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금성루가 문을 닫는 날, 나는 마지막으로 웍을 씻었다.
10년 썼더니 웍 손잡이가 내 손가락 모양대로 파여 있었다.
뭔 애착 인형도 아니고 웍 손잡이에 손금이 남을 일인가.
그런데 남았다.
수세미로 문질러도 그 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당연하지, 그게 지워지면 그건 자국이 아니라 얼룩이니까.
철이라는 게 원래 그렇게 무디고 정직한 놈이다.
10년을 부대끼면 그만큼 티가 난다.
사람도 그런가 싶었는데, 사람은 10년을 부대껴도 승진도 못 하고 자국도 안 남는다.
불공평하다.
싱크대 앞에 서서 마지막으로 웍을 헹구는데, 주방 형광등 하나가 깜빡거렸다.
저것도 이제 며칠 안 남았다는 걸 아는 건지, 괜히 처량하게 느껴졌다.
감정 이입할 대상이 형광등까지 늘어나면 그건 좀 심각한 신호다.
"도진아, 이거 니 가져가."
박덕수 사장님이 웍을 신문지에 둘둘 말아 내밀었다.
신문지도 몇 년 전 거였는지, 날짜 부분이 누렇게 삭아 있었다.
"그, 저는 됐고요. 사장님 쓰시던 거잖아요."
"쓰던 거 아녀. 인제 안 쓸 껀디, 니가 써야 그게 사는 거지 안 쓰면 그냥 고철이여."
웍한테도 생사가 있다는 논리는 처음 들어봤지만 딱히 반박할 기력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사장님 말이 아예 틀린 것도 아니었다.
쓰지 않는 웍은 그냥 녹슨 쇠붙이일 뿐이고, 누군가의 불 위에 올라가야 비로소 웍이 되는 거니까.
철학적인 척하려는 건 아닌데, 주방에서 10년 살면 이런 이상한 데서 도가 트인다.
금성루는 홍대 골목 안쪽, 간판 불빛도 절반은 나가 있던 낡은 중식당이었다.
간판 글씨 중 '성' 자만 유독 밝게 빛나서 손님들이 가끔 "성루가 어디예요?" 하고 되묻는 그런 곳.
건물주가 재개발 얘기를 꺼낸 게 작년 이맘때였고, 사장님이 버틸 만큼 버티다가 결국 계약을 안 갱신했다.
건물이 그냥 늙었다.
사람도 늙으면 은퇴하는데 건물도 늙으면 헐리는 거겠지, 뭐.
가게 안 짜장면 얼룩진 메뉴판, 손님들이 낙서해놓은 방명록 노트, 벽에 붙은 옛 신문 기사까지 하나하나 눈에 걸렸다.
저 신문 기사에는 "홍대 숨은 맛집, 금성루"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었는데, 이제 그 맛집이 진짜 숨겨질 판이었다.
숨은 게 아니라 사라지는 거지만, 뭐, 결과는 비슷하다.
"사장님, 저 진짜 여기 인수 못 해요?"
마지막으로 한 번 물어봤다.
10년 다닌 데다 정도 들었으니까.
목소리가 생각보다 절박하게 나와서 나도 좀 놀랐다.
"임마, 이 건물 재개발 심의 통과된 지가 언젠디. 니가 인수해도 6개월 뒤에 포클레인 들어와."
사장님이 담배를 물고 웃었다.
"6개월짜리 중식당을 누가 하냐."
맞는 말이었다.
6개월짜리 임대차 계약서에 도장 찍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싶었다.
나도 6개월짜리 인생은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럼 사장님은 이제 뭐 하실 거예요?"
"몰라, 나도. 낚시나 다닐까 싶다."
"낚시 한 번도 안 다니셨잖아요."
"그러니께 이제 다녀야지."
그 말을 들으니 왜인지 마음이 좀 놓였다.
사람은 다 이렇게 새로운 걸 배우면서 사는구나, 하는 실없는 감상.
[전도서 3: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금성루의 때는 끝났다.
