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낯익은 천장을 마주하고 있었다.
낡은 서까래 사이로 스며드는 희미한 볕과, 코끝에 감기는 매캐한 약초 냄새. 그 냄새는 익숙했다. 어릴 적부터 상처를 입을 때마다 맡아온, 사부님이 손수 달여주시던 그 탕약의 냄새였다.
도장의 내 방이었다.
'어떻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옆구리에서 둔한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죽음을 눈앞에 두었던 그때의 격렬한 아픔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약해져 있었다. 마치 오래된 상처가 아물어가는 듯한, 참을 만한 통증이었다.
천천히 손을 들어 옆구리를 더듬어보았다. 붕대가 두툼하게 감겨 있었고, 그 아래로 느껴지는 살갗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가는 흔적이었다. 도무지 며칠 사이에 이렇게 아물 수 있는 상처가 아니었다.
"깨어났느냐."
곁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고개를 돌려 그 얼굴을 보았다.
사부님이었다.
밤을 새워 나를 지켜본 듯, 눈 밑에는 짙은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고, 손에 든 물수건에서는 아직도 물기가 배어 있었다. 평소라면 흐트러짐 없이 정갈했을 옷차림도 오늘은 어딘가 구겨진 채였고, 백발 사이로 흘러내린 머리카락 몇 가닥이 이마에 붙어 있었다.
"사부님..."
목이 메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말을 하려 할수록 목구멍 안쪽이 뜨겁게 조여왔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사부님이 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나를 지켜보셨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어리석은 아이야."
사부님이 내 머리를 짚어보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손끝이 미열을 확인하듯 이마를 스쳐 지나갔고, 그 손길에서 안도와 걱정이 뒤섞인 무게가 느껴졌다.
"산 아래 나무꾼이 눈밭에 쓰러진 너를 발견하고 업어다 주지 않았더냐. 그가 아니었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너를 다시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무꾼이... 저를요?"
"그렇다. 땔감을 하러 나왔다가 눈밭에 파묻힌 너를 발견했다더구나.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고 하더라. 다행히 네 붉은 도복 자락이 눈 위로 삐죽 나와 있었다지."
그제야 나는 상황을 조금씩 정리할 수 있었다.
의식을 잃은 후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상처가 이렇게까지 아물어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보통의 상처였다면, 그것도 두 명의 무부에게 당한 상처였다면, 이 정도로 빠르게 회복될 리 없었다.
'상자가 나를 살렸다.'
나는 목에 걸린 상자를 손으로 더듬어보았다.
표면에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그날 밤 느꼈던 붉은 빛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 있었으나, 손끝에 닿는 미세한 온기는 여전했다. 마치 심장처럼, 아주 느리게 맥동하는 듯한 그 온기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
사부님의 눈빛이 형형하게 나를 향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그리고 얼마나 솔직하게 말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부님의 눈을 마주한 순간, 숨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그날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털어놓았다.
설랑을 잡은 것, 유현성 일행이 나타나 그것을 빼앗아간 것, 그리고 두 무부에게 당한 일까지. 눈밭 위에서 느꼈던 절망과, 죽음을 각오했던 그 순간까지도.
이야기를 듣는 사부님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고, 마른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방 안의 공기가 점점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청하현 현령의 아들이라..."
사부님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는 분노보다는 오래된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
"그 아이가 혜덕의 제자로 들어갔다는 소문은 들었다만, 설마 이런 짓까지 벌일 줄은 몰랐구나."
"혜덕 대사가... 사부님과 무슨 관계가 있으신 겁니까."
나는 오래전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을 마침내 꺼냈다. 사부님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올 때마다 항상 느껴졌던 미묘한 긴장감, 그것이 오늘은 유난히도 짙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부님이 한참을 침묵하다가, 결국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래전 일이다. 그 사람과 나 사이에는 갚지 못한 빚이 있었지."
"어떤 빚이었습니까."
"지금 그것을 말할 때는 아니구나."
