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이도현은 밤새 그 문서를 읽었다.
태블릿 화면의 빛이 방 안을 파랗게 물들이는 동안, 그는 몇 번이고 같은 문장으로 돌아갔다.
카르네아데스 작전이라는 명칭 자체는 낯설었다.
군사 용어치고는 지나치게 철학적인 이름이었고, 그래서 더 위화감이 들었다.
하지만 낯선 이름보다 더 낯선 것은 그 내용이었다.
그가 알던 어떤 게임 설정에도, 어떤 공략 위키에도, 이런 항목은 존재하지 않았다.
작전의 핵심은 간결했다.
월귀와의 최종 결전이 끝나는 즉시, 참전한 마법소녀 전원을 '영령화'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영령화라는 단어는 서류상 명예로운 표현이었다.
전공을 세운 이들을 예우한다는 듯한 어감이었고, 실제로 문서 서두에는 그런 취지의 미사여구가 몇 줄이나 붙어 있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문장은 건조해졌고, 결국 이도현이 마주한 것은 절차였다.
실제로는 소녀들의 신체에 이식된 마력 코어를 강제 폭발시켜, 잔존 마력을 회수하는 절차였다.
한 마디로, 죽이는 것이었다.
'전쟁이 끝나면...' 이도현은 그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읽을 때마다 글자가 조금씩 다르게 보이길 바랐지만, 문장은 변하지 않았다.
'끝나면 이 아이들은 필요 없어지는 건가.'
문서에는 다른 항목도 있었다.
마력 코어 회수 시 발생하는 에너지를 지구 방위 시스템의 새 동력원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었다.
효율이라는 단어가 그 항목에 세 번이나 등장했다.
소녀들의 죽음이 단순한 처분이 아니라, 다음 전쟁을 위한 자원으로 취급된다는 뜻이었다.
누군가는 이것을 합리적인 판단이라 부를지도 몰랐다.
이도현은 그 '누군가'가 되고 싶지 않았다.
이도현은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그 떨림을 억지로 멈추려 하지 않았다.
멈춘다고 해서 문서의 내용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 사실을 알아야 할 사람은 자신 하나가 아니었다.
백설도, 서하늬도, 그 외의 모든 아이들도 알아야 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사실을 아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는 것도 알았다.
개인 열람 등급이라는 표시가 그것을 증명했다.
관리원이 이런 표시를 함부로 붙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이제껏 지켜본 것만으로도 알고 있었다.
+++
다음 날 아침, 이도현은 평소처럼 소녀들 앞에 섰다.
표정을 관리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싶었다.
훈련장의 아침 공기는 여느 때처럼 차가웠고, 소녀들은 여느 때처럼 웃으며 인사했다.
그 웃음이 오늘따라 더 무겁게 다가왔다.
"관리관님, 안색이 안 좋아요." 백설이 걱정스레 물었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물통을 내려놓으며 이도현의 얼굴을 살폈다.
"잠을 못 자서요." 이도현은 웃으며 넘겼다.
웃음이 자연스러웠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요즘 서류가 많나 봐요." 백설은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서하늬만이 그를 조용히 응시했다.
말은 없었지만,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그녀는 원래도 말이 적은 아이였지만, 그 침묵의 질이 오늘은 달랐다.
캐묻지 않는 대신, 눈으로 묻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라는 짧은 물음이 그 시선 안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이도현은 그 시선을 피했다.
아직은 대답할 수 없었다.
훈련이 시작되자 이도현은 평소와 다름없이 지시를 내렸다.
동작 하나하나를 점검하고, 마력 흐름을 체크하고, 필요한 곳에 조언을 얹었다.
겉으로는 완벽하게 일상적인 하루였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문서의 문장들이 계속 재생되고 있었다.
'영령화. 강제 폭발. 잔존 마력 회수.'
그 단어들이 아이들의 웃음소리 위로 겹쳐졌다.
훈련이 끝난 뒤, 이도현은 혼자 관리실로 돌아와 문서를 다시 펼쳤다.
작전 시행 예정일이 명시되어 있었다.
다가오는 월귀와의 최종 결전, 그 직후였다.
날짜를 계산해 보니, 남은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짧았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는 결심했다.
이 사실을 정식으로 관리원에 항의해야 한다고.
담당관이라는 직책에는, 소속 마법소녀의 처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권한이 명시되어 있었다.
그가 부임했을 때 받았던 규정집 어딘가에도 그 조항이 있었던 것을 기억했다.
작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설마 진짜로 시행하겠는가.'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항의만 하면, 재검토라도 하겠지.'
그는 그 생각을 몇 번이고 되새기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려 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미 다른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이 문서가 개인 열람 등급으로 내려온 이유가, 애초에 재검토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누군가 이 계획을 은밀히 진행시키고 있고, 그 대상이 자신에게 우연히 흘러왔을 뿐이라면.
그 우연조차 이미 계산된 것이라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
이도현에게는 원래 세계의 기억이 있었다.
전생하기 전, 그는 이 게임의 스토리를 알고 있었다.
지겹도록 반복 플레이했던 만큼, 대사 하나까지 외울 정도였다.
원작에서 이 시점의 담당관은 아무런 문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최종 결전에서 소녀들과 함께 웃으며 승리를 맞이하는 것이 정해진 결말이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모든 소녀들이 카메라 앞에서 손을 흔드는 장면까지, 그는 몇 번이나 봤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태블릿을 다시 봉인했다.
무언가 그가 아는 이야기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이런 결말이 존재했고, 게임이라는 매체가 그것을 감추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플레이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면.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그가 이 세계에 던져진 이유일지도 몰랐다.
단순히 이야기를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바꾸기 위해서.
밤, 이도현은 서하늬의 방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마 늦게까지 훈련 일지를 정리하고 있을 것이었다.
서하늬는 그런 아이였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찾는 아이.
노크를 하려다, 그는 손을 거두었다.
아직은 아니었다.
확실한 것을 얻기 전에는, 아이들을 흔들 수 없었다.
쓸데없는 불안을 심어주는 것이야말로 무책임한 일이라고, 그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다음 날, 그는 관리원 본부로 향하는 셔틀에 올랐다.
손에는 그 문서가 담긴 태블릿이 있었다.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는 동안, 그는 몇 번이나 태블릿 화면을 켰다가 다시 껐다.
문장을 다시 확인하려는 것인지, 확인하지 않으려는 것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조사관님을 만나서, 이게 착오인지 확인해야 한다.' 그는 그렇게 자신을 다잡았다.
셔틀이 기지를 벗어나 어두운 궤도로 미끄러져 들어갈 때, 그는 처음으로 이 자리에 앉은 것을 후회했다.
창밖으로 기지의 불빛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보며, 그는 자신이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원작에 없던, 오직 자신만의 길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앞으로 마주할 것이 무엇인지, 그때는 아직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