내 서른 즈음 인생의 절반도 같이 끝난 기분이었지만, 배는 여전히 고팠다.
감정과 위장은 별개로 작동한다는 걸 그날 새삼 깨달았다.
철학이고 나발이고 배가 고프면 짜장면 생각이 나는 게 인간이다.
심지어 문을 닫는 가게에서 마지막으로 내 손으로 짜장면을 볶아 먹었는데, 그게 또 맛있어서 눈물이 살짝 났다.
농담이다.
사실 그냥 양파를 너무 오래 볶아서 매웠던 거다.
*
실직하고 일주일 동안 나는 방에서 거의 나가지 않았다.
정확히는 나갈 이유가 없었다.
이력서를 몇 군데 넣었는데 셰프 경력 10년이라는 스펙이 요즘은 별로 안 먹혔다.
중식당이 다 재개발로 없어지고 프랜차이즈 마라탕집만 늘어난 세상이니까.
면접 보러 간 곳에서는 "웍 경력 있으시면 마라탕 육수 배합도 잘하시겠네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건 그냥 다른 직업이잖아요, 라고 속으로 생각만 했다.
그렇다고 뭘 배울 의욕도 없었다.
무기력이란 게 참 신기하다.
딱히 슬픈 것도 아닌데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가 귀찮았다.
삼각김밥 유통기한이 지나도 그냥 먹었다.
꼬르륵...
먹는 것만은 몸이 정직하게 시켰다.
방바닥에는 편의점 봉투가 산처럼 쌓여갔고, 나는 그 봉투 산 옆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는 시간이 늘었다.
가끔 웍이 신문지에 싸인 채 방 한구석에 세워져 있는 걸 보면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저 웍은 지금 쓰이지 않으니 사장님 말대로 그냥 고철인가.
나도 지금 쓰이지 않으니 그냥 고철인가.
그런 생각까지 들면 좀 위험한 신호다.
그날 밤, 이불 속에서 휴대폰을 넘기다가 SOOP 앱을 켰다.
딱히 볼 게 없어서 그냥 이것저것 넘기던 참이었는데, 썸네일 하나가 눈에 걸렸다.
[던전에서 캐온 놈으로 국밥 끓여봄]
뭐지?
제목만 보면 도시락 리뷰 채널인데 썸네일은 웬 초록색 촉수 달린 몬스터 사체였다.
호기심에 눌러봤다.
영상 속 스트리머는 던전 안에서 잡은 걸로 추정되는 정체불명 생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칼질은 개판이었고, 비명도 많이 질렀고, 결과물은 시커멨다.
촉수 하나 자르는 데 5분 넘게 씨름하는 걸 보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칼질 흉내를 냈다.
저건 저렇게 자르는 게 아니라 관절 사이를 찾아서 결대로 밀어야 하는데.
직업병이다.
그런데 조회수가 40만이었다.
"와, 이걸로 40만이 나온다고?"
혼자 중얼거리고 나니 좀 억울해졌다.
10년 동안 매일 웍을 잡았던 나는 저것보다 100배는 깔끔하게 할 수 있는데.
댓글창을 내려봤다.
"저 촉수 부위 완전 오돌뼈 같음 ㅋㅋ", "저거 손질하는 거 보니까 내가 더 잘할듯", "형 요리유튜버 아니고 산업재해 유튜버임" 같은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그 와중에 후원 금액은 꽤 짭짤해 보였다.
후원 알림창이 화면 위로 계속 촤르르르륵 지나갔다.
저게 다 돈이라고 생각하니 방구석 삼각김밥 신세가 더 처량해졌다.
[욥기 41:1,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낚을 수 있겠느냐]
낚는 건 못 해도 손질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요리사 자존심이 이렇게 발동할 줄은 몰랐다.
성경도 참, 하필 이 타이밍에 낚시 얘기가 나오나.
사장님이 낚시나 다니겠다고 했던 게 떠올라서 괜히 웃음이 났다.
다들 어디서든 뭔가를 낚으며 사는구나.
*
던전.
한국에 처음 생긴 게 8년 전이라고 뉴스에서 봤던가.
