이 노트의 진짜 무게였다.
그 주 주말, 팬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설백성” 관련 글이 부쩍 늘어 있었다. 소미가 즐겨 들어가던 그 커뮤니티에는 어느새 목격담을 모으는 전용 게시판까지 생겨 있었다. 이름은 누가 처음 붙였는지 모르겠지만, 밤에 흰빛을 내며 나타난다는 이유로 “설백성”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했다. 눈처럼 흰 별. 나는 그 이름을 처음 봤을 때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봐도 그럴듯한 이름이었다.
익명 아이디들이 붙은 글마다 사진과 위치 정보를 교차 검증하는 댓글이 달렸고, 그중 한 아이디는 다른 이들보다 유독 집요했다. 아이디는 “격수감별사”였는데, 프로필을 보니 게시글마다 좌표와 시간을 정리해서 표로 만들어 올리는 사람이었다. 나만큼이나 집착적인 사람이 또 있다는 게, 이상하게도 소름이 돋았다.
“이거 딱 봐도 관리국 미등록 능력자임. 저러다 큰 사고 치면 등록 마법소녀들한테 책임 다 떨어짐. 누가 좀 신상 캐줌?”
댓글창에는 벌써 이런저런 추측이 달리고 있었다. “키 작고 머리 짧던데 중학생 아니냐”, “목격된 시간대 보면 야간자율학습 없는 요일이랑 겹침”, “근처 학교 특정 가능할 듯”. 하나하나가 나를 향해 조여드는 것 같았다.
나는 그 글을 캡처해서 저장했다. 누가 나를 캐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이 이야기의 관객에서 당사자로 완전히 밀어붙이고 있었다.
더는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마법소녀가 아니라는 문장을 되뇌던 지난 세 달이, 결국 스스로를 속이기 위한 방패였다는 걸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설아 님을 동경하며 지식만 쌓아온 팬이, 어느 순간 그 세계 안으로 완전히 발을 들여놓았다는 걸.
나는 마법소녀였다. 변신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사실을 지금까지 미뤄왔을 뿐이었다.
그 인정이 주는 감각은 시원함이 아니라 서늘함이었다. 손끝이 저릿해지고, 숨이 턱 막혔다. 나는 침대에 앉은 채로 한참을 그 서늘함 속에 머물러 있었다. 창밖에서 늦은 오토바이 소리가 지나갔다. 그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생각이라는 건 그렇게 마음대로 멈춰지는 게 아니었다.
만약 저 게시판 사람들이 진짜로 나를 특정해낸다면 어떻게 될까. 학교에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서윤은, 소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설아 님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나를 어떻게 볼까.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답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휴대폰 알림이 연속으로 울렸다. 진동이 세 번, 네 번 겹쳐 울리는 걸 보고 나는 이미 좋은 소식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소미가 보낸 링크였다.
“하은아 이거 봐, 완전 난리 났어. 설백성 얼굴 나온 거래!”
메시지 밑에는 이미 조회수가 몇만을 넘긴 게시글 링크가 붙어 있었고, 그 아래로 소미가 보낸 물음표 이모티콘이 세 개나 이어져 있었다.
나는 손이 얼어붙은 채로 화면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