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중립 정거장은 관리원의 관할이 아니었다.
민간 자본으로 운영되는 소규모 정거장으로, 상인과 밀수업자들이 뒤섞여 있었다.
관리국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서 이런 대화를 나누기에 적합했다.
이도현은 셔틀에서 내려 정거장 통로를 걸었다.
통로 양옆으로 좌판을 벌인 상인들이 소리를 질렀다. 밀수품으로 보이는 물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진열되어 있었다.
그는 그 사이를 지나며 얼굴을 가린 채, 지정된 술집으로 향했다.
술집은 조명이 어둡고, 손님들의 시선이 서로에게 무관심한 곳이었다.
누구도 누구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이런 장소의 불문율이었다.
이도현은 그 사실이 오히려 안도가 됐다.
최인석은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삼 년 만이었지만, 얼굴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만 눈빛이 예전보다 훨씬 날카로워져 있었다. 관리원에서 오래 버틴 자의 눈이었다.
이도현은 그 눈빛을 보며 잠시 걸음을 멈췄다.
'삼 년 전에도 이런 눈은 아니었는데.'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가갔다.
"오랜만이다." 최인석이 짧게 인사했다.
목소리에 반가움은 없었다. 경계심만 있었다.
"연락 줘서 고맙다." 이도현이 맞은편에 앉았다.
"고마울 것 없다. 이건 나한테도 위험한 일이니까." 최인석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는 술을 한 잔 시켰다. 이도현은 시키지 않았다.
정신을 흐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카르네아데스 작전, 어디까지 알고 있나." 이도현이 곧바로 물었다.
최인석은 잠시 주변을 살핀 뒤 입을 열었다.
술집 안의 다른 손님들이 각자의 대화에 몰두해 있는 것을 확인한 뒤였다.
"그 작전은 원래 시험 단계였다. 마력 코어 회수 기술 자체가 완성된 게 최근이야."
"완성이라니?"
"소녀들의 코어를 강제로 폭발시켜도, 그 에너지를 온전히 회수할 수 있는 기술. 그게 완성됐다는 거지."
이도현은 손끝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문장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소녀들의 목숨을 대가로 얻는 에너지가, 이제는 낭비되지 않고 전부 회수된다는 뜻이었다.
"그게 완성되기 전에는 시행을 미룰 이유가 있었다는 뜻인가."
"맞아. 그런데 최근에 기술이 완성됐고, 시행 시기가 앞당겨졌다." 최인석이 고개를 저었다.
"원래는 월귀와의 결전 이후 몇 달 뒤로 잡혀 있었어. 그런데 지금은..."
최인석이 말을 흐렸다.
그의 손가락이 술잔의 테두리를 초조하게 문질렀다.
"지금은?" 이도현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결전 직후 즉시 시행으로 바뀌었어. 결전 장소에서 그대로."
이도현은 숨을 삼켰다.
'전투가 끝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그는 그렇게 되뇌었다.
소녀들이 승리의 기쁨을 느낄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는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서하늬의 얼굴이 순간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 아이가 웃는 순간이, 그 아이의 마지막 순간이 될 수도 있다.'
"누가 이 작전을 설계했나." 이도현이 다시 물었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지만, 그는 애써 억눌렀다.
최인석은 잠시 망설이다가, 낮게 이름을 내뱉었다.
"정책실장, 강필주."
이도현은 그 이름을 기억 속에 새겼다.
한 글자, 한 글자를 새기듯 그렇게 마음에 담았다.
"그자가 결정권자인가."
"결정권자는 더 위에 있겠지. 강필주는 설계와 실행을 담당하는 자야. 하지만 실무는 전부 그를 통해서 이루어져." 최인석이 술잔을 비웠다.
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경고해두겠다. 이건 이미 관리원 내부에서도 극소수만 아는 사안이야. 네가 이걸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저들에게는 위험 요소로 보일 거다."
"내가 위험해질 거란 뜻인가."