그 뒤로 던전은 그냥 일상의 일부가 됐다.
동네 어귀에 균열이 생기면 국가던전관리공단이 출동해서 등급을 매기고, 자격증을 딴 사람들이 들어가서 몬스터를 잡고 재료를 팔았다.
마치 도시가스 검침처럼 익숙한 풍경이었다.
뉴스 말미에는 항상 "오늘 마정석 시세는 어제보다 소폭 상승했습니다" 같은 멘트가 붙었다.
날씨 예보 다음에 마정석 시세 예보가 나오는 나라.
처음엔 다들 신기해했는데 이제는 아무도 안 신기해한다.
인간의 적응력이란 참 무섭다.
그리고 나는, 사실 국가공인 던전 탐사자 자격증이 있었다.
스무살 때 친구가 스펙 쌓기 붐에 휩쓸려서 같이 따자고 꼬셨던 게 이유였다.
그 친구는 자격증 따고 나서 정작 던전 근처도 안 갔고, 지금은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
실기 시험이 검도 동작 몇 개 따라 하는 거라서, 어릴 때 동네 도장 좀 다녔던 나는 어이없게 쉽게 붙었다.
필기시험은 몬스터 등급표 외우는 게 전부였는데, 그마저도 벼락치기로 하루 만에 외웠다.
그 뒤로 한 번도 안 썼다.
장롱면허, 아니 장롱 자격증이었다.
지갑 안에서 신분증 뒤에 숨어 10년을 썩혔다.
[전도서 3: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또 이 구절이다.
근데 이번엔 좀 다르게 들렸다.
지금이 그 자격증을 꺼낼 때 아닌가.
성경이 이렇게 사람 등을 떠밀어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어차피 이건 내가 마음대로 갖다 붙인 해석이니 성경 탓은 아니다.
나는 자기 규칙이 하나 있다.
한 번 결정한 일은 끝까지 해낸다.
무기력해서 결정을 잘 안 하는 편이지만, 결정만 하면 반드시 끝을 본다.
그게 내가 10년 동안 같은 주방에서 버틴 이유였다.
남들은 3년이면 이직한다는 요식업계에서 10년을 버틴 게 딱히 자랑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시작한 일을 대충 놓아본 적이 없었다.
그날 밤 나는 결정했다.
던전에 가서 재료를 캐고, 요리를 하고, 그걸 방송하기로.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는 지금도 명확하지 않다.
그냥 그 영상의 40만 조회수가 어이없이 부러웠고, 내 웍이 아직 신문지에 싸여 방구석에 놓여 있었다는 것 정도가 이유였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 솔직해지자면, 뭐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이 방에서 고철처럼 삭아버릴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나는 옷장 서랍 맨 아래에서 자격증 카드를 찾아냈다.
먼지가 좀 쌓여 있었다.
카드 속 사진의 나는 지금보다 앞머리가 짧았다.
사진 밑에는 발급일자가 찍혀 있었는데, 계산해보니 정확히 10년 전이었다.
10년 전에 만들어놓고 10년 동안 썩힌 자격증을, 이제야 꺼내는 셈이었다.
타이밍도 참 얄궂다.
[국가던전관리공단 공인 던전 탐사자 자격증]
[등급: 1등급 초심자]
1등급 초심자.
뭐, 시작이 다 이런 거지.
카드 뒷면에는 자격증 갱신 안내 문구가 조그맣게 인쇄되어 있었는데, 이미 유효기간이 몇 년 전에 지나 있었다.
"이거 갱신 안 해도 되나?" 하고 잠깐 걱정했지만, 인터넷 검색 결과 초심자 등급은 별도 갱신 없이 영구적이라는 걸 알아냈다.
평생 초심자라는 게 웃기면서도 묘하게 안심이 됐다.
나는 카드를 지갑에 넣고 집을 나섰다.
동네 어귀에 새로 생겼다는 균열을 보러 갈 참이었다.
그게 뭘 몰고 올지는, 그때는 전혀 몰랐다.