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관리원 본부는 기지에서 세 시간 거리에 있었다.
셔틀은 정기 노선을 따라 움직였고, 창밖으로는 폐허가 된 위성 도시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도현은 그 풍경을 보지 않았다.
태블릿 화면 속 문서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서에는 숫자만 있었다.
소녀들의 이름 대신 코드명이, 나이 대신 전투 지수가 적혀 있었다.
'이 숫자들이 그 아이들이라고.' 그는 몇 번이나 그렇게 되뇌었다.
삼 년 전 처음 만났을 때, 막내는 그의 손을 놓지 않으려 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손을 잡아준 사람이 보호자가 아니라 관리 도구였다는 사실을.
거대한 원통형 정거장이었고, 그 내부는 회색 복도로 미로처럼 이어져 있었다.
공기는 차갑고 건조했다.
어딘가에서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이도현은 접수처에서 신분을 밝히고 면담을 요청했다.
"담당관 등급으로는 정책실 면담이 불가합니다." 접수원의 목소리는 사무적이었다.
"긴급 사안입니다. 카르네아데스 작전에 관한 것입니다."
접수원의 손가락이 순간 멈췄다.
하지만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잠시 대기하십시오."
접수원은 내부 통신망에 뭔가를 입력했다.
화면 너머 작은 램프가 몇 번 깜빡였다.
이도현은 그 램프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허가가 날까.'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아이들의 목숨이 걸린 문제였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그는 작은 사무실로 안내됐다.
복도를 따라 걷는 동안 다른 문들은 모두 닫혀 있었다.
문 위에 붙은 명패들이 그가 모르는 부서명을 나열하고 있었다.
정책조정실, 자원배분과, 인력관리국.
그 어디에도 '보호'라는 단어는 없었다.
책상 너머에 앉은 사람은 관리원 부국장, 배도훈이었다.
중년의 사내였고, 표정에는 이미 짜증이 서려 있었다.
책상 위에는 결재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배도훈은 그중 하나를 뒤적이며 눈길도 주지 않았다.
"담당관 이도현.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소." 배도훈이 서류를 뒤적이며 물었다.
"이 문서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이도현이 태블릿을 내밀었다.
배도훈은 화면을 흘낏 보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걸 어디서 구했지."
"개인 열람 등급으로 전달받았습니다. 저는 그 대상 소녀들의 담당관입니다."
배도훈의 손가락이 서류 위를 두드렸다.
탁, 탁, 탁.
규칙적인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그는 대답 대신 그 소리를 몇 번 더 냈다.
"그래서." 배도훈의 어조가 낮아졌다.
"이게 사실이라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재검토라니." 배도훈이 서류를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이건 벌써 상부에서 확정된 사안이오. 담당관이 관여할 자리가 아니지."
"확정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이도현이 다시 물었다.
"확정. 결재. 서명. 이해가 안 되시오?" 배도훈이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당신 같은 하급 담당관이 알 필요도 없는 절차요."
"...그럼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됩니까." 이도현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어떻게 되냐니." 배도훈이 피식 웃었다.
"소모품은 소모되는 게 정상이지 않소."
이도현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소모품이라고 했다.' 그는 그렇게 속으로 되풀이했다.
그 단어는 그가 삼 년간 지켜본 아이들의 얼굴과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훈련장에서 넘어지고도 웃던 얼굴이, 밤늦게 잠들지 못해 그를 찾아오던 발걸음이, 그 단어 하나에 뭉개지는 것 같았다.
"이건 사람입니다. 아이들입니다."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담당관." 배도훈이 처음으로 정색했다.
"당신 직책이 뭔지 아시오? 관리 대상의 정서 안정을 위한 보조 인력. 그게 당신의 전부요."
"보호자로서..."
"보호자?" 배도훈이 말을 끊었다.
"그 호칭은 그냥 명칭일 뿐이오. 전투력 유지를 위한 명분이지. 당신이 정말로 저 아이들을 지킬 권한이 있다고 생각했소?"
방 안이 순간 고요해졌다.
환풍기 소리만 낮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도현은 그 말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무슨 뜻입니까."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당신의 직책, 담당관이라는 자리 자체가 통제 수단이오.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돼야 전투력이 유지되니까. 그뿐이지." 배도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이 진짜 저 아이들의 보호자였다면, 이 문서가 당신 손에 들어왔을 리도 없소. 이건 실수였던 거요. 관리 소홀이지."
"관리 소홀." 이도현이 그 말을 그대로 따라 읊었다.
"그렇소. 당신에게 열람 권한이 갈 이유가 없었거든." 배도훈이 서류를 다시 집어 들었다.
"누군가의 실수요. 담당자를 찾아내면 문책하겠소."
이도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삼 년간 그가 믿어온 자신의 위치가, 처음부터 정부의 도구였다는 사실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나는 저 아이들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순순히 싸우게 만드는 장치였을 뿐이다.'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언젠가 스승이 그에게 했던 말이었다.
'권한 없는 책임감은 자기 위로일 뿐이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지금은 정확히 알 것 같았다.
"용건이 끝났으면 나가시오. 이 대화는 기록되지 않소." 배도훈이 손짓으로 문을 가리켰다.
이도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걸었다.
"그리고 담당관." 그가 이도현이 문을 나서기 직전에 덧붙였다.
"이 문서에 대해 입 밖에 낸다면, 당신 신변도 보장하지 않겠소."
이도현은 대답 없이 사무실을 나섰다.
문이 등 뒤에서 닫히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복도를 걸으면서, 그는 자신의 다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느끼지 못했다.
'명분이었다.' 그 문장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
접수처를 다시 지나면서, 그는 처음 왔을 때 자신이 느꼈던 긴장감을 떠올렸다.
그때는 뭔가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은 그 믿음이 얼마나 얕았는지를 확인했을 뿐이었다.
접수원은 그가 나가는 것을 보고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했다.
이곳에서 담당관 한 명의 방문은 기록에도 남지 않는 일이었다.
셔틀 정거장으로 돌아가는 길, 회색 복도는 여전히 미로처럼 이어졌다.
같은 통로를 걸었는데도 처음 왔을 때와는 다른 곳처럼 느껴졌다.
'모든 문 뒤에 저런 사람들이 앉아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그를 더 서늘하게 만들었다.
돌아가는 셔틀 안에서, 그는 창밖의 별들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원래 세계에서 이 자리는 게임 속 시스템 텍스트 한 줄이었다.
로그인하면 뜨는 안내문, 클릭하면 넘어가는 튜토리얼.
지금은 아이들의 목숨이 걸린 자리였다.
그리고 그 자리조차, 처음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태블릿을 다시 켰다.
문서 속 코드명들이 여전히 화면에 떠 있었다.
그 코드명 옆에, 그가 알고 있는 얼굴들을 하나씩 대입해 보았다.
웃는 얼굴, 우는 얼굴, 훈련 끝나고 지쳐 쓰러지던 얼굴.
그 얼굴들이 전투 지수라는 숫자로 환산되어 있었다.
'그럼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 있었나.' 그는 그 질문에 아무런 답도 찾지 못한 채, 기지로 돌아왔다.
셔틀이 도킹하는 진동이 몸을 흔들었을 때도, 그는 여전히 그 질문 안에 머물러 있었다.
기지의 불빛이 창밖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저 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 사실이, 지금은 어느 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