"위험해지는 건 너 하나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최인석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네가 담당하는 아이들도, 이미 저들에게는 예정된 소모품이다. 네가 뭘 하든, 저들의 계획을 바꾸긴 힘들어."
이도현은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반박할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관리원 내부의 구조를 그도 알고 있었다.
계급이 낮은 자가 위의 결정을 뒤집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결심하고 있었다.
'바꿀 수 없다면, 부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아버지가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규칙을 바꿀 수 없다면, 규칙이 지탱하는 기둥을 찾아라. 기둥이 무너지면 규칙도 함께 무너진다.'
그 말을 되새기며, 이도현은 강필주라는 이름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겼다.
"결전이 언제인가." 그가 물었다.
"공식 일정으로는 아직 두 달 남았어." 최인석이 답했다.
"하지만..."
"하지만?"
"내부 보고에 따르면, 이미 앞당겨졌을 가능성이 있어. 월귀의 활동 주기가 예상보다 빨라졌다는 관측이 나왔거든."
이도현의 눈빛이 차갑게 굳었다.
두 달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짧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는 손바닥에 땀이 배는 것을 느꼈다.
"확인해줄 수 있나. 정확한 일정."
"노력은 하겠다. 하지만 다음 접촉은 어려울 거야. 이미 내 통신 이력도 감시당하고 있을 수 있어." 최인석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잠시 이도현을 내려다봤다. 삼 년 전과는 다른, 훨씬 지친 얼굴이었다.
"조심해라, 이도현. 저들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고 있어."
최인석은 그렇게 말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이 술집 문 너머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이도현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도현은 홀로 남아, 방금 들은 이야기를 정리했다.
작전은 이미 시행 준비에 들어갔다.
결전은 예상보다 앞당겨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이들은 승리의 대가로 목숨을 잃는다.
그는 술집 안을 둘러봤다. 여전히 손님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했다.
이 정거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이 정거장을 벗어나면 아무도 모른다.
그 무관심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고마웠다.
+++
기지로 돌아가는 셔틀 안에서, 이도현은 창밖을 바라봤다.
별빛조차 없는 검은 우주가 펼쳐져 있었다.
그는 최인석의 말을 다시 곱씹었다.
'네가 뭘 하든, 저들의 계획을 바꾸긴 힘들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시도조차 하지 않을 생각은 없었다.
셔틀의 좌석은 좁고 딱딱했다. 몸을 기댈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는 눈을 감았다. 서하늬의 얼굴, 그리고 다른 아이들의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그들은 아직 자신들이 소모품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 무지가, 오히려 그들을 지켜주고 있는 셈이었다.
그때, 통신기가 갑자기 진동했다.
발신자는 기지 사령부였다.
이도현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이 시간에 사령부에서 연락이 온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메시지는 짧았다.
'월귀 활동 지수 급상승. 결전 일정 재조정. 사흘 후 전 병력 출격 명령.'
이도현은 그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눈으로 읽고, 다시 소리 없이 입술로 되짚었다.
사흘.
최인석의 경고가 현실이 되기까지, 이제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통신기를 움켜쥔 채,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사흘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그는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강필주라는 이름을 밝혀내는 것도, 결전의 정확한 시점을 확인하는 것도, 무엇 하나 사흘 안에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서하늬에게 한 약속이 떠올랐다.
돌아가면 모든 것을 말하기로 했었다.
전투가 끝난 뒤, 함께 살아남으면 그때 진실을 전하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약속은 다른 의미로 바뀌어 있었다.
전투가 끝난 그 순간이, 곧 죽음의 순간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가 진실을 말할 시간조차 없을 수도 있었다.
이도현은 이를 악물었다.
'사흘 안에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떤 방법이든, 아이들을 살릴 방법을.
하지만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정말로 사흘 안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아무런 확신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그 말이, 어떤 무게로 아이들을 짓누를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창밖의 어둠만이, 대답 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