사부님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흐렸고, 나는 더 묻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그저 사부님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이 평소보다 훨씬 짙다는 것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그늘 속에는 단순한 원한이 아닌, 무언가 더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는 듯 보였다.
밖에서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고, 창문 틈으로 새어드는 바람이 방 안의 냉기를 더욱 짙게 만들고 있었다. 문풍지가 파르르 떨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 안에는 화롯불이 타고 있었지만, 그 온기로도 완전히 걷어내지 못한 냉기가 발끝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상처는 어떻게 이렇게 빨리..."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사부님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목에 걸린 상자로 시선을 옮겼다.
"그 상자로구나."
"예."
"괴검 노인이 남긴 물건이라 하지 않았느냐."
사부님의 눈빛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경계와 궁금함, 그리고 아주 옅은 두려움까지도.
"그 노인이 어떤 자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결코 평범한 물건은 아닌 듯하구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상자를 손에 쥐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검붉은 나뭇결과, 여전히 알 수 없는 문양들. 3년이 지났지만 그것은 조금도 낡지 않았고, 여전히 이음새 하나 보이지 않은 채 굳게 닫혀 있었다. 마치 처음 받았을 때 그대로, 시간의 흐름조차 거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대체 이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괴검 노인의 마지막 말이 다시 머릿속을 스쳤다.
"3년 뒤에 다시 오겠다."
그 노인의 형체가 눈밭 위로 사라지던 그 순간의 기억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백발과 백염, 그리고 예사롭지 않던 눈빛까지.
그 3년이 이미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무겁게 느껴졌다.
'대체 그날, 이 상자가 나를 어떻게 살린 것일까.'
붉은 빛이 온몸을 감쌌던 그 순간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했다. 마치 상자 안에서 무언가가 깨어난 듯한, 그리고 그것이 나를 죽음의 문턱에서 끌어당긴 듯한 느낌.
"시우야."
사부님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이번 일은 결코 조용히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사부님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이 한층 더 짙어졌다. 손에 쥔 물수건을 무의식적으로 꽉 움켜쥐는 것이 보였다.
"청하현의 힘 있는 자들이 우리 같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너도 이제 직접 겪었지 않느냐."
"...예."
그 말에 나는 다시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유현성의 비웃음, 그리고 두 무부의 검이 내 몸을 파고들던 그 순간의 고통. 잊고 싶어도 쉽게 잊혀지지 않을 기억이었다.
"이번 일로 그들이 자신들의 체면이 상했다고 여긴다면, 반드시 다시 찾아올 것이다."
사부님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오랜 세월 세상의 이치를 지켜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무거운 확신이었다.
"체면을 위해서라면, 그들은 무슨 일이든 벌일 수 있는 자들이다. 특히 유현성 그 아이는..."
사부님이 말을 멈추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청하현의 현령이라면, 그가 부릴 수 있는 힘이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혜덕의 제자가 되었다면, 그 뒷배 역시 만만치 않을 터."
나는 침을 삼켰다. 목구멍이 바짝 마르는 느낌이었다.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다. 그저 대비할 뿐이지."
사부님의 대답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당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여러 명의 발소리, 그리고 낡은 대문이 거칠게 두드려지는 소리.
- 텅! 텅!
사부님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발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적어도 셋, 혹은 그 이상. 눈 쌓인 마당을 밟는 무거운 발자국 소리가 규칙적으로, 그리고 거침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부님..."
나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옆구리의 통증이 다시 밀려와 짧은 신음을 삼켰다.
사부님이 손을 들어 나를 제지했다.
"움직이지 말거라."
그 목소리에는 평소와 다른 긴장이 배어 있었다. 사부님의 시선이 문 쪽을 향한 채 굳어 있었고, 나는 그 시선을 따라 문틈으로 스며드는 차가운 바람과 함께, 낡은 문살이 흔들리는 소리를 들었다.
- 텅! 텅! 텅!
두드림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