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몸 사렸더니 구원자랍니다

3화

다음 날 오전, 나는 태성 길드 인사팀장을 직접 호출했다. 집무실 창밖으로 태성 본관 앞 정원이 내려다보였다. 잔디는 방금 깎은 듯 짧고 고르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 위로 스프링클러가 규칙적으로 물을 뿌리고 있었다. 나는 그 풍경을 잠시 바라보다가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10시 정각이었다. 인사팀장 정민석은 오십 대 초반으로, 태성가 앞에서는 항상 몸을 낮추는 습관이 있었다. 회색 정장에 넥타이를 목까지 바짝 조여 매고 있었고, 손에는 항상 태블릿을 들고 다녔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허리를 90도 가까이 숙였다. "도련님께서 인사 문제까지 직접 챙기시다니, 무슨 일이십니까." 정민석이 물었다. 목소리에 긴장이 배어 있었다. "3팀 신입 한서준, 오늘부로 태성 산하 계열 길드로 이적시켜." 내가 말했다. 정민석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F등급 신입 하나를 태성가 후계자가 직접 챙긴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곧 표정을 지우고 태블릿을 켰다. 원작 지식으로 알고 있었다. 태성그룹 산하에는 신생 계열 길드인 '백년길드'가 있었고, 그곳은 대우가 훨씬 인간적인 편이었다. 설립된 지 3년밖에 안 된 곳이라 아직 실적 압박이 크지 않았고, 육성 위주의 방침을 고수하고 있었다. 한서준을 최두식의 손에서 빼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이적 이유는 뭐라고 기재할까요." 정민석이 물었다. "성장 가능성이 높아서 전담 육성이 필요하다고 해." 내가 대답했다. 정민석은 잠시 나를 뜯어보듯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즉시 처리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태블릿에 손가락을 몇 번 두드렸다. 서류가 접수되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나는 그가 나가는 걸 보며 속으로 계산을 했다. '이적 서류가 승인되려면 최소 반나절은 걸린다.' '그동안 최두식이 서준을 건드리지 않으면 다행인데.' 불안한 예감이 들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 오후, 이적 서류가 처리되기 전에 사고가 먼저 터졌다. 훈련장 참관실로 향하던 길에, 나는 지하 3층 복도에서 비명 소리를 들었다. 복도는 형광등 몇 개가 나가 있어서 유독 어두웠다. 바닥에는 오래된 얼룩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악!!!" 서준의 목소리였다. 나는 뛰기 시작했다. 구두 굽이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훈련장 문을 열자, 최두식이 서준의 팔을 뒤로 꺾은 채 벽에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 등급 가지고 어디서 개기냐고!" 최두식이 소리쳤다. 쾅! 서준의 등이 벽에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으어어엉..." 서준이 신음을 흘렸다. 서준의 이마에는 이미 땀과 눈물이 뒤섞여 흐르고 있었다. 훈련복 어깨 부분은 찢어져 있었다. 나는 상황을 계산할 겨를도 없이 소리쳤다. "손 놔." 최두식이 나를 돌아봤다. "도련님이 여기 왜." 최두식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팔 놓으라고 했다." 내가 다시 말했다. 목소리가 스스로도 놀랄 만큼 낮게 깔렸다. 최두식은 서준의 팔을 놓았다. 서준은 바닥에 주저앉으며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몸을 떨었다. 숨소리가 거칠고 불규칙했다. "오늘부로 이 아이는 3팀 소속이 아니야." 내가 말했다. "...예?" 최두식이 되물었다. "백년길드로 이적됐어. 방금 서류 처리 끝났다는 연락 받았고." 내가 말했다. 실제로는 아직 처리 중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최두식은 얼굴이 붉어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입술을 씹으며 나를 노려봤지만, 더 이상 대들지는 못했다. 태성가 도련님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나는 그 앞에서 몸을 돌려 서준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걸을 수 있어?" 내가 물었다. "...네, 걸을 수 있어요." 서준이 대답했다. 목소리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손끝도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나는 서준을 일으켜 세워 훈련장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서준의 팔을 부축하는 동안 그의 체온이 유난히 낮게 느껴졌다. 복도 벤치에 앉히고 나서야 서준이 처음으로 나를 제대로 쳐다봤다. 가까이서 보니 광대뼈 아래로 오래된 멍 자국이 남아 있었다. 최근에 생긴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왜 도와주신 거예요." 서준이 물었다. "보고 있었으니까." 내가 대답했다. 서준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저 같은 F등급한테 이렇게까지... 도련님이 직접 이적까지 시켜주실 필요는 없었잖아요." "필요 없는 일이었어도 한 거야." 내가 말했다. 사실 그건 전부 나 자신을 위한 계산이었다. 원작 파멸 플래그를 피하려는 보신술이었을 뿐이었다. 서준이 원작에서 나중에 어떤 위치에 서게 되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서준에게 그대로 할 수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서준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됐어, 됐고." 내가 대답했다. 괜히 목소리가 무뚝뚝하게 나왔다. 서준은 그날 이후 백년길드로 정식 이적되었다. 백년길드는 태성 본관에서 도로 하나 건너에 있는 12층짜리 신축 건물이었다. 로비에는 대리석 바닥이 깔려 있었고, 벽면에는 신입 각성자들의 프로필 사진이 걸려 있었다. 숙소는 개인실이 지급되었고, 식비는 하루 3만 원까지 지원되었다. 훈련장 장비도 최신형으로 갖춰져 있어서 3팀의 낡은 시설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최두식이 있던 3팀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었다. 삼 주 후, 서만호가 나에게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한서준 각성자, 백년길드에서 훈련 성과가 상당히 좋다고 합니다." "그래?" 내가 물었다. "F등급에서 D등급으로 승급했습니다. 삼 주 만에요." 서만호가 말했다. "보통 그 정도 승급이면 최소 한 달은 걸린다고 하던데, 이례적인 속도라고 하더군요." 나는 그 보고를 들으며 원작 스토리를 떠올렸다. 원작에서 서준은 학대와 고통 속에서 성장했다. 매일 밤 숙소에서 몰래 울면서도, 다음 날이면 다시 훈련장으로 나가 이를 갈며 검을 휘두르던 장면이 원작에 묘사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안전하고 좋은 환경 속에서도 똑같이, 아니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이게 맞나.’ ‘고통 없이도 이렇게 성장할 수 있다면, 원작의 그 설정 자체가 틀린 거 아닌가.’ 나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날 저녁, 서준이 직접 나를 찾아왔다. 백년길드 로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멀리서부터 나를 발견한 서준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훈련복 대신 깔끔한 사복을 입고 있었는데, 처음 만났을 때보다 얼굴빛이 훨씬 좋아 보였다. "도련님, 잠깐 시간 있으세요." 서준이 물었다. "...무슨 일인데." 내가 물었다. 서준의 표정이 어딘가 결심한 사람처럼 보였다.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가 다시 다물었다. 손은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그 표정을 보고, 뭔가 큰 얘기가 